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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정에서 정체성의 정립이란
  • 류종렬
  • 등록 2026-10-26 21:14:10
  • 수정 2026-10-26 21:14:43

사진은 중앙일보


우리나라는 세계사적 흐름에서 달리 길을 가고 있을 것 같다. 요즘 정부가 민의를 거슬러서 작동하는 것으로 보아, 대중의 의사가 새로이 솟아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입말과 문자화를 통해 새로운 공화정을 만드는 과정 중일 것 같기 때문이다.

홍산문화와 송화강문화로부터 환단 시대로부터 고조선으로 이르는 시기에 고인돌 유적지가 세계사 속에서 거의 40%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문화의 발달이 문자로서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그런 삶의 양태는 이 토지에서 사는 이들의 삶에 기억 속에 젖어있을 것이다. 우리 입말의 성립이 우리 문자화한 것은 세종 대왕이 1446년에 반포에서였다. 우리 방법이라는 것을 말하기는 이르지만 그래도, 한자 문화권에서 벗어나서 우리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고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나로서는 프랑스와 우리나라가 세계의 고인돌 유적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백성 또는 인민의 성장에서도 유비적으로 생각할 자료들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여긴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문화를 지구상에 흥미롭게 만들 수 있을 같아서이다.

프랑스에서 “빛들세기” 거의 마지막에, 대혁명을 통하여, 성직자와 귀족이이라 상층의 시대를 마감하고 제3신분이란 평민이 주인이 되어 공화국과 제헌의회를 구성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혁명이, 아가멤논과 오디세우스의 참주제의 칼의 권력처럼,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란 나라도 기원전에는 그들이 문자로 남긴 역사가 없다. 로마인들(특히 시저)이 침입하여 남긴 기록뿐이었다. 물론 유물과 유적으로는 구석기와 신석기 새대의 것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종교가 지배하던 중세에도 프랑스는 라틴어로 쓴 성직자와 귀족의 세상이었다. 그런데 하늘의 뚜껑이 열린 이래로, 사람들은 상층(사대부)과 달리 생각하기 시작했다. 문학에서 라블레(1490?-1553), 사상에서 몽테뉴(1533-1592), 철학에서 데카르트(1596-1650)등이 자국어로 글을 썼고, 제반 학문을 대중화한 말브랑쉬(1638-1715) 덕분에 인민이 자기 문자를 통해 학습을 하고 소통하기 시작했다. 자기들의 것으로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었다. .

사람들이 자국 말로 자기 문자로, 프랑스어로 쓰는 것은 중요하다. 평민인 볼테르(1694-1778)가 귀족에 대들었다고 해서 감옥에 가는 대신에, 영국으로 망명갔다가 돌아와서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관용(톨레랑스)을 주장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민 스스로 자치권을 자율성을 주장하는 자연론자들이며 무신론자들인 백과전서학파들과 더불어, 식물 분류학에 기여한 뷔퐁(1707-1788)과 인간성의 자연을 주장한 루소(1712-1778)가 등장하였다. 루소가 교육과 사회에 대한 새시대 글을 썼다고, 두 권의 책이 파리의회 앞에서 불살라졌다(분서갱유). 이런 시기를 지나서 대혁명이 온다. 이 후로 유럽사에서 프랑스는 19세기를 혁명의 시대로 만들었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우리나라도 입말을 대중화하려는 시기가 있었는데, 연산군 시절 길거리에 우리말 대자보가 있었다고 한다. 갑자사화를 거치면서 대중들의 한글로 글쓰기를 금지하면서 암글이 되었다고 한다. 그 다음 중종시절 기묘사화에서 조광조가 사약을 받으면서 상층으로부터 사회개혁의 동력은 상실하였고, 민중(백성)도 수면 위로 오를 수 없었다. 임진왜란과 청나라의 두 번 침임 이후, 상층은 학문에서 ‘사문난적’이라 하면서 주자학 이외를 배척하였다. 거의 150년을 거치면서 상층이 일방적인 지배를 하다가, 정조 시대에 개혁을 하려고 하면서도, 일부 지식인들의 글쓰기를 통제하는 ‘문체반정’이 있었다. 정조의 글쓰기 방식을 벗어나려 했던 박지원(1737-1805)과 이옥(1760-1813)이 배척 받았다. 여전히 백성의 입말도 표면 위로 오르지 못했다.

