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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20 <<오늘의 글들>>
  • 조율여백
  • 등록 2026-08-20 13:37:28
  • 수정 2026-08-20 21:58:16

2026.8.30 오늘의 글들....


《삶과 기회, 그리고 존재가 감당해야 할 의미》

삶을 하나의 기회라고 바라보게 되면, 인간이 무엇을 얼마나 소유하고 얼마나 누리는가에 대한 질문은 조금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인류의 많은 존재들은 설령 무한에 가까운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기회를 자신을 위한 소비와 소유의 확대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 자원과 기회가 다음 세대와 다른 존재들에게 다시 순환되지 않는다면, 개인에게 집중된 소비는 유지와 보전,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어지기보다 하나의 비순환적 구조로 고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지점에서 인간 사회와 삶의 방향 사이에 일정한 이질감을 느끼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능력의 크기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능력이 크든 작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자신보다 더 넓은 세계를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더욱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간이 어느 정도 성숙해지면 세상과 존재 사이의 관계 역시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세상이 인간에게 부모와 같은 존재일 수 있습니다. 자연은 삶의 터전을 제공하고, 사회는 지식과 경험을 전하며, 앞선 세대의 수많은 노력은 다음 세대가 살아갈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한 존재가 충분히 성장한다면 언젠가는 그 관계가 역전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세상이 인간을 길러 주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인간이 세상을 돌볼 차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근본에는 감사와 정합성, 범위와 분배, 그리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는 단순히 고마움을 느끼는 감정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현재의 삶이 수많은 존재와 사건, 그리고 앞선 세대의 노력과 희생이 이어진 결과임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정합성은 그러한 감사가 실제 삶의 태도와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과정입니다.

범위는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영역과 책임지기 어려운 영역을 구분하면서도, 가능한 범위 안에서 책임의 경계를 조금씩 넓혀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배는 자신에게 집중된 에너지와 자원을 필요한 곳으로 다시 순환시키는 것이며, 의미화는 이러한 과정을 단순한 소비로 끝내지 않고 다음 존재와 다음 시간으로 이어질 가치로 전환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존재와 세계를 바라볼 때 다음과 같은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관찰 → 분석 → 객관화 → 해체 → 융합 → 정합화 → 구조화 → 의미화

먼저 현상을 관찰하고 여러 관점에서 분석합니다. 필요하다면 기존의 관념을 해체하고 서로 다른 정보와 경험을 융합합니다. 그 과정에서 무엇이 합당한지 정합성을 검토하고,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반드시 의미화라는 과정을 거치고자 합니다.

의미화는 단순히 어떤 현상에 의미를 붙이는 작업이 아닙니다. 그 과정이 존재와 공동체, 자연과 미래에 어떤 방향성을 남기는지를 묻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특히 그 의미 안에 자신을 넘어선 가치가 포함되기 시작하면, 존재가 감당해야 하는 무게도 자연스럽게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만을 위한 선택이라면 실패의 비용도 대부분 자신에게 돌아갑니다. 그러나 자신보다 넓은 존재와 미래를 고려하기 시작하면 하나의 판단이 다른 존재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함께 살펴야 합니다.

따라서 책임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필요한 에너지와 검증의 수준도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책임은 때때로 매우 무겁고 큰 압력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무게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자신만을 위해 소비하지 않고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존재적 책임의 무게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삶의 의미는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가에만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많은 기회를 받았으며,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얼마나 합당하게 관리하며, 무엇으로 다시 이어 주었는가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세상이 인간에게 부모와 같은 기회를 주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인간 역시 세상을 위한 작은 보호자이자 돌봄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받은 것을 독점하지 않고 다시 순환시키려는 방향은 유지하고 싶습니다.

진행이 미약하더라도 방향을 잃지 않는 것,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주어진 범위 안에서 성실하게 이행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삶을 넘어 다음 존재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기회를 남기는 것.

저는 그러한 과정 자체가 삶이라는 기회를 의미로 전환하는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존재한다는 것은 단순히 주어진 시간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에게 도달한 삶의 기회와 에너지를 무엇을 위해 다시 세상에 돌려줄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반드시 거대한 성취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성실일 수도 있고, 정직한 선택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게 건네는 배려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부당함을 외면하지 않는 것, 이미 받은 것을 기억하는 것, 다음 존재가 조금 더 나은 조건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작은 구조를 남겨 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크기보다 방향과 지속성일 것입니다.

삶이 하나의 기회라면, 그 기회의 가치는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가보다 얼마나 합당하게 사용했으며, 얼마나 의미 있게 다시 이어 주었는가에서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 이미지는 인공지능을 통해 생성되었습니다.


   《감사》

                  조율여백 이수진


감사는 단순히 좋은 것을 받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나 예의의 표현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불완전한 존재와 세계가 서로에게 기회를 내어준 역사를 인식하고, 그 기회를 다시 의미 있는 방향으로 이어가려는 자가점검적 태도에 가깝습니다.


