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자연재해, 상상을 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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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이지당(二止堂)과 조헌의 자취를 찾아
- 높은 산을 우러르고 큰길을 따르다
1. 서화천 물길을 따라 만난 비탈 위의 정사
충북 옥천군 옥천읍 이원리로 접어들어 금강 상류의 지류인 서화천(西化川)을 따라 걷다 보면, 굽이치는 물줄기 너머 가파른 산비탈을 등지고 단아하게 들어앉은 고택 한 채가 시야에 들어온다. 뒤로는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앞으로는 맑은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로 조선 중기의 큰 유학자이자 임진왜란의 구국 의병장인 중봉(重峯) 조헌(趙憲, 1544~1592) 선생의 체취가 서린 ‘옥천 이지당(沃川 二止堂)’ 입니다.
이지당은 본래 조헌 선생이 옥천에 머물며 수려한 풍광을 벗 삼아 후학들을 가르치던 각신서당(覺新書堂) 터였다. 선생이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서 700의사와 함께 장렬히 순절한 뒤, 8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현종 15년(1674)에 백은(白隱) 김만균(金萬均, 1631~?)이 선생의 숭고한 도학과 충절을 기리고자 새로이 건립하였다.
옥천 二止堂 전경
이곳은 2020년 안동 도산서원의 도산서당·농운정사와 함께 서당·정사 건축물로는 최초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제2107호)’로 지정된 역사적·예술적 가치를 지닌 공간이다. 지금은 반듯한 시멘트 다리를 건너가지만 그 당시 고요한 물비늘이 반짝이는 징검다리를 건너 비탈길을 오르는 당시의 정서를 갖고 보아야, 성리학적 실천과 지사의 기개가 어떻게 건축과 자연 속에 녹아들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 이지(二止)의 철학
이지당 마루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필치로 전해지는 단정한 ‘二止堂’ 현판입니다. 이 독특한 당호는 과연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그 연원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거할(車舝) 편에 나오는 유명한 명구, ‘고산앙지 경행행지(高山仰止 景行行止)’의 두 끝 글자인 ‘그칠 지(止)’ 자를 취한 것입니다.
“산이 높으면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고(高山仰止), 밝고 큰 덕행은 따르지 않을 수 없다(景行行止)”는 숭고한 도학적 이상으로 승화되었습니다. 여기서 '止'는 어조사로서 '마땅히 우러르고 본받지 않을 수 없다'는 절대적 흠모의 결의를 품고 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止」는 어조사(句末 조사)로, “~함이로다 /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도의 어기를 더한 것으로 「景行」의 「行」은 원래 “큰길(大道)”을 뜻하나, 유가에서는 “밝은 행실”로 읽습니다.)
송시열이 이 당호를 지어 붙인 까닭은 조헌 선생의 학문과 삶이야말로 후학들이 우러러보아야 할 우뚝한 ‘높은 산’이며, 국난 앞에 온몸을 던진 실천적 행실이야말로 만세에 따라 걸어야 할 ‘큰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조헌은 율곡(栗谷) 이이와 우계(牛溪) 성혼의 수제자이자 토정 이지함에게 수학하며 기호학파의 첫 세대를 열었던 진유(眞儒)였습니다. 스스로 율곡의 학통을 잇겠다는 뜻으로 호를 ‘후율(後栗)’이라 지었을 만큼, 이론적 사유에 머물지 않고 기발이승(氣發理乘)의 세계관을 현실 개혁과 실천으로 확장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명나라를 다녀온 뒤 올린 〈동환봉사(東還封事)〉와 〈시무 16조소〉 등을 통해 국방 강화, 공정 인사, 민생 안정을 역설했고, 왜란 이전 이미 침략을 예견하며 구체적 방비책인 〈비왜지책(備倭之策)〉을 올린 경세가였습니다. 이러한 선견지명과 경세 의식은 후대 실학자 박제가가 《북학의》에서 그의 개방적·실용적 태도를 높이 평가한 바탕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선생은 성균관 문묘에 종사된 한국 유학자 18인, 동국 18현(동방 18현)의 한 분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벼슬이나 가문만으로 오르지 않고, 학덕·도통·절의·후세의 공인이 겹쳐야 선정이 가능한 명예입니다.
3. 자연에 순응하며 세운 입체적 누정 정사, 건축의 묘미
이지당은 조선 후기 목조건축의 조형미와 지형 적응력의 뛰어남을 증명하는 공간으로 건물 앞에 서면 전형적인 일(一)자형 평면을 지닌 여타 서당들과 구분되는 독창적인 형태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건물의 기본 규모는 정면 6칸, 측면 1칸이지만, 몸채 좌측에 3칸, 우측에 2칸의 익랑(翼廊, 날개채)을 잇대어 평면이 'ㄱ' 자 혹은 '∏' 형태의 복합적인 입체 구성을 이룹니다. 특이한 것은 양쪽 익랑을 모두 2층의 ‘중층 누각’ 구조로 올렸다는 점입니다. 서당이나 정사 건물에서 강학 공간과 풍류·조망의 누정을 이처럼 정교하게 결합한 누각형 정사는 한국 건축사 전체를 통틀어도 매우 보기 드문 희귀한 사례라고 합니다.
이지당 좌측 루각 
건축은 급경사 산비탈이라는 험준한 지형을 억지로 깎아내 평탄화하지 않고 거친 자연석 기단과 덤벙주초(자연석 주춧돌)를 그대로 놓아 지세의 고저차를 건축 구조 안으로 자연스럽게 품어 안았습니다. 서쪽 누각 아래의 낮은 지형은 통로와 난방을 위한 아궁이로 기능화하고, 그 상부에는 서화천을 향해 시원하게 트인 누마루를 얹어 입체적인 공간 활용을 이루어냈습니다.