유시민을 프랑스 “빛들세기”에 비추어 보면 볼테르에 가깝다. 이보다 먼저 남민전 전사였던 홍세화가 있었다. 유시민이 가치와 탐욕으로 나눈 사회적 상황(ABC론)은 의미가 있지만, 벤 다이어 그램을 좀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수학자 제르곤, 아래 참조). 그리고 사회론에서도 말하자면, 고릴라와 같은 참주적(가부장적) 성격의 동물과 달리, 그가 인용한 작가(프란스 드 발)가 다룬 보노보의 사회에 대한 견해를 공개적으로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나아가 그가 볼테르처럼 조심스럽게 사회비판을 하고 있지만, 아마도 루소의 사회 개혁의 논의가 공공의 담론으로 나오게 되지 않을까 한다. 어쩌면 조국이 보노보와 사회계약론을 이야기한 적이 있어서, 우리 사회도 토지 공유제와 인민의 자발성을 갖는 방식으로 공화정을 다룰 때가 되었다. 이런 담론과 더불어 2013-2015년에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윤구병의 “특별기고: 우리는 하나다(2017)”를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이와 더불어 조화중항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아래 참조).

우리 입말의 공유화와 소통이, 프랑스의 혁명의 전의 한 세기보다 더 속도와 확장이 빠르다는 점이다. 이것은 누리소통(SNS) 시대에 입말의 문자화와 더불어, 이미지의 소통이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리라. 우리 스스로 자치와 자율, 그리고 자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 같다. 이 점에서 철학에서 오랫동안 다루어온 형이상학의 이중성과 시간과 공간의 담론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런 방향들을 모색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제국주의와 미국의 제국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지식계에 습관처럼 세뇌되어 있는 학문풍토에서 앵글로색슨의 존재론에 대해, 라틴계의 자연론이 대등하게 또는 우세하게 담론장에서 이야기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59U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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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제기로서 서양철학사든 서양학문발달사든 번역을 하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이 다루는 거의 모든 용어들이 다의성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앵글로색슨 용어와 라틴계 용어의 차이에서 매우 어려운 것들 중의 하나가 동일성(l’identité)란 용어이다. 논리학을 중심으로 이 용어에 원리를 부쳐서 동일율이라 한다. 이런 용어가 존재론에서 사용이지 자연론에서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며, 게다가 형상론에 가깝지 생성론도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한편에서는 판단의 경우에 주체성과 대상성으로 나누고, 길항관계(antagonisme)로서 적대적이고 경쟁적으로 다룬다. 헤겔은 이러한 것에 통일성과 주체성을 부여하여 국가론 쪽에서 상층의 우선 또는 우월성으로 갔다. 이에 대해 다른 한편으로 사회 안에서 분배의 불평등을 생각하여, 여기에 프롤레타리아와 자본가 사이에 길항관계의 투쟁성에서 정파성을 가져야 한다는 쪽이 맑스이다. 전자에서는 상층의 자유와 대중의 고통이 있다고 하고, 후자에서는 혁명을 강조하는 인민 편에서 저항하고 성취하려는 노력에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사실에 이항 대립적 관계의 문제를 사건들의 연관을 보면서, 인간이란 누구인가를 논하기 시작하는 쪽은 인간에서 동일성(l’identité)이 성립하고, 그 동일성의 유지의 주체성은 사물과 자연을 대상으로 삼는다. 이런 사고는 주체와 개체로 이분법적 분할하고 있고 자연은 인간의 사고의 재료이고 대상 조작의 놀이터 정도이다. 이에 비해 인간은 자연의 생산물이고, 그 생산물인 인간의 정체성(l’identité, 단어가 같다)을 묻는다. 우리는 무엇인가?라고 묻는 쪽은 우리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쪽이 다르다. 소크라테스의 이뭣꼬와 시달다의 이뭣꼬는 전자일 것이고, 유일신앙자들이나 진리론자들은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다고들 한다.

그래도 물음에 대한 다른 반론으로서, 그래도 물음을 묻는 자는, 인간의 인식 능력으로서 지성(오성, 이성)을 가지고서 파악하려 하지 않는가라고 한다. 그 인간이 지성을 가졌다는 것은 먼저 인정해야 하지 않는가?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 지성이라는 사유하는 능력 또는 자신을 파악하는 능력이 처음부터 주어졌던가 라고 물었다. 인식능력이 있다고 하는 쪽에서, 능력의 대상, 그 대상들 사이의 관계, 체계 등에서 합리성 또는 정합성을 이루는 점에서 능력을 인정해야 한다고들 한다. 다른 쪽에서 그런 생각을 한 시기가 언제부터인데 라고 거꾸로 묻는다. 이런 물음이 원리가 있다는 쪽과, 원리든 사유든 기원을 묻는 쪽은 다른 방법이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원리이거나 또는 기원에 대한 사유에 따라 형이상학이 달라진다. 이런 문제가 제기된 것은 인간의 주체성의 동일성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논한, 19세기후반의 인간학과 인종학의 탐색하면서였다고들 한다.

