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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귀족-기사문화
  • 알렉세이정 칼럼리스트
  • 등록 2026-05-29 14:04:01

귀족 문화와 기사 문화는 서민 문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중세시대의 봉건제도는 카롤링 왕조 말기인 9~10세기에 이슬람 세력의 침입, 동쪽에는 훈족, 아바르족 마자르족, 몽골족의 침략, 북쪽에는 노르만족의 침략으로 중앙집권적 통제력이 약해졌던 시기에 이민족의 빈번하고 파괴적인 침입에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에 주민들이 그들 지역에 성을 쌓고 성주 밑으로 들어가서 이민족에 대항한것이 원인이 되었다. 

영국 후기 낭만주의 및 라파엘 전파 풍의 화가 에드먼드 블레어 레이턴(Edmund Blair Leighton)이 1900년에 발표한 대표작 <신의 가호가 있기를 (God Speed)>의 중세 기사, 출처 : Wikipedia, God Speed (painting)


그리고 사회적, 경제적 원인들도 봉건제도의 성립에 요인이되었는데, 이슬람교도들의 팽창으로 지중해 연안이 상실되자, 유럽은 다른 지역과의 출구에 완전히 차단당하게 되고 따라서 상공업의 쇠퇴, 화폐의 유통과 사용이 급격히 감소하여 도시기능이 크게 약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토지는 중요한 재산이었으며 농업이 중요한 생활수단이 되었다. 결국 토지를 가진 지주들이 사회의 지배층으로 군립하게 되고, 나머지 일반인들은 그들의 보호 아래 토지를 경작하는 예속적인 존재로 변하였다.


봉건제도란 주종제도와 장원제도가 결합한 중세특유의 정치, 경제, 군사, 사회적 지배질서를 말하는 것으로, 주종제도란 왕이 귀족에게 토지를 하사하고 그 대신 귀족은 충성과 복종을 맹세하여 주군은 신하를 보호, 백성을 부양할 책임이 있었으며 신하는 주군을 위하여 군사력을 제공할 의무를 짐으로써 상호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제도를 말하는데, 이는 당시 중세 사회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상호 계약 관계로부터 출발을 하였다. 


신하는 왕에게 하사받은 땅을 효율적으로 경영하기 위하여 하나의 경작단위로 만들고 농민은 장원의 주인인 영주에게 경작권을 위임받는 대신에 영주에게 공납과 부역의 의무를 지게된다. 영주는 자신의 장원에서는 왕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였으며 영주는 농민들에게 막중한 공역과 세금을 부과하였는데, 아이를 낳아도 세금을 내야 하며, 결혼을 할때에도 영주의 허락이 있어야 하며, 사람이 죽어도 세금을 내게하며, 초야권이라 하여 결혼을 하기전 영주가 신부와 먼저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있었다. 이렇듯 영주의 횡포로 인해 후에 농민이 봉기를 일으키게 되는 원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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