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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28《인간이라는 종과 '널리 이롭게'라는 방향의 간극에 대하여》
  • 조율여백
  • 등록 2026-07-28 07:41:34

위 이미지는 인공지능을 통해 생성 되었습니다.


《인간이라는 종과 '널리 이롭게'라는 방향의 간극에 대하여》


인간이라는 종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성찰하며, 저는 한 가지 질문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인간이라는 종의 본질적 성향과 '널리 이롭게 하고자 하는 방향' 사이에는 얼마나 큰 간극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 간극이 생각보다 매우 크다고 여깁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진화해 온 존재입니다. 생존은 자연스러운 본능이며, 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생존이 과도한 소유와 탐욕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권력과 지배, 약탈과 왜곡으로 확대될 때 인간은 점차 존재의 본질을 잊어버리는 모습을 보여 왔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널리 이롭게 한다'는 방향은 단순한 선의나 이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방향에는 반드시 여러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먼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이 있어야 하며,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이 뒤따라야 합니다. 또한 성실과 정직, 이타성, 책임감이 서로 연결되어야 하고, 자신의 행동이 공동체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하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며, 즉각적인 보상도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쉽게 자극과 쾌락을 선택하고, 의미와 감내는 뒤로 미루는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학문의 발전 또한 이러한 간극을 완전히 메우지는 못했습니다.

과학은 자연을 이해하는 데 큰 발전을 이루었고, 철학은 인간을 성찰해 왔으며, 윤리는 공동체의 기준을 제시해 왔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인간 사회에서는 여전히 탐욕과 왜곡, 거짓과 폭력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는 지식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지식이 삶의 방향으로 충분히 연결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의 성숙은 단순히 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존재의 방향으로 이행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지금도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무엇이 인간을 조금이라도 더 널리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질문을 멈추는 순간, 인간은 다시 관성과 탐욕의 방향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희박한 가능성일지라도 그 가능성을 붙들고자 합니다.

이 순간에도 그 간극을 조금이라도 좁히기 위해, 작은 연구를 이어가고, 행동을 돌아보며, 부족한 생각을 수정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러한 노력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선언이라기보다, 먼저 저 자신의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한 수행에 더 가깝습니다.


비록 그 변화가 미약할지라도, 방향만큼은 잃지 않는다면 그 과정 자체에도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저는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한계와 가능성을 함께 바라보며, '널리 이롭게 한다'는 방향이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선택하고 실천해야 하는 존재의 과제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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