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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의 인개념 분석을 통한 공자의 인성학
  • 김병철
  • 등록 2026-10-13 02:10:50
  • 수정 2026-10-13 15:19:08


論語속에 仁 개념에 대한 고찰

 

논어 텍스트속에서 공자는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 즉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철학적으로 설정하고 인간의 존재론적 지위를 칸트처럼 서술하지 않는다. 공자는 인간이 놓인 실제적이고 실존적인 상황속에서 다시 말해 구체적인 인간 관계 속에 인을 서술함으로서 그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인성론을 전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은 인(人)’과 ‘기(己), 심(心)’과 ‘성(性)’, 그리고 ‘욕(欲)’과 ‘지(知)’, ‘정(情)’, ‘의(意)’의 관계 속에서 구체화된다. 仁이 타인과 자기 자신의 관점에서 서술되면 인(人)’과 ‘기(己)의 관계 범주에서 고찰되는데 이 경우 공자는 인(人)과 기(己)를 각각 객체와 주체로 구분하고 또 인격 특성에 따라 소인(小人)과 성인(聖人) 등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인(人)과 기(己)에 관한 공자의 언급은 윤리적 가치 실현 및 당위 실천 주체로서 기(己)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기己가 수修와 결합되면 기(修己)가 되고 좀 더 구체성을 지니게 되면 수기(修己)는 수신(修身)이 된다. 수기(修己)는 인(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德이 되고 있다. 수기(修己)에 관한 공자의 관심은 또한 욕(欲)에도 놓여 있고, 그래서 부정적 욕구,욕심, 욕망을 경계하면서 도덕 의지[欲]의 발현이 강조된다. 도덕적 열정이 도덕적 지식보다 강조되면서 도덕 감정보다 도덕 의지[欲]가 강조된다. 인(人)이 본성과 마음의 관점 서술되면 심(心)’과 ‘성(性)’의 관계 범주에서 인(人)이 논어에서 서술되며 아울러 인(人)은 욕망(欲)과 앎(知), 감정이나 정서(情) 그리고 의(意)’의 관계 속에서 서술된다.

 

본론

 

 논어라는 전체 텍스트 구조 속에서의 인(仁)

 

學而: 

有子曰:「其為人也孝弟,而好犯上者,鮮矣;不好犯上,而好作亂者,未之有也。君子務本,本立而道生。孝弟也者,其為仁之本與!」

유자 노나라 사람 유약有若 자는 자유子有 여기서 유자의 표현은 증삼과 더불어 유약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논어가 편찬 되었다는 하나의 반증이 되고 있다. 공자가어孔子家語 혹은 사마천의 중니제자 열전仲尼弟子列傳참조. 

1.孝弟也者 其為仁之本與! 

효제라는 것은 인의 근본이라 할 것이다.

관계개념속에서 윤리적 실천인 나와 부모 사이의 윤리적 실천인 효와 나 자신과 나의 형제사이의 윤리적 실천인 제가 인의 근본이 되고 있다. 그러나 효제자체를 인의 근본으로 규정하면仁之本 인의 범주가 효제에 한정되게 된다. 이 경우 < 효제 >는 인을 행하는 것為仁것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체와 용의 문제

  

學而: 

子曰:「巧言令色,鮮矣仁!」

공자께서 말씀 하셨다. 교묘하게 꾸민 말과 부드러운 말은 인이 드물다.

인이 교묘하게 꾸민 말과 부드러운 말에는 인이 내포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여기서 인을 속성으로 간주해서 <교묘하게 꾸민 말과 부드러운 말은 인이 아니다巧言令色不仁>로 문장 구조를 바꿀 수는 없는데 인의 본체론적 심의가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인륜성(sittlichkeit>에서 인간의 행위( 말, 몸짓,낯 낯빛complexion, face color )를 인자체와 관련 시킬 수 없다. 현상으로 드러난 인간의 행위라는 관점에서 인仁이 서술되고 있다. 

 2.學而: 而親仁

子曰:「弟子入則孝,出則弟,謹而信,汎愛眾,而親仁。行有餘力,則以學文。」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젊은 사람이 집에 들어가면 효를 행하고 밖에 나오면 (윗사람에게)공경스러우며, 삼가고 믿음성이 있고 널리 뭇 사람을 사랑하고 어진 이를 가까이한다. (이렇게 하고도 여력이 있으면 ( 그 힘으로) 글을 배운다. 

-而親仁이를 한자 그대로 인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효와제 근 신이 모두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 규범이므로<而親仁이친이>에서 인이 <어진 사람>으로 해석되었다.

인이 어떤 사람이 지닐 수 있는 품성이나 자질이라는 측면에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 <어진 사람>에서 인을 윤리적 차원에 한정 하지 않고 정치적 범주 까지 확장 할 수 있다면 어진 사람은 정치적 역량을 지니고 있는 사람으로 규 정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에서는 윤리학과 정치학이 구분 될 수도 있지만 논어에서 인은 도덕적 윤리적 범주에서 정치적 영역으로 확장되는 측면을 확인할 수 있다. 