감사의 본질적인 구성요소 가운데에는 순수하고 무해한 시작의 미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존재가 아무런 계산 없이 건네는 미소와 작은 배려는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오히려 그러한 순수함이 이후에 이어지는 수많은 고난과 복잡한 삶의 과정을 견디게 하는 근원적인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작은 미소를 기억한다는 것은 이후의 삶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어려움과 모순을 어떻게든 의미 있는 구조로 연결하려는 노력과도 같습니다. 이는 삶을 억지로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기회를 무의미하게 소모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숙의 끝에 가까운 곳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미소는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가진 것을 움켜쥐기보다 내어주고, 배려하며, 다음 존재에게 다시 기회를 건네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물질적 소유의 관점에서는 손실처럼 보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스스로를 희생하는 어리석음이나 피해의식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를 단순한 물질적 등가관계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한 존재가 내어준 것은 당장의 물질적 형태로 남지 않더라도 역사와 기억, 관계와 구조 속에 축적되어 다음 존재에게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행위는 특별한 영웅적 행위라기보다, 존재와 존재가 서로에게 기회를 이어주는 순환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세계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다름이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름이 있기 때문에 인식이 시작되고, 인식이 시작되기 때문에 서로를 비교하고 조정하며 다시 순환할 수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은 결핍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완전성은 변화와 인식, 성장과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조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세계에는 동시에 쉽게 제거할 수 없는 부당함도 존재합니다. 모든 부당함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방치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부당함은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시대의 관습이나 사회적 관성 속에서 오랫동안 반복되면서 자연스러운 것으로 오인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당함을 발견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객관화하며, 정합성을 확인하고, 구조적으로 관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말하는 감내는 단순히 고통을 참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없애기 어려운 부당함과 불완전성을 인식하면서도 그것에 휩쓸리지 않고, 보다 합당한 방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감당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불완전한 세계의 순환 속에서는 누군가가 과도한 무게와 에너지를 감당하면서 다음 기회를 만들어 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존재와 노력에 대해서는 가여움과 고마움이 함께 느껴집니다.

그래서 감사는 단순한 감사의 표현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앞선 존재들의 노력에 대한 기억이며, 자연과 세계가 내어준 기회에 대한 인식이고, 부당함을 감당해 온 존재들에 대한 존중이며, 그 기회를 다시 다음 존재에게 이어주려는 책임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없앨 수 없는 부당함과 거짓된 완벽성, 그리고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왜곡을 경계하는 것 자체가 감사의 한 형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감사는 한 번의 감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순환적 검증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받은 기회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다른 존재에게 불필요한 부당함을 전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식과 이성을 자신의 우월성을 위해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받은 것을 다시 의미 있는 방향으로 이어가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감사는 기억이면서 자가점검이고, 자가점검이면서 책임이며, 책임이면서 다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내는 순환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감사란 과거에 받은 것을 단순히 기억하는 행위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하기까지 이어져 온 수많은 노력과 희생, 자연과 타자의 배려를 인식하고, 그 기회를 자신의 소유로 끝내지 않으며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려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깊이는 얼마나 많이 받았는가보다 받은 것을 무엇으로 이어가는가에 의해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감사는 감정의 종착점이 아니라, 존재가 다음 존재에게 기회를 건네기 위해 다시 움직이게 하는 하나의 시작점이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존재적 심판의 순간에》

                                 조율여백 이수진

내게 언젠가

존재를 스스로 돌아보아야 하는

심판의 순간이 찾아온다면,


나는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무엇을 향해 걸어왔는지를

먼저 돌아보고 싶습니다.


열사의 끝,

죽음의 경계에 서는 순간이 오더라도

마지막까지 의미를 붙들고 싶었습니다.


비록 보잘것없는 존재였을지라도

주어진 한계를 조금씩 넘어

이 세상을 사랑하려고 애썼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나는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너무 이질적으로 보이는

먼 길을 걸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길 위에서

존재의 본질에 가까운 원초적 가치와

시간을 견디며 더욱 깊어지는 성숙의 가치를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이름 없는 존재들이

말없이 감당해 온 노고의 가치를

서로 끊어진 채 두지 않고

하나의 의미로 이어 보려 했습니다.


저의 모든 노고에

보상을 바라지는 않겠습니다.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나

보고 듣고 사랑하고 사유할 수 있었던

그 기회만으로도

저에게는 충분히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심판의 순간이 찾아온다면

저의 공로를 말하기보다

오히려 제 부족함을 고하고 싶습니다.


더 아껴주지 못했던 것들,

더 지켜주지 못했던 존재들,

더 사랑하지 못했던 생명들.

제가 가진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더 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던 순간들을

조용히 돌아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제가 무엇을 얻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더 사랑할 수 있었는가,

얼마나 더 지켜줄 수 있었는가,

얼마나 더 의미 있는 존재로 남을 수 있었는가를

묻고 싶습니다.


만약 그것이

제게 허락된 마지막 질문이라면,

저는 그 앞에서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기회를

헛되이만 쓰지는 않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히 감사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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