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셀 모스가 하마말의 시를 인용하면서 우리가 살펴 보았던 단어들 즉, 선물, 웃음, 기만, 거짓말(cadeau, rire, dol, mensonge)은 상호적인 호혜주의에 근거해서 나에게 행위한 타자에대해 동일하게 되 갚아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하마말을 막셀 모스처럼 <지혜 → 경계 → 명예 → 평판 → 선물 → 상호성 → 적과 친구를 구별하는 능력>의 관점에서 바라 보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잠언적이며 교훈적인 시(Spruchgedicht)로 바라 본다면 타자의 거짓말을 기만으로 되 갚아주는 것이 아니라 타자가 거짓말을 하게 된 내적 동기에 주목 할 수가 있다.
독일 시인이자 독문학자인 카를 짐로크 (Karl Joseph Simrock)가 1851년에 북구 유럽시 하마말을 번역하면서 표제어를 하마말과 함께 높은 자의 노래(Des Hohen Lied)로 표기한다. 여기에 독일어로 수록된 내용의 일부를 리하르트 바그너는 4부작의 니벨룽의 반지로 작곡을 하게 된다. 바그너와 니이체는 막역한 사이였기 때문에 니이체가 간접적으로 바그너의 작품을 통해 높은 자의 노래(Des Hohen Lied) 즉 북구유럽의 고대시인 하마말을 읽었다고 추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니이체에 관한 문헌연구에 따르면 니이체가 짐로크 Simrock가 출판한 Die Edda 속에 덧붙혀져 있는 해설(Erläuterungen)을 읽었다고 고증하고 있다. 가령 하마말에서 Wiedervergeltung(보답)이라는 단어는 짜라투스트라의 타란툴라편의 Vergeltung/Rache(응보/복수)와 좋은 비교가 되고 있다.
막셀모스가 인용하고 있는 하마말은 동일한 크기로 받은 것 만큼 되 돌려 주어야 하는 것이 정당하고 이것이 평등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니이체는 짜라투스트라의 타란툴라편에서 평등자체의 개념에 주목하기보다는 평등과 호혜를 원하면서도 오히려 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분노하고 있는 지에 주목 한다. 거짓된 평등이라는 도덕적 가면을 모순적 상황에 처하도록 만듬으로써 상대의 도덕적 가면을 벗기고 자기모순을 드러내려 한다. 거짓말에는 기만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막셀모스의 입장이 아니라 니이체는 복수의 도덕을 복수의 주체 자신에게 되돌려, 그 도덕의 기원을 폭로한다.
짜라투스트라의 <타란툴라들에 대하여>에서 니이체는 평등과 정의를 부르짖으며 원한과 질투를 퍼뜨리는 위선적인 선동가들을 '타란툴라'로 규정하고 이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Von den Taranteln
Siehe, das ist der Tarantel Höhle! Willst du sie selber sehn? Hier hängt ihr Netz: rühre daran, dass es erzittert.
봐, 여기가 바로 타란툴라의 굴이야! 직접 보고 싶은가 ? 여기 거미줄이 걸려 있는데, 만져보면 꼼짝 못 할 거야
여기서 타란툴라', '굴', '거미줄'은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니체가 혐오했던 특정 인간 부류와 그들의 사상을 상징한다. 타란툴라(독거미)는 평등의 설교자들 (위선적 선동가들)을 의미한다. 니이체는 겉으로는 '평등'과 '정의'를 외치지만, 속으로는 자신보다 뛰어난 자들에 대한 질투와 원한(Ressentiment)으로 가득 차 남을 찌르고 싶어 안달이 난 지식인과 선동가들을 독거미에 비유하고 있다. 이들의 무기는 물리면 온몸에 독이 퍼지는 독니(비수 같은 말과 사상)에 해당 한다 .거미줄(Netz)은 그들이 쳐놓은 사상적 덫이며 "거미줄을 건드려 파르르 떨게 하라"는 말은, 그들이 사회에 촘촘히 쳐놓은 위선적인 도덕과 법률, 사상체계를 흔들어 깨워야 한다는 것을 상징 한다.
대중을 평등이라는 달콤한 말로 유혹해 파멸시키는 사상적 독거미들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똑똑히 보고, 그들이 쳐놓은 덫을 두려워하지 말고 흔들어 그 정체를 폭로하라고 짜라투스트라는 선언한다.
짜라투스트라는 독거미가 겉으로는 '정의', '사랑', '평등'을 부르짖지만, 그 영혼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 안다고 선언한다 그것은 바로 'Rache(복수심)'과 Ressentiment(원한, 시기심)이다. 스스로 창조적이고 강해질 수 없는 무력한 자들이, 자신보다 뛰어난 자(고귀한 자, 강한 자)를 끌어내려 하향 평등을 만들기 위해 품은 음험한 복수심인 것이다.
