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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강에서 평화의 섬으로
  • 김철호
  • 등록 2026-08-28 08:28:35
  • 교동도에서 다시 통일을 묻다: 실향의 세월은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사진의 출처는 트래블아이


들어가며 — 숫자가 말하지 못하는 것

먼저 무거운 숫자 하나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정부에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분이 모두 13만 4천여 명입니다. 그 가운데 지금 생존해 계신 분은 3만 4천여 명, 네 분 중 세 분이 이미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생존자의 평균 연세는 여든셋에 가깝고, 해마다 3천 명 넘는 분들이 고향 땅을 다시 밟지 못한 채 눈을 감고 계십니다. 남북 당국 간 이산가족 상봉은 2018년 8월 금강산에서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8년째 전면 중단된 상태입니다.

이 숫자들은 통계이기 이전에 얼굴들입니다. 상봉 신청서를 품에 안고 차례를 기다리다가, 끝내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날을 보지 못하고 떠나신 분들의 얼굴입니다.

인생의 반 이상을 미국 땅에서 살아온 사람이, 실향의 아픔을 몸으로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 이 자리에 선다는 것은 참으로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고향집 대문을 마지막으로 돌아보고 피난길에 오른 기억도, 부모 형제의 생사를 몰라 가슴을 쥐어뜯던 세월도 제게는 없습니다. 그런 제가 여러분 앞에서 실향의 한을 말한다면, 그것은 자칫 관념의 사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의 한을 대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지난 여든 해 가까이 이 나라의 통일정책이 그 한을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 왜 기대와 좌절이 이토록 잔인하게 반복 되어 왔는지, 그리고 그 한이 더 이상 눈물과 체념 속에 갇혀 있지 않고 다음 세대가 붙들 수 있는 다른 종류의 희망으로 바뀔 수 있는지 — 그 현실적인 길을 함께 묻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한은 오래 묵으면 상처가 되지만, 올바른 방향을 만나면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됩니다.

진단이라는 말을 쓴 것은 의사가 환자를 대하듯 하자는 뜻입니다. 좋은 의사는 환자를 겁주지도 않고, 헛된 장담도 하지 않습니다. 병의 내력을 살피고, 지금의 상태를 정확히 읽고, 그 위에서 현실적인 처방을 내립니다. 오늘 저는 그 순서대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짚어 보되, 그 모든 진단의 마지막 자리를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이 섬, 교동도에 놓아두려 합니다.

1. 교동도 — 분단의 끝자락인가, 통일의 첫 문턱인가

교동도는 삼국시대부터 왕족들이 유배되어 온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연백을 떠나온 피난민들이 현지 주민들과 부대끼며 대룡시장을 일구고, 갯벌을 간척하여 교동평야의 쌀을 지어낸 땅입니다. 이 섬은 단순한 접경지가 아닙니다. 남과 북의 물이 한데 섞여 서해로 흘러드는 곳, 한반도에서 가장 애매하지만 그래서 가장 평화로울 수 있는 경계 위에 서 있는 섬입니다. 교동도는 분단의 끝자락이 아니라, 어쩌면 통일의 첫 문턱입니다.

2. 분단이 흩어놓은 얼굴들

이 발제를 준비하며, 저는 자꾸만 여러 얼굴들이 떠올랐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서를 품에 안고 차례를 기다리다가, 끝내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날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분들의 얼굴입니다. 남에 있든 북에 있든 사정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편지 한 장, 사진 한 장 건네지 못한 채 부모와 자식이, 형과 아우가 칠십 년 넘게 서로의 생사조차 모르고 늙어갔습니다. 이것은 이념으로도, 정치로도, 안보라는 말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직접 가해진 국가 폭력이며,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적 상처입니다.

그 폭력은 한반도 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일본에 남은 재일동포 2세, 3세들은 조선인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이중의 차별을 대물림했습니다. 1937년 스탈린의 명령 한마디에 화물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내던져진 고려인들은 말과 땅을 잃으면서도 '고려인'이라는 이름만은 끝내 놓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얼굴이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흩어진 가지입니다. 오늘 교동도 실향민 여러분의 한도 바로 이 거대한 슬픔의 강줄기 위에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평화를 말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3. 과거의 진단 — 기대와 좌절의 팔십 년

돌이켜 보면 한반도의 통일정책은 몇 차례의 큰 봄과 긴 겨울을 오갔습니다.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이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원칙을 선언했고,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 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문서 위의 약속이 실향민의 밥상까지 내려온 것은 김대중 정부에 이르러서 였습니다.

