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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8 《부정합 속에서도 정합을 지향하는 이유》
  • 조율여백
  • 등록 2026-08-08 09:19:52
  • 수정 2026-08-10 09:32:54

*위 이미지는 인공지능을 통해 생성되었습니다.


《부정합 속에서도 정합을 지향하는 이유》


제가 이성과 논리, 인간이 가진 한계와 결핍, 그리고 인간이 실제로 선택하는 방향을 함께 바라볼 때, 인류는 통계적으로 정합성보다는 자신의 생존과 이익, 욕망에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인간이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협력과 배려, 희생과 성실, 정의와 이타성을 선택하는 능력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다만 이러한 선택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삶의 구조로 만들어 가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고 여깁니다.


정합성을 지향한다는 것은 단순히 옳은 생각을 한 번 갖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판단을 끊임없이 객관화하고, 잘못을 인정하며, 기존의 관성을 수정하고,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은 사실까지 받아들이면서 다시 방향을 조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부정합을 비판하는 것보다 정합성을 지속하는 일이 더욱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사회에서는 부당함이 오랫동안 반복되면 그것이 관습이 되고, 관습은 다시 정상적인 현실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거짓과 왜곡이 반복되면 거짓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고, 약탈과 과도한 소유가 반복되면 그것을 능력이나 성공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정합성을 유지하려는 존재는 때로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현실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방향을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기록하고, 연구하고, 스스로를 점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완전하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라 저 역시 언제든 왜곡될 수 있는 미물적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틀릴 수 있고, 잘못 판단할 수 있으며, 때로는 제가 비판하는 구조와 비슷한 오류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정합성을 하나의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계속해서 점검하고 회복해야 하는 과정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제가 말하는 정합성은 완벽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조금 더 정직하게 수정하고,

조금 더 합당하게 구조화하며,

조금 더 이로운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하는 ‘널리 이롭고자 함’ 역시 거대한 이상을 선언하는 의미라기보다, 한 존재가 자신에게 주어진 제한된 에너지를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가 있고,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 사용해야 할 에너지가 있으며, 그 이후에 남은 작은 에너지라도 세상을 이해하고 기록하고 더 나은 방향을 탐구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면, 저는 그것 역시 하나의 의미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제가 지금까지 해 온 수많은 질문과 변증, 연구와 기록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정합이 더 쉽게 확산되는 세계에서,

어떻게 정합을 잃지 않고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저는 계속해서 질문하려 합니다.


완벽한 답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널리 이롭고자 했던 노력은 언제나 다수의 흐름과 일치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매우 희박했고, 느렸으며, 당대에는 이해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작은 흐름들이 축적되어 역사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어 왔다는 점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불완전한 세계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범위만큼이라도 정합을 지향하는 흐름과 역사와 가능성을 기록하고 이어가고 싶습니다.


어쩌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것은 거대한 세상을 바꾸겠다는 선언이라기보다,

부정합에 너무 쉽게 적응하지 않기 위한 작은 저항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 작은 저항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표현하는 ‘발악’이라는 말도 결국 그런 의미입니다.

세상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조율할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일은 계속 질문하고, 배우고, 성찰하고, 기록하며, 필요하다면 제 자신부터 수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합은 이미 완성된 목적지가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가 끝까지 놓지 않아야 할 방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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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admin2026-08-08 11:31:00

    그림 출처를 밝히는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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