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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8《냉정하게 정리하면》
  • 조율여백
  • 등록 2026-08-08 14:57:50
  • 수정 2026-08-10 09:36:02

*위 이미지는 인공지능을 통해 생성되었습니다.


《냉정하게 정리하면》


인간은 자신을 지성체라고 규정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범위화하는 능력에서는 상당한 취약성을 보입니다.


특히 인간은 자신의 생존과 이익, 감정과 소속, 욕망과 신념이 판단에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자신의 판단을 객관적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모든 인간이 그러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인간 사회의 역사와 집단행동을 넓게 살펴보면 이러한 경향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고 볼 여지는 있습니다.


제가 특히 중요하게 보는 것은 ‘한계의 인식’ 자체가 진화와 유지보전의 조건이라는 점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모르면 과도한 확신이 생기고,

한계를 알면서도 관리하지 못하면 반복적인 오류가 발생하며,

한계를 인정하고 그 범위를 조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변화가 가능해집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자기긍정도, 반대로 자기부정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그 범위 안에서 어떻게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지 설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등가·인과·구조·절차의 문제


제가 인간 사회를 바라보면서 반복적으로 발견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판단 과정에서 등가, 인과, 구조, 절차와 같은 요소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결과를 얻었다면 그 결과에 투입된 에너지와 비용은 무엇이었는지, 누가 부담했는지, 그 과정에서 다른 존재에게 어떤 영향이 발생했는지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하나의 결과를 단순히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만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그 결과를 가능하게 한 가정·사회·자연·역사·기술·타인의 노동과 같은 조건들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성취 역시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의 소유물이라고만 보기 어려워집니다.


제가 말하는 ‘등가’ 역시 모든 것을 기계적으로 동일하게 교환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투입과 결과, 책임과 권리, 영향과 보상 사이의 관계를 가능한 한 합당하게 살펴보자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왜 전방위적 오픈화가 필요한가


저는 효율성보다 먼저 객관화를 위한 오픈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항상 가장 합당한 방법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판단이 효율적이더라도 중요한 정보가 제거되어 있다면 그 효율성은 왜곡된 효율성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다양한 관점과 반대되는 증거까지 열어 놓는다면 판단의 정확도는 높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하는 오픈화는 모든 정보를 무조건 공개한다는 단순한 의미라기보다,

무엇을 알고 있는가

→ 무엇을 모르는가

→ 어떤 전제가 사용되었는가

→ 어떤 이해관계가 개입되었는가

→ 어떤 반례가 존재하는가

→ 어디까지 적용할 수 있는가

를 함께 드러내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있어야 객관화가 가능하고, 객관화가 이루어져야 정합화가 가능하며, 정합화가 이루어져야 구조화와 제어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 죄책감·책임감·이타심은 어떻게 위치하는가


제가 가장 날카롭게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부분은 여기입니다.


죄책감, 책임감, 이타심, 본질적 탐구가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류 역사에는 이를 강하게 실천한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다만 그것들이 인간의 모든 행동을 지배하는 보편적 동기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인간에게는 생존, 소속, 쾌락, 지위, 소유, 안전을 추구하는 강력한 동기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책임감과 이타심이 발현되더라도 환경과 보상구조, 집단규범, 개인의 성찰 수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제가 인간에 대해 느끼는 문제의식이 생깁니다.


선한 의지가 존재하는 것과 선한 구조가 지속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아무리 성실하고 이타적이어도 그 사람이 속한 구조가 지속적으로 탐욕과 왜곡을 보상한다면 개인의 선의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선한 인간을 기다리는 것만이 아니라, 선한 방향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구조와 절차를 함께 설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인간을 논하면서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


그래서 저는 인간을 비판하면서 인간을 초월적인 존재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인간 역시 미물적이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하고,

오류가 발생하기 때문에 점검이 필요하며,

점검이 가능하기 때문에 변화의 기회가 생깁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위대함은 오류가 없는 존재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오류를 발견하고 인정하며, 그것을 수정할 수 있는 능력에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객관화 역시 인간을 완벽한 존재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불완전하다는 사실까지 포함하여 우리 자신을 바라보자.”

는 요구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등가, 인과, 구조, 절차, 책임, 이타성, 본질적 의미를 함께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결국 제가 제기하는 질문은 상당히 단순하면서도 어렵습니다.

스스로를 지성체라고 부르는 인간이, 과연 자기 자신을 연구 대상으로 삼을 만큼 객관화할 수 있는가?


저는 아직 인간이 이 질문에 충분히 답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오픈화 → 객관화 → 정합화 → 구조화 → 점검 → 수정이라는 순환을 시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 안에서 더 합당한 방향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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