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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_칸첸중가_029_파업_소나기
  • 김홍성
  • 등록 2026-10-27 07:05:04
  • 수정 2026-10-27 07:07:11


파업

정오 무렵에 스님의 시킴 입경 허가가 나왔다. 주정부 사무소가 있는 거리에는 시민들의 거리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플래카드를 쳐들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그들의 요구는 다르질링을 웨스트벵갈 주정부로부터 독립한 자치단체로 승격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이를 주도하는 단체는 다르질링의 원주민인 몽골계 주민들의 정당인 GM(구르카 인민당)이라고 했다.
 

다르질링에 머무는 이방인이었던 우리는 시위로 인해 폭력 사태가 벌어지는 것과 파업이나 계엄으로 발이 묶이는 그것이 두려웠다. 서둘러 다르질링을 떠나는 게 상책이었다. 단순한 축제였던 홀리 축제마저 나에게는 불안했다. 피처럼 번지던 붉은 물감을 보면서 얼마나 섬뜩했던가.


알리멘트로 돌아오자마자 체크아웃 하고 시킴으로 떠나겠다고 말했을 때 타파는 한숨을 쉬었다.

“이젠 늦었어. 오후부터는 파업이야. 버스도 지프도 못 다녀. 파업에 가담하지 않으면 시위대가 차에 불을 지르거든."

“진작 좀 알려주지 그랬어?”

“시위나 하고 말 거라고 생각했지. 바로 파업일 줄은 몰랐어.”

“며칠이나 갈까?”

“글쎄, 내일 오후에는 풀릴지도 몰라. 올해 첫 파업이라 오래가지는 않을 거야.”

타파에 의하면 해마다 봄이면 파업이 있었다. 첫 파업은 대표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기 위한 운수업 분야의 파업이므로 하루 만에 끝났다. 그러나 협상이 결렬되면 총파업을 선언했다. 그래도 사흘에 한 번씩은 부분적으로 파업을 철회했다. 주변이 온통 차밭인 고지대라는 다르질링의 지리적 특성상 파업이 길어지면 식량과 연료는 물론 관광객이 들어오지 못해 민생과 경제가 심한 타격을 받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파업은 양상이 다를 수도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웨스트벵갈 주정부가 다르질링을 독립된 자치주로 인정할 경우 주정부 수입이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협상은 결렬될 것이며 투쟁은 더 격화될 것이어서 2차 파업은 이미 예정된 것이라고 타파는 말했다.

페마네 뚱바집에 가서 먹으려던 점심을 알리멘트에서 대충 때웠다. 스님은 올라가서 좀 쉬겠다며 식탁을 떠났고 나는 남아서 알리멘트의 비망록을 가져다가 펼쳤다. 전날 저녁에 스님이 가지고 올라가 읽고 반납한 그 비망록에 기록된 시킴 입경 허가에 대한 오래전 정보 밑에 새 정보를 가필해서 수정했다.

비망록에는 여러 나라 사람이 여러 종류의 문자와 그림을 남겨 놓았다. 일본인들은 만화를 많이 그려 놓았다. 한글 메모는 많지 않았다. 그중 한 메모는 내가 알리멘트에 오기 전에 잠시 묵었던 아일랜드 게스트 하우스를 심하게 비방하는 메모였다. 

‘만나는 모든 한국인 여행자에게 꼭 알려주세요’로 시작하는 그 메모는 아일랜드에서 먹거나 자지 말라고 선동하고 있었다. 아일랜드의 주인 부부는 사악한 사기꾼이라고도 썼다.

그들은 손님으로 혼자 도착한 한국인 여성 여행자에게 비즈니스 비자를 만들 수 있으니 동업하자고 꼬드겨서 게스트 하우스를 한 층 더 올려 이층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비즈니스 비자를 만들어 주기는커녕 이 핑계 저 핑계로 돈을 더 내라고 채근하며 박대하던 중에 비자 만료 기한이 다 된 한국인 여성은 다르질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썼다.

메모는 다음과 같은 글로 마무리되어 있었다.

