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라즘의 잃어버린 문명을 품은 성곽도시, 히바 이찬 칼라
이찬 칼라(Itchan Kala)는 대상(隊商)들이 사막을 건너 이란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하던 곳으로, 약 10m 높이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옛 히바 오아시스(Khiva oasis)의 도심지이다. 비록 아주 오래된 기념물들은 일부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중앙아시아의 뛰어난 이슬람 건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는 주마(Djuma) 모스크, 무덤들, ...
네팔의 자연재해, 상상을 초월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83107490005641?dtypecode=pancode_main네팔·티베트 대홍수 사망 797명·실종 3048명…터널 구조 사력입력 2026.08.31 07:54한국일보를 선호 출처로 추가김현우 기자네팔, 수력발전소에서 집중 구조작업미국·캐나다 등 긴급 자금 지원이미지 확대보기29일 네팔 홍수 피해 지역 중 한 곳인 누와코트 지역 비...

흉상
애틋한 새소리에 눈을 떴다. 동이 트고 있었다. 눈 뜨면 바로 일어나 나가서 걷던 몇 달 동안의 버릇이 나를 산책으로 이끌었다. 아직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와 광장에 이르렀을 때 태권도 도복을 입고 맨발로 달리는 소대 규모의 군인들을 보았다. 지난겨울 동안은 못 본 풍경이었다.
사원으로 오르는 계단 주변에 자리 잡고 줄지어 앉아 구걸하는 걸인들도 낯설게 느껴졌다. 트레킹을 가기 전에는 거의 날마다 운무 속을 걸었기 때문에 미처 못 봤을지도 모르지만, 날이 풀리고 관광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하자 걸인들도 도처에서 몰려왔을 것 같았다.
사원이 있는 야산을 우회하는 도로를 걷다가 긴 의자와 철봉이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동쪽, 그러니까 부탄 쪽의 히말라야 능선 위로 아침 해가 빨간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감흥이 그전 같지 않았다. 이미 수차례 장엄한 일출을 경험한 탓일까? 일출은 그저 일상의 시작을 알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또 하루를 만났다는 그것에는 뭔지 모를 깊은 의미가 있는 듯했다.
분홍빛으로 물든 칸첸중가 정상에서는 화염 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라 강한 제트기류에 휘말린 만년설 가루라는 얘기는 앞에서 했던가?
줄넘기하고, 맨손체조를 하고, 평행봉이나 철봉에 매달리기도 하고, 태권도 앞 차기 연습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도 아리안계의 주민들이지 싶었다. 염주나 기도 바퀴를 굴리면서 오로지 옴마니밧메훔 염불하며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랜 고통을 견뎌온 사람들이 갖는 엄숙하거나 비장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복색으로 보아 티베트에서 이주해 온 난민들이지 싶었다. 더러는 부유해 보였지만 대개는 가난에 찌든 듯이 보였다.
철봉 너머로 멀리 내려다보이는 깊은 골짜기 건너편은 시킴 땅, 걸어가도 반나절이면 당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변을 보려고 산책로에서 산비탈 숲속으로 이어진 오솔길로 잠깐 내려섰더니 어디서 은은한 꽃향기가 났다. 아주 좋은 냄새였다. 숲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또한 듣기 좋았다. 조금 더 내려가니 학교 같은 건물이 내려다보였는데 강당처럼 보이는 큰 건물의 지붕에 '티베탄 난민 자활센터'라는 큼직한 글씨가 영문으로 적혀 있었다.
자활센터의 널찍한 마당에서는 붉고 푸르고 희고 노란 룽따들이 아침 바람에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 아래로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은 필시 난민들이지 싶었다. 자활을 위해 공예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난민들이 벌써 일을 시작한 것일까?
다니 디디가 저기 있을지도 모른다는 뜬금없는 생각이 스쳤다. 내려가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이내 공허한 짓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허탕 칠 일이 두렵기도 했다. 짐을 정리하여 침낭 등 세탁물을 맡기고, 시킴 입경 허가 신청서를 내고, 12시 체크아웃 시간 이전에 숙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면 그럴 시간도 없었다.
발걸음을 돌려 비탈을 오르자니 내려올 때 맡았던 꽃향기가 다시 느껴졌다. 잠시 서서 흠향하다가 도로로 올라섰다. 광장 쪽으로 이어지는 모퉁이를 돌자마자 왼쪽으로 어떤 사람의 흉상이 서 있었다. 둥근 얼굴의 대머리 사내였다.
흉상을 세운 반석 정면에 붙인 직사각형의 구리판에는 그가 인도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사람이며, 살아생전 직업 세 가지는 ‘시인, 철학자, 조리사’라는 영문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림빅 마을 셰르파 호텔의 승려 출신 조리사 카지 라마가 뇌리를 스쳤다. 그가 만든 모모를 한 개라도 더 먹고 오지 못한 게 아쉬웠다.

