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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 아이들의 교육은 어떠했을까?
  • 알렉세이정 칼럼리스트
  • 등록 2026-05-27 15:43:23

귀족의 남자아이는 대부분 유명한 대영주의 궁정으로 보내져 기사교육을 받았다. 귀족중에서도 상위귀족 즉 대영주의 자제들은 대부분 왕궁으로 보내져 기사교육을 받았다. 귀족(혹은 기사가문)아이는 거의 무조건 7살이 되면 부모에게서 떨어져 수습기사(Page)로써 매사냥, 검술, 음악, 라틴어, 읽고쓰기, 궁중예절, 외국어, 산술, 무기 손질법, 말 기르기 등에 대해서 시종장(Chamberlain)이나 학자에게 교육받았으며, 이 중에는 학자 못지 않게 학문이 깊은 귀족도 나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귀족은 공부는 천한 평민이나 하는 것으로 귀족에게 중요한 교양은 궁정예절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이 받은 교육에도 불구하고 좀 무식한 귀족들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중세 시대 (특히 14세기 프랑스)의 대학 또는 문법학교(Grammar School)에서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 출처 : Medieval Education in Europe: A force of freedom and submission


14세에 견습기사(squire)가 되면 학문공부는 거의 하지 않고 전투훈련과 더불어, 영주 궁정의 여러 관직을 경험해 보면서, 영지를 경영하는 실무경험을 쌓았다. 사실상, 중세유럽의 궁정은 많은 수의 귀족아이들이 모여 기사훈련을 쌓는 이른바 기사학교의 역할도 병행했다. 물론 21세가 되면 정식기사의 작위를 받을 수 있었지만, 모든 귀족 아이가 21세에 기사작위를 받았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여담이지만 견습기사 중에는 이른바 여자처럼 생긴 미소년이 많았다고 한다. 때로는 이들 아이들 중 성당학교(Cathedral School)로 가는 아이들이 있는데 무관의 길말고 문관의 길을 걸으려는 고위귀족의 자제들은 성당학교에 입학해 교육을 받았다. 성당에서 운영한 이 학교는 이른바 고위성직자를 비롯해 대상인, 고위 정부 관리를 양성하는 기관이었다.


이 과정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대학을 다녔는데 이탈리아의 의과대학으로부터 시작된 대학은 중세 최고의 학부였다. 일단 대학에 입학하면 7과목의 하급 과정을 들었는데, 신입생은 문법, 논리학, 수사학의 3과목을 먼저들었고 산수, 기하학, 천문학, 음악 의 4과목은 중급과정이었다. 이 7과목을 모두 이수한 학생은 상위 과정인 신학, 법학, 자연과학 등의 전문 지식을 습득했다. 입학은 21세부터 허용되었으며, 평민이라고 특별히 입학이 거부되지는 않았다. 대신 입학금이 비싸 부유한 평민 계급이나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상위과정에서 석사(Master) 학위를 주었으며 대학에서 8년이상 공부한 학생에게 교수의 자격을 주었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문에 만족하지 못하는 학생은 유학을 가기도 했는데 당시 최고의 학문도시는 이슬람 스페인 지배하에 있덛 톨레도(Toledo)라는 도시와 오스만투르크의 코스탄티니예(오늘날의 이스탄불)로 이 도시에서 당시 최고의 선진학문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중세 시대 남자들은 문법학교(Grammar School)도 다녔다. 현대의 고등학교와 비슷한 교육기관으로 7개학문 즉 문법, 논리학, 수사학, 산수, 기하학, 천문학, 음악 을 공부했다. 주교(Bishop)가 허가를 내준 학교로 거금의 입학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중, 상류층 사람들이 주로 입학했다. 수도원(Monestary)은 대개 성직자가 되려는 평민계급의 아이들이 입학했으며, 12세기경에는 성직자 희망자가 아니라도 입학이 허가되었다. 신학이나 고전을 위주로 공부를 가르쳤으나, 회계 등의 상당수의 실용적인 학문도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신전학교(Hospital)는 평민으로 태어나서 기사가 되고 싶은 자는 신전학교에 입학했다. 물론 귀족도 입학했지만 기본적으로 궁정에서의 기사과정과 동일했다. 그러나 차이점은 21세가 되 정식기사가 되면 신전에 소속된다는 점이 달랐다고 한다. 


길드(Guild)의 경우 상공업에 종사하려는 사람들이 다니는 곳으로 해당 길드에 도제로써 직업훈련을 쌓았다. 직업훈련이 주였으나, 읽고 쓰기 정도는 기본으로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현대의 실업 고등학교와 비슷한 역할을 했던 셈이다. 당시에도 초등학교(Elementary School)의 기초학교가 있었다. 이 학교를 다니는 사람은 대개 농노의 자식으로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은 수도원에서 운영한 초등학교에서 읽고 쓰기 및 성경에 관해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학생들 중 거의 하류층의 아이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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