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이(理)와 기(氣) 사이, 理와 氣, 그리고 피로 물든 조선의 봄
  • 이종철 칼럼니스트
  • 등록 2026-10-14 23:22:46
  • 수정 2026-10-15 14:21:04



내가 조선 전기 성리학과 기묘사화를 배경으로 한 역사철학소설을 써 보았다. 2025년에 자전적 소설<그대에게 가는 먼길>(대양미디어, 2025)을 썼는데, 이번에는 조선의 역사를 배경으로 철학 소설이다. 이 작품의 배경을 이루는 갑자사화(1504), 중종반정(1506), 정국공신 위훈삭제 논란과 현량과 실시(1519), 그리고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으로 촉발된 기묘사화(1519)는 모두 조선 전기의 실제 역사적 사건이다. 작품 속에서 인물들이 나누는 이(理: 원리·보편적 당위·도덕적 기준)와 기(氣: 구체적 현실·생명과 욕구·역사적 조건)를 둘러싼 대화는, 후대(16세기 중후반)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 율곡 이이가 전개한 사단칠정(四端七情) 및 이기호발(理氣互發), 기발이승氣發理乘) 논쟁의 정밀한 이론적 단초들을 16세기 초 사림파 태동기의 정치적·윤리적 위기 상황 속으로 끌어와 소설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치가 현실의 고통과 분리될 때 어떻게 도덕적 폭력이 되는가, 반대로 현실의 형편이 보편적 원리를 잃을 때 어떻게 비루한 기회주의로 전락하는가라는 물음은 조선 성리학의 핵심 과제였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삶과 사회를 성찰하는 데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철학과 현실’의 관계 문제이다. 앞으로 총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理)와 기(氣) 사이

 理와 氣, 그리고 피로 물든 조선의 봄

 

 


서장 — 불타는 글자 (1504년, 갑자사화)

 

한양의 밤은 책이 타는 냄새로 깊어졌다. 종로의 어느 사대부 집 대문 앞에서 의금부 군졸들이 서고의 서책을 마당으로 거칠게 던졌다. 마른 한지들이 밤하늘의 매서운 바람을 타고 새처럼 솟구쳤다가 화염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불길 속에서 『대학(大學)』의 한 장이 뒤집혔다. ‘재명명덕(在明明德,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다)’이라는 먹글자가 붉은 불꽃을 머금더니 이내 검게 말려 올라가 재로 부서졌다. 먹 냄새와 송진 타는 냄새, 그리고 골목 어귀에서 누군가 끌려가며 토해내는 비명이 뒤섞여 도성의 겨울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글자가 죄를 지었습니까?” 열아홉 살의 윤서겸이 불타는 마당을 등진 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손끝은 추위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알 수 없게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 윤정은 아들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평생 홍문관과 성균관을 오가며 경전을 강론하던 아버지의 손이었으나, 그날 밤의 손아귀 힘은 무인의 것처럼 단단하고도 절박했다. “글자는 죄가 없다. 글자를 읽는 사람에게 죄를 씌우는 자들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임금께서는 천하의 이치(理)를 어기고 계시는 것입니까? 성현의 말씀에 군주는 하늘의 이치를 체현하는 자라 하였는데, 어찌하여 이치를 적은 책을 태우고 이치를 말한 신하의 목을 베는 것입니까?”

