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키우던 강아지와 이별한 지 벌써 8년이나 지났다. 유기견으로 우리 집에 입양을 온 해가 2007년 9월이고 병으로 죽은 게 2018년 3월이니까 정확히 10년 6개월을 함께 살았다. 이 이야기는 “깜보”라 불리던 강아지가 입양된 날부터 암으로 죽은 날까지 있었던 일을 중심으로 그 개와 보냈던 소중한 경험을 기억하면서 적은 기록이다. 개는 다른 어떤 동물보다 인간과의 친밀도와 충성심이 높다. 오늘날 한국에는 애완견이 천만을 넘는다고 한다. 고령화 사회로 본격 진입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애완동물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나 한국에서 찍은 영화가 거의 없다는 것도 이상하다. 물론 외국에는 개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들이 적지 않다. 유명한 벤지가 대표적이다. SBS의 인기 연재물 ‘동물농장’이 있기는 하지만 애완견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이야기는 그런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려고 한다.
1. 깜보를 입양하다.
2007년 9월 어느 날, 아내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온다. 딸아이가 유기견 한 마리를 집에 데리고 들어오겠다고 한다. 친구랑 상암동에 갔는데,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유기견 한 마리가 거리에서 떨고 있어 안고 왔다고 한다. 내가 놀라서 바로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엄마한테 대강 이야기를 들었다.”
“아빠, 강아지가 아주 귀여워.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우리 이 강아지 키우면 안될까?”
부탁하는 말인데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하다.
“**야, 안돼. 개를 들이는 것은 쉬워도 그 개를 키우는 문제는 전혀 달라.”
“아빠, 걱정마. 내가 키울게.”
말은 그렇게 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완강하게 반대를 하니까 은채가 거의 애원 조로 부탁한다.
“아빠, 그러면 1주일 정도만 우리 집에 두자. 그 이후에는 이 강아지를 키워줄 수 있는 친구를 찾아 볼게. 지금 떨고 있는 강아지가 너무 불쌍해 보여”
이렇게까지 부탁하는데 무조건 반대만 할 수도 없다. 하지만 다짐을 분명히 했다.
“강아지를 들이는 것은 쉬어도 키우는 것은 쉽지 않다. 가족이라 생각하고 끝까지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우리 집은 이미 유기견을 키워 본 경험이 있다. 정확하게 2004년 8월경 막내 부부가 집에 놀러 왔을 때다. 우리는 함께 일산의 호수 공원으로 놀러 갔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떠돌이 유기견을 발견했다. 개를 여러 마리 키우던 제수씨가 금방 그 개를 알아본 것이다.
공원의 관리인에게 물어보니까 이 개가 떠도는 모습을 본지 거진 1주일 정도 되었다고 한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니까 유기견인 듯하다고 말한다. 관리인은 맘에 있으면 개를 데려갈 수 있다고 부추긴다. 이미 개를 여러 마리 키우고 있는 막내 부부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거든다. 말티즈 종인 자그마한 개는 여러 날을 거리에서 떠돈 듯 잔뜩 자란 털이 지저분해 보이지만 개의 모습은 귀엽다. 그 개를 차에 태워 데리고 오는데 아주 얌전하게 앉아 있다.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잘 아는 느낌이다. 집에 데리고 들어와서 내가 목욕을 시켰다. 제수씨가 가위로 털을 말끔하게 정리를 해주니까 완전히 다른 종자 같다. 이놈도 몸이 개운해서 좋은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이곳 저곳을 뛰어다닌다. 이렇게 스스럼 없이 행동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집에서 키우던 동물인데 어떻게 유기견이 되었을까?
보통 유기견이 되는 경우는 키우던 주인이 싫증을 느끼거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더 이상 키우지 못하게 된다는 이유로 버릴 때이다. 한때 섬에 놀러 갔다가 그곳에 개를 유기시켜 놓고 달아나는 사람들 때문에 사회 문제가 된 적도 있다. 의도적으로 방기하는 것인 만큼 비인간적인 처사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공원이나 기타 사람 많은 곳에서 주인과 헤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때 주인은 가족을 잃어버린 이상으로 상실감 때문에 오랜 기간 유기견에 대한 정보를 곳곳에 알리면서 잃어버린 개 찾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개도 개지만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도 짠하게 아프다.
새로 입양된 개는 성격이 좋고 새로운 가족들과 쉽게 어울리는 것을 보면 유기되었다기 보다는 주인과 잘못 헤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일주일이 넘도록 호수 공원을 떠돌았다고 한다면 알지 못한 채 버림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는 그 개의 상태를 보고 바로 이름을 지어 주었다. 똘똘한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초롱이’라고 지어 주었다. 초롱이는 그 후 우리 집에서 3년 여 잘 지내다가 아내와 산책하던 길에 불시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었다. 아파트 구내에서 길을 건너는데 갑자기 들어온 승용차에 말려 들어간 것이다. 그때 그 모습을 보는 데 눈물이 하염없이 났다. 눈물을 참으려 해도 참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키우던 강아지와 사별한다는 것이 이렇게 마음 아픈 줄은 그때 처음으로 경험했다. 그런 슬픈 감정은 사람에게 느끼던 것 못지 않았다. 한겨울 초롱이를 김포의 한 화장터로 가서 화장시킨 다음 수목 장을 지내줄 때도 눈물이 많이 났다. 이별의 슬픔을 그토록 진하게 겪은 다음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애원하다시피 하면서 덜컥 집으로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온 것이다. 새로 입양된 강아지는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자그맣지만 털이 시커멓고 손발이 커 보인다. 개를 잘 아는 제수씨가 사진을 보더니 아주 크게 자랄 소지가 있다고 말한다. 손발이 큰 개는 빨리 자라고 크게 자란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커먼 털을 보더니 나중에 털 때문에 고생을 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개를 많이 키우고 다뤄본 경험이 풍부한 제수씨 말로는 입양 불가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집에 들어온 강아지를 어떻게 내보낼 수 있을까?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딸 아이는 그 문제는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자고 한다. 강아지를 목욕시켜 주고 들어오는 길에 사온 시저를 주니까 허겁지겁 먹는다. 거리에서 노숙하느라 제대로 못 먹은 탓도 있지만, 먹성이 아주 좋아 보인다. 밥을 잔뜩 먹고 나더니 그냥 새근 거리면서 쓰러져 잔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지만, 저 어린 것이 여러 날을 거리에서 쓰레기 통을 뒤져 가면서 배회했다는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아프다. 다음 날 아내가 기생충 약을 사다가 먹이니까 몸에서 기생충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거리에서 노숙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털이 많고 거침없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강아지 이름을 ‘까만 람보’, 줄임말로 ‘깜보’라 이름을 지어 주었다. 깜보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만남은 무려 10년 6개월이나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