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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로이> 전쟁
  • 이종철 칼럼니스트
  • 등록 2026-08-17 21:44:54
  • 수정 2026-08-18 12:02:23

                              Photo from Gemini


크리스토퍼 놀랜 감독이 제작한 <오디세이>가 개봉 15일만에 500만 관객을 끌어들일 만큼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오디세이>는 호머의 서사시의 일부인 <오디세이>에 기반한 작품이다. 나는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해서 무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 대신 20여년 전 볼프강 페테르젠 감독이 제작하고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 <트로이>를 우연찮게 OCN에서 보았다. <오디세이>는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를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니까, 이제 그리스 서사 2편이 모두 영화로 완성된 셈이다. 


잘 알다시피 트로이 전쟁은 그저 오래전 이야기로만 구전되어 왔던 것을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슐리히만이 직접 발굴에 뛰어 들어 밝혀낸 역사적 진실이다. 슐리히만은 어렸을 적 책에서 보았던 것을 단순히 이야기로 치부하지 않고 끈질기게 파헤친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 세계사>라는 책에서 보았는데 수십년이 흘렀어도 기억이 난다. 


트로이 전쟁은 기원전 13세기경 에게해 주변을 패권으로 삼았던 미케네 문명과 소아시아(현재의 튀르키예) 북서부에 실제 존재했던 고대 도시 트로이의 충돌로 일어났다. 하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그리스인들은 전쟁을 신화적 서사로 묘사를 했다. 신들의 축제에 초대를 받지 못한 데 앙심을 품은 불화의 여신 에리스(Eris)가 연회장에 나타나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글귀가 적힌 황금 사과 한 개를 던지고 떠난다. 남자들이 권력 앞에서는 부자 간도 없다고 하는 것처럼, 최고의 미(  )자리를 두고 제우스의 아내 헤라(Hera), 지혜의 여신 아테나(Athene),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Aprodite)가 다투게 되었고, 이 판정을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Paris)에게 맡긴다.


아프로디테는 파리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고 유혹해 사과를 차지한다. 그 대가로 파리스는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였던 헬렌을 트로이로 데려온다. 자존심과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Menelaos)는 형이자 미케네의 왕인 아가멤논(Agamenon)을 부추겨 트로이 공격을 감행한다. 황금의 도시로 알려져 있던 트로이에 대한 욕심에 불탄 아가멤논이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 그는 바로 그리스 전역의 군대를 규합하여 트로이를 침공한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1000여척의 범선이 출정하려고 하는데 때마침 바람이 불지 않는다. 이때 아가멤논은 신탁을 구하는데 "너의 가장 소중한 것을 제물로 바쳐라."라는 신탁에 딸 '이피게니아'를 제단에 올린다. 나중에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그리스로 돌아왔을 때 앙심을 품은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살해당한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의 비극 시인인 아이스퀼로의 3부작 <오레스테이아>의 1부에 나온다. 


영화의 줄거리를 담은 서사의 내용이 워낙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반복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내가 인상적으로 받아들였던 몇 가지 장면을 중심으로 기술해보고자 한다. 


1. 아가멤논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영웅 아킬레스가 참전을 꺼려하자 2명이 그를 전쟁터로 이끈다. 한 사람은 후속편 <오디세이>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다. 그는 아킬레스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그리스의 왕인데, 아킬레스에게 아가멤논이 아니라 그리스를 위해 참전을 독려한다. 다른 한 사람은 아킬레스의 어머니이다. 보통의 어머니 같으면 오히려 참전을 말릴 터인데 아킬레스의 어머니는 자식의 운명을 알면서도 그 이름이 후대에 빛날 것이라고 하면서 참전을 촉구한다. 인간의 몸은 겨울날의 밀처럼 사라지지만, 영웅의 이름은 후대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리스 인들의 불사의 정신을 잘 드러내준다 할 것이다. 가시적인 현상의 세계 보다는 영원한 이데아의 세계를 강조한 플라톤의 철학도 이에 기반한 것이다. 


2. 헬렌을 유혹해서 트로이로 도망가자고 한 파리스는 앞으로 일어날 엄청난 비극을 충분히 예감한다. 하지만 미래의 비극을 예견하는 지혜가 아무리 깊다 하더라도 그것이 현재의 불같은 열정과 욕망을 막지는 못한다. 사랑은 미친 짓이라는 정신분석학자들의 지적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맹목적인 사랑은 이성적인 판단에 앞선다. 그리스의 비극 시인 아이스퀼로스의 <메데이아>는 남편 이아손에게 배신당한 콜키스의 공주 메데이아가 처절하고 파괴적인 복수를 하는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그녀는 이아손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안기기 위해 그들 사이에 낳은 아이를 죽인다. “나도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저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미치게 한다.” 