“쉿. 입을 다물어라. 지금은 질문 하나가 사람 열을 죽이는 시절이다.” 윤정은 문풍지 너머로 바깥의 기척을 살폈다.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의 피바람이 한양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생모 폐비 윤씨의 죽음에 얽힌 복수로 시작된 연산군의 칼날은 사림(士林)과 훈구(勳舊)를 가리지 않고 도성 전체를 거대한 도살장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미 죽은 자의 무덤을 파헤쳐 관을 쪼개고 시신의 목을 베는 부관참시(剖棺斬屍)가 연일 이어졌고, 한글로 적힌 벽서 한 장 때문에 도성 안의 언문 서책들이 모조리 수거되어 불태워졌다. 서겸이 스승으로 모시던 노학자는 사흘 전 새벽에 오랏줄에 묶여 끌려갔고, 그날 이후 윤정의 집 문밖에는 그의 이름을 아는 친우들이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해 겨울, 도성의 바람은 하루도 빠짐없이 종이 타는 냄새와 피비린내를 몰고 다녔다. 윤정은 집 안 깊숙한 곳의 작은 서고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화로에 불을 피웠다. 먹을 갈고 붓을 쥐던 그의 마른 손등 위로 푸르고 붉은 핏줄이 팽팽하게 솟아 있었다. 그는 시렁에서 한 권씩 서책을 꺼내 표지를 뜯고 갈피를 헤쳐 화로 속에 밀어 넣었다.

“왜 책까지 태우십니까? 아버지께서 평생 모으고 손수 주석을 단 것들 아닙니까?” 서겸이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아버지의 소매를 붙잡았다.

“내가 태우는 것은 성현의 책이 아니라 이 책의 여백에 적힌 사람들의 이름과 서찰이다.” 윤정은 불길을 내려다보며 낮게 말했다. “누가 누구와 교유했는지, 누가 어떤 시구(詩句)에 화답했는지가 모두 역모의 연좌(連坐)를 묻는 사초(史草)가 된다.”

“이름을 지우면 그분들이 살아납니까?”

“살아날 수도 있지. 아니면 그저 며칠, 몇 달을 잠깐 더 살 뿐일 수도 있고.” 윤정의 목소리는 메말라 있었다. 서겸이 화로 속으로 손을 뻗어 타들어 가는 종이 한 장을 집으려 하자 아버지가 부젓가락으로 아들의 손목을 매섭게 쳤다. “손대지 마라! 거기에는 네 스승이 지난봄에 보내온 시가 적혀 있다. 네가 그 시의 기상을 좋아한 것을 아비도 안다. 하지만 지금 이 도성에서 곧은 글 한 줄은 칼 한 자루보다 날카로워, 쓴 자의 목을 베고 읽은 자의 삼족을 멸한다.”

“글을 읽고 그 속에서 억지로 죄를 찾아낸다면, 그것은 쓴 이의 잘못이 아니라 읽는 이가 잘못한 것 아닙니까? 성현께서 말씀하신 격물치지(格物致知)란 사물의 바른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지, 남의 말꼬리를 잡아 죽일 구실을 찾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옳은 물음이다.” 윤정은 부젓가락을 내려놓고 아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서겸아, 물음의 옳음이 저 문밖의 칼날을 막아 주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것은 학당의 강론이 아니라 미쳐 날뛰는 권력의 기세다.”

서겸은 입술을 깨물며 책상 위에 놓인 깨끗한 한지 한 장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채 마르지 않은 붓을 들어 그 한가운데에 큰 글씨로 ‘理(이)’ 자 하나를 힘주어 썼다. 먹물이 번지며 종이 위에 단정한 획이 자리 잡았다. “아버지, 그렇다면 이 글자는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불타는 책 속에 있습니까, 칼을 휘두르는 임금의 어좌 위에 있습니까, 아니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습니까?”

윤정은 화로 옆에 타다 남은 책갈피 하나를 집어 들었다. “주자(朱子)께서는 천하에 이치 없는 기운(氣)이 없고, 기운 없는 이치가 없다(天下無無理之氣,亦無無氣之理)고 하셨다. 아마도 이치는 책 속이나 마음속 어딘가, 혹은 그 둘 사이에 있겠지. 하지만 내가 반평생 성리(性理)의 학문을 배우고도 끝내 모르겠는 것은 따로 있다.” 윤정의 눈에 화로의 불빛이 일렁였다. “우주의 근본 이치를 안다고 떠드는 사람들의 손에, 성현의 도리를 입에 올리는 자들의 소매에 왜 그토록 쉽게 남의 피가 묻는가 하는 것이다.”