인이 주관적 도덕성의 영역에 머물면 개별적인 도덕적 역량을 의미 하는 것이지만 아울러 인이 예라고 하는 객관적인 관계 질서 속에서 발양되면 인은 정치적 역량이 된다. 인은 주관성의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객관 적인 삶의 질서들( 관습, 법)속에서 발양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은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도덕성을 단순히 정치화< politicization of morality >하려는 구조 속에서 고찰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도덕화< moralization of politics>되어야 한다는 구조의 차원에서 고찰 되어야 한다. 인간적 생을 총괄 하는 삶의 영역속에서 인이 고찰 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극기복례克己復禮/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Reinhold Niebuhr) 

3.八佾: 

子曰:「人而不仁,如禮何?人而不仁,如樂何?」

공자께서 말씀 하셨다. 사람이 인하지 않다면 예를 행한 들 무엇하며 ,사람이 인하지 않으면 음악을 한들 무엇하겠는 가 ?

- 여례如禮, 여악如樂에서 如여는 어떤 준거에 따라서 실행에 옮기는 동사로 해석되고 있다. 

사람이 인하지 않다면(人而不仁)라는 서술에서 인은 개별적인 도덕적 역량,혹은 내면화된 품성을 의미하지만 예와 악이라는 객관적인 삶의 질서속에서 인은 구체화 된다.

나와 타자와의 관계 즉 자신이 속한 공동체 속에서 예禮는 행하여 지고 악樂 또한 행하여 진다(PRACTICE/ NOT DOING). 악이 공동체 속에서 삶의 질서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악은 예악이 된다. 논어 팔승八佾편에서의 악樂은 개인의 심성 혹은 영혼을 고양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유년기 때부터 가르쳐 져야 한다는 플라톤의 서술(법률편)방식으로 논의되고 있지 않다. 음악이 지니는 교육학적 혹은 심성론에 관한 언급은 다산의 대학공의에서도 확인 된다 참조 사항으로 병기 한다. 

- 朱子作序。雖以大學之書。爲太學敎人之法。而其實古者太學。敎人之法。敎以禮樂。敎以詩書。敎以弦誦。敎以舞蹈。敎以中和.敎以孝弟

주자가 자신이 쓴 <대학의 서문>을 지을 때, 대학이라는 책을 태학(교육기관, 역자주)에서 사람을 가르치는 법이라고 하였지만 ,실제로 그 옛날의 태학에서 사람을 가르치는 법은 예와 악, 시경과 서경,그리고 현악기연주와 낭송, 춤과 중화,그리고 효제를 가지고 사람을 가르 쳤다. 

역자주)

현악기 연주와 낭송; 한자 원문인 현송(弦誦)이라는 단어를 풀어 쓴 것이다. 弦현은 현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의미하고 誦송은 시를 소리내어 읽는 것을 의미한다. 시의 운율에 감정이 더해지면 낭송이 되고 이러한 낭송에 다시 현악기의 반주가 더해지게 되면 현송弦誦이 된다. 

논어의 기록에도 弦歌(현가) 라는 표현이 확인 되고 있다. 초기에는 詩시를배울때, 弦樂(현악)에 맞추어 부르는 것을 弦歌(현가)라했으며,,음악없이 낭독을 하는 것을 송誦이라하였고 이를합하여 현송弦誦이라했다. 후에 광범위하게 수업이나 낭독하는 것을 칭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송은 시를 효율적으로 그리고 심미적으로 익힐 수 있는 교육방법중에 하나 였다. 고대중국에서 낭송에 동반되는 악기는 남성적인 음조를 지니는 거문고였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현송이라는 것은 현악기 거문고의 운율과 함께 시가 낭송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역자주

성균 이라는 용어는 주(周)나라 시대의 주례(周禮)에서 확인된다. 주례(周禮) 춘관(春官)·대사악(大司樂)편에 다산이 대학공의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 확인 되고 있다. 대사악은 국가의 주요 제례나 음악(禮樂)을 담당하기도 했다. 기록상에서는 주례에 최초로 성균이라는 단어가 보이기 시작하지만 고대 중국에서 계급의 분화가 일어나고 지배층과 피 지배층이 생기면서, 지배층은 전쟁이나 공동체를 위한 제례, 등을 피지배층에게 공지하거나 교육 시켜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주나라 이전에는 이러한 공지와 백성에 대한 풍속 교화는 일정한 장소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행하여지다가 주나라 때에 이르러 성균成均이라는 학제 學制형태로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우리는 성균 이라는 용어의 유래를 ‘成人材之未就, 均風俗之不齊’(아직 이루지 못한 인재를 이루게 하고 고르지 못한 풍속을 가지런하게 한다) 구절에서 각각 앞 구절의 성成과 뒷 구절의 균均을 빌려와서 성균 이라는 단어를 조어 한 것으로 이해 하지만, 원래 중국 고대에서 균均은 조율調律 또는 운韻과 관계가 있는 단어였다.

