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이종철의 속담철학: "자다가 봉창두들긴다."
  • 이종철 칼럼니스트
  • 등록 2026-10-16 06:40:07


우리말에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는 재미있는 속담이 있다. 봉창이란 옛날 집에서 방 안으로 빛이 들어오도록 벽에 낸 작은 창이다. 한밤중에 잠을 자던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 봉창을 두드린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이 속담은 대화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얼마 전 친구들과 저녁을 먹다가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친구가 취직을 못 하는 자식 때문에 속을 태우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그런데 요즘 강남 아파트값이 다시 오른다며?" 순간 좌중이 조용해졌다. 한 친구가 핀잔을 주었다. "야, 이 친구야.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좀 하지 마라."

물론 취업 문제와 아파트값이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연결고리를 설명하지 않고 느닷없이 화제를 바꾸었으니 듣는 사람으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의 내용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말이 놓인 자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오른 쪽 옆구리가 가려운데, 왼쪽 허벅지를 긁는 격이다.

장례식장에서 유족에게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철학적 진리를 장황하게 설명한다고 해보자.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슬픔에 잠긴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면 위로는커녕 상처만 남길 것이다. 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에게 이혼율 통계를 들이대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면 엉뚱한 소리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올바른 행동에서 실천적 지혜, 곧 프로네시스(phronesis)를 강조했다. 추상적인 원칙을 아는 것과 구체적인 상황에서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은 다르다. 용기도 그렇다. 아무 데서나 겁 없이 뛰어드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반대로 싸워야 할 때 물러나는 것은 신중함이 아니라 비겁함이다. 중요한 것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판단이다. 말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을 말하느냐 못지않게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말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봉창 두드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특히 정치권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국민들이 물가가 올라 살기 어렵다고 호소하면 정치인들은 경제 규모가 세계 몇 위라는 이야기를 꺼낸다.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다고 하소연하면 정부는 창업 정신을 강조한다. 국회 청문회에서도 구체적인 의혹을 물으면 원론적인 답변만 반복한다. 질문은 A인데 답변은 B다. 이것은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독백에 가깝다.

대학이나 지식인 사회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의 절박한 문제들이 쌓여 있는데도 학자들은 자신들의 전문적인 논쟁에만 몰두한다. 현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외국의 최신 이론을 소개하는 데 열을 올린다. 물론 학문적 연구가 당장의 현실 문제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사회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도 갖지 못한다면 그 학문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무리 정교한 이론이라도 현실과 만나지 못하면 공허한 말장난이 되기 쉽다.

독일의 철학자 하버마스는 인간의 언어가 단순한 정보 전달이나 자기주장의 수단이 아니라 상호 이해에 도달하기 위한 매개라고 보았다. 대화가 가능하려면 상대방의 말을 듣고 그 주장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SNS나 정치적 논쟁에서는 상대방의 주장을 이해하기보다 먼저 어느 편인지를 따진다. 그리고는 준비된 공격을 퍼붓는다. 서로 말은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합리적인 토론이 이루어질 리 없다.

물론 엉뚱한 생각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남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문제에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지는 데서 새로운 사상이 탄생하기도 한다. 철학의 역사는 이런 상식에 대한 도전의 역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창조적인 질문과 무책임한 엉뚱함은 구별해야 한다. 전자는 현실을 깊이 이해한 뒤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고, 후자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후자에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은 생존의 문제를 묻는데 정치인들은 권력의 논리로 답하고, 시민들은 사회의 미래를 걱정하는데 지식인들은 자신의 업적과 자리만 계산한다. 질문과 답변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봉창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일부러 엉뚱한 소리를 하는지 모른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피하기에는 봉창 두드리는 것만큼 편리한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잠결에 봉창을 두드리는 사람은 깨우면 그만이다. 하지만 멀쩡히 깨어 있으면서도 봉창을 두드리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더구나 그런 사람들이 나라를 운영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면 문제는 훨씬 심각해진다.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 것은 실수지만, 깨어서 봉창을 두드리는 것은 무능이거나 기만이다.

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