2000년 6월, 분단 후 처음으로 남북의 정상이 평양에서 손을 맞잡았습니다. 6.15 공동선언 이후 금강산 관광길이 열리고 개성공단의 기계가 돌기 시작했으며, 무엇보다 이산가족 상봉이 정례화되어 헤어진 가족들이 반세기 만에 서로의 주름진 얼굴을 어루만졌습니다. 1998년부터 2008년까지 백만 명이 넘는 남녘 사람들이 북녘 땅을 밟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길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길을 열 의지가 없었을 뿐이라는 것을. 노무현 정부의 2007년 10.4 선언은 그 길을 경제와 평화의 제도로 넓히려 했습니다.

그러나 봄은 길지 않았습니다. 2008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2010년 5.24 조치로 교류의 물길이 막혔으며, 2016년 개성공단마저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2018년, 다시 한 번 큰 기대가 찾아왔습니다. 판문점의 봄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도보다리 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마주 앉던 그 장면을, 우리는 숨죽이며 지켜보았습니다. 4.27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합의로 접경의 총성이 멎었고, 그해 8월 금강산에서 이산가족들이 다시 만났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는, 마지막 상봉이 되고 말았습니다.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빈손으로 끝나자 모든 것이 급격히 무너졌습니다. 2020년 6월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는 장면은, 판문점의 봄이 얼마나 취약한 토대 위에 서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워싱턴의 담판 한 번에 한반도의 봄과 겨울이 갈리는 구조, 정상 간의 악수에 민족의 운명을 걸어야 하는 구조가 문제의 뿌리 였습니다.

과거에 대한 저의 진단은 이렇습니다. 지난 팔십 년의 통일정책은 성과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성과를 지킬 제도가 없었습니다. 6.15도 10.4도 4.27도 정권이 바뀌면 서랍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반복된 좌절의 대가는 언제나 힘없는 사람들, 특히 이산가족과 실향민 여러분이 치렀습니다. 여러분이 겪어 오신 것을 희망 고문이라 부르는 것은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4. 현재의 진단 — 깊어진 겨울과 조심스러운 해빙

가장 가까운 과거는 가장 혹독한 겨울이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우며 대화의 문을 닫았습니다. 2023년 말 9.19 군사합의가 사실상 무력화되고, 대북 전단과 오물 풍선, 확성기 방송이 맞부딪히면서 접경 지역 주민들은 밤잠을 설쳐야 했습니다. 바로 이곳 교동과 강화의 주민들이 그 소음과 불안을 몸으로 견뎠습니다. 그리고 2024년 12월의 비상 계엄 선포는 남북 관계 이전에 우리 민주주의 자체를 벼랑 끝으로 몰았습니다. 그 어둠을 넘어선 것은 다시 한 번 광장의 시민들, 빛의 혁명 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북녘의 변화는 더 근본적이었습니다. 2023년 12월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선언했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비롯한 대남 기구들을 폐지 했습니다. 올해 들어서는 대남 업무가 외무성으로 흡수되고, 헌법에서 통일과 민족의 개념을 지우고 남녘을 적대 국가로 명시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습니다. 금강산의 이산가족 면회소가 철거되고 있다는 보도 앞에서, 저는 여러분께 이 사실들을 감히 아무렇지 않게 전할 수가 없습니다. 팔십 년을 기다려 온 분들 앞에서 상봉의 장소가 헐리고 있다는 것, 이것이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자리의 엄중함입니다.

