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hoto from Gemini
선물을 주는 쪽과 받는 쪽 중에 누가 더 행복감을 느낄까? 단언컨대 나는 받는 쪽 보다는 주는 쪽의 행복감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받는 쪽의 경우도 예기치 않은 선물이거나 자신이 받고 싶은 선물일 경우 기쁨이 클 것이고, 그런 기쁨이 행복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는 별로 받고 싶지 않는 경우도 있어 선물을 받는 것 자체가 행복감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 반면 주는 쪽은 받는 쪽의 감정과 상관없이 주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우러 나오고, 그런 마음에서 기쁨과 행복감이 나오기 때문에 선물을 주려고 할 것이다. 만일 이런 기쁨과 행복감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선물을 준다는 것이 고역일 수도 있고, 그런 선물은 뇌물에 가까울 수도 있다. 그래서 뇌물과 다르게 선물은 늘 자발적으로 마련하는 것이고, 어떤 댓가를 바라지 않는 일방적인 행위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선물의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엄마가 아이에게 주는 이런 사랑은 어떤 댓가를 바라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오히려 엄마는 아이가 사랑이라는 선물을 받을 때 더 큰 기쁨과 행복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자선을 베풀고 기부를 하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자선과 기부를 의무감으로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 때의 의무감 역시 타율적이라기 보다는 양심의 경우처럼 자기 만족적인 경우가 크다. 게다가 자선과 기부는 자발적인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는 한결같이 자선과 기부를 할 때의 기쁨이 크고 그것이 가져다 주는 행복감도 크기 때문이다. 내가 종종 기부를 받을 때 기꺼이 기부를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약소하지만'이라는 말이다. 그들은 좀 더 많이 기부했으면 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하는 기부가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부의 상한이 없고, 늘 부족하게 느끼기 때문에 기부와 자선을 하는 사람들은 늘 기꺼이 기부하려 한다. 그리고 이런 기부와 자선 행위가 좋은 습관처럼 몸에 배여서 늘 좀 더 기부와 자선을 할 수 있고자 하는 것이다.
반면 기부와 자선을 억지로 한다든지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기부와 자선을 타율적인 강제로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기부와 자선을 요구하면 기껍게 받아들이기 보다는 불쾌함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물론 한국에서 특히 권력자들에게서 이런 요구를 받는 경우들이 많다 보니 기부 행위에 대해 충분히 그런 감정을 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한국 처럼 기부와 자선의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는 기부와 자선을 타율적으로 생각하는 경우들이 적지 않다. 아무리 좋은 일도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타율적 강제와 종용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면 그 일은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이 때는 좀 더 주지 못해서 미안한 것이 아니라 결코 더 뺏기지 않겠다는 수비적 자세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럴 경우 사람들이 기꺼이 자신의 지갑을 열어 남을 돕기를 바라기는 힘들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하다. 기부와 자선은 기쁨과 행복감을 배가 시켜주며, 이런 행동이 쌓이다 보면 그것이 좋은 습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엄마가 아이에게 주는 내리 사랑처럼 그것은 늘 자발적으로 안에서 우러나오는 심정으로 할 수가 있고, 이렇게 퍼주는 마음이 자신의 삶에 기쁨과 행복을 넘치게 한다. 안에서 솟아나는 감정이기 때문에 기부와 자선을 할 때 늘 '약소해서' 미안해 하고, 다음 번에 그런 일이 있을 때도 기꺼이 응하고, 또 자기 스스로 그런 일을 찾아나서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자. 한국에 기부와 자선의 문화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한국인들에게는 역경을 겪을 때 상부상조하는 정신이 있다. 공동체의 두레 의식에서 비롯된 이런 상부상조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역사적으로 늘 반복된 고난을 극복해왔다. 과거 한국 경제가 IMF의 나락에 빠졌을 때 그것을 벗어나려면 최소 2-30년이 걸릴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그 당시 한국인들은 자기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장롱 속에 감추어 두었던 아이 돌반지 까지 내놓는 운동을 벌였다. 그런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세계인들의 놀램과 찬사가 이어졌다. 이런 거국적인 상부상조의 운동이 이어졌기 때문에 한국경제는 오히려 IMF 체제를 거치면서 더 체질을 강화해서 더 강하게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한국인들의 상부상조의 정신은 역사적으로 볼 때 수도 없이 많다. 한국의 고난의 역사는 이런 상부상조의 정신을 빼놓고서는 설명을 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런 정신은 관혼상제가 벌어졌을 때 너도 나도 함께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함께 돕는 일에서 일상화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문화가 문제가 많다는 비판이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는 데는 나눔에서 오는 기쁨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