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자연재해, 상상을 초월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83107490005641?dtypecode=pancode_main네팔·티베트 대홍수 사망 797명·실종 3048명…터널 구조 사력입력 2026.08.31 07:54한국일보를 선호 출처로 추가김현우 기자네팔, 수력발전소에서 집중 구조작업미국·캐나다 등 긴급 자금 지원이미지 확대보기29일 네팔 홍수 피해 지역 중 한 곳인 누와코트 지역 비...

장편소설_칸첸중가_016_장마당_아일랜드 게스트 하우스
장마당
셰르파 호텔의 주방 메뉴는 훌륭했다. 모모(만두)와 툭바(국물 국수)와 차오민(볶은 국수) 중에서 어느 하나가 가장 맛있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모두 다 먹자마자 힘이 날 정도로 훌륭했다. 다르질링의 어떤 식당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별미였다.
낮잠 한숨 자고 난 후에 먹었던 툭바는 낭아(검은 물소)의 살덩어리를 뼈 채로 삶은 육수에 거친 밀가루 국수를 말고 수육 몇 점과 고소를 얹었으며 우리의 산초 비슷한 향신료를 살짝 뿌렸다.
밤에 먹었던 모모는 낭아의 생고기를 고소와 함께 다져서 속을 채웠다. 다음 날 아침에 먹은 차오민은 유채 기름과 토마토소스로 볶은 국수에 닭고기 볶음을 몇 조각 얹어서 냈다. 내가 먹어보지 못한 메뉴, 즉 채식주의자들을 위해 육류를 사용하지 않은 모모와 툭바와 차오민도 분명히 맛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주방에서 만드는 모든 음식은 디키 도마의 작은 오빠인 카지 라마의 솜씨였다. 카지 라마는 셰르파 호텔의 주방장이지만 오래전 한때는 승려였다. 또한 오랫동안 대처에 나가 떠돌이 생활도 해 봤다. 손님이라고는 나 한 명뿐이었는데 저녁 내내 그는 부엌에서 도마를 두드렸다. 만두에 넣을 고기를 다지는 소리였다. 디키 도마도 오빠 일을 돕느라고 분주했다. 솥에서 건져낸 국수에 유채 기름을 발라서 채반에 널어 두는 일도 도왔다.
다음 날 새벽 운무가 걷히자, 셰르파 호텔의 마당은 꽤 널찍한 장터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청명한 날이면 설산 칸첸중가가 멋지게 펼쳐지는 언덕일 법 했다. 그러나 그날의 칸첸중가는 구름 속에 숨어 있다가 잠깐씩 설면 일부만 보여주다 말았다.
장마당에는 어느새 많은 산촌 사람이 내려왔고, 떠돌이 장꾼들이 난전을 펼쳐 놓았다. 셰르파 호텔에도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티베트 전통 복장인 바쿠 차림으로 들어온 산골 여인들은 친척이거나 오래된 단골인 것 같았다. 카지 라마가 그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잠시 주방에서 나왔을 때 나는 셰르파 호텔에서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일단 다르질링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칸첸중가에 좀 더 가까이 가 보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버스 종점으로 향했다. 부쩍 늘어난 행인들 속에서 옷 가게 그릇 가게 쌀가게 대장간을 지나고, 값싼 화장품과 장신구와 털실 등을 파는 가게를 지나고, 시계나 라디오 손전등을 수선하는 집을 지났다. 선술집과 여인숙과 약방을 지났다. 버스 종점이 나왔다.
일본 청년들이 트럭으로 떠날 때만 해도 한산했던 버스 종점은 많은 트럭과 지프와 사람들이 흙먼지 속에서 붐비고 있었다. 다시 실리콜라 강을 거슬러 온 길을 되짚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떨치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올라서는 마지막 한 발에 의해서 갑자기 다른 세계에 속했다 싶으니 울컥 목이 메었다.
스무 살에 장가든 이후로는 사방 백 리 밖으로 나가보지 않았다는 람만의 림부 셰르파가 존경스러운 은자로 떠올랐다. 운무 속에서 향연이 뭉클뭉클 솟아나는 향로를 흔들며 염불하던 펨 도마의 아버지도 떠올랐다. 그가 읊조리던 옴마니밧메훔이 왜 긴 한숨처럼 들렸는지도 알 것 같았다. 그러자 내가 기대어 잠들었던 보리수가 떠오르고, 바쿠 차림의 나니 디디가 거기 앉아 뜨개질하는 환영이 스쳤다.