1901년(광무 5년) 옥천의 금·이·조·안(琴·李·趙·安) 4대 문중이 뜻을 모아 중수하며 오늘날까지 정연하게 보존되어 온 이 건축물은, 조선 후기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전통 목구조의 결구 방식과 공간 변천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살아있는 교과서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합니다.
4. 차경(借景)과 관물찰기(觀物察己)의 멋
이지당에는 인위적으로 파놓은 연못이나 화려하게 가꾼 정원수가 전혀 없습니다. 대신 자연 그대로 흐르는 서화천의 은빛 물줄기와 강 건너편의 기암절벽이 기둥과 처마가 만들어내는 사각의 프레임 속으로 한 폭의 진경산수화처럼 담겨 들어옵니다. 바깥의 자연 풍광을 거스르지 않고 실내로 빌려오는 한국 전통 조경의 정수, 즉 ‘차경(借景)’의 극치입니다.
신을 벗고 서쪽 익랑의 2층 누마루에 올라 앞을 내다보는 순간, 철 따라 시 한수는 저절로 나왔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2층 누마루에 앉아 조헌 선생의 대표적 시조 한 수를 읊조려보는 여유를 권합니다.
“지당(池塘)에 비 뿌리고 양류(楊柳)에 안개 낀 제
사공은 어디 가고 빈 배만 매였는고
석양에 짝 잃은 갈매기만 오락가락 하노라.”
성리학자들에게 자연은 단순히 유흥과 소비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자연의 순리와 계절의 변화(天理) 속에서 인간 내면의 도덕적 본성을 성찰하는 ‘관물찰기(觀物察己)’이자 호연지기를 기르는 수양의 장(場)이었습니다.
마루 끝에 앉아 물결 위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와 서화천의 맑은 여울물 소리를 들으며 왜란의 조짐을 미리 읽고 방비를 눈물로 호소했던 시무의 고뇌, 그리고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주저 없이 붓을 던지고 칼을 잡았던 그 강직한 의병장의 기개가, 굽이치는 강물 위로 겹쳐지는 듯합니다.
5. 오늘의 우리에게 남겨진 ‘큰길’
오늘날 이지당은 옥천 구읍의 정지용 생가와 금강 수변 데크길을 잇는 ‘서화천 생태문화탐방로’의 중심 거점으로 많은 이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곳은 단순한 휴식처를 넘어, ‘참된 사람의 길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도덕적 질문의 현장이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시대를 아파하며 행동으로 지조를 증명했던 조헌 선생의 삶, 그리고 그 높은 산 같은 덕을 우러르며 큰길을 닦아온 후학들의 정신이 이 정사 안에 오롯이 고여 있습니다. 세파에 흔들리는 분주한 일상 속에서 나아갈 방향을 잃었을 때, 서화천 물소리를 베개 삼아 우뚝 선 이지당의 마루는 우리가 마땅히 올려다보고 따라 걸어야 할 바른 행실(景行)의 길을 묵묵히 일러주고 있습니다.
6. 아쉬운 점
문화재 안내판을 보면서 많이 느끼는 아쉬움이 여기에도 옥의 티가 되고 있습니다.
현재 옥천 이지당 안내판에 적힌 영문 번역은 외국인의 관점에서 볼 때 원문의 본래 취지와 유학적 함의를 오해하기 쉬운 매우 부적절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지당 이름의 핵심 내용인 ‘高山仰止 景行行止’를 이렇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Gosanangji gyeonghaenghaengji, which means that if a mountain is high, the people cannot help but look upward, and great deeds cannot be stopped"
첫째, 그칠 지(止)’ 자의 오해입니다. 원문의 ‘지(止)’는 정지하다(stop)라는 뜻의 동사가 아니라, 운율과 감탄·서술을 돕는 어조사(어기조사, "~함이로다 / 마땅히 ~하도다")입니다.
둘째, 의미의 왜곡 입니다. "cannot be stopped(멈출 수 없다/막을 수 없다)"로 옮기면서, 마치 ‘위대한 행위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불도저처럼 밀고 나간다)’라는 엉뚱한 뜻이 되어 버렸습니다.
셋째, 직역에 따른 은유(Metaphor)의 상실입니다.
"if a mountain is high..."
한문 원문에서 ‘높은 산(高山)’과 ‘큰길/밝은 행실(景行)’은 성현의 높은 인품(덕망)과 바른 도리를 비유한 문학적 은유입니다.
이를 영어로 "if a mountain is high, the people cannot help but look upward(산이 높으면 사람들이 위를 쳐다보지 않을 수 없다)" 라고 물리적 사실처럼 곧이곧대로 직역해 놓으면, 영미권 독자는 “산이 높으니 목을 들고 쳐다본다는 물리적 묘사가 왜 조헌 선생의 서당 이름과 연결되는가?”를 전혀 유추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외국어 실력이 짧아 AI에게 “외국인에게 본래의 유교적 도학 정신과 조헌 선생에 대한 흠모의 뜻을 정확히 전할 수 있도록 번역을 부탁했더니 훨씬 격조 높고 정확한 번역 답을 주었습니다.
"High virtues are to be looked up to, and noble paths are to be followed(높은 덕은 우러러 보아야 하고, 고결한 도리는 따라야 한다)"
인공지능의 활용은 이런 격조의 지식까지 주니 참 좋은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