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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비와 우물안 개구리
  • 이종철 칼럼니스트
  • 등록 2026-09-07 16:00:34
  • 수정 2026-09-10 11:2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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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선에 대해서 많은 비판을 하다 보니까 사람들은 이 조선의 모든 것을 내가 싫어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선은 사농공상의 위계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렵고 문약한 측면이 있지만, 세종 대왕의 한글 발명과 수백년 동안 이어저 온 조선 왕조 실록 등 자랑할만한 면들도 많다. 특히 조선의 선비들은 여러가지 장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오늘 날 식으로 말하면 전문 학자들 혹은 연구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자기관리에 철저하고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학구적이다. 그들은 어렸을 적부터 서당에서 사서 삼경을 배우고, 유학에 관련된 대부분의 서적들을 섭렵했다. 그런 면에서 성실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학자들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들의 연구 노력 같은 것은 현대의 전문 학자들도 가볍게 볼 수 없을 정도로 상당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조선의 많은 유학자들이 일본으로 납치되었는데 그들은 책도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머릿속에서 암기하고 있었던 유학의 경전들을 다시 풀어내어 가지고 일본인들에게 유학을 전파했다. 대표적으로 강항(姜沆, 1567~1618)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일본 포로 생활 중 일본의 승려이자 학자였던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를 만나 그에게 사서오경을 비롯한 조선의 선진 성리학 지식을 체계적으로 전수해서 일본 주자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일을 순전히 암기에 의한 기억을 되살려 했다는 것이다. 사서삼경이라는 것의 분량이 얼마나 많나? 그 많은 것을 이들은 거의 다 머릿속에서 암기한 상태에서 그것을 재현할 수 있었다라는 것인데, 현대인들은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을 이들이 해낸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처럼 뛰어난 조선의 선비들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는 점이 있다. 나는 그들의 좁은 세계관을 비판하고자 한 것이다. 그들은 열심히 공부했지만 특정한 세계관 혹은 특정한 프레임에 갇혀 가지고 오로지 그것만 반복하고, 그 외의 것은 배제한 외골수적 태도가 많있다. 그들은 무엇보다 중화 사대주의에 빠져 있었고, 한문 숭배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조선의 세종이 우수한 문자 훈민정음을 만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세종 당대에도 이를 비판했고, 그 후로도 외면해 버렸다. 이들은 한결같이 문자를 갖는다는 것은 오랑캐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하면서 폄하했다. 그들이 이런 식의 태도를 취한 것은 중화사대와 소중화 의식이 골수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그들의 죄과가 엄청나게 크다고 생각한다. 만일 조선의 선비들이 세종이 만든 한글에 주목해가지고 그것을 발전시키고 그것으로 글들을 썼다라고 하면은 조선은 서양보다 훨씬 근대화를 빨리 달성했을 것이라고 추정해볼 수가 있다. 한글을 전용으로 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한글을 부수적으로 사용만 했어도 그렇게 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았고 못했다. 왜 그랬을까? 거듭 말하지만 나는 이것이 조선의 선비들의 좁은 세계관, 다시 말해서 우물안 개구리와 같은 좁은 세계관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사가 토마스 쿤이 이야기한 것처럼, 두 가지 부류의 과학자들이 있다 하나는 패러다임을 만드는 과학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주어진 패러다임 안에서 문제 풀이(problem solving)에만 열중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후자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사유혁명, 과학혁명은 전자에서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뉴턴이나 아인쉬타인 같은 이들은 전자에 속하고,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후자에 속할 것이다. 아마도 조선의 선비들은 중화사대 주의와 한문 숭배주이라는 패러다임 안에서 그 패러다임 자체를 보다 근본적으로 반성하지 못하고 그냥 그 패러다임 안에서 주어진 문제풀이만 열심히 했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들이 중화 사대주의에 대해서 무언가 문제제기를 하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어떤 새로운 대안을 모색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와 관련해서는 퇴계나 율곡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뛰어난 사상가라는 것 자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들은 송대 주희의 성리학을 더욱 발전시켰던 의미에서는 뛰어난 학자이지만, 그들 역시 중화사대주의와 한문 숭배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떤 의미에서 실학의 다산도 마찬가지이다. 이 점은 두고 두고 아쉽다고 할 것이다. 조선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반성할 수 있었던 그들이 그러한 중화 패러다임 자체를 벗어나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들의 근본적 한계이다. 이러한 한계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한글에 대한 인식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오히려 <북학의>의 저자 박제가는 중국어로 한국어를 대체해야 한다고 역설까지 했다. 학자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항상 창의적 싸움을 통해 기존의 패러다임을 넘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야 된다. 그럴 때 비로소 창의적인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조선의 선비들은 그런 것을 못했다 그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또한 그 성실한 노력을 가지고 그 일을 하지 못함으로써 조선은 실패한 국가, 마침내 19세기 말에 일본에게 먹히는 그런 나약한 국가가 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조선의 선비들의 책임이 막중하다.


그런데 이런 사대주의가 오늘날 현대 한국의 학자들에게서도 다시 반복이 되고 있다. 왜 그들이 이런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가가 너무나 아쉽다. 왜 한국의 학자들은 여전히 학술과 사상을 수입만 하려고 할 뿐 자기의 생각을 발전시키려 하지 않는가? 그들은 끊임없이 어디 새로운 곳 없나라는 생각을 가지고서 항상 오파상처럼 수입만 하려고 하고 있다. 이를 미루어 짐작해 본다면, 한국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자기 이론이 없을 뿐더러 그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것 같다. 자기의 독립적인 생각과 이론이 없다는 것은 정말 학자로서 그리고 연구자로서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왜 한국의 철학자들은 그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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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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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niceye2026-09-07 21:41:58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합니다. 조선 선비들의 학문적 성실성과 지적 역량은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주어진 패러다임 자체를 의심하지 못한 한계 역시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 학계 역시 외래 이론의 해설과 수입에 머물기보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새로운 사유의 틀을 세우는 ‘창조적 학문’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결국 진정한 학자는 많이 아는 사람을 넘어, 기존의 틀을 넘어설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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