그런 귀결로서 이런 문제제기가 결국에는 형이상학이란 용어로 귀착한다고 하고, 그 학문을 기반으로 또는 그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분과학문의 영역이 이어지고, 계열들을 거쳐가야 학문들의 진수를 알 수 있다고들 한다. 이런 점에서 철학의 기나긴 흐름은 형이상학 발달사의 이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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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에서 형이상학의 문제의 이중성을 갖는 것은 우선 용어에서이다. “자연의 배후” 대한 학문으로서 그 배후 조정자가 신, 또는 신의 설계인가? 아니면 자연의 자발성에 의한 필연인가? 이런 관점의 차이는 인류가 인간성을 유지하는데는, 신이 먼저 있는가, 자연속에서 인간성(영혼)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노력인가? 라는 이중적 사유방식이 들어있다. 여기서 인간이든 생명이든, 자연에서 생성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배우고 익히는데 수십억년이 걸린 셈인데, 신이 “있다”는 용어상으로 신은 기껏해야 5천년년 정도이며, 이런 경우도 하나의 신이라기보다 터전과 환경에 따른 제각각의 신들이 있었다. 그런 신들의 이야기만큼이나 영웅들의 이야기가 있었고, 이들은 거의 참주들로서 행세했다.

이런 이중성에서 그 주제자가 자연 속에서 하나인지 자연 밖에서 하나인지 하는 물음을 그리스 철학 이전에도 있었다. 그 하나가 무엇인가는 통일성인지 단위인지의 구별만큼이나 서양철학사와 서양수학사가 거의 3천여 년 전부터(문명사에서는 수메르와 이집트의 문자 기록상 4천 년 전부터라고들 한다) 이런 과정에서 사유가 좀 더 정밀하고 정확하기 위하여, 대상의 단위를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이 단위 설정을 서양에서는 ‘인류가 무엇을 다루는가’이라는 물음을 던지던 1859년 이래로 다섯 가지 정도라고들 한다. 수, 원자, 천문의 호(원우의 점), 음악에서 현의 소리(현위의 점), 그리고 앵글로색슨이 자랑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이래로 집합론에 이르기까지 논리학에서 이름이라는 항목(기호)이다. 이 다섯 가지가 각각의 고유성이 있다는 것도 거의 같은 해인 1860년경 비유클리드기하학의 성립에서라고 한다. (직)선의 부분은 호일까, 현일까, 수들의 나열일까, 전자들의 배치일까? 대수학과 복소수의 발달로 기호들의 그림판(비트겐슈타인의 그림이론)과 달리 다차원의 연결(connexion), 즉 사물이 아니라 사건의 다차원 연쇄들(séries)이 아닐까?

적어도 1859년 이래로 다차원을 다룰 수 있기 전까지는 고대나 근대나 이원성의 사고가 주류였다(그 마지막이 안타고니스트사유일 것이다). 삶의 터전에서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하늘의 운행과 지상의 생산 사에에 영향(연대)관계가 있다는 부정할 수 없다. 흥미롭게도 브룅슈비끄의 고대 수학사와 레비브륄의 토착민의 문화 전승에서는, 분배와 교환을 다루면서 분배가 교환보다 먼저였기에 원 속에서 나누기에서 수(60진법)가, 대상의 더하기 빼기의 수(10진법)보다 먼저일 거라고 한다. 그리고 고대 수학에서 보기에 수 계산을 통한 더하기 빼기 정도의 분배의 문제에서, 상업적 교환과 잉여에서 문제에서 과도하게 챙기는 방식이 나온다는 것이고, 힘에 의한 정복 문화는 상업적 교환보다 더 많은 이익을 챙기는 것이 정복의 착취라는 것이다. 왜 인종학자와 그리스 이전 시대의 수학을 다루는 이들이 분배와 교환의 이중적 활동을 주의하면서, 인간이 대상(자연)을 파악하는 방식과 견주어 보았고, 하늘과 땅의 기준이 다르다고 알았다는 것이다. .