Also rede ich zu euch im Gleichniss, die ihr die Seelen drehend macht, ihr Prediger der Gleichheit! Taranteln seid ihr mir und versteckte Rachsüchtige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비유로 말한다. 영혼을 변화시키는 자들, 평등을 설교하는 자들아 ! 너희는 내게 거미줄을 치는 자들이며, 숨어서 복수하는 자들이다
너희야말로 내게는 타란툴라(독거미)들이요, 숨겨진 복수주의자들이다!. 겉으로는 정의와 약자를 위하는 척하지만, 본질은 그저 잘난 자들에 대한 시기심으로 가득 차 뒤에서 독침을 꽂을 기회만 노리는 숨겨진 복수주의자들(versteckte Rachsüchtige)에 불과하다
니이체는 왜 평등(Gleichheit)을 부르짖는 자들을 이토록 격렬하게 비난했을까? 니이체는 자신이 쓰는 비유(Gleichniss)'라는 단어와 그들이 외치는'평등(Gleichheit)'이라는 단어의 독일어적 유사성을 의도적으로 배치한다. "너희가 가짜 평등(Gleichheit)으로 세상을 속이니, 나는 진실을 담은 비유(Gleichniss)로 너희를 부수겠다"는 문학적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니이체가 보기에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역량, 재능, 생명력의 크기가 다르다
고귀하고 강한 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삶을 창조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반면, 무력하고 나약한 자들은 스스로 올라갈 능력이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평등해야 한다"는 논리를 가져와 뛰어난 자들을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리려 한다. 즉, 이들이 말하는 평등은 정의로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강자에 대한 깊은 질투와 숨겨진 복수심(Rachsüchtige)'에서 나온 하향 평등화의 전략이라는 것이라고 니이체의 진단한다.영혼을 미치게 만드는 선동가들은 대중에게 "너희가 불행한 것은 저 뛰어난 자들, 저 부유한 자들 때문이다"라며 증오를 심어준다. 이 독에 감염된 대중은 자신의 삶을 가꾸는 대신 타인을 증오하는 광기(die Seelen drehend)에 빠져들게 된다
"거짓말에는 기만으로" 되 갚아야 한다는 하마말에서 확인 되었던 서술(On doit avoir dol pour mensonge)은 니이체의 입장에서는 달라 지게 된다. 타란툴라들은 세상에 '평등과 정의'라는 거대한 거짓말(mensonge)을 유포하고 있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이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들이 쳐놓은 거미줄을 역으로 이용해 그들의 분노를 유도하고 덫에서 끌어내는 철학적 전략과 기만(dol)으로 맞선다. 상대의 위선을 그들이 가진 본능적인 분노로 무너뜨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니체가 말한 가장 강력한 '받은 대로 돌려주기'의 도덕적 실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짜라투스트라는 독거미가 겉으로는 '정의', '사랑', '평등'을 부르짖지만, 그 영혼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 안다고 선언한다 그것은 바로 'Rache(복수심)'과 Ressentiment(원한, 시기심)이다. 스스로 창조적이고 강해질 수 없는 무력한 자들이, 자신보다 뛰어난 자(고귀한 자, 강한 자)를 끌어내려 하향 평등을 만들기 위해 품은 음험한 복수심인 것이다.
Also rede ich zu euch im Gleichniss, die ihr die Seelen drehend macht, ihr Prediger der Gleichheit! Taranteln seid ihr mir und versteckte Rachsüchtige!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비유로 말한다. 영혼을 변화시키는 자들, 평등을 설교하는 자들아 ! 너희는 내게 거미줄을 치는 자들이며, 숨어서 복수하는 자들이다!
너희야말로 내게는 타란툴라(독거미)들이요, 숨겨진 복수주의자들이다!. 겉으로는 정의와 약자를 위하는 척하지만, 본질은 그저 잘난 자들에 대한 시기심으로 가득 차 뒤에서 독침을 꽂을 기회만 노리는 숨겨진 복수주의자들(versteckte Rachsüchtige)에 불과하다.
니이체는 왜 평등(Gleichheit)을 부르짖는 자들을 이토록 격렬하게 비난했을까? 니이체는 자신이 쓰는 비유(Gleichniss)'라는 단어와 그들이 외치는'평등(Gleichheit)'이라는 단어의 독일어적 유사성을 의도적으로 배치한다. "너희가 가짜 평등(Gleichheit)으로 세상을 속이니, 나는 진실을 담은 비유(Gleichniss)로 너희를 부수겠다"는 문학적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니이체가 보기에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역량, 재능, 생명력의 크기가 다르다.