“이치가 사람을 죽이는 겁니까?”

“아니다. 이치는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으며 냄새도 없다(無形無聲). 이치 스스로는 칼을 쥐지 못한다. 다만 보이지 않는 이치를 자기만이 독점한 소유물로 여기는 자가 사람을 죽인다. 자기의 욕망과 공포, 자기의 권세를 하늘의 절대적인 이치라 부르는 순간, 경전의 거룩한 문구는 살육의 뒤에 따라오는 깃발이 될 뿐이다.”

그때 골목 저편에서 다급한 말발굽 소리와 쇠사슬 끌리는 소리가 밤공기를 가르며 다가왔다. 횃불의 붉은 그림자가 담장 너머로 어른거렸다. 윤정은 지체 없이 품속에서 낡고 작은 필사본 책 한 권을 꺼내 서겸의 가슴에 안겼다. 『주자어류(朱子語類)』와 성리학 요체들을 윤정 자신이 평생에 걸쳐 발췌하고 평을 달아 놓은 수택본(手澤本)이었다. 맨 첫 장에는 윤정의 단정한 필체로 ‘천하의 이치는 하나이나 그 나뉨은 만 가지로 다르다(理一分殊). 만물의 이치는 본래 하나이나 그 기운과 형편은 결코 같지 않다’(萬物之理本是一個,其氣稟賦各異各色) 글이 적혀 있었다.

“뒷문으로 나가 지금 당장 남쪽으로 내려가거라. 경상도 산청의 깊은 산속에 내가 젊었을 적 함께 공부하던 노스승의 옛 절집이 있다. 거기서 이름을 숨기고 살아라.”

“아버지는요? 함께 가셔야 합니다!”

“나는 여기 남겠다. 집주인이 사라지면 관군들은 즉각 나루터와 고갯길을 봉쇄할 것이다. 누군가는 문을 열고 저들을 맞이하여 시간을 벌어야 한다. 사람은 저마다 감당할 자리가 있는 법이다.”

서겸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는 떠나기 전, 아버지의 옷자락을 붙잡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버지, 책에는 인간의 본성이 곧 하늘의 이치(性卽理)이며, 천하의 이치는 본래 순선무악(純善無惡, 순수하게 선하여 악함이 없음)하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세상은 이토록 잔혹합니까? 왜 선한 이치가 지배한다는 세상에서 죄 없는 이들이 개죽음을 당합니까?”

윤정은 아들의 물음에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아들의 등을 떠밀어 마루 밑 비밀 통로와 이어진 뒷문 쪽으로 보냈다. 아버지의 그 깊고 무거운 침묵이 서겸에게는 평생 읽은 어떤 성현의 학설보다 오래, 그리고 아프게 남았다.

그날 밤 의금부 도사와 관군들의 횃불이 골목 끝을 피처럼 붉혔다. 대문이 부서져라 열리는 소리가 나고, 서겸은 마루 아래 어두운 틈에 숨을 죽이고 엎드려 아버지가 낯선 관리에게 차분하게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다. “역적의 문하생들과 내통한 죄가 없다면 어찌하여 이 밤에 문을 걸어 잠그고 종이를 태웠느냐?” 관리의 서슬 퍼런 호통에 윤정이 대답했다. “죄가 없어도 두려울 수는 있습니다. 천둥이 치면 죄 없는 미물도 몸을 숨기는 것이 자연의 기운(氣) 아니겠습니까.” 그 말 뒤로 소름 끼치는 긴 침묵과 함께 오랏줄을 묶는 소리가 흘렀다. 훗날 서겸은 평생에 걸쳐 수많은 경전의 문답과 조정의 쟁론을 기억했으나, 그의 철학이 시작된 진짜 자리는 아버지의 말이 끊긴 바로 그 침묵의 순간이었다.

 

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