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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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과학영재의 자살사건에 관해 논란이 있었다. 과학기술원 측은 원인을 해당학생 개인의 문제로 삼고자 하는 듯하다. 어떤 사건이든 문제를 덮고자 하는 쪽에서는 원인을 개인적 문제로 돌리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사건은 그에 버금가는 많은 정황의 존재 이후에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 자연의 현상이다.
마치 수십년전의 항쟁구호가 연상되는 것 같아 멋쩍은 감이 있지만 과학영재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과학교육시스템 개혁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본질적인 관점에서는 그 때와 같은 맥락의 사건이라고 불수 있다.
大韓民國은 理工系를 푸대접하지는 않았다
많은 과학기술인은 우리나라에 노벨과학상이 나지 않는 이유를 이공계에 대한 푸대접으로 돌리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이공계가 비교적 푸대접을 받았다는 것은 문민정부와 좌파정부를 거치면서 느껴진 것일 뿐이고 그 이전 우리나라의 대학교육은 다분히 이공계 위주였으며 국가적지원도 더했다. 지금의 중견 과학기술인은 그 시대의 교육을 받았다.
그럼에도 우리 과학기술이 뭔가 시원하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은 그보다 근본적인 것에서 찾아야 한다. 요컨대 과학기술은 사회적 갈등역학관계와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공계가 사회운동의 수단으로 使用되는 현실이 이공계발전에 저해
정부의 이공계권장 의지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한국의 부모들에게서 자식들의 이공계진학은 말리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이것을 단지 관료주의적 가치관으로만 보기에는 그 지속기간이 너무 길다. 수십년전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공계진학을 했던 많은 기성세대가 지금 “그 말씀이 옳았다.”고 생각게 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사회의 이공계가 그 자체로 독립하지 않고 어떤 사회운동시스템의 부속적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주체로 자리 잡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근래 한반도사회의, 수천년간의 문화전통을 뒤집어 漢字가 불필요하고 영어가 통용되는 사회로 바꾸고자 하는 다분히 인문사회학적인 운동에 이공계는 그 尖兵(첨병)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를 유일한 학문의 수단으로 여기며 그 상황을 지속하고자 하는 이공계 핵심부의 사고방식이 상황을 연장시키고 있다.
우리의 國語로 과학기술연구 부족하지 않다
우리는 수천년 전통의 문화국가로서 인류의 어떤 고급학문의 교육도 우리의 국어로 가능하다. 영어는 수평적인 위치의 별개의 언어로서 필요에 따른 번역대상일 뿐이지 우리말의 상위에 자리하는 필수학문도구는 아니다.
과학기술계의 영어위주교육은 단순히 우리 교육계의 보수성과 경직성이라는 것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영어로 학문을 習得(습득)한 학위소지자들이 대부분인 대학에서 교수들은 영어와 전공을 결코 분리하고 싶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일상생활은 우리말로 했지만 학문은 漢文으로 했듯이 지금은 미국중심의 세계이니 학문을 영어로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맞지 않은 사고방식임은 그들에게 설득되어야 할 것이다.
많은 학생이 대학과정에서 이공계 전문서적의 영어원서를 사용하면서, 고급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말로는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영어를 잘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학생이라 할지라도 자라면서 몸에 배인 언어로 공부하는 것과 인위적으로 배운 언어로 이중 학습을 하는 것은 그 능률에 차이가 있다. 과학자 아인스타인은 어학성적(외국어능력)은 좋지 않았으면서 큰 업적을 이루었다지만 우리의 경우는 과학도에게 과학의 재능과 어학의 재능이라는 서로 상관관계가 없는 두 가지를 동시에 가져야 하는 부담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가 아닌 영어교재 혹은 영어강의에 의한 교육은 비효율적일뿐더러, 이공계인들에게 전공과 교양의 異質化를 惹起[야기]하여 대학시절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에 걸맞는 지도자적 자질을 기르기 어렵게 하여, 최고수준의 영재들로 하여금 學問傳授技能의 교수직 이외에 보다 융통성 있고 포괄적인 사회적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우리 과학기술은 영어의 굴레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지금에 와서 미국만을 통해서 첨단학문을 배울 수 있다고는 누구도 생각지 않을 것이다. 국제세미나에서의 유창한 발표능력이 과학자로서의 필수능력은 아닐 것이다.
과학도의 앞길에 놓인 영어라는 이질적 관문을 제거하는 것은 정부정책보다도 현업의 과학기술인들이 해야 할 일이다. 물론 현행의 영어교육을 문제없이 그대로 잘 따르는 학생이 대다수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어라는 독립적인 요소로 재차 걸러진 인재가 과연 모든 과학기술인재의 잠재력을 수용한 것이 될 수 있느냐가 의문되고 영어의 관문을 통과한 인재자체도 과연 자기의 과학적 재능을 최대한 계발했느냐가 의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