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2025년 여름 호에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의 강재호 교수가 기고한 '번역의 정치학'이란 제목 하에 아도르노와 임석진 교수 간에 편지 교환한 내용과 해설이 실려 있다. 이에 따르면 임석진 교수는 1956년 2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한 학기 동안 막스 베버의 동생인 알프레트 베버 교수와 칼 뢰비트 교수의 세미나에 참석을 했다. 당시는 외국인을 위한 어학 코스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독일에 도착하자 마자 유명 교수의 세미나에 참석할 정도면 임교수는 이미 한국에서 독일어 강독과 회화 공부를 상당히 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전쟁이 끝난 지 몇 년 되지도 않는 상태에서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는 의문이다. 본인의 비상한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하이델베르크에서 1년 남짓 시간을 보낸 임 교수는 아도르노 교수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프랑크푸르트 대학으로 옮겨 간다. 이 때의 사정을 임 교수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나는 철학과 사회과학, 특히 사회학 사이의 한계 영역에 대하여 가장 큰 관심과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바로 이와 같이 철학과 사회학, 다시 말하면 사상과 현실 간의 괴리를 조금이나마 좁혀나가는 데 보탬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었던 분이 바로 프랑크푸르트대학의 테오도르 아도르노 교수임을 알게 된 나는 다음 학기에는 대학을 옮기기로 결심했다."(<철학과 현실> 199년 봄호)
몇 차례의 편지글을 통해서 보면 아도르노 교수는 전쟁의 상흔을 안고 유학 온 청년 임석진의 장학금을 알아봐주고, 그가 헤겔 <정신현상학>과 관련해 '헤겔의 노동 개념'으로 박사 논문을 쓸 때 부심으로 관여도 했으며 , 이 논문이 갖고 있는 의미를 높이 평가해주기도 했다. 강재호 교수의 글 속에 있는 아도르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임씨의 논문은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있어서 노동의 구체적 형상 분석에 기여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합니다...임씨는 인간 자의식의 기원이 하나의 과정으로, 즉 진정한 사회적 노동을 통해 구성되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이 노동은 자의식 속에, 고양(tollere)과 보존(conservare)이라는 이중의 의미에서 '지양'되어 있습니다."
아도르노 교수는 이 논문에 대해 '매우 우수함'(valade laudabile)이라는 평점을 주었다. 아도르노 교수는 임 교수가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같이 어려운 문헌 탐구에 기울인 영웅적인 노력을 대단히 높이 평가하면서 훔볼트 재단에 연구비 신청한 임교수를 적극 지지한다고도 했다. 이런 일련의 내용을 미루어본다면 임 교수에 대한 아도르노 교수의 평가와 지지는 기대 이상이라고 할 수가 있다. 사실 아도르노 교수처럼 한 세대를 풍미한 사상가에게 이런 지지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 마찬가지로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임 교수의 학위 논문은 <정신현상학> 관련한 대표적 참고 문헌에 올라와 있다. 아도르노 교수는 임교수가 한국 철학자 이율곡(1536-84)의 저작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철학적, 학문사적 주해 다는 일에도 적극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작업을 보면 임 교수는 일찍부터 동서 간의 철학적 교류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는 2010년대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관심을 받게된 발터 벤야민의 최초 번역자 였으며, 프랑크푸르트학파의 1세대인 에른스트 블로흐와 허버트 마르쿠제의 세미나에도 참석을 했었다. 사실 임 교수만큼 독일 철학계에 많은 지인들을 가진 한국인 철학자들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강 교수의 글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임 교수는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동안에도 한국의 일간지나 잡지에 여러 편의 글들을 싣기도 했다. 임 교수는 1958년에 '프랑크푸르트 독일 헤겔 학회 참관기'를 한국일보(1956.11.25)에, 프랑크푸르트 국제 펜 대회 참관기 '문학은 사멸할 것인가'를 조선일보(1959.8.12-13)에 실었다. 임 교수는 <자유문학> 1960년 4-5월 호에 "발터어 벤쟈민"의 <번역인의 사명>을 번역했고, 1962년 7월 29일부터 8월 1일까지 하이델베르크에서 열린 국제헤겔연맹 창립총회를 참관하고 '헤겔철학의 현대적 이해를 위하여'를 당시 급진적 지식인들이 필진으로 참여하던 <사상계>에 실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활동을 통해서 볼 때 임 교수는 박사 논문을 쓰면서도 독일 학계의 동향을 한국에 적극 소개하는 등 한국과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서양철학의 수용과정에서도 대단히 의미가 있는 이런 임 교수의 행적이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가 2024년 프랑크푸르트대학 사회조사연구소를 방문한 강재호 교수를 통해서 밝혀졌다. 임 교수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상관없이 이런 그의 학문적 이력과 업적에 대해서는 후학들의 공정한 평가가 절실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