이런 조건 속에서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을 내걸었습니다. 북한 체제를 존중하고,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으며, 적대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세 가지 원칙입니다. 취임 직후 대북 확성기 방송을 먼저 멈추자 그날 밤 북측 방송도 함께 멎었고, 접경 마을에 몇 해 만에 조용한 밤이 돌아왔습니다. 거창한 정치적 합의가 있었던 것도, 정상 간의 악수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작은 실무적 신호 하나가 이 마을 아이들의 밤을 조용하게 만들었습니다. 정부는 올해 통일백서에서 남북 관계를 사실상의 두 국가로 표현하면서도,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적 두 국가 관계라는 말로 통일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 정책을 어떻게 진단해야 하겠습니까. 저는 두 가지를 함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정당한 평가입니다. 긴장을 낮추는 조치들은 실제로 접경 주민의 삶을 바꾸었고, 이것은 결코 작은 성과가 아닙니다. 상대가 문을 닫아건 조건에서 먼저 문턱을 낮추는 것 외에 다른 출발점은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저자세라고 비판하지만, 확성기 소음 아래에서 밤을 지새워 본 적 없는 사람들의 비판이 접경 주민의 잠보다 무거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정직한 우려도 말씀드려야 합니다. 첫째, 긴장 완화는 시작이지 목적지가 아닙니다. 확성기가 꺼진 뒤에도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 한 건 이루어지지 못했다면, 실향민의 시계는 여전히 멈춰 있는 것입니다. 둘째, 평화공존이 자칫 편안한 현상 유지의 다른 이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두 국가의 현실을 인정하는 것과 분단을 영구한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셋째, 이 정부의 정책 또한 법과 제도로 뿌리내리지 못하면 다음 정권에서 또다시 서랍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영화를 이미 여러 번 보았습니다.

5. 한강하구가 말해주는 것 — 애매성의 축복

1953년 정전협정은 육상에는 군사분계선을 긋고 비무장지대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한강 하구만은 조수 간만의 차와 수로 변화 때문에 선을 긋지 못한 채 남겨두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지금도 국제법상 군사분계선이 없는 '중립 수역'입니다. 저는 이 애매함을 결함이 아니라 축복으로 읽고 싶습니다. 너무 분명한 선은 사람을 갈라놓지만, 때로는 애매한 여백이 다시 만날 가능성을 남깁니다. 교동도는 이미 그 증거를 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곳입니다. 총성과 선전 방송이 멈춘 자리에서, 비로소 사람의 잠과 밥과 웃음이 돌아옵니다.

6. 북조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북조선을 이해하는 데에는 두 가지 위험한 함정이 있습니다. 하나는 북을 절대악으로만 규정하고 모든 대화의 문을 닫아버리는 냉전적 반공의 관성입니다. 다른 하나는 민족 감상주의에 취해 그 체제가 가진 억압성과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낭만적 동포애입니다. 어느 쪽도 현실을 바르게 보지 못합니다. 어느 쪽도 평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북조선은 이상형 공산주의도 아니며, 동시에 순수한 악의 축이라는 구호 하나로 지워버릴 수 있는 대상도 아닙니다. 칠십여 년 동안 형성된 독자적 체제이고, 그 안에는 2천 5백만의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자식을 키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북은 선인가 악인가'가 아닙니다. 더 절실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떻게 공존하며, 어떻게 변화의 공간을 열어갈 것인가.' 평화는 상대를 미화하는 데서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대를 악마화하는 데서도 결코 오지 않습니다.

7. 우리는 왜 아직 이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

고향 산하에 남아 있던 이웃과 일가친척이 국가 권력의 한순간 결정으로 하루아침에 '적국의 원수'로 바뀐다는 것이 과연 인간의 이치에 맞습니까? 어제까지 한 마을에서 밭을 갈고 제사를 지내던 사람들이 오늘부터 서로를 증오해야 한다는 명령을, 우리는 언제까지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합니까? 언제까지 워싱턴과 평양 사이에서, 한 지도자의 즉흥적인 원맨쇼 하나에 한반도의 운명이 출렁이는 것을 구경만 해야 합니까?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나누던 화해의 제스처가 진심이었는지, 강대국들의 체스판 위 연극이었는지, 이제 우리는 더 냉정하고 더 용기 있게 물어야 합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촛불혁명은 시민의 힘으로 정권을 바꾸었습니다. 불과 이 년 전 겨울, 내란의 어둠을 넘어섰던 '빛의 혁명'의 감동도 아직 우리 기억 속에 생생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와 똑같은 풀뿌리의 헌신으로 삼사십 년을 이어온 통일운동은 손에 잡히는 성과 하나 없이 세월만 흘려보내고 있습니까. 그 사이 꽃 같던 청춘은 중년이 되었고, 중년은 백발이 되었으며, 수많은 이들이 고향 땅 한 번 밟지 못한 채 무덤 속으로 스러져 갔습니다.

이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왜 못했는가'가 아닙니다. 그 질문만 반복하면 또 다른 체념이 됩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제부터 무엇을 다르게 할 것인가.' 평화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선물처럼 오지 않습니다. 평화는 움직이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역사입니다.

