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언어 구조가 빚어낸 존재론: 주체와 관계의 동서양적 변주
  • 이종철
  • 등록 2026-05-15 19:10:10
  • 수정 2026-05-30 08:46:51

[에세이철학 네트워크=이종철 ]


동서양 철학의 차이는 다각도에서 조명될 수 있으나, 그 핵심 중 하나는 바로 ‘주체의 유무’에 있다. 인도-유럽어(굴절어) 전통에 기반한 서양 언어는 기본적으로 ‘주어-술어’의 엄격한 구조를 갖는다. 술어가 주어에 종속되는 이 구조에서 사태는 언제나 주어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은 주어(substance)에 끄달린 속성(properties)으로 이루어져 있다.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역시 생각하는 주체가 전제될 때 비로소 성립 가능한 서양적 사유의 전형이다.

반면 동양의 사유 구조는 서양적 의미의 주체 없이도 온전하다. “아, 더워”, “시끄러워”라는 표현에서 보듯, 주어 없이도 상황 그 자체가 하나의 명제가 된다. 이러한 차이는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간극에서 기인한다. 파르메니데스가 “존재는 존재이고, 무는 없다”라고 선언했듯, 전통적 서양 논리학에서 존재와 무, 혹은 A와 -A는 결코 공존할 수 없다. 이는 모순율에 위배되는, 즉 사유의 근본 법칙을 벗어난 무의미한 상태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물론 서양에도 헤라클레이토스처럼 “만물은 흐른다(Panta rei)”며 변화를 긍정하는 전통이 있고, 이는 헤겔이나 마르크스의 변증법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들조차 운동을 주도하는 ‘절대정신’이나 역사 변역의 주체인 ‘프롤레타리아’를 상정함으로써, 주어 중심의 서양적 전통에서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했다.

           출처: 세계일보


이와 대조적으로 《주역(周易)》으로 대표되는 동양의 존재론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전제 아래 A가 -A가 되고, 다시 그 역이 가능함을 긍정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서양적 존재론의 고립된 단일 실체란 존재할 수 없다.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고사처럼, 모든 존재는 타자와의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만 그 의미와 위상을 부여받는다. 여기서 주체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명멸하는 거품과 같으며, 나아가 ‘천지자연(Context)’이라는 전체 맥락 속에 통합된다. 개별 실체로서의 ‘나’보다 세계와 분리되지 않은 ‘큰 나(大我)’, 즉 범아일여(梵我一如)적 주체상이 강조되는 이유다.

이러한 존재론적 차이는 결국 세계를 기술하는 언어 구조의 차이와 맞닿아 있다. 굴절어 체계가 주어와 동사의 일치와 격(Case)의 엄격함을 통해 주어가 세계를 지배하는 방식을 취한다면, 한국어와 같은 교착어는 명사에 결합하는 ‘조사’와 '어미'가 문법적 역할을 결정한다. 굴절어가 주어의 지배력을 강조한다면, 교착어는 조사와 어미를 통해 현재 벌어지는 상황의 뉘앙스를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결국 서양의 언어가 실체로서의 ‘무엇’을 규정하려 할 때, 동양의 언어는 조사를 통해 ‘어떠한 관계’가 형성되는지에 주목한다. ‘나’라는 독립적 실체보다 ‘내가(주격)’, ‘나를(목적격)’, ‘나와(공동격)’처럼 조사로 맺어지는 관계망 안에서 존재의 의미가 구체화되는 것이다. 이렇듯 언어 구조에 뿌리를 둔 존재론의 차이를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 다른 두 세계관이 어떻게 공존하며 심층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0
유니세프
국민 신문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