“아일랜드의 주인 부부는 한국 공장에 취업한 조카가 사고로 죽는 바람에 한국인에게 원한마저 품고 있습니다. 저는 아일랜드에서 잤던 첫날밤 꿈에 목매단 여자 귀신을 보았습니다. 인도나 네팔에서 만나는 모든 한국인에게 이 사실을 꼭 알려주세요. 1997년 4월 3일, 푸른 하늘 올림.” 

메모를 남긴 ‘푸른 하늘’은 피해 여성 당사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모한 사실을 어디서 누구에게 들었는지를 밝히지 않은 점, 피해 당사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저주를 자신 있게 퍼붓고 있는 점이 그런 추리를 유도하고 있었다. 목매단 여자 귀신을 봤다는 마지막 대목은 ‘푸른 하늘’이 아일랜드의 객실에서 목매달고 싶었다는 얘기로 읽혔다.

푸른 하늘은 아일랜드의 어느 방에서 잤을까? 혹시 내가 묵었던 그 방 아닐까? 방을 구하기 위해 아일랜드에 찾아갔을 때 여주인이 방의 문을 열어 주기만 하고 옆으로 비켜섰던 모습이 떠올랐다. 안으로 들어서기 싫은 내색을 애써 감추는 표정이지 않았던가?

메모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시킴에서 돌아오면 다시 아일랜드에 가서 묵을 취생몽사 커플에게 메모 내용을 전달해 줄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시킴에서 취생몽사 커플을 만나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왠지 꼭 만나게 될 것 같았다.

혹시 타파가 전해준 얘기를 푸른 하늘이 옮기지 않았나 하는 의심도 들었다. 그러나 두 집은 구역이 다르고 거리가 멀었다. 또한 타파가 그 정도로 야비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타파가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봤다. 그러나 거의 1년 전 일이다. 수많은 손님 중에서 그녀를 기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었다.

타파에게 그 메모의 내용을 알려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했지만 참았다. 혹시라도 타파가 그 메모를 뜯어내거나 먹칠을 해 버리면 더 이상 어떤 한국인도 그 메모를 읽을 수가 없지 않은가?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메모를 남긴 푸른 하늘의 의도를 존중해 주기로 했다.

또 다른 한글 메모는 ‘오이김치 담그는 법’이었다.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만난 어떤 스님에게 배운 방법인데, 혼자 맛있게 먹기가 미안해서 널리 소개하기로 했다고 썼다. 다음과 같다.

<</span>오이김치 담그는 법>

1. 흔히 들고 다니는 플라스틱 생수병을 두어 개 모아 깨끗이 씻어 둔다.

2. 시장에서 껍질이 얇고 씨가 부드러운 오이를 여러 개 사다가 깨끗이 씻은 후 생수병 주둥이로 들어갈 만한 크기로 자른다.

3. 적당량의 파나 마늘을 다져둔다.

4. 자른 오이를 생수병 용량의 2/3 정도만 넣은 후 약간 짭짤할 정도의 소금물을 오이 분량의 반쯤 붓고 적당량의 고춧가루 또는 고추 파·마늘을 넣은 후 잘 흔들어 준다.

5. 뚜껑을 느슨하게 닫은 후 익은 냄새가 날 때까지 그늘에 둔다.

6. 보통 24시간이면 오이김치 맛이 나지만 날씨가 더우면 더 빨리 익는다.

7. 먹을 때는 꺼내거나 덜기 쉽게 생수통의 윗부분을 자른다.

8. 생수병 1개 분량이면 둘이 한 끼 잘 먹는다.

이렇듯 자상하게 오이김치 담그는 법을 알려준 사람은 ‘시식해 본 후 좋다고 생각되면 널리 알려주길 바란다.’라는 부탁도 써넣었다.




소나기

 


새벽인 줄 알았는데 저녁이었다. 깊은 잠 속에 빠져 수많은 사람과 얽히고설키는 혼미한 꿈을 꾸었다. 시간 감각을 놓쳤더니 공간 감각에도 혼란이 왔다. 내가 처한 그곳이 알리멘트라는 걸 금방 알아차리지 못했다. 두 시간 전에 알리멘트의 식당에서 비망록을 덮고 방으로 올라왔다는 걸 기억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탁 터진 하늘을 보면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방에서 빠져나와 옥상으로 올라갔다. 하늘은 검은 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북쪽 귀퉁이만 둥글게 터져 있었는데, 세상의 빛이 그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듯했다. 꿈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도 그 구멍을 통해 사라지는 듯했다.
 

