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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철학과 선(禪/Zen)
  • 타라고
  • 등록 2026-04-10 08:52:21
19 세기 중엽 20 세기 초에 활동한 경허 선사는 조선의 선맥을 다시 부활시킨 위대한 선사이다. 그는 불경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일찍부터 경전을 강의하는 강사로 활동했다. 한 번은 그가 지금의 의왕시 청계산에 있는 청계사에서 공부를 할 때 스승이었던 계허(桂虛)스님이 입적 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 여행을 떠났다. 그 당시 달리 교통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바랑 하나를 짊어지고 무작정 걸어서 한양까지 걸어 올라갔다. 그런데 콜레라가 크게 유행을 해서 가는 길목의 마을마다 환자들이 넘쳤고, 전염병으로 죽은 자들을 산처럼 쌓아 놓고 불에 태우는 장면도 보게 되었다. 경허 스님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기가 알고 있던 불경의 지식이 하나도 도움이 되거나 해법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한양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서 다시 계룡산의 절로 향했다.



절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바로 참선하는 방의 문을 걸어 잠그고 그날 이후로 일체 묵언과 함께 맹렬 정진에 돌입했다. 그가 내건 화두는 다른 게 아니다.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8만 대장경에 담겨 있는 부처의 법문도 쓰레기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평소 잠이 많았던 그는 수행 중 졸음을 방지하기 위해 목 밑에 칼을 세워 놓고 정진하다가 칼에 찔려 온몸을 피로 적시기도 했다. 결국 이런 정진 끝에 깨달음을 구한 이 뛰어난 선사 밑에서 이른바 삼월(三月)로 불리는 혜월(慧月), 수월(水月), 만공(滿空) 선사가 무너져 가는 조선의 선맥을 부활시키는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벙거지를 쓴 모습으로 불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달마는 중국 육조 시대에 인도에서 넘어와 중국 선종을 창시한 인물이다. 그는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 수련을 한 후 깨달음을 구했다고 한다. 선종은 창시자인 달마 대사 때부터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많은 일화를 남긴다. 그가 양무제를 방문했을 때 무제가 절을 중건하는 일을 자랑하자 달마는 감히 그것을 한 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만법은 텅 빈 것, 성스럽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라는 말로 불사를 중건하는 일조차 내세울 것이 없다고 한 것이다. 남송 무문혜개(無門慧開)가 지었다고 하는 선종의 옛 스님들의 화두를 모아놓은 책 무문관(無門關)에는 “무엇이 부처입니까?”라고 물음에 대해 “똥 막대기다”라는 말로 그러한 물음의 무의미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일상의 평범한 질문에 대해 너무나 알 수 없는 답변이 주어진 것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여호아를 만났을 때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들은 답변은 “나는 나다”이다. 부처나 여호아를 무엇무엇이라고 명명하고 실체화하는 순간 사람들은 고정 관념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는 것이다. 선은 우리의 사유가 빠질 수 있는 사유의 구렁텅이를 파격적으로 일깨우고 있다.




2조 혜가는 달마의 제자가 되겠다고 했지만 달마는 자기 눈앞에 쌓인 흰 눈이 붉게 물들기 전에는 받아주지 않겠다고 한다. 이를 듣자 혜가는 자기 팔을 잘라내 붉은 피를 내서 달마의 고집을 꺾고 2조 선사가 된다. 자신의 몸도 깨달음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내던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혜가의 태도는 검만 들지 않았지 사무라이의 태도나 다름없다. 이런 일화는 태생부터 중국의 선종이 세속적 권위를 무시하고 존재의 절대 무와 공(空)을 일깨우고,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건 맹렬 정진을 요구하는 전통을 보여준다. 선종이 경전을 중시하는 교종과 달리 문자보다는 마음 심(心) 자에 의한 단박의 깨달음을 구하는 전통은 육조 혜능의 일화에서 잘 보여준다. 혜능은 중국 선종의 6조이고, 그의 설법을 책으로 엮은 것이 이른바 선불교의 가장 유명한 경전 중의 하나인 육조단경(六祖壇經)이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주신 금강경의 유명한 구절인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를 듣고 5조 홍인 대사가 머무는 절에 들어가 행자 노릇을 했다.



그는 본래 일자무식이라 경전을 읽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곤 한다. 한 번은 홍인 대사가 선종의 전통을 전달하는 의식의 하나인 의발(衣鉢)을 전하기 위해 제자들에게 게송을 지어 오라고 공지했다. 나중에 북종선(北宗禪)의 시조가 된 신수는 제자 중 깨달음이 가장 깊었다고 하는데, 그는 다음의 게송을 지어 올린다.

몸은 지혜의 나무요 (身是菩提樹)

마음은 깨끗한 거울 (心如明鏡臺)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時時勤拂拭)

티끌이 끼지 않도록 하자 (莫遣有塵埃)



이에 대해 혜능이 지은 게송은 이렇다.

