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전에 <철학은 반란이다>(이안에, 2025)라는 책을 출간했을 때, 도발적인 책 제목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적이 있었습니다. 비판의 의미를 좀 더 강조하기 위해 '반란'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인데, 정치적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런 것일 겁니다. 그런데 다음 번에는 <철학은 구라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써보려고 합니다. 구라라는 말도 반란이란 말처럼 불편하게 받아들일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철학은 구라다'라고 하면 어떻게 진리를 이야기하는 철학을 '구라'라고 하냐고 하면서 불경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구라'라고 하면 무언가 거짓말을 하는 것같고 경박해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철학 역시 구라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형이상학이나 윤리학의 논증들은 냉정하게 생각하면 구라나 다름 없지요. 일전에 모 세미나에서 퇴계 연구로 이름이 높은 이* 선생이 퇴계의 <성학십도>에 관해서 발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잘 알다 시피 어린 선조를 가르치기 위해 퇴계가 성리학의 핵심 내용을 그림과 해설로 정리해 올린 글입니다. 그 때 내가 발표 후 토론을 할 때 일종의 조크의 의미에서 '냉정하게 따지만 선생이 발표하신 내용은 '형이상학적 조크'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도발적이고 발칙한 말이라 할 수 있었겠지만, 이* 선생은 허허 웃으면서 넘겨 버렸습니다.
사실 저의 이런 생각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요. 이미 근대의 유명한 회의주의자인 D. 흄은 윤리학과 형이상학에 관한 책들을 불쏘시개로 사용하라고 한 적이 있지요. 20세기의 흄의 제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일군의 비엔나 서클 학파는 철학의 모든 명제를 '검증가능원리'(verification principle)에 의해 검증 가능한 '의미있는 명제'(meaningful propostion)와 검증이 불가능한 '의미없는 명제'(meaningless proposition)로 나누고 , 무의미한 명제로 이루어진 윤리학과 형이상학의 명제들을 개소리와 같다고 주장한 적이 있지요. 저는 이런 맥락에서 구라를 이야기하는 것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검증이나 논증이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주장들은 거의 구라라고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오래 전 플라톤이 쓴 <파이돈>이라는 작품에서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감옥에서 빼서 외국으로 망명시키려는 동료와 제자들에게 열변한 것도 구라나 다름없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여기서 죽음의 문제, '영혼과 육체의 관계'에 대해 참으로 화려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영혼은 비물질적이고 불멸하는 반면, 육체는 물질적이고 사멸한다고 하고, '육체가 영혼의 감옥'이라고 했다. (반면 현대의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영혼이 육체의 감옥'이라고 비꼬기도 합니다.) 때문에 철학은 이 육체의 감옥으로부터 영혼을 해방시키기 위한 '죽음의 연습'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죽음 이후에 영원한 이데아의 세계로 갈 것이라고 열심히 설명합니다. 제자와 동료들은 소크라테스의 이런 말을 넋을 잃고 들으면서 감탄해 마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열심히 했던 말에 대해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별로 주목받지 못한 말이지만 충분히 새롭게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나도 그 세계를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전해 들은 것이라네." (Plato, Phaedo, tr with notes by David Gallop, Oxford University Press 1975. 12.
“글쎄, 나 자신은 소문으로만 그것들에 대해 말할 수 있지. 하지만 우연히 들은 것을 당신들에게 말해도 괜찮겠지. 사실, 아마도 다음 세계로의 여행을 앞둔 사람이 그 여정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하고 추측하는 것은 매우 적절할 것이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시간 동안 다른 무엇을 해야 할까? (Well, I myself can speak about them only from hearsay; but what I happen to have heard I don't mind telling you. Indeed, maybe 10 it's specially fitting that someone about to make the journey to the next world should inquire and speculate as to what we imagine that journey to be like; after all, what else should one do during the time still sundown?”)
결국 지금까지 했던 말들은 추측과 논증의 형식을 띨지 몰라도 확신에 찬 구라나 다름 없다는 것을 소크라테스 스스로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지요. 사실 신존재 증명, 영혼의 불멸성, 세계의 유무한, 존재의 궁극 원인, 동양의 태극도설 등에 관한 형이상학적 논증들은 구라 이상의 의미는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이것은 타인을 기망하기 위한 사기와는 다르겠지만, 간혹 이데올로기적 기망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증명은 불가능해도 이런 형이상학은 우리 사유를 끊임없이 진작하고, 사물에 대한 시야를 바꿔주고, 지혜를 일깨워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철학은 구라다'라는 명제를 통해 보는 이의 시야를 열어주고, 무언가 깨우침을 줄 수 있다고 하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그에 못미칠 수 있다 하더라도 어려워 하거나 부담없이 철학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오랫동안 철학을 공부하고 강의하고 글들을 써왔던 나의 내면에 잠재된 욕구와도 연관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