8. 미래의 진단 — 이념에서 생활로, 실향민의 시간표에 맞춘 다섯 가지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다르게 해야 하겠습니까. 저는 오늘 실향민의 자리에서, 실향민의 시간표로 다섯 가지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통일정책의 우선순위를 국가의 시간표가 아니라 남은 생존자 3만 4천 명의 시간표에 맞추자는 것이 그 전부입니다.

첫째, 이산가족 문제를 통일정책의 맨 앞자리에 놓아야 합니다. 정치와 군사의 모든 의제에 앞서, 생사 확인과 서신 교환, 화상 상봉의 상설화를 북측에 일관되게, 조건 없이 제안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도의 문제이며, 협상 카드가 아니라 인간의 도리입니다. 해마다 3천 명이 떠나가는 지금, 이보다 급한 통일 의제는 없습니다.

둘째, 남북 합의의 법제화입니다. 6.15와 10.4와 4.27이 정권 교체와 함께 휴지가 되는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주요 남북 합의를 국회 비준과 법률로 뒷받침하여 어느 정부가 들어서도 되돌릴 수 없는 최소선을 만들어야 합니다. 정상의 악수는 무너져도 법은 남습니다.

셋째, 정치가 막힌 곳에서 생활을 먼저 여는 것입니다. 대룡시장에서 연백 피난민과 교동 원주민은 먼저 이념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당적이나 사상을 묻기 전에 물건을 사고팔고, 밥을 나누고, 논밭을 일구며 살림을 함께 꾸렸습니다. '석전경우(石田耕牛)'라는 이름은 생활이 갈등을 이겨낸 증거입니다.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은 구호가 아니라 장터의 온기와 밥상의 공유입니다. 

강종일 박사님께서 논의해 오신 중립화 구상도 저는 이 맥락에서 읽습니다. 중립은 외교 문서의 단어이기 전에, 이념을 묻지 않고 물건을 사고파는 장터의 원리입니다. 체육과 문화, 예술, 관광, 의료, 인도 지원처럼 부담이 적은 영역부터 그 신뢰를 넓혀 간다면, 그것이 언젠가 정치적 결단을 떠받치는 튼튼한 토대가 될 것입니다.

넷째, 바로 이곳 교동도와 한강하구를 그 첫 실험장으로 삼는 것입니다. 정전협정이 한강 하구에 긋지 못한 군사분계선의 여백을 저는 결함이 아니라, 남과 북이 다시 만나도록 남겨 둔 축복으로 읽고 싶습니다. 1년에 한 번 정전 기념일에 모이는 것을 넘어, 매달 한 차례 이 섬에서 평화 장터를 열고, 한강하구의 공동 생태 조사와 뱃길 실험을 정부에 제안합시다. 통일이 거창한 선언에서 시작되지 않고 이 작은 섬의 장터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교동도가 몸으로 증명해 왔습니다.

다섯째, 해외 동포를 다리로 세우는 것입니다. 남북 당국이 마주 앉기 어려운 시기일수록 750만 재외 동포의 역할이 커집니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동포들은 남북 어느 쪽의 국민도 아니기에 오히려 오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 인도 지원, 학술과 문화의 교류에서 미주와 일본과 중앙아시아의 동포 사회가 민간 사절이 될 수 있도록, 정부가 이들을 통일정책의 당당한 주체로 인정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재일동포와 고려인의 설움까지 끌어안는 통일이라야 온전한 통일입니다.

9. 실향민의 한, 그리고 희망 고문을 넘어서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이제 인생의 황혼에 서 계십니다. 부모님 세대는 대부분 고향 땅을 다시 밟지 못한 채 눈을 감으셨고, 여러분도 이 기다림을 얼마나 더 이어갈 수 있을지 스스로 되묻는 나이에 이르셨을 것입니다. 그 마지막 심사를 제가 감히 다 헤아린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오늘 이 자리가 더없이 절실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의 세월이 너무 길었기 때문입니다.

여든 해에 가까운 세월 동안 여러분은 몇 번이나 '이번엔 다르다'는 기대를 품었다가 무너지는 경험을 반복하셨습니다. 그 반복된 좌절을 희망 고문이라 부르는 것은 정당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섣부른 낙관을 권하지 않겠습니다. 빈말로 '곧 통일이 옵니다'라고 말하지도 않겠습니다. 그런 말은 너무 많이 들었고, 너무 자주 배신 당했습니다.

