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자연재해, 상상을 초월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83107490005641?dtypecode=pancode_main네팔·티베트 대홍수 사망 797명·실종 3048명…터널 구조 사력입력 2026.08.31 07:54한국일보를 선호 출처로 추가김현우 기자네팔, 수력발전소에서 집중 구조작업미국·캐나다 등 긴급 자금 지원이미지 확대보기29일 네팔 홍수 피해 지역 중 한 곳인 누와코트 지역 비...

얼마 전, 모니터 앞에서 잠시 손을 놓고 멍하니 화면을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터미널 창에 그저 한 줄을 입력했을 뿐이었습니다.
"사용자가 지난달 사용한 포인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요약 화면과 데이터베이스 연결 코드를 짜줘."
엔터를 누르자마자, 예전 같으면 며칠 동안 야근해야 만들 수 있었던 수백 줄의 코드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스스로 타이핑되기 시작했습니다. 필요한 파일이 자동으로 만들어졌고, 중간에 오류가 나자 인공지능이 스스로 테스트를 돌려 버그까지 단숨에 잡아냈습니다.
클로드 코드(Claude Code)나 자연어로 말하기만 하면 화면까지 뚝딱 완성해 주는 러버블(Lovable) 같은 도구들이 실무 현장에 들어오며 일어난 일상적 변화입니다. 단 몇 마디 대화로 서비스의 뼈대가 만들어지는 모습은 감탄을 넘어 서늘한 조바심마저 들게 합니다.
개발자 커뮤니티나 뉴스는 온통 "이제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 "인간 개발자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말들로 뜨겁습니다. 하지만 매달 구독료를 결제하며 이 첨단 연장들을 손에 쥐고 일하는 현장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정반대의 질문이 머리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기술이 스스로 답을 내놓기 시작했다면, 이제 인간인 나는 무엇을 고민하는 사람인가?"
거대한 맥락의 벽, 그리고 기술의 속도
인공지능이 짜준 코드는 얼핏 보면 완벽해 보입니다. 초보자는 엄두도 내지 못할 복잡한 알고리즘도 순식간에 구현해 냅니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덩치가 커지고, 수십 개의 시스템이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하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인공지능에는 한 번에 기억하고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한계, 즉 '맥락의 벽'이 존재합니다.
아무리 똑똑한 인공지능이라도 한꺼번에 너무 많은 요구가 쏟아지면 처음에 강조했던 보안 규칙이나 서비스의 핵심 기획 의도를 슬그머니 놓쳐버립니다. 한쪽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했더니, 다른 쪽 기둥을 건드려 시스템 전체를 휘청이게 만드는 식입니다.
결국 꼬여버린 실타래를 풀고, 인공지능이 놓쳐버린 거대한 숲을 다시 바라보며
"이 서비스가 진짜 바라봐야 할 지점은 여기야"라고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인간의 몫이었습니다.
위계가 아닌, 함께 걷는 '동반자'와 '길잡이'
인공지능은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노를 저어 나가는 강력한 엔진이자 유능한 동료입니다.
인간이 며칠 동안 짊어져야 할 고된 노동을 단 몇 초 만에 덜어줍니다.
하지만 이 배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가',
'이 배에 탄 이들이 폭풍우 속에서도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가',
그리고 '기술의 속도에 밀려 소외되는 사람은 없는가'를 끊임없이 살피는 것은
기계의 엔진이 아니라 인간의 따뜻한 눈빛과 길잡이로서의 시선입니다.
기술이 사람 위에 서서 지배하는 시대도, 반대로 인간이 기술을 그저 억누르는 시대도 아닙니다.
기술은 우리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자 동반자이고,
우리는 그 기술이 차가운 효율성의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길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기술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테크닉이 아니라
"사람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는 온기"입니다.
사유의 종말이 아닌, 질문의 전환
우리는 흔히 기술이 발전하면 인간의 '생각하는 일(사유)'이 끝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계산기를 쓰면서 암산 능력이 감퇴했고, 지도를 보지 않고 네비게이션을 따라가면서 길을 찾는 감각이 둔해진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코딩하는 인공지능을 곁에 두고 일하며 깨달은 것은,
생각의 형태가 바뀔 뿐 사유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전에 개발을 한다는 것은 어떤 기호와 공식으로 효율적인 도구를 만들 것인가? 라는
수단의 고민이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진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라는 목적을 향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AI라도 "사람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앱을 만들어줘"라는
막연한 지시에는 스스로 작동하지 못합니다.
어떤 것들이 사람을 따뜻하게 하는 것인지
어르신들이 앱을 사용할 때 어떤 글자 크기와 위치에서 눈이 편안해지는지
그리고 기술이 가져올 부작용을 어떻게 우리사회에 알맞게 보완할 것인지
현장의 맥락과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는
오직 삶을 직접 살아가는 인간의 몸과 경험에서만 길어 올려집니다.
현장에서 길어 올린 오늘날의 답
말만 하면 코드가 쏟아지는 시대에서 프로그래머, 나아가 기술을 다루는
우리 모두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사람의 곁'으로 돌아오는 중입니다.
지루한 단순 반복 작업을 인공지능이라는 유능한 동반자에게 맡겨두었으니,
이제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 를 더 깊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기술의 속도에 압도되어 정답을 빨리 내놓는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이 기술이 과연 누구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는가?"라는
가치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화면 가득 빛나는 수백 줄의 코드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이 누군가의 삶에 닿았을 때
세상이 아주 조금이라도 더 편리하고 따뜻해질 수 있느냐는 길잡이로서의 고민입니다.
차가운 계산과 코딩은 이제 인공지능이 더 빠르게 해낼지라도,
무엇을 위해 그 기술이 존재해야 하는지 방향을 묻고 답을 찾아가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