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를 응원하며,
- 2026, 07 13. (낼 모래 초복이네)
벤다이어그램의 2항관계 설명이 있고, 그리고 3항관계 설명도 있으며, 4항 관계 설명을 위한 수학자들의 관계계산(l’algorithme)으로 발산되어 갈 것이다. - 수학사가들 사이의 견해차로서 미국 수학사가인 모리스 클라인(1908-1992)은 수학: 확실성의 상실(1980)[우리나라 번역, 수학의 확실성]에서 1830년대 이후 1920년대로 전개를 수학이 수렁에 빠졌다고 보았는데 브룅슈비끄는 수학철학이 여러 방향으로 발산하는 시기로서 세 방식의 등장이 있다. 그리고 브룅슈비끄 그 다음으로 말할 수 있다면, 21세기는 무한계들(실재계의 생성들)에서 발전의 시기일 수 있다. AI의 발달은 여러 무한계의 일 부분일 것이다.
참조: https://cafe.daum.net/milletune/REMI/6 : 이항 대립의 사고와 다양체의 위상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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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룅슈비끄, 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2부6권17장에서(372쪽)에 제론(Joseph Diez Gergonne, 1771-1859)은 이항관계를 다섯 가지로 설명한다. (S는 주어항목, P는 술어항목.)
1° 배제(l’exclusion) S P 두 원이 떨어져 있음 = H
2° 겹침(la sécance) SP 두 원이 부분적으로 겹쳐있음(할선이 있음) = X
3° 동일성(또는 합동 l’identité) (SP) 두 원이 완전히 하나됨, 합동 = I
[더불어] 면적(la contenance)은 도치를 허용할 수 있어서, 두 가지 도치에 의해 표현된다.
4° S는 P 속에 포함되어 있다. {p(s)} = C
5° S는 P를 포함하고 있다. {s(p)} = Ͻ
유시민은 S 대 P를 A 대 B라고 기호화 하였다. 그리고 A는 가치를 추구하고 B는 사적이익을 추구하며 AB의 중첩으로서 C부류도 있음을 알렸다. 일상에 젖은 사람들은 C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B에 속하는 이들이 화들짝 놀라는 형국은 이와 같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지하에서 그리고 만주에서 독립운동하는 이들이 A에 속하고, 그리고 일제에게 포획되어 참여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이들이 B에 속하며, 그리고 터전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이들이 C에 속할 수 있다. 이런 관점을 연장하면, 해방 후에 자주독립과 외세 저항을 하는 이들은 A에 속하며, 그리고 남녘의 경우에 이승만과 박정희의 반공주의에 편승하여 폭력적 사법제도를 유지 강화하면서 사적이익을 추구한 이들이 B에 속할 것이다.
이런 현상의 도식 A(C)B의 도식을 맑스의 정치경제학에 원용하면, A에 속하는 이들은 백성, 민중, 대중, 인민들이 프롤레타리아 자주와 자치를 주장하면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하여 국가 총생산량에서 각자의 이익에 비례분배를 하더라도 남는 잉여생산을 터전과 인민의 삶의 공동성에 투여해야 한다는 쪽이다. 이 공통성은 하늘길, 땅길, 물길, 전자파길 등이며, 이런 공통기반의 공유화, 게다가 잉여이익의 투여를 무상화 또는 기본소득제로 주장하는 이들이 공산주의자 즉 좌파이다. 이런 기반조성은 산업발전을 통해 이익창출이 되어야 총생산량도 높아진다고 하면서 잉여이익을 사적 또는 재벌에게 위임하는 정책을 펴는데 동의한 쪽이 B부류이다. 잉여이익의 점점 확장되어, 그들이 표현하는대로, 국가에 눈먼 돈이 너무 많아서 마구 먹어도 별 표시가 안 난다면서 먹고 있는 자들(재래언론과 전관대우사법체계)이 있다. 이에 기대어 떡고물이라도 얻어야겠다는 이들이 B부류 중에서 하청 또는 촉탁 언론인 셈이다. 현상 도식에서 맑스보다 훨씬 일찍이 이런 문제의 고민들 한 자들의 갈래가 있는데 형이상학자 대 자연배후학자들이다. 전자가 B에 속하며 후자가 A에 속할 수 있다.