그러나 희망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정상 간의 악수에만 기대는 희망은 하노이의 하룻밤에 무너집니다. 그러나 법으로 굳힌 합의, 매달 열리는 장터, 한강하구가 지켜온 비무장의 원칙, 그리고 오늘 이 자리처럼 사람들이 직접 만나 서로의 숨결을 확인하는 실천에 근거한 희망은 정권이 바뀌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감상이 아니라 근거 있는 희망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바로 그 희망의 작은 씨앗입니다.

맺음말 — 교동도에서, 오늘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여러분, 저는 오늘 섣부른 낙관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과거는 우리에게 성과를 지킬 제도가 없었음을 가르쳤고, 현재는 긴장 완화가 시작일 뿐임을 보여 주며, 미래는 실향민의 시간표에 맞춘 실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진단이 정부와 국회의 몫으로만 남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여든 해를 기다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으로, 정부에게가 아니라 바로 이 자리, 교동도에 계신 여러분께 다섯 가지를 구체적으로 제안드리고자 합니다. 크지 않아도 좋습니다.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첫째, 매달 한 차례 이 섬에서 평화 장터를 직접 엽시다. 정전 기념일 하루의 행사로 그치지 말고, 주민 여러분이 자치 준비위원회를 꾸려 대룡시장 인근에서 사흘장이나 닷새장을 정기적으로 엽시다. 남녘의 방문객과 실향민 후손들을 초대해 물건을 사고팔고 밥을 나누는 자리, 그것이 곧 통일의 예행연습입니다.

둘째, 교동도에 실향민 구술 기록관을 만듭시다. 연백 피난민 1세대의 생생한 증언을 지금 기록해 두지 않으면 영영 사라집니다. 마을회관이나 대룡시장 한켠에 작은 기록소를 열어, 여러분의 이야기를 사진과 육성으로 남기고 다음 세대가 찾아와 들을 수 있게 합시다.

셋째, 교동도의 아이들에게 '이웃의 땅'을 가르칩시다. 북녘을 적의 땅이 아니라 다시 만날 이웃의 땅으로 상상하게 하는 그림 그리기, 편지 쓰기, 답사 프로그램을 학교와 마을이 함께 기획합시다. 증오는 가르치지 않아도 대물림되지만, 평화는 반드시 가르쳐야 대물림됩니다.

넷째, 한강하구 공동 생태 조사와 뱃길 실험을 주민의 이름으로 제안합시다. 어민회와 주민자치회가 연대하여 정부와 지자체에 청원서를 내고, 민간 조사단을 꾸려 이 중립 수역이 남과 북을 다시 잇는 뱃길이 될 수 있음을 우리 스스로 증명합시다.

다섯째, 재일동포와 고려인 등 흩어진 동포들과 자매결연을 맺읍시다. 국가가 나서기를 기다리지 말고, 교동도 주민들이 먼저 서신을 띄우고 화상으로 얼굴을 마주합시다. 실향의 한은 한반도 안에서만이 아니라 지구 곳곳에 흩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 확인합시다.

이 다섯 가지는 대통령 한 사람의 결단이나 정상회담 한 번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워싱턴의 변덕과 평양의 셈법이 어떻게 바뀌든,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 손으로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결국 오래 견디며 역사를 바꾸는 것은 정상들의 화려한 악수가 아니라, 이름 없는 민초들의 꾸준한 발걸음입니다. 그 발걸음이 쌓이면 길이 되고, 길이 넓어지면 국경보다 강한 민족의 생활권이 됩니다.

이 엄중한 분단은 애초에 남녘과 북녘의 가족도, 형제도, 이 땅 어디에 있든 동포도 단 한 번도 바란 적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국가와 이념이 그어 놓은 그 선을, 정작 그 선 너머 서로를 그리워하며 살아온 사람들은 원한 적이 없습니다.

정전 73년이 되는 오늘, 저는 이 자리의 우리가 훗날 이렇게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 그들은 기다리지 않고 움직였다고. 

--- 장터 하나를 실제로 열어본 사람들이었다고. 

--- 그날 교동도에서, 분단의 강이 평화의 물길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실향민의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걸읍시다. 

분단의 강에서 평화의 섬으로, 그리고 평화의 섬에서 다시 통일의 길로. 


감사합니다.


김철호 Simon Kim (한얼 연구소 소장, Action One Korea 미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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