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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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왕조(8세기~12세기)와 촐라왕조(9세기~13세기)에는 남부 지역과 동부 지역에서 나타난 힌두교 왕조인데 인도에서는 최초로 나타난 힌두교 왕조로 인식하고 있다. 이 때 동부의 팔라왕조는 불교도 받아들여 힌두교와 종교적인 혼합을 노리기도 했다. 촐라왕조는 이미 혼혈화하여 사라진 아리아 인들을 대신해 쿠샨 왕조의 막판 혼란 시기에 스스로 브라만과 크샤트리아 계급에 올라간 현지 토종인들이 주축되어 있다는 것에서 큰 의미가 있다.

남인도의 매혹적인 불상,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필자의 직접 촬영
이 때 베다 경전을 중심으로 최고의 신 브라흐마의 오른손과 왼손에서 왕을 배출한다 믿었기 때문에 왕권은 세습제라기 보다는 왕위 물망에 오른 자의 이름을 종이에 적고 종이를 브라흐마의 양손에 올리는데 이 때 양손 아래에 초를 놓고 태워 가장 먼저 종이가 타는 사람이 왕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그 종이를 브라흐마가 선택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격적으로 카스트의 크샤트리야라는 이름이 나타난 것이 촐라왕조 때부터라 볼 수 있겠다. 이전에 크샤트리아는 샤발라(Shabala)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원래 카스트라고 붙여진 신분제의 원어는 바르나(वर्ण)라고 불리었다. 카스트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대항해시대 때 포르투갈인들과 스페인인들이 사용했던 '카스타(Casta)'라는 용어에서 시작되었고 영국인들이 인도를 지배할 때 카스트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라 그렇게 오래된 명칭은 아니다. 브라만이나 크샤트리야는 브라흐마와 시바, 비슈누의 3주신에게 축복받아 이들을 대신해 바이샤와 수드라 계층을 지도해 나가는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이들 하층민들을 다르마(Dharma)의 가르침으로 지도해나갔다.
다르마(Dharma)는 법을 의미하며 우주에 존재하는 영원한 법칙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생명이 마땅히 따라야할 본질을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신분을 초월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카스트 제도에 의한 각 신분의 다르마는 브라흐만의 지혜(Wisdom), 크샤트리야의 용맹(Valor), 바이샤의 근면(Diligence)을 말하기도 한다. 수드라는 불행히 브라흐마의 축복을 받기 위해 카르마(Karma)에 갇힌 존재로 묘사된다. 카르마는 불교와 힌두교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이른바 "업(業)"이다.
선한 카르마는 다르마에 당연한 업을 쌓는 것을 의미하며 선업을 쌓으면 다음 윤회에 보다 존귀한 존재로 다시 탄생하게 된다. 그 존재가 브라만과 크샤트리야가 된다는 것이다. 악업(惡業)을 쌓으면 다음 윤회에 이르러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난다. 그래서 바이샤와 수드라는 현실에 순응하여 브라만을 예우하고 크샤트리야의 지도에 따르면 다음 생애에 브라만과 크샤트리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층계급의 현실은 노예일지라도 다음 생애에서 귀족이 되기 위해 열심히 선한 일을 하며 복을 쌓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카스트 제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 현재 생애에 충실하면 다음 생애에는 그 영광을 누린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카스트는 힌두교와 뗄레야 뗄 수가 없는 것이다. 현재 인도에서 카스트 제도의 사회적 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했지만 13억이 넘는 인구에 수천년의 견고한 세력을 이어온 힌두교의 종교법칙이 살아있는데 카스트라 사라질리 만무하다. 그래서 힌두교가 사라지지 않는 한, 카스트 제도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