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자연재해, 상상을 초월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83107490005641?dtypecode=pancode_main네팔·티베트 대홍수 사망 797명·실종 3048명…터널 구조 사력입력 2026.08.31 07:54한국일보를 선호 출처로 추가김현우 기자네팔, 수력발전소에서 집중 구조작업미국·캐나다 등 긴급 자금 지원이미지 확대보기29일 네팔 홍수 피해 지역 중 한 곳인 누와코트 지역 비...
카프카스 서부를 담당하는 이베리아 지역은 고대 시대에 쿠라-아락세스 문화와 다양한 관련이 있다. 이는 고대 작가와 여행가들에 의해 총체적으로 이베리아인이라 불리는 부족들이 거주했다고 전한다. 이베리아 지방은 신화 속에서 나타나는 족장이 트빌리시 일대를 거점으로 두고 카르틀로스, 혹은 카르틀리라는 나라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몇 차례의 통합 전쟁 이후에 그들의 나라인 이베리아라고 불렸다. 카르틀리 씨족의 중심인 모스치(Moschi)는 그리스와 마케도니아의 역사가들에 의해서 상당수 언급되며, 헤로도토스의 언급에 의하면 그들의 후손인 듯한 사스페르스(Saspers)는 트빌리시 지역에 거주한 부족들의 통합에 결정적일 역할을 한 것 같다.

고대 조지아 지역 이베리아 성터,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모스티는 콜키스의 북동부로 서서히 이동하며 오늘날 남오세티아 지역에서 큰 정착지를 형성했다. 그들의 거점은 므츠헤타이며 향후에 이베리아 왕국이 건국되었을 때 수도가 되었다. 므츠헤타 부족은 후일 조지아에서 정신적 지주가 된 곳으로 어머니라는 뜻의 이베리아 방언인 마마사클리시(Mamasaclidi)라고 알려진 지역이다. 따라서 이베리아 민족은 조지아 민족의 원 민족으로 현재 조지아의 중심 민족으로 평가되어 있다. 중세 조지아 자료 목체바이 카르들리사이(Mokchevai Kardlisai)에 의하면 므츠헤타가 성립된 곳에 정착하려 했던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의 군대가 이 지역을 공략해 함락 때까지 이베리아 왕조의 통치 하에 있었던 아조(Azo)와 그의 사람들의 대(對) 페르시아 항쟁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한다.
이후 15세기 조지아 왕국이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분할된 이후에는, 이베리아로 알려진 카르틀리가 트빌리시에 있었던 조지아 왕국의 수도와 완전히 분리되었다. 이러한 카르틀리의 역사적 영토들은 현재는 조지아의 다양한 행정 구역으로 분할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베리아라는 이 어원이 발생한 이론으로 게오르기 멜리키슈빌리(George Melikishuvili)에 의해 제안되었는데 조지아 인의 조지아어 명칭인 단어 스베르(Sber, 혹은 Svir)와 연관되는 비르크(Վիրք, Իվերք와 Իվերք)의 아르메니아어, 같은 시대 조지아의 아르메니아어 명칭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이에 일례로 철자 "S"는 아르메니아어 본 단어의 어근으로 Ber (혹은 Vir)의 접두어 역할을 했다.
그러한 형식으로 이바네 자바키슈빌리(Ivane Zabakishuvili)의 이론에 의하면, 조지아 민족의 칭호 스베르(Sber)는, 스베르(Sver)의 변형이며 이베리아와 마찬가지로 단어 "Hber"와 아르메니아어의 변형인 베르과 비르에서 유래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