 균均이 고르게 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것은 음악과 관련되기 때문 이였다. 원래 음악과 연관된 악사樂師를 길러 내거나, 이러한 악사樂師에 의해 교육이 수행되는 교육기관이 성균成均였다. 상대商代의 관학官學인 종宗과 주대周代의 성균成均은 말할 것도 없고 춘추春秋전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고대上古의 교학敎學체제는 텍스트 중심이 아니었다. 구술口述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 졌는데, 이러한 구술 가운데에 그 내용이 되는 부분이 시詩가 되고, 기억하여 암기하기 쉽도록 리듬(音韻)을 붙인 것이 가(歌)가 된다. 시와 음률을 다한 것을 몸으로 표현 하면 무(舞)가 된다. 이와 같이 시(詩)와 악(樂)은 모두 예(禮)와 관련이 있었고 시와 악을 교육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예를 교육하는 것과 동의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다산이 대학 공의에서 주례를 인용 하면서, 대사악(大司樂)이니 악덕(樂德) 악어(樂語) 악무(樂舞)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고대 구술 중심의 문화 전승과 교육에 악樂이 중요한 방법론 이였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화 전승과 그 교육에서 시詩와 가歌가 지닌 韻律을 고르게 한다는 것은 결국 교육의 정합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교육의 정합성을 다른 단어로 표현하면 성균成均이 된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악樂을 가르치고 악樂을, 시현試演하고 악樂을 통해서 예禮를 표현하는 사람들을 오늘날의 표현인 악공(樂工)으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느낌이 존재한다. 주례는 이러한 사람들을 악사樂師라고 지칭하고 있다. 고대 중국에는 악사(樂師)가운데에 맹인도 적지 않았다. 논어 위령공편에도 공자가 樂師악사 면冕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師冕見 ,及階 子曰 階也 ,及席 子曰 席也 ,皆坐 子告之曰 某在斯 某在斯) 

운율을 고르게 한다는 의미를 지닌 성균은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제후(諸侯)국의 최고 교육기관을 성균관(成均館)이라고 지칭했다. 이 경우 성균관은 황제의 교육기관이었던 벽옹(辟雍)이나 또는 국자감(國子監)보다는 서열이 낮은 교육기관을 의미하게 된다. 

고대 중국에서 음악은 덕성 함양을 위한 필수 과목이었는데, 공자孔子 자신 또한 시에서 흥기하며, 예에서 서며, 음악에서 이루어진다고 논어위정편(論語爲政編)에서 진술하고 있다.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주자朱子는 논어의 이 부분을 주석하며 풀이하면서 “심지어 배우는 자가 마지막에 의리가 정밀하여지고 어진 것이 완숙하여 도덕에 화순해지는 것은 반드시 이 음악에서 얻어지기 때문에 이것은 배우는 것의 완성이다.”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可以養 故 學者之終 所以至於義精仁熟而自和順於道德者 必於此而得之 是는 學之成也) 

예기의 악기(樂記)에서도 예禮과 악樂은 몸에서 떨어 질 수 없다고 언급되고 있다.  

군자가 말했다. 예禮와 악樂은 잠깐이라고 하더라도 몸에서 떼어 놓을 수 없다. 악樂을 익히고 이러한 익힘을 통해서 마음을 다스리면, 바르고 온유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저절로(油然) 생겨나는 것이다. 이렇듯 즐거워지면(樂) 편안해지며(安) 또 편안해서 그 편안함이 오래 지속되면 그 오래 지속됨이 하늘에 이르르게 되고, 하늘(天)에 도달하게 되면 신神에게 이르르게 된다. 하늘은 말하지 않아도 맡기고 믿으며, 신神은 노하지 않아도 위엄이 있다. 악을 익히고 마음을 다스린 사람이다(君子曰:禮樂不可斯須去身。致樂以治心,則易直子諒之心油然生矣。易直子諒之心生則樂,樂則安,安則久,久則天,天則神。天則不言而信,神則不怒而威,致樂以治心者也。致禮以治躬則莊敬,莊敬則嚴威。心中斯須不和不樂,而鄙詐之心入之矣。外貌斯須不莊不敬,而易慢之心入之矣) 

역주) 

예기 악기편에 의하면 이렇듯 고대 중국에서 음악은 오늘날 음악이 지닌고 있는 여흥성이나 유흥적 요소에서 정의하거나 규정되고 있지 않다. 고대 중국에서 음악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어떤 격렬한 감정이나 희로애락을 표출하는 감정에 노출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행위일수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중국 고대에서 음악은 마음을 평온하게(易) 하고 바르게하는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론의 관점에서 다루어 졌다. 음악을 익혀서 마음의 편안함과 바름이 오래 지속되면 그 마음이 하늘에 까지이르르고 그 마음이 하늘에 까지 이르르면 이세상의 모든 神( 하늘에는 천신天神이 있고 땅에는 태묘나 종묘들에 모신 선왕이 있고 곡신穀神(社)을 비롯한 지신地神(稷)등의 신이 존재한다.)  

