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자연재해, 상상을 초월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83107490005641?dtypecode=pancode_main네팔·티베트 대홍수 사망 797명·실종 3048명…터널 구조 사력입력 2026.08.31 07:54한국일보를 선호 출처로 추가김현우 기자네팔, 수력발전소에서 집중 구조작업미국·캐나다 등 긴급 자금 지원이미지 확대보기29일 네팔 홍수 피해 지역 중 한 곳인 누와코트 지역 비...
이반 4세 때 수도인 크레믈린 방위도 목적으로 하여 성곽을 구축했다. 나는 일찌기 <이반 4세의 영토 팽창과 카잔 칸국에 대하여> 논고에서 카잔 칸국과의 전쟁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었다. 카잔 칸국의 침공에 대응하여 1550년 무렵에 러시아 최초의 상비군을 조직한 사람도 이반 4세였으며 포병과 공병을 포함한 소총 부대를 창설했는데, 그들을 ‘스트렐치(Стрельцы)’라고 불렀다. 스트렐치(Cтрельцы)는 사격수라는 의미의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존재했던 러시아의 친위대이다.

스트렐치 부대가 주둔한 나바데비찌 성곽,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이들은 기본적으로 머스켓과 같은 화약무기로 무장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사격 부대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초창기 스트렐치 부대는 아퀘부스(Arquebus)라는 일반 머스켓 총으로 무장하였다. 이들은 1552년 카잔 전투에 처음으로 실전 투입되었다. 당시 스트렐치는 촌락민이나 상인들로 이루어졌으며, 이후 전력 면에서 효율성을 인정받은 이들은 주력으로서 장기간 활용되었고, 세습제로써 유지되었다. 그러나 16세기에는 정예 부대로써 각광받던 이들은 훈련의 부족과 전투 의욕 상실 등으로 인해 그 효율성이 점차 떨어져 갔다.
스트렐치 부대는 모스크바에 주둔하는 비보니예(Bыборные), 고로스키예(Городские), 그리고 지방부대로 나뉘었다. 모스크바에 주둔한 스트렐치 중 비보니예(Bыборные)는 크레믈린 왕궁 수비를 맡았고, 일반적인 호위 임무 외에 타 군사 작전에도 참여하였다. 이들은 또 모스크바 내에서 경찰과 소방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들 중 고로스키예(Городские)에는 나바데비찌에 주둔했었는데 나바데비찌 성곽을 한 바퀴 돌면서 확인한 결과 곳곳에 화승총을 설치했던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성곽 틈새 사이에는 화포를 주둔시켜 공격해오는 유목민족을 화약 무기로 섬멸할 수 있도록 하였고 4각 지대에는 원통형 치(雉) 성을 설치하여 사방에 성곽을 넘으려는 적들을 방어하기 위해 신호를 보내는 등 시야를 확보하는 역할을 했다. 곳곳에 사각 치성은 성벽에 사다리를 걸치며 성벽을 타는 적병들을 섬멸할 목적으로 설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