검은 구름이 움직여서 그 구멍을 완전히 메워버리기까지 나는 그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기억해 내려고 애썼으나 실패했다. 꿈에서 만난 꿈속 인연들을 꿈 깨서 더듬자니 전생 인연처럼 종적이 묘연했다.

옥상 방에 불이 켜졌다. 잠시 후 불 켜진 방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그가 말했다. 

“좀 잤더니 개운하네요.”

말한 사람이 무상 스님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야 그 방이 스님 방이라는 기억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 방은 산닥푸_팔루트 트레킹 전에 나도 며칠 썼던 방이라는 기억도 돌아왔다. 내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다섯 시밖에 안 됐는데 한밤중 같습니다. 구름이 솥뚜껑 같아요.”

“비가 오려나 봅니다.”


“비 좀 왔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목에 차가운 빗방울이 떨어졌다. 손바닥을 하늘로 내밀었더니 손바닥에도 빗방울이 떨어졌다. 제법 무게가 느껴지는 굵은 빗방울이었다. 스님도 나처럼 손바닥을 내밀고 있다가 ‘소나기 한번 멋지게 쏟아지겠네요.’ 했다. 그리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여기서 비 구경하실래요? 내려가서 차 마실래요?”

“비 구경이 좋겠죠. 차는 제가 내려가서 가져오겠습니다. 홍차도 있고 얼그레이도 있던데 어떤 게 더 좋으세요?”

“홍차가 좋습니다. 그리고 생수도 한 병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막 내려가려던 참인데 번개가 번쩍하더니 먼 데서 천둥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세찬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마 밑에 서서 구경할 비가 아니었다. 스님은 자리를 옮기자고 하더니 방에 들어가 창문과 방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누추하지만 들어오세요.’ 했던가? ‘아쉬운 대로 이걸 깔고 앉으세요.’ 하면서 등산용 매트리스를 펼쳤던가? 아무튼 우리는 방 안에 들어앉아서 기세 좋게 쏟아지는 소낙비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제각기 다른 상념에 잠겨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상념은 무엇이었는지 잊었다.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도 잊었다. 아마 과거에 겪은 비슷한 상황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스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기시감(旣視感)이라는 말 아세요?”

“처음이지만 이미 본 느낌. 아닙니까?”

“네, 맞아요.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 이전에도 있었다는 느낌, 그렇다고 환각이나 착각은 아니고…. 인도 땅에 온 후로 그런 느낌이 들곤 합니다."

스님은 자칫 넘칠지도 모르는 술잔을 건네는 듯 느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마리아 호텔에서도 그랬습니다. 그때도 옥상이었죠. 많이 취하지는 않았는데 기시감이 너무 강렬해서 몸이 떨렸어요. 어떤 장면들이 그랬는지는 제대로 표현이 안 됩니다. 그 느낌은 한순간에 왔다가 사라집니다. 간신히 꼬리를 잡고 따라가 보기는 하지만 결국 놓치고 맙니다. 방금 그랬어요. 흐흐흐….”

스님이 말을 마치자, 비 쏟아지는 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렸다. 빗방울이 튀어서 문턱을 넘어오고 있었다. 때맞춰 번개가 번쩍하더니 우르르 쾅, 또 번쩍하더니 우르르 쾅쾅. 전쟁이 난 듯했다.
 

스님의 얼굴에 번갯불이 비쳤다. 그 순간에 본 스님은 눈을 감고 있었다. 두 번째 번갯불이 비쳤을 때는 고집스러워 보였다. 세 번째 번갯불에 비친 모습은 고통을 참는 모습이었다. 나는 스님을 그대로 가만히 놔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일어섰다. 

아래층 식당에 내려가 맥주 한 병을 비웠을 때 비가 그쳤다. 스님이 내려왔다. 스님은 소나기 그친 푸른 하늘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뚱바라고 했던가요? 그거 한번 마셔보고 싶은데 안내해 주실 수 있나요?”

“왜 안 되겠습니까. 가십시다.” <</span>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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