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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10 인간관계 원칙
  • 조율여백
  • 등록 2026-08-10 00:15:50
  • 수정 2026-08-10 09:33:58

*위 이미지는 인공지능을 통해 생성되었습니다.


최근 제가 인간과 관계를 바라보는 기준 가운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 역시 완성된 결론이라기보다는, 지금까지의 경험과 성찰을 통해 형성된 현재의 판단 기준이며 앞으로 변화할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습니다.


1. 부당함과 지나치게 가까워지지 않겠습니다.
저는 부당한 행위나 왜곡된 태도를 가진 존재를 무조건 이해하거나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에는 가능한 한 넓게 이해하고 포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일정한 범위를 넘어선 부당함은 합당한 기준 안에서 조율되기보다, 오히려 새로운 왜곡과 정당화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태도 자체를 경계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배척하겠다는 의미라기보다, 부당함에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그 왜곡에 제가 함께 편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경계의 설정에 가깝습니다.
배려에도 범위가 필요하고, 포용에도 한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 한 번이라도 신뢰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린 존재에게는 신뢰의 범위를 달리하겠습니다

또 하나의 기준은 신뢰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쉽게 단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실수와 부족함, 판단의 오류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충분한 포용의 범위를 넘어 의도적으로 뒤통수를 치거나 신뢰를 이용한 행위가 확인된다면, 그 이후에는 동일한 수준의 신뢰를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이것 역시 복수나 응징의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와 할 수 없는 범위를 인정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한 사람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다른 존재의 근본적인 방향성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무한히 설득하고 감내하기보다 적절한 거리를 설정하고 더 이상 불필요한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는 것 역시 하나의 합당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제가 새롭게 세우고 있는 기준은 **“모두를 포용하되, 모든 것과 동일한 거리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저 역시 미물적 존재이고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판단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그 에너지를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부당함을 끝없이 이해하려 하기보다 부당함이 더 이상 확장되지 않도록 경계를 세우고, 신뢰할 수 있는 존재와 의미 있는 방향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성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배척을 위한 기준이라기보다, 조율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경계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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