 禮는 층차적 관계의 범주이면서 전체적으로 위계질서를 구조화시킨다면 樂은 이러한 층차적 질서인 예를 조화롭게 구성하고 화해 시키는 것이다. 공자스스로가 예와 악을 조화시킨 실례는 예기 단궁편에서 확인 할수 있다. 

 공자의 제자 안연이 죽고 장사를 치른후에 안연의 대상을 공자가 모두 치른 후에 대상에 올렸던 고기(상육(祥肉)를 공자가 먹었는데, 이때, 대상의 상육을 바로 공자가 먹은 것이 아니라 공자 스스로 거문고를 탄 후에 먹었다. (顔淵之喪 饋祥肉 孔子出受之 入彈琴而后食之 ) 

영어의 music과 같이 단순한 악기 소리와 인간의 음성만을 예기의 악이 의미 할 수 없다. 악은 노래와 악기 연주, 그리고 예식의 의미에서의 춤이 함께 융합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악은 제례이며, 신분적 층차성과 차별적 신분 구성원들이 한데 어울리는 공간이면서 시간이 된다. 악이 인간의 내면적 정서와 감동을 발흥시킨다는 측면에서는 악은 내적인것이고 인간 내재적 심성의 영역에서 수행되어지는 것이므로 외면으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악이 의례에 참석한 사람들을 포함하여 일정 공간과 시간의 지속성속에서 구성원 사이의 층차적이고 총체적 관계를 외향적으로 조화롭게 의식(儀式)을 통해 표출해 낼 때 악樂은 예禮가 된다. 이제 악樂은 예禮의 단계로 이행했고 예는 다스려지는 치도治道 곧, 정치政治의 영역으로 지양 된 것이다.  

음악에 관한 영어 표현인 music 서양에서는 중세 이후에 순수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 메김 했는데 원래 music은 예술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

그리스 여신 Muse가 학문과 예술을 관장했고, Muse는 그녀의 신적인 재능을 언제나 탁월하고 완전하게 발휘하였으므로 이러한 탁월한 그녀의 재능 또는 기술을 의미하는 단어가 music이었다. 따라서 music은 어떤 것을 실행해 내는 능력인 techne와 동의어로 간주되었다. 

그리스어 mousike는 (τέχνη)techne를 의미했다. 라틴어 Musa는 학문과 예술을 관장하는 신을 가리켰다. 중세에 음악이란 소리나 음향을 중심으로 하는 장르 뿐만 아니라 시를 의미하기도 하였는데, 라틴어로 musicus는 음악가뿐만 아니리 시인을 의미했다. 오늘날처럼 시와 음악을 엄격하게 구분하여 각각 장르화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중세의 Musica는 통상적으로 소리(sound)와 소음(noise) , 목소리(voice), 음(音. musical sound )를 세분하게 구분하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측면에서 예기의 악기편에서 소리(sound), 목소리(voice), 음(音. musical sound )의 구분과 그 현상학적·발생론적 서술을 우리가 유의하여 고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소리(sound), 목소리(voice), 음(音. musical sound )이 엄격히 구별되어지지는 않고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다. 

영어 sound가 우리의 청각기관을 통해 지각되어지고 들려지게 된다(what is heard)는 의미에서 sound는 noise와 구별되지 않는다 이때 sound는 noise를 구별짓는 기준은 청각자의 입장에서 들리어 진 것(what is heard)이 유의성을 지니는 것이냐 아니야의 여부가 관건이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음악(music)을 noise와 단순히 구별지으려는 시도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어떤 청각자에게 noise가 유의성을 충분히 전달했고 연속적이고 지속적인 noise 가 잘 조직된 소리(organized sounds)로 인지 되었다면 noise는 이 청각자에게는 음(音 musical sound)이 된다.  

단순한 소리와 소음과 음악을 구별하는 기준은 소리의 발생론적 측면에서 행하여 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소음도 어떤 집단이나 청각자가 조합된 소리로 들었다고 한다면 소음과 음악의 구별은 문화적 범주에서 다루어 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음악(music)과 잘 조직된 소음(organized noise)을 구분 할수 있는 기준을 지니고 있는 걸까 ?

라틴어로 Tympana sonuerunt 라는 표현은 북소리가 울렸다는 의미인데 라틴어 sono가 단순히 들려지었다는 관점에서 사용되고 있다. sono는 말이 제재로 언급되거나, 노래하거나 낭송하거나, 발음이 되는 경우에도 모두 사용되어 지는데 우리의 청각이 사실상 수동능동진행형태의 감각 작용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what is heard, what is being heard , the power of being heard). 

 sonor는 소리,음향, 고함소리,소음,잡음을 의미하고, sonans는 시끄러운, 소리나는,울리는, 자랑스런, 목소리나 말씨가 고운..을 의미한다.sonoritas는 음향, 혹은 음조의 아름다음을 가리킨다. sonus는 영어로 sound(swan)와noise모두를 의미한다.sonipes는 발로 소리를 낸다는 의미에서 말의 발굽소리를 의미했는데, 잘 달리는 말의 말굽소리라고 하는 청각적 측면에서 조성된 이 단어는 실제로 잘달리는 말 또는 준마를 의미했다. 로마시대에는 닭이 곡식 낱알을 쪼아서 그 낱 알갱이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의 질에 따라서 사사로운 점을 보았는데 이러한 점을 라틴어로 sonivium tripudium 이라고 지칭했다.