아일랜드 게스트 하우스
다르질링은 여행자들로 들끓고 있었다. 알리멘트에는 빈방이 없었다. 유스호스텔에는 있겠지만 내키지 않았다. 티브이 타워 인근에서 숙소를 찾으러 다녔다. 아일랜드 게스트 하우스에 방이 하나 비어 있었다. 방 다섯 개가 잇달아 있는 아래층 맨 끝 방이었다. 한쪽 콧방울에 금싸라기 장신구를 붙인 몽골계 여주인이 방문의 자물쇠에 열쇠를 꽂아 놓고 문 옆으로 비켜섰다. 직접 열고 들어가 보라는 뜻이었다.
시멘트 바닥에 놓인 나무 침대 위에는 솜이불과 베개가 놓여 있고 침대 밑에는 값싼 카펫을 깔아 놓았다. 통로 쪽으로 낸 창의 창살이 거슬렸지만 그 밑에 놓인 단순한 형태의 나무 책상과 의자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화장실 문은 알루미늄 새시였다. 자연광을 조명으로 이용하기 위해 반투명 유리로 창을 해 달았다. 안에 환풍기도 설치되어 있었다. 수세식인데, 그냥 쭈그리고 앉은 채 오른손 앞의 수도꼭지를 틀어서 손잡이가 달린 큼직한 컵에 물을 받아 변기에 붓는 인도 식이었다.
서양식보다는 그게 더 좋았으므로 우선 하루치 방값을 치렀다. 여주인은 씽긋 웃으며 저녁은 어떻게 하겠냐고 묻더니 특별한 계획이 없다면 2층으로 올라와 메뉴를 보고 결정하라고 했다.
이층은 자기 가족이 쓰는데, 투숙객들 전용 식당과 특별히 마음에 드는 손님에게만 주는 특실이 따로 있다는 얘기도 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구경삼아 잠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이미 어둑해 질 무렵이었다.
현관에 들어서니 호텔 로비처럼 꾸민 널찍한 거실이 나타났다. 거실 왼쪽 창가에 식탁 두 개가 있었다. 그중 한 식탁에는 수저가 놓여 있고 촛불이 켜져 있었다. 내가 계산대 밑의 2인용 안락의자에 잠시 앉아 있을 때 젊은 서양 남녀가 현관 오른쪽 계단에서 내려와 촛불이 켜진 식탁에 가서 앉았다.
특실은 현관 오른쪽 계단 위의 옥상에 꾸민 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주인이 사누(작다는 뜻)라고 부르는 처녀가 계산대에서 찾아준 메뉴판은 A4 용지 크기의 마분지에 비닐 코팅을 한 것이었다.
툭바/모모/차오민이 메뉴 맨 아래에 있었다. 툭바와 모모를 주문하고 소파에 그냥 앉아 있었다. 촛불까지 켠 식탁에 앉은 서양 남녀 뒤쪽에 바로 가서 앉기가 거북해서 사누나 여주인이 안내해 주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사누가 그들의 식탁에 수프를 내갈 때 주방에서는 양념한 육류를 굽는 서양 요리 냄새가 났다. 그들이 주문한 음식은 메뉴판의 어떤 것이냐고 사누에게 물었다. 사누가 손가락으로 짚어 준 것은 맨 위의 특별 메뉴인 스테이크였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툭바의 여섯 배였던 것 같다.
특실 숙박비도 물론 만만치 않았다. 아래층 방 다섯 개 모두 쓰는 가격이었다. 그래서 저렇게 극진히 모시는가 싶어서 심술이 났다. 나는 슬그머니 소파에서 일어나 그들 뒤쪽 식탁에 가서 앉았다. 서양 여자가 ‘하이’ 하며 미소 지었다. 꽤 미인이었다.
잠시 후 나온 툭바는 기명만 화려했지, 맛은 림빅의 셰르파 호텔보다 못했다. 그래도 잘 먹었다고 말하고 돈을 냈다. 거스름돈을 내주고 나서 여주인이 말했다. 관광객이 많이 오는 시즌에는 물이 귀하므로 빨래는 사누에게 맡겨 달라고. 비용은 카운터 옆 벽에 붙인 가격표에 주르륵 나와 있었다. 양말, 팬티는 물론 손수건까지 가격이 매겨져 있었다.
림빅의 셰르파 호텔에서 며칠 더 머물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실리콜라 강변의 펨 도마에게 거짓말을 했던 것을 후회했다. 랄리구라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을 후회했다. 내 거짓말이 가증스럽고 그것을 잊기 위해 또 술 마시게 될 일이 두려워서 도망치듯 버스에 올랐지만, 내 거짓말은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다. 잊었다 싶었을 때 다시 들리는 이명처럼 내게 붙어 다녔다. <</span>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