뚱바
정확하지 않은 정보는 일에 차질을 빚는다. 시킴 입경 허가증이 나오는 데는 1주일쯤 걸린다고 들었는데 막상 수속을 해 보니 절차가 번거롭긴 해도 몇 시간 만에 허가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오후에 바로 시킴으로 출발할 수 있는 상황에서 발목을 잡은 것은 세탁소에 맡긴 침낭이었다. 빨래는 날씨만 좋으면 저녁에라도 찾을 수 있지만 침낭은 최소한 사흘은 걸린다고 했다. 드라이클리닝은 그 세탁소에서 하는 게 아니라 전문 업소에 보내기 때문이었다.
허가증을 손에 쥐자마자 아직 전문 업소에 맡기지 않았기를 빌면서 오전에 맡긴 침낭을 찾으려고 세탁소에 가보니 침낭은 이미 전문 업소로 보내졌다고 했다. 배낭을 꾸려 방에 두고 체크아웃을 안 한 것은 다행이었다. 1주일이라면 몰라도 사나흘 더 묵는 것이 싫어서 다른 숙소를 찾아 나설 필요는 없었다.
한국인 커플이 옆방에 투숙한 것은 바로 그날 오후였다. 통로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고, 두 번째 마주쳤을 때 그들은 멀지 않은 곳의 로컬 식당에 가는 길이라며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하고서 은근히 덧붙이기를 ‘그 집에는 뚱바라는 향기롭고 맛 좋은 술이 있다.’라고 했다.
식당은 질척한 골목 안에 있었다. 문을 열자 허름하고 비좁은 공간에 몽골계로 보이는 현지인들이 수두룩했다. 간판도 없이 유리창에 크레용으로 그린 뚱바 그림을 붙여 놓은 그 식당의 여주인은 우리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분명 한국어, 우리말이었다. 그 바람에 컴컴한 골목에 접어들면서부터 생긴 긴장이 풀렸다.
여주인의 이름은 디키 도마. 자신감이 넘치며 살집이 좋은 중년 여성인데 바쿠를 맵시 있게 차려입었다. 그녀와 한국인 커플은 이미 구면이었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등 흔히 쓰는 인사말을 그녀에게 가르친 사람도 그들이었다는 것은 며칠 뒤에야 알게 되었다.
뚱바는 꼬도(붉은 기장)를 쪄서 누룩으로 버무려 충분히 발효시킨 후 나무로 만든 통에 담고 거기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술이 우러나기를 기다려 빨대로 빨아 먹는 술이었다. 화덕과 천장 사이에 설치한 시렁에 걸어 말린 물소 고기를 잘게 잘라 볶아서 양파 고소 등 채소류와 함께 조그만 접시에 담아 각자 앞에 하나씩 놓아 준 것이 안주였다. 안주 이름은 ‘스쿠티 샐러드’.
디키 도마는 중국제 마호가니 병에 담은 뜨거운 물을 우리를 비롯한 손님들의 뚱바 통에 조심스럽게 부어 주곤 했다. 술맛은 뜨겁게 데운 청주 비슷했는데, 빨대로 빨아서 그런지 부드럽게 잘 넘어갔으며 배 속이 든든해지는 느낌이 따라왔다. 한국인 커플에게 좋은 곳을 알려 주어서 고맙다고 치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자는 본명을 밝히지 않고 몽사_夢寺라는 별명만 알려 주었다. 꿈 몽에 절 사. 여자도 별명만 말했는데 취생_璻生이라고 했다. 옥빛 취에 목숨 생. 둘의 이름을 합치면 취생몽사_醉生夢死 아닌가? 나도 본명은 말하지 않고 뚱바라고 기억해 달라고 했다. 다 같이 크게 웃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악수하였다.
취생과 몽사 커플은 몇 년 전에도 산닥푸 - 팔루트 트레킹을 했으며, 그 때 너무 좋아서 다시 와 본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행선지는 시킴. 시킴에서 칸첸중가 트레킹을 할 계획이지만 여의치 않으면 그냥 작은 마을에서 좀 쉬다가 다르질링으로 돌아올 계획이라고 했다.
대화 중에 그들도 팔루트에서 람만으로 내려와 림빅에서 버스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도 겨우 이틀 차이로 내가 걷던 길을 따라온 것이어서 아연 긴장했다. 만일 그들이 실리콜라의 펨 도마네 산장에 들렀다고 가정하면, 펨 도마는 같은 한국인 손님에게 ‘실종된 딸을 찾는 한국인 아빠’에 대한 얘기를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span>계속>
#장편소설_칸첸중가_017_흉상_뚱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