 사람 목소리인 라틴어 vox를 단순한 소리인 sono와 구별 지을때는 다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nec vox hominem sonat . 이 문장에서 vox와 sono는 분명히 구별되어져서 쓰이고 있다. Te carmina nostra sonabunt에서 sono는 찬양이나 칭송의 의미로도쓰이고 있다.vow는 확연히 인간의 발성기관을 통해서 발화된 소리(sound)를 의미했다. magna voce 큰목소리로, 사실의 소리vox rerum, 현명한 소리vow erudita ,시골 사람의 소리와 농부의 소리 rustica vox et agrests 등에서 확인 할수 있는 것처럼 sono와는 구별되어 쓰여지고 있다.  

예기는 음악과 소음의 구분을 미리 전제해서 설명하고 있지 못하다. 영어 noise는 어원상 그리스어 naus(배를 의미 했다)에서 noise는 유래 했는데 감기나 두통과 같은 일상적인 질병이 아니고 건강한 상태에 있는 남자라고 하더라도 항해를 위해 배에 승선하기만 하면 경험하게 되는 배멀미seasickness를 의미했다. 불쾌하고 견디긴 힘들다는 의미의 nausea에서 소음(noise)으로 전이 되었다. 

예기는 음악의 서술을 소음과 소리와 같은 인식론적인 기준으로 이분법화하여서 시작하고 있지 않다 . 예기는 음악을 음악이 발생하게되는 현상론적 측면에서 기술하기 시작한다. 예기는 음이나 소리등이 어디로부터 발생하는지를 전제로하여 악론樂論을 시작한다. 예기의 악기론에 의하면 음音은 인간의 심정주체인 마음에서 일어난다. 음은 인간의 지각능력이며 미학적 주체인 마음을 매개로 발생한다.  

음을 지각하는 주체인 마음은 마음을 움직이게하는 어떤 대상을 전제하지 않고도 주체인 마음이 음을 만들 수 있다고 예기 악론은 주장 할까 ? 그렇지 않다.왜냐하면 소리 또는 음音이란 기본적으로 수동의 형태로 인식되어지는 것이므로 외적 사물의 움직임이 주체인 마음에 어떤 변화를 야기시킬 때 형성되고 나타나는 것이 된다고 예기 악론은 기술한다. 그러면 하나의 질문을 더 제기 해보자 . 

주체인 마음을 움직이게하는 모든 사물의 움직임이 모두 음音으로 나타 난다고 할수 있을까 ?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사물에 의하여 마음을 움직인 이 운동이 서로 변화하면서 서로 조응할때만이 音으로 나타난다고 악론은 서술하고 있다. 마음을 움직인 소리(sound)가 유기적으로 조직화 된 소리( organized sound)로 이행되었을 때만이 단순한 소리(sound)가 음악적 소리(musical sound)로 나타 날수 있는 것이다.  

이미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예기 악론은 소음을 다루고 있지는 않는데, 소음은 마음을 움직이는 소리에 속하지 못하거나, 혹여 소음이 우연적인 방식으로 인간주체인 마음을 움직였다고 하더라도 소음의 성질상 서로 소음의 음색과 음조가 상응하거나 서로 변화하면서 조화로운 관계를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므로 음音( musical sound)이 되지 못한다.(noise and sound mass) 

里仁: 

子曰:「里仁為美。擇不處仁,焉得知?」

인에 거처하는 것(里仁마을로 삼는 것)이 좋다美. 인에 처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면

어떻게 지혜롭다고 하겠는 가 ?

 

주석)

-인을 마을로 삼는 것은 자신이 살고자하는 장소를 선택하듯이 주체의 결정에 의한 것이다. 들野에 있는 것을 노盧라고 고대에서는 지칭했는데 노盧는 경작하는 밭에 임시로 지은 움막을 의미 한다면( 中田有盧/小雅) 리里는 읍邑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리里는 사람이 마땅히 머물러야 할 장소를 의미한다. 리里는 거처하거나 거처 하지 않음의 선택지속에 결정된다. 어떤 사람의 선택이 인에 거하지 않기不處仁로 결정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인에 거하기로 선택하는 것擇里仁>과 <인에 거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擇不處仁>은 선택지가 되고 각각  <인에 거하기로 선택하는 것擇里仁>은 지혜로운 선택이 되고 <인에 거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擇不處仁>은 지혜롭지 못한 선택이 된다.<인에 거하기로 선택하는 것擇里仁>을 넘어 오래 머물러 편안함을 얻으면 인仁은 편안한 집(안택安宅)이 된다(仁,人之安宅也/ 孟子) 

里仁: 

子曰:「不仁者不可以久處約,不可以長處樂。仁者安仁,知者利仁。」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하지 못한 사람은 오래 동안 곤궁에 처해 있을 수 없고

오랫 동안 즐거움에 처해 있을 수 없다. 인한 사람은 인을 편하게 여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여긴다. 