제론(Joseph Gergonne, 1771-1859)은 철학사에서 이항 항목들을 주어와 술어의 위치로 갈라서 제시하면서도, 그는 대상화하는 방식과 달리 기호로서 S와P를 통괄해서 또는 총체적으로 사유하는 양식들이 있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제시한 넷째와 다섯째는 정치경제학보다 깊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 흥미롭다. 우선 두 항목에서 관계 맺는 방식이 네 가지임을 먼저 보자. 네 가지 관계 방식은 {S}, {P}, {SP}, {φ}인데, 그 중의 하나는 여집합(공집합 φ)[공즉시색]과 같은 것이다. 즉 이런 기호화(signification)의 방식을 존재론적으로 표현하면, 즉 엘레아학파를 이어받는 의미에서 존재 대 비존재로 보아, 즉 존재 {S}, {P}, {SP}, 대 비존재 {φ}[공집합] 이다. 이들 후계자들은 존재는 진리이고 비존재는 허위이며, 이를 도덕과 종교에서는 존재가 선(善)이고 비존재는 악(惡)이라 한다. - 중세 마남사냥이래로 이런 구별을 따라가는 이들이 좌표찍기, 비하(무화)언어, 조롱하기 등이 여기서 나온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정치경제학보다 깊이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의 문제가 다시 제기되었다. 고대 아테네철학은 이오이지방의 자연과 엘레아학파의 존재 사이에서 이런 이중성의 마주하였고, 이런 양자 관계 보다 먼저 해소해야할 것이 인간의 영혼에 대한 노력이라고 여겼던 이가 소크라테스일 것이다. 자연과 존재의 대비가 긴 서양 철학사의 과정에서 우주발생론(시간론) 대 우주론(공간론)의 대결이라 한다. 이것이 크리스토스라는 일자를 상위에 올리면서 현존재들의 상위에 신을 부여했다. 이것이 여집합으로서 다른 3의 지배자였으며 무로서 자연은 악의 소굴인 셈이다. 이런 사유가 1500여년을 지나다가, 다시 자연 또는 빛이 문제제기의 중앙으로 올려 지면서, 여집합의 지배가 신이 아니라, 자연의 자기 발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여집합의 발생론 즉 우주발생론의 새로운 발아이다. 르네상스에서 우주를 열고, 데카르트에서 이원성을 사유했다. 신의 여집합과 자연의 여집합의 (제론의 4°와 5°) 대결에서, 프랑스는 “빛들세기(18세기)”에 대해 들뢰즈/가타리가 흥미 있는 이야기를 전개한다. 즉 천개의 고원의 「제10장, 1730년 강렬하게-생성, 동물-생성, 지각 불가능하게-생성」이다. 근대 유물론의 시작은 원자론의 복귀(1840년대)라기보다, 이 시기에 자연에 대한 새로운 탐구(우주발생론)에 있을 것이다.
형상론과 발생론은 형태심리학이라는 발상에서도 적용된다. 수학과 물체의 형상에서 원형 또는 도면이 먼저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형태심리학을 기하학적 또는 논리계산의 방식을 원용한다. 이런 관점은 독일 현상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에 비해, 생명체의 원형이 있는가? 그리고 생성에서 원본이 먼저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19세기말 여러 분야에서 제기 되었다. 형태심리학은 심리(프쉬케 영혼)학 또는 심정(le mental)이 인간에게 먼저 있었다는 과거의 증거 또는 지층(화석)이 있는가에 주목하였다. 증거라는 면에서 흥미롭게도 산술학에서 수(數) 1과 2의 기원을 찾아들어가면서, 형상으로서 1, 2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방식에서 1 과 2의 필요에 따른 기호(signe)가 먼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수학자들 중에서 그 1이라고 하는 것을 규정하거나 정의하는 것이 대상이 먼저가 아니라, 합의하는 과정에서, 그 과정의 일반화에서, 지속의 일반화에서 온 것이 용어 또는 단어(입말)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다. 이들의 탐구는 그리스이전으로 또는 원시 토속문화 등을 세밀하게 찾아보았다. 그리고 다른 한편 수, 도형, 대수, 함수기호, 복소수 등으로 복잡계를 탐구하면 할수록 수학적 용어 또는 기호는 협약(une convention)이지 원리 또는 원형이 먼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탐구들에서 협약이 인식에서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도덕에서 공통개념(착하다, 장하다, 훌륭타)과 공동체의 제도와 체제에서 계약과 평결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제론의 넷째와 다섯째의 기호화작용(signification)은 오랜 철학적 문제의 전체성과 연결되어 있다. 문제에 대해 하나는 제1원리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이다. 말하자면 자연도 하나, 우주도 하나, 신도 하나, 나도 하나라고 하지 않는가? 이런 하나가 대상으로 생각하면 망상 또는 파라독사에 빠진다고 선승들은 죽비를 내렸고, 철학에서 현자는 파라독사 또는 아이러니는 제거하려고 노력했다. 이 하나에서 시작이, 아테네 이전의 이오니아학파에서 보면 자연이다. 어쩌다가 이오니아에서 온 것이지만 엘레아에서 존재라 하며, 인간이 인식 또는 지식의 체계화(수학화)에서 존재 쪽이 더 편리하고 미래 예측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길이라 보았다. 자연의 발생과 변화를 설명하기도 어렵지만 체계화와 도식화는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서양철학사와 수학사에서 1830년 이전까지 존재론 또는 우주론이 우월하다는 지위를 가졌던 것이 크리스트교의 일원론이 우위를 유지하는 것과 같이 간다. 그러나 1830년대 이후에 자연에 대한 새로운 탐구는 일원론으로 설명할 수 없음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자연자체가 다발이라고 한다], 인간의 자유는 일원론을 지상에 펼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생성과 발현을 잘 풀어내는 쪽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여집합의 이중성이 신이든 자연이든, 사유의 이중성을 토대로 나온 것이리라. 삼중성을 제기하면 전혀 다른 것일 수 있다. 이미 철학사에서는 플라톤의 티마이오스편 이래로 삼중성이 전개되었으나, 자연의 자발성이 이해되지 못하여 침잠하다가(심층으로 흐르다가), 벩송(1859-1941)이 철학사를 정지(신) 다음 운동(자연)이라는 역사를 운동(시간론)의 일부가 정지(공간론)이라는 관점으로 바꾸어 보면서, 우주발생론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그는 서양 철학사를 시대에 따라 상층(고중세)에서 표면(근대)으로, 표면의 이중성(데카르트에서 칸트까지)에서 표면 안으로, 즉 심층(深層)으로 이행이라 하였고, 플라톤의 티마이오스편의 삼원성에서 상층우선을 심층 발생으로 전도시켰다.