3. 영웅 아킬레스는 아가멤논하고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그리스로 복귀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사촌 동생이 트로인의 명장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하자 복수심에 불타서 헥토르에게 결투를 청한다. 헥토르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지만 아킬레스의 검을 피하지 않는다. 동생 파리스가 어리석은 욕망을 추구하고, 메날라오스와의 싸움에서 목숨에 연연한데 반해, 영웅 헥토르는 오직 숭고한 의무감으로 죽는다. 아킬레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고 다니면서 훼손한다. 그 날 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가 아킬레스의 막사로 찾아온다. 사랑하는 자식의 시신을 거두기 위해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스의 손등에 키스를 하면서 자식을 죽인 원수의 손등에 키스를 하는 아비의 고통을 이해해 달라고 애청한다. 아킬레스도 프리아모스 왕의 용기에 감복해서 헥토르의 시신과 함께 그의 사촌이자 여사제인 브리세이즈도 돌려 보낸다. 


4. 10년을 끈 전쟁에 그리스와 트로이 모두 지쳐 있다. 여기서 오디세우스가 비책을 내 놓는다. 이른바 '트로이의 목마'이다. 영화에서는 부하가 목각을 깍는 장면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것으로 나오지만, 원작에서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계시로 나온다. 이것 외에도 원작과 다른 장면이 몇 가지가 나오는데 아마도 신화적 색채를 덜어내려는 감독의 의도적인 연출일 수 있다. 오디세우스는 이 묘책이 자신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자랑하다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서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 까지 지중해에서 10년의 세월을 보낸다. 이 이야기가 <오디세이>의 내용을 채우고 있다. 해변에 그리스 병사들의 시체가 여기 저기 널려 있는 상태에서 거대한 목마를 본 프리아모스 왕은 그리스 군대가 오랜 전쟁과 역병에 시달리면서 퇴각한 것으로 판단한다. 이때 헬렌에게 어리석다는 이야기를 들은 파리스는 목마를 태워버리자고 주장한다. 원작에서는 여사제 브리세이즈도 목마가 트로이를 파멸할 것이라고 경고하지만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왕은 이런 반대 의견을 묵살할 채 목마를 성 안으로 끌어들인다. 지혜로운 왕의 어리석은 실수이다. 


5. 밤이 이슥해지자 거대한 목마에서 나온 그리스 병사들이 승전 축제로 골아 떨어진 트로이를 파죽지세로 파괴한다. 10년을 지킨 성채가 단 한 번의 실책으로 무너지고 만 것이다. 이 때 아가멤논은 원작과 달리 아킬레스가 사랑했던 브리세이즈를 겁탈하려다가 그녀의 칼에 찔려 죽는 것으로 나온다. 사실 이 영화에서는 아가멤논의 역할이 그저 전쟁을 독려하고 아킬레스와 갈등을 빚는 정도로 나오지만, 트로이 전쟁은 지중해의 패권을 쥐려는 아가멤논의 권력 욕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는 10년 전쟁의 개선장군으로  그리스로 돌아오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독살당한다. 영웅의 종말이 초라할 정도다. 물론 그의 죽음으로 인해 아이스퀼로스의 비극 <오레스테이아>의 3부작이 흥미진진하게 이어지기도 한다. 


6. 트로이 전쟁은 그리스와 트로이만의 전쟁은 아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트로이 전쟁에 관한 영화는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전쟁에서서 패한 트로이의 왕족인 아에네이스 장군이 오딧세이와 똑같이 식솔들을 데리고 30년 동안 지중해 연변에서 고생을 겪다가 이탈리아 반도에 정착해 로마를 세운다. 물론 이 이야기는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Vergilius)가 쓴 대서사시 <아이네이스(Aeneis)>에 나온 허구지만, 그리스 문화의 짝퉁인 로마의 기원을 그리스에서 찾고 싶어한 로마인들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서구 문명의 기원을 그리스-로마 문명에서 찾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면 <아이네이스> 역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잇는 대서사시의 반열에 놓아도 좋을 것이고, 마땅히 후속 영화로 나올만 하다. 


7. 페테르젠 감독은 의도적으로 <일리아드>의 내용을 각색했지만 아직 보지 못한 놀랜 감독의 <오딧세이>는 원작의 내용을 얼마만큼 반영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예술작품이 그렇듯, 원작의 반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재적 관점 속에서 얼마나 생생하게 그려내는 지도 중요하다. 이 이야기는 조만간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를 보고 나서 적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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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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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niceye2026-08-20 21:40:39

    그리스 신화와 역사를 단순한 전쟁 서사로 소비하지 않고, 욕망·명예·복수·의무·권력이라는 인간 존재의 다양한 층위를 연결해 읽어낸 점이 인상적입니다. 특히 영웅의 영광 뒤에 놓인 인간적 비극과 한 번의 판단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통찰이 오늘의 현실에도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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