 

-논어 리인편에서 <인하지 못함不仁>에 대한 직접적인 규정은 확인 되지 않는다. 개념에서 개념으로 연역되는 방식으로 인과 불인이 서술되지 않는다. 품성이나 체득된 덕으로써 <어떤 사람을 인하지 못하다不仁者>고 지칭 하는 경우 <인하지 못한 사람>은 <곤궁함約>이라는 실존적 상황 속에서 자기 내면의 윤리적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한계 상황(곤궁함約)을 감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곤궁함 즉 약約은 < 동여 메어 묶여 있는 것>을 의미 한다. < 동여 메어 묶여 있음約>은 윤리적 측면, 도덕적 측면, 정치적 측면, 경제적 측면을 모두를 포괄하는 한계 상황이다.리인 편에서 약約은 일반적으로 경제적 결핍과 연관된 것으로 해석 된다.. 인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신과 한계 상황의 구조를 인식하지 못하고 < 동여 메어 묶여 있는約 한계 상황>이 오래 지속 되면(久 ,duration) 이러한 상황을 벗어 나기 위해서 자기 내면의 본심을 잃어버리고<무엇 이든 함부로 시도한다 失其本心,久約必濫 /論語集注> 

 <인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 내면의 동일성( 본심本心)을 오랫 동안 지속(久 ,duration)하지 못하는 반면에 <인 한 사람仁者>은 자기 내면의 동일성( 본심本心)을 오랫 동안 지속시킬 수 있다. 본심의 동일성을 지속시키는 것, 즉 자기의 동일성속에서 <본심의 항존성을 유지仁하면 인仁에 편하게 머무 는 것安仁>이 된다. 그런데 <본심의 항존성을 유지하면 인仁에 편하게 머무 는 것安仁>이란 인한 사람이 지니고 있는 <도덕적 역량>이나 체득 된 <덕德>을 의미 한다고 할 수 있을 까? 

安仁안인이란 그 자체로 선한 행위를 지칭하지 않는다. 安仁안인은 도덕적 선을 가정 하거나 전제 하지 않는다, 安仁안인이 도덕적 선을 목적론적으로 전제하게 되면 安仁안인은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안인安仁은 본능과 감정에 대한 인위적 통제가 아니라, 실존적 상황 속에서 윤리적 행위를 쉽게 자발적으로 선택하며 그러한 행위자체가 즐거움이 되는, 그래서 선택과 행위 자체가 자연화 된<탁월한 내면의 상태>를 의미한다. <자연화 되었다는 또 다른 표현>이 <편안함安>이다.  

브룩크스 E.Bruce Brooks는 자신의 저서 the Original Analects에서 논어 이인里仁편을 공자의 생애사에서 가장 먼저 발화 되고 기술된 것으로 확정하고 가장 앞쪽에 이인里仁편을 편집해서 영어로 번역 하고 있다. 브룩크스는 인仁을 영어로 번역하지 않고 이인편 두 번째 구절인 <子曰:「不仁者不可以久處約>을 로 영역英譯 한다. 

한자어 <인仁>이 영어로 번역되는 게 아니라 의 형태로 전사轉寫되어 표현 되고 있다. 브룩크스는 2019년 이루어졌던 영어 인터뷰에서 <인仁>이 영어로 번역 되지 않았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 한다. “ 논어의 전개 과정에서 인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변화하기 때문에 단일한 영어 번역이 마련 되지 않는다(rvn 仁. Since its meaning changes over the course of the Analects, a single English translation will not serve) ”  

제임스 레게는 논어 본문 <子曰:「不仁者不可以久處約>을 로 번역 한다. <인仁>을 < virtue>로 번역하고 있는 것이 확인 된다. 제임스 레게의 < virtue>를 한자어로 옮기면 <덕德>으로 번역 된다. 그렇다면 <인仁>은 <덕德>이 될 수 있는 가? 혹은 <덕德>은 <인仁>이 될 수 있는 가 ? 

 브룩크스 E.Bruce Brooks는 논어 이인里仁편에서 서술되고 있는 <인仁>을 덕으로 간주 하고 있는가 ? 브룩크스가 이인里仁편에서 인仁을 덕virtue으로 영어로 번역하지 않고 한자어 <인仁>을 전사轉寫transcription해서 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 했다.그렇다면 번역자인 브룩크스 E.Bruce Brooks는 이인里仁편에서 언급되는 <인仁>을 어떻게 이해 하고 있는 것일까 ?  