삶의 양식에서 수와 대상을 다루는 방식에서 분배를 중요시 여기는 농업 사회와, 교환에 우선적인 방식을 둔 지리적으로 열악한 사회 사이에서 차이는 사유의 우선 순위를 바꾸어 놓았을 수 있다. 이로서 사유에도 이중성이 있음을 알았으며 하나로 통일이 어려운 난제임도 알았을 것이다. 여기서 공간적 사고와 시간적 사유가 있다. 이런 문제를 저술의 곳곳에 은연중에 드러낸 철학자가 플라톤이라 하고, 시공의 이런 이중성을 잘 드러낸 이가 벩송이라고 박홍규가 보았고, 그리고 우리는 벩송을 이어받은 들뢰즈, 박홍규를 이어받은 윤구병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사유 방법의 이중성이, 인간의 지식 활동의 단위 또는 기호설정에서도 드러난다. 또한 영혼의 사용 또는 활용의 이중화 현상에서 드러난다고들 한다. 고대에는 그리고 나중에는 플라톤처럼 하늘과 땅 사이의 연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늘을 신들의 놀이터로서 이야기(담론)를 만들면서 체계를 세우려고 하였으나, 둘 사이에 정합성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스적 용어 난점, 불합리, 모순 등의 용어가 생겨났다. 그러다가 중세에서는 황제(참주)제의 성립처럼 상층의 유일신의 성립으로 사유 대상이든 사물 대상이든 하나의 체계 속에서 구겨 넣으려 했으나 부정합과 안티노미, 또는 파라독사가 드러났다.

인간의 생각하는 방법(Cogito)에서 문제의 해결방식을 찾으려 했던 시대가 있다. 데카르트가 사유대상과 사물대상의 이원성이 따로 있다고 두 실체를 주장하면서, 설명에서 산술학과 기하학을 교차로 이용하는 분석기하학을 창안했다. 두 실체라는 대상을 따로따로 다루었지만, 각각의 체계는 대등하거나 또는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인접 또는 상응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렇게 다루는 것도 인간의 인식능력인 지성의 활동이었다. 라이프니츠 이래로 활동의 영역을 점점 확장되어 열려진 우주에서 가 복잡한 사물들 사이의 흐름과 운동을 다루게 되면서, 사유의 영역과 사물(물질) 영역을 다루는 방법의 차이를 인정해야만 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듯했다. 상층이 하나의 통일성을, - 사유이든 우주이든, 나중에는 국가이든, 결국에는 빛을 통한 통일성이든, - 우선으로 보았다. 그러나 생물학의 생명체의 창조의 분화(가지치기)는 통일성을 확보하였다기보다 다양한 방법을 만들어내는 기계처럼 보였고, 이 종들의 계보는 수학의 정합성의 계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또는 다곱성의 연결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유일신을 배경으로 스콜라 철학적 전통을 지니고(참주제의 변형방식을 유지하면서), 국가의 통일성과 지식의 통일성을 합하여 제국주의로 향하였다. 다른 한편에서는 종교적 상층과 절대 국가의 상층이라는 두 상층을 무너뜨리고 제3신분을 통한 인민의 제도를 실행하였고, 나아가 생명체의 유기체화만큼이 또는 사회의 조직화는 수와 원자의 결합과 조합 방식과는 다른 방식이라는 것을 제시하였다. 대수학과 함수를 이용한 자연현상의 다양한 설명만큼이나 인간의 조직화(socius)를 인정하여, 집회 결사의 자유, 사상의 표현과 출판의 자유만큼이나 사회 조직화의 토대인 터전의 공유화 공공화를 주장하는 공화정을 만들고자 몇 차례의 혁명을 수행하였다.

수학의 분화에서 수학들이라고 부르듯이, 물리학과 생물학의 영역들도 기원과 원인의 탐구로서 사물들의 내부로 들어갔다. 이로서 화학의 구조, 미시물리학, 세포 속의 유전자에 이르기까지 다루는 방식들이, 통일성의 체계와 동일성이라기보다, 이질성과 다곱성의 연결(connexion)과정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으로 여긴다. 그럼에도 통일성과 단일성을 먼저 또는 어떤 방식으로든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공상과 망상 속에서, 유일신앙자, 제국(국가)주의자, 수학체계의 단일론자들은 여전히 탐구하고 있다. 이런 통일론자들은 이것들을 체계화로 만드는 과정에서 오랜 학습과 노력을 했을 것인데, 다른 길이 보인다고 해도, 자신들의 오랜 노력으로 만든 단일성의 논리를 벗어나려 하지 않으려 한다. 그 완고한 고집의 국가주의를 낳았을 것이다. 히틀러, 박정희, 트럼프, 윤석열 등에서 보인 사고방식이다. 이재명도 수구파들에게 포위되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닌지.

이런 체제(앙시앙레짐)와 권력구조의 변화와 변역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볼테르같은 사상가도 루소같은 혁명가도 필요하다. 21세기에 우리나라는 인민이 입말로 학습하고 노력하는 가운데 새로운 공화정을 열 것이다.

(59ULA) (4:30, 59ULC) (5:13, 59ULCC)



# 참조:

* 이항 벤다이어그램의 확장적 사유:

https://cafe.daum.net/milletune/S5wa/8

* 비례중항 대 조화중항:

https://cafe.daum.net/milletune/REM0/148




2026 10 23, 상강(霜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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