지혜는 본래 나무가 아니고 (菩提本無樹)

마음 또한 거울이 아니다 (明鏡亦非臺)

본래 아무 것도 없는데 (本來無一物)

어디에 먼지가 끼랴 (何處惹塵埃)



출처 : 현대불교(https://www.hyunbulnews.com)



이를 본 홍인 대사는 단박에 혜능의 깨달음의 차원이 높은 것을 알아챈다. 신수는 열심히 공부해서 깨달음을 구하겠다고 했는데, 사실 이런 태도는 모든 공부 하는 이들의 평범하지만 성실한 자세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틀린 답은 아니다. 하지만, 혜능은 이미 모두가 자기 안에 불성을 가지고 있는데 무엇을 갈고 닦고 바깥에서 구하겠는가라고 하면서 차원을 달리한 일침을 가한 것이기 때문이다. 선의 파격은 바로 이러한 데서 드러난다.



경허 선사가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부처의 팔만 법문을 적고 있는 대장경이 모두 휴지조각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던 반면, 경전을 읽지 못해도 불법의 정수를 얼마든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육조 혜능이 보여준 것이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은 마땅히 그 마음이 머물지 않는 곳에서 마음이 일어난다는 마음 심(心) 자의 오묘한 진리를 보여준다. 집착이 없는 무념무상, 무심의 심, 평상심이야말로 수행자가 구하는 최고의 마음일 수 있다. 무엇인가 억지로 마음을 써서 하려다 보면 오히려 어깃장이 생겨서 비틀어지는 경우를 얼마든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념무상과 같이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마음은 불법을 구하는 수행자에게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일반인의 일상의 마음에서도 확인할 수가 있다. 이런 선종의 정신 속에서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의 정신, 진리와 불법을 경전이나 타인의 설법과 같이 자기 바깥의 것에서 구하지 않으려는 주체의 정신을 볼 수가 있다.



내가 각주와 레퍼런스 없이 글을 쓰자면서 주창한 에세이 철학은 기본 지향에서 선(禪)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물론 에세이 철학은 우리가 사는 현재의 일상을 중요시하고 불교는 마음 심(心)자를 중요시 한다거나, 에세이 철학은 철저히 문자에 기반한 철학을 전개하는 반면 선은 불립문자(不立文字)나 교외별전(敎外別傳) 처럼 이 문자를 넘어서려 하기 때문에 양자의 친화성에 대해 쉽게 수긍하기 어려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인용한 금강경의 한 구절처럼 이 마음 심이 무심의 단계에 이르는 것은 일상(everydayness)이다. 그래서 선종에서는 일상에서 밥짖고 물깆는 일 자체를 불법의 연장으로 간주한다. 그만큼 일상은 선에서도 중요하다. 선이나 에세이철학이나 똑같이 이 일상 바깥의 초월적인 진리를 구하지 않는다.



중국의 선종의 역사를 보면 선사들에게는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정신은 그 어느 것에도 구애되지 않는 무애의 정신, 자유의 정신이다. 선이 추구하는 절대 자유는 어떤 전제도 인정하지 않는 데서 드러난다. 이런 자유는 그 어느 것에도 머무름이 없는 절대 무의 정신에서나 가능하다. 이런 자유의 정신이 있기 때문에 선은 기존의 경전의 권위나 현실의 왕의 권위, 돈과 권력도 일언 지하에 넘겨 버릴 수 있는 현실 비판과 저항의 정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임제 선사의 말씀은 선의 정신을 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선종사에 이런 깨달음은 수도 없이 많다.



중국 당나라 시대의 단하천연(739-824) 선사의 일화는 선이 통상적 의미의 어떤 권위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자유의 정신을 잘 보여준다. 그가 길을 가다가 해가 저물어 한 절에 이르니 때가 겨울이라 몹시 추웠다. 불을 좀 피웠으면 싶은데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법당에 들어가 이것 저것 찾다 보니 마침 목불(木佛)이 있었다. 그는 주저없이 도끼로 그 목불을 쪼개서 불을 피웠다. 주지 스님이 뒤늦게 이 광경을 보고 노발대발했다. 단하는 막대기로 재를 뒤적이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여래의 몸은 화장 후에 많은 사리가 나왔다기에 나도 이 부처님한테서 사리를 좀 받을까 해서요.”, 원주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여보시오, 도대체 목불에서 무슨 사리가 나온단 말이오!”라고 말하자 단하 선사는 천연덕스럽게 “사리가 안 나올 바에야 나무토막이지 그게 무슨 부처님이겠오!”라고 했다. 만약 단하선사의 이런 행위를 기독교에 대입한다면 그것은 십자가를 태워서 불쏘시개로 삼는 격인데 과연 그런 행위가 가능할까?