고귀하고 강한 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삶을 창조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반면, 무력하고 나약한 자들은 스스로 올라갈 능력이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평등해야 한다"는 논리를 가져와 뛰어난 자들을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리려 한다. 즉, 이들이 말하는 평등은 정의로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강자에 대한 깊은 질투와 숨겨진 복수심(Rachsüchtige)'에서 나온 하향 평등화의 전략이라는 것이라고 니이체의 진단한다.영혼을 미치게 만드는 선동가들은 대중에게 "너희가 불행한 것은 저 뛰어난 자들, 저 부유한 자들 때문이다"라며 증오를 심어준다. 이 독에 감염된 대중은 자신의 삶을 가꾸는 대신 타인을 증오하는 광기(die Seelen drehend)에 빠져들게 된다.
"거짓말에는 기만으로" 되 갚아야 한다는 하마말에서 확인 되었던 서술(On doit avoir dol pour mensonge)은 니이체의 입장에서는 달라 지게 된다. 타란툴라들은 세상에 '평등과 정의'라는 거대한 거짓말(mensonge)을 유포하고 있지만 짜라투스트라는 이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들이 쳐놓은 거미줄을 역으로 이용해 그들의 분노를 유도하고 덫에서 끌어내는 철학적 전략과 기만(dol)으로 맞선다. 상대의 위선을 그들이 가진 본능적인 분노로 무너뜨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니체가 말한 가장 강력한 '받은 대로 돌려주기'의 도덕적 실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짜라투스트라는 인간은 이러한 복수심으로 부터 해방되어야 하며 이러한 해방은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희망으로 가는 다리인 것이다.
Denn dass der Mensch erlöst werde von der Rache: das ist mir die Brücke zur höchsten Hoffnung und ein Regenbogen nach langen Unwettern.
인간을 복수로부터 해방시키는 것 , 그것이야말로 내게 있어 최상의 희망으로 가는 다리이며, 긴 폭풍우 후의 무지개이다.
니이체가 짜라투스트라를 통해서 언급하는 '구원'은 기독교적인 사후 세계의 구원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상처, 결핍, 억울함에 발목이 잡혀 타인을 증오하고 끌어내리려는 '복수심(Rache)'이라는 정신적 감옥에서 인간이 스스로 벗어나는 것이다. 니체는 인류의 역사와 도덕이 그동안 이 복수심(원한)에 의해 오염되어 왔다고 보았으며, 진정한 의미의 초인(Übermensch)이 되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이 복수심을 마음속에서 완전히 씻어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장 높은 희망으로 가는 다리 (Die Brücke zur höchsten Hoffnung)는 인간이 마주서있는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자 다리'이다.
인간이 과거에 대한 증오를 버릴 때, 비로소 자기 파괴적인 삶을 끝내고 창조적이고 고귀한 존재인 '초인'이라는 가장 높은 희망을 향해 건너갈 수 있다.. 복수의 극복은 곧 새로운 인간으로의 진화를 의미 한다. 오랜 폭풍우 끝의 무지개 (Regenbogen nach langen Unwettern)'에서 오랜 폭풍우'는 인류가 서로를 시기하고, 평등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에게 독침을 꽂으며 증오 속에서 싸워온 어두운 역사를 상징한다. '무지개'는 마침내 그 증오의 비가 그치고,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아모르 파티, Amor Fati)하게 된 인간의 영혼 위에 떠오르는 신성한 평화와 축복의 상징이 되고 있다.
"선물에는 선물로, 거짓말에는 속임수로 갚아야 한다"는 고대 바이킹의 격언을 카를 짐로크 (Karl Joseph Simrock)의 독일어 번역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니이체는 왜 오래된 하마말의 싯구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여기서 "복수심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한다"고 전환 시키고 있을까? 이 두 가지는 모순되지 않는다.
니이체가 말하는 가장 나쁜 복수심은 뒤에 숨어서, 평등과 정의라는 가면을 쓰고, 음습하게 원한을 키우는 타란툴라식의 복수심이다. 반면 고대 격언의 상호주의는 그 자리에서 당당하게 갚아 주고 깨끗하게 털어버리는 전사의 방식의 호환성이다. 즉, 니이체는 마음속에 앙금을 쌓아두고 영혼을 썩히는 위선적인 복수심에서 인류가 완전히 구원받아야(erlöst werde) 한다고, 즉 그렇게 당당하게 감정을 청산하고 복수심마저 초월해 낸 인간만이, 비로소 과거의 사슬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한 무지개(Regenbogen)를 띄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