 브룩크스 E.Bruce Brooks는 논어 이인里仁편의 편명을 영어로 the Original Analects속에 명기 하고 있는데 브룩크스의 인仁에 대한 관점을 영어 편명을 통해서 확인 할 수가 있다.

“ A The Cardinal Virtue RVN 仁 ” 

브룩크스는 인仁을 가장 중요한 덕(The Cardinal Virtue)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그가 이인里仁편의 편명을 가장 중요한 덕(The Cardinal Virtue)으로 명기하고 영어 번역에서는 인仁을 전사轉寫된 으로 명기 한 것은 이미 살펴 본 것처럼 논어에서 인仁의 의미가 내용과 문맥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논어에서 인仁이 덕德의 범주에서만 서술되고 있다고 단언 할 수 있를까 ?  

논어에 대한 외국어 번역작업들 가운데 브룩크스처럼 전사轉寫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번역자 자신이 이해한 맥락에 따라 자신의 모국어로 독자적으로 번역한 작업으로는 리카르트 빌 헤름Richard Wilhelm의 독일어 번역을 거론 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로 논어 텍스트 속에서 인仁과 덕德의 관계를 고찰하기 위한 시론적인 작업의 일부로써 빌 헤름Richard Wilhelm의 논어 작업 일부를 아래와 같이 명기해본다.

 

(1) <君子德風>12.19.1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 das Wesen德 des Herrschers ist der Wind >

(2)<君子懷德小人懷土>4.11.1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편히 머물 곳을 생각한다.

< der Edle君子 liebt @den inneren Wert德 , der Gemeine小人 liebt das Irdische >

(3)<道之以德齊之以禮有恥且格>2.3.2 “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은 부끄러 워 할 줄도 알고 또한 잘못을 바로잡게 된다.”


 

(4)<小人之德草>12.19.1 “ 소인의 덕은 풀이다.”

< @das Wesen德 der Geringen小人 ist Gras>

(5)<子曰爲政以德>2.1.1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으로써 정치를 한다.”

< der Meister sprach : Wer kraft @seines Wesens德 herrscht >

(6)<德不孤必有隣>4.25.1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7)<驥不稱其力稱其德也>14.35.1 “ 천리마[ 또는 좋은말 驥(천리마 기]는 그 힘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그 덕을 일컫는 것이다”--여기서 덕은 잘 조련되었다는 뜻을 의미한다<역자 주註>. 

< An einem Ross schatzt man nicht die Starke, sondern die Rasse德 >

(8)<主忠信徒義崇德也>12.10.1 “충성과 신의를 위주로하고 도의를 실천하고 살아가는 것이 덕을 숭상하는 것이다.”

  

(9)<中庸之爲德也>6.27.1 “중용의 덕은 지극하도다”


(10)<泰伯其可謂至德也已矣>8.1.1 “ 태백은 지극한 덕을 지닌 분이라 할 수 있다.”


(11)<天生德於予>7.22.1 “ 하늘이 나에게 덕을 부여해 주셨는데 ”


(12)<民無德而稱焉>16.12.1 “백성들중에 그의 덕에 대해 칭찬하는 사람이 없었다.”


(13)<有德者必有言>14.5.1 “ 덕이 있는 사람은 바른 말을 하지만 ”


(14)<君子裁若人尙德裁若人>14.6.1 “군자로구나 그 사람은 덕을 숭상하는구나 그 사람은”


(15)<子曰道聽而途說德之棄也>17.14.1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길에서 듣고서 그것을 그대로 길에서 말하는 것은 덕을 버리는 것이다. ”


(16)<何德之衰>18.5.1 “ 어찌 그리 덕이 쇠미해졌는가 ”


(17)<鄕原德之賊也>17.13.1 “향원은 덕을 해치는 자로다.”

鄕原은 향원(鄕愿)이라고도 하는데 마을에서 성실한 척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마을에 서 시류나 시세에 영합하면서도 점잖고 성실한 듯이 보이는 사람으로 처세하여 순박한 마을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공자는 이러한 향원들이 위선적인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역자주註>

< Jene ehrbaren Leute im Lande sind Rauber @der Tugend德 > 

(18)<德行顔淵閔子騫>11.2.2 “덕행으로 모범이 된 사람으로는 안연, 민자건,.....”

 

(19)<子曰 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7.3.1 “ 덕을 닦지 못하는 것, 배운 것을 익히지 못하는 것, 옳은 일을 듣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 잘못을 고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내가 근심하는 것이다.”