마찬가지로 '에세이철학'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사나 철학자 그 어느 것에도 구애를 받지 않는다. 에세이철학이 그것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에 무조건 올라타거나 맹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세이철학은 초월적 동경(Sehnsucht)의 시선을 중시하지 않고, 바로 지금 여기(hic et nunc)에서 춤을 춘다. 한국에 서양철학이 수입된지 100여년이 지났지만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하는 활동은 서양의 철학자들의 철학을 소개하고 번역하고 해설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오퍼상이란 자조적인 이야기가 철학자들 사이에 퍼져 있지만, 누구도 이런 일을 벗어나 독립적으로 사유하고 철학하지를 못하고 있다. 최근에 유학을 다녀온 젊은 철학자들도 그들이 하는 일은 유학을 가서 배워온 철학을 소개하고, 서구에서 나온 새로운 책들을 번역 소개하는 일을 철학의 소임으로 생각할 뿐이다. 그것들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작업에만 매달린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한국 철학은 사유의 식민지 상태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에세이 철학은 무엇보다 이런 한국철학의 현실에 비판적이고, 서구의 어떤 철학사나 철학자를 배경으로 철학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에세이 철학은 원숭이나 앵무새처럼 ‘자유’라는 말을 흉내 내지 않고 직접 스스로 구현하고 있다. 에세이 철학이 서 있는 시공간은 ‘지금 여기’ (hic et nunc) 라는 의미에서 우리 시대와 우리 현실이고, 서구 언어에 대한 컴플렉스를 벗어나 우리의 일상어를 가지고 철학을 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에세이 철학은 A4 10장 짜리 논문에 갇힌 상태에서 각주 없이는 한 줄도 자기 생각을 쓰지 못하는 현재의 철학자들의 학문적 글쓰기를 거부한다. 이렇게 지극히 현실지향적이고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자유와 비판의 철학이라는 점에서 에세이 철학은 선의 정신을 새로운 형태로 구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 문자에 기초한 에세이 철학과 참선과 문자 너머의 세계를 추구하는 선의 내용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선은 부처의 생전에 가섭의 염화시중의 미소가 시사하는 것처럼 참다운 진리는 언어를 넘어서 있고, 언어를 통해 전수되지 않는다는 전제가 강하다. 불립문자(不立文字)나 교외별전(敎外別傳) 같은 말은 언어를 넘어서려는 선의 정신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때문에 한국불교에서는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하는 간화선(看話禪)이 일찍부터 전통을 이루고 있다. 동양의 학문은 순수 이론(theoria)만 추구하는 서양의 학문과 달리 실천적인 자각과 깨달음을 중시하고 그것을 위한 방편으로 수행을 강조한다. 이 점에서 화두참구를 깨달음의 중요한 방편으로 생각하는 선도 동양의 일반적 전통과 궤를 같이 하는 셈이다. 알음알이로 얻는 이론은 원숭이가 흉내를 내는 것처럼 주변을 맴돌 뿐 그 핵심과 본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선의 주장이다. 지극한 깨달음은 이 언어가 끊어지고, 이론을 넘어서서 진정 마음 심(心)에서 전율을 느끼듯 대오각성한다는 의미다.



사실 서양철학을 하는 이들 대부분은 이처럼 강렬한 정신적 체험(體驗)을 쉽게 이해할 수 없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칸트가 말한 물자체(Ding an sich)의 세계나 청년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철학 논고』에서 말한 “나의 세계의 한계는 나의 언어의 한계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칸트나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언어를 초월한 세계는 무어라고 할 수 없는 X의 세계에 다름없다. 이 세계는 언어로 기술할 수 없는 세계이고, 칸트의 이율배반(Antinomie)이론에서 보듯, 그것을 언어적으로 기술하려 할 경우 언어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인 모순율이 깨질 수밖에 없다. 비트겐슈타인의 세계는 말할 수 없는 침묵의 대상이지 그것이 적극적으로 무엇인지 기술할 수가 없다.



노자(老子)가 『도덕경』 첫머리에서 적었듯, 도(道)를 도라고 하는 순간 그것은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이런 의미의 세계나 도는 긍정적 기술의 대상이 아니라 부정적 의미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화두를 참구한다는 선은 언어가 끊어진 이 세계에 대한 긍정적인 깨달음이란 면에서 다른 철학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지금 여기’의 시대와 현실을 추구하는 에세이 철학의 경우도 선이 지향하는 내용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에세이 철학은 철저히 문자에 기반해서 모든 것을 문자로 기술한다는 점에서 문자를 배격하는 선의 정신과는 처음부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자와 선, 그리고 에세이 철학은 전혀 다른 것을 지향할 뿐인가? 나는 반드시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에세이 철학과 선을 함께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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