그래도 우주론은 신학을 배경으로 여전히 위세를 떨치면서, 프로이트(1856-1839)는 우주론의 양상들을 본 따서 초자아, 자아, 이드라는 삼원성으로 설명하면서, 정신분석학자의 지위를 신부의 지위로 만들려고 했으며, 이를 이어받은 라깡은 상징계, 상상계, 실재계라는 삼원성을 수학사에 빌려온 기호들의 대입으로 관계형성을 표상[재현]으로 설명하여 인간의 심성을 드러내려 하였다. 이를 통해 결국 상층(지성), 표면의 이중성(감성과 터전), 욕망(심성)으로부터, 전쟁의 폐허 위에 고뇌하는 사람들을 불안, 공포(고통, 비참)로부터 치유한다고 과대포장 하였다. 유럽의 안정과 전후복구가 제3세계의 크고 작은 전쟁 위에 복구되었다고 보는 것이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의 생각이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3년 남북전쟁에서, 베트남의 남북 전쟁에서 우리나라의 부흥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들이 없을 것이다. 이런 세계 대전이든 지역적 전쟁이든 전쟁 없이도 세계의 소통에서 잉여이익을 재배치 재배열하면 세계는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20세기 초에도 20세기 후반에도 공산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설득해도, B에 속하는 종교, 국가, 지식의 세 카르텔의 탐욕(욕망이 아니다)과 탐만치는 지금도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미국과 유럽이 전쟁을 끝내지 않은 것은 탐욕이다). 그 유일신앙자들이 종교를 계속하는 것이 전쟁 때문이 아니라고? 전쟁은 그들이 잉여이익을 독점하려는 탐욕의 모습이다. 그들의 삿된 사유의 기원에서 공집합의 지배가 신이라고 믿기 때문이고, 이에 떡고물을 먹고자하는 이들이 AI를 통한 해결로 잉여이익의 수탈이 감춰지기를 바라고 있다. 즉 세계 전쟁에서 이상한 언어로 은폐한 세 패거리들의 삿된 담합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시민의 A(C)B이론에 화들짝 놀라는 이들을 잘 보면, 들뢰즈 표현으로, 세 패거리에 포섭되거나 포획되었거나, 심지어는 스스로 포로로 자청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 성조기와 다윗기를 흔드는 자들이 포획되었다기보다, 그들의 사상에 포로가 아닐까?
이 시대의 변화에서 항상 떠도는 이야기이지만, 1859년대 이후로는 한 인물이 시대를 이끌어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너무나 다양한 학문과 문화의 양태들이 넘쳐나서 합의 또는 평결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들뢰즈/과타리가 다양체라고 했는데, 이는 벩송이 심성에서 다발의 발산하는 형국이라는 것을 빌려온 것이다. 시대가 인물을 대리(표상)로 내 보여줄 뿐인데, 이 인물을 보여주는 방식이 백성, 민중, 대중, 인민의 평결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제도가 공화제일 것이고, 촛불, 응원불 등을 이어가는 우리시대가 공화제로 가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집단이든 일인일표제를 시행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시민, 박은정 다음으로 정청래를 응원한다. 상층의 공집합에서 이익 또는 잉여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의 온갖 양태들(존재론, 우주론)은 수동적이고 예속적이다. 심층의 발생과 자유실현의 노력은 능동적이고 자발적이다. 시대가 심층의 발현으로 방향을 바꾼 것, 들뢰즈 표현으로 서구 68년 이후로 전복의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그들이 몽테뉴와 더불어 철학에서 입말을 사용한지 거의 200년만에 공화정을 이루는 대혁명을 실행 했었다. 우리는 입말을 사용한지 거의 80년 만에 어쩌면 공화정을 이룰 기회(카이로스)에 이른 것이다. 다음 제7공화국 헌법은 제헌헌법처럼 생각하고, 검찰이 헌법 조문에 들어있는 일재의 잔재인 프러시아 식으로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청래의 검찰개혁, 사법개혁, 언론개혁의 의지에 응원한다.
(3:31, 59RLC) (4:19, 59RL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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