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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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토의 성립 과정
ⓒ 금성교과서 사회과부도, 1983 지금은 비교적 덜하지만 우리의 역사해석 중에는 한 때, 삼국시대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더라면 ‘우리민족’은 드넓은 만주평야를 영토로 가진 大國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表하는 史觀이 많았다.
물론 이에 對해, 우리가 지금 대륙과 別個의 나라로 유지되어 온 것은 신라의 삼국통일에 말미암은 것이며 만약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다면 중국대륙과의 계속되는 패권경쟁으로 나라는 유지하지 못하고 결국 중국의 소수민족과 같이 되었으리라는 견해도 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史觀에 대해 어느 한 쪽이 옳다고 하기보다는, 국가란 결국 개인과 마찬가지로 본래 타고난 本分을 존중하여야 하며, 分數에 벗어난 욕심은 이윽고 더 큰 손해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과거에 대한 부질없는 아쉬움은 덜 수 있을 것이다.
현대사에서 6․25전쟁의 결과는 대한민국으로서는, 분단 후 불과 오년만에 찾아온 통일의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그 후로 육십년이 되도록 통일의 뚜렷한 비전도 보이지 않는 현재로서 매우 아쉬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북조선으로서는 그들 나름대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일은, 어느 정도 이뤄놓기는 비교적 수월하지만 완전히 이루려는 것에서 어려움이 닥칠 경우가 많다. 이 完全의 추구는 때로는 절대적 가치일수도 있지만 때로는 부질없는 욕심으로서 화근이 될 수도 있다.
전쟁당시 한국은 38선을 밀고 북진하여 평양과 원산을 잇는 선까지 도달하였다. (전자책 발표 전쟁소설집 중 전쟁과 소년편 https://muma.upaper.kr/content/1100718 참조) 이 線은 반도와 대륙 사이의 가장 좁은 목과 같아서 방어에도 매우 유리했다. 만약 이 근방에서 북진을 멈추고 영토 굳히기를 했다면 대한민국은 더욱 유리한 번영의 기틀을 마련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疆域을 완전히 회복하겠다는 욕심(?)으로 말미암아 국군은 계속 북진하였는데 戰線의 길이가 무려 4배가 되는 압록강과 두만강 전선의 방어는 중공군의 침입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던 것이었다.
기실 조선시대에 이와 같은 疆域이 이루어진 것도, 본래 전주지방으로부터 망명 이주하여 함경도 일대의 여진인을 다스려온 太祖一家가(참조:龍飛御天歌) 조선을 건국하였기에, 이윽고 복속시킨 것이었다. 지형적으로는 함경도와 평안북도 일대는 자연스러운 한반도국가의 국경이 아닌 것이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가 우주에서 한반도를 바라보니 하나였다고 했지만 진정 정치사회적인 선입감을 갖지 않고 보았다면 한반도는 우리가 늘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음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오늘날 반도의 중앙부도 온전히 얻지 못하고 고난의 시기를 지내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조선시대에, 신라 및 고려시대의 안정적인 반도국경을 벗어나 영토를 넓힌 데에 그 근원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6․25전쟁 때의 지나친 욕심(?) 또한 그 화근을 떨치지 못하게 한 사유가 되었던 것이다.
인간이나 국가나 자기의 본분에 어긋나는 지나친 욕심은 두고두고 화근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와 6․25때의 약간의 욕심(?)이 오늘날과 같은 결과를 빚음을 볼 때 고구려의 광활한 영토를 계속 가졌더라면 하는 큰 욕심 또한 부질없음을 깨달아야 하겠다.
2008-12-02 오전 00:2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