< Der Meister sprach : Dass Anlagen德 nicht gepflegt werden,dass Gelernte nicht besprochen wird , dass man seine Pflicht kennt und nicht davon angezogen wird, dass man Ungutes an sich hat und nicht imstande ist es zu bessern : das sind Dinge, die mir Schmerz machen> 

 위에서 열거한 德에 관한 용례 19가지는 논어원전 속에서, 德이 문장으로 들어가 있는 모든 부분을 발췌하여 본 것이다. 위에서 발췌한 총 19번의 <德>의 용례를 빌헤름이 독일어로 옮긴 단어의 사용 빈도수에 맞추어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Wesen 】5회 , 【 innerer Wert 】2회 ,【 Rasse 】1회, 【 Tugend 】2회,【 Geist 】4

회,【 Anlage】 2회,【 Granz 】1회,【 ethisch hochstehend 】1회,【 Eigenschaft 】1 회

[ 1 ] 德을 “Wesen"으로 번역한 경우 

빌헤름은 논어 <12.19.1>, <2.3.2>, <12.19.1>,<2.1.1>,<12.10.1>에서 德을 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는 논어 위정편<2.1.1>을 번역하면서,“ 일반적으로 중국글자 <德, de>이 독일어의 으로 번역되지만 실제로는 보다 광의의 포괄적인 의미를 갖고 있고, 중국의 주석서에 의하면 [德은 실재들이 생기(生起)하기 위하여 지니고 있는 어떤 것]이며, 이것은 한 개인으로부터 발휘되는 능력과 인격(사람됨)의 모든 본성을 포괄한다”라는 주석을 붙이면서 암묵적으로 <爲政以德>의 德을 으로 옮긴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빌헤름의 주석과 관련지어 을 해석하자면 뒤에는 가 부가되어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君子의 德은 군자의 인품이나 인격으로부터 비롯되는 능력을 가리키게 된다. 군자의 이와 같은 능력은 다양한 인간학적 관계 범주에서 발휘되는데, 현대중국어에서 德(de)이 ,,를 의미하는 것처럼, 군자의 능력은 각각 층차적으로 의 영역에서 그리고 < Moral>과 < Sittlichkeit >의 영역에서 발양 된다. 논어 위정편2.1.1<爲政以德>에서 <爲政>의 주체는 논어원문 상에는 명기되어 있지 않지만 정치행위의 주체는 소인(小人)이 아니라 君子인 것은 분명하다, 논어 안연<顔淵>편12.19.1에서 빌헤름은 君子를 로 옮기고 있는데, 여기서 君子는 단순한 <덕성스러운 인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어 번역어가 의미하듯이<정치의 담당자>를 가리키고 있다. 군자의 정치적 측면에서의 君子의 능력은 정치의 영역에서 바람으로 비유되고 있다. 이러한 君子에 대한 번역은 논어 리인<里仁>편 4.11.1에서 君子를 로 번역하고 있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리인<里仁>편4.11.1의 君子에 대한 번역 은 위정<爲政>편2.11과 안연<顔淵>12.19.1편에서의 君子에 대한 번역과는 다르게 도덕적 품성의 문제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군자에 대한 서술관점이 정치적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 도덕성에 있는 것이라면 이때의 德은 위정 편에서의 이 아니라 君子가 내면에 간직한 능력을 표현할 수 있는 독일어번역어로 옮겨져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빌헤름은 리인<里仁>4.11.1편에서 德을 로 옮기고 있다.  

송대의 유학자들은 인仁을 심성心性에 내재한 천부天賦의 성性으로 규정 한다. 인을 오직 본성이 선한 것으로 간주하게 되면 이 경우 인은 자연 체득 한 것이 된다.(惟性仁者 自然體之) 반면에 다산 정약용은 인仁을 인륜 관계속에서 이루어지는 성덕成德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확인 된다.(案仁者人倫之成德 /論語古今註 ) 

공 자는 <인하지 못한 사람>과 <즐거움樂>에 관계에 대하여서도 언급 한다. <인하지 못한 사람>은 <즐거움>에 머물 수 있지만 오래 머물 수長處가 없다. 인하지 못한 사람은 즐거움에 오래 머물게 되면 ( 본심을 잃어버리고) 반드시必 음탕하게 된다(久樂必淫/論語集注 ) 혹은 반드시 미혹되어 어지럽게 된다(淫). 

 논어 본문에서 공자는 인하지 못한 사람은 <오랫동안 즐거움에 처 할 수長處樂> 없다고 술회하고 있는데 주자는 논어 집주에서 <인하지 못한 사람>이 <오랫 동안 즐겁게 되는 경우久樂>를 술회하고 있다. 인한 사람이 인에 편하게 머물 수 있다고 한다면 지혜로운 사람知者은 인仁과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까 ? 논어 이인편에서 어떤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그는 인을 이로운 것利으로 인식한다.(知者利仁). 실존적 상황 속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인을 선택하여 행위로 옮기는 것은 화급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함이 아니라 인을 행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가장 이롭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곤궁에 처할 때에도 본심을 잃지 않고 인에 머물고 즐거움에 처 할 때에도 인에서 떠나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이 인이 자신에게 가장 이롭다는 것을 인식한다는 것>은 선택하고 결정해서 행위를 실천 해야만 하는 <실존적 한계 상황 속>에서 ,<실천적 행위>와 <실천적 지혜>가 서로 분리 되어 있지 않는 것을 의미 한다. 내재적-자발적 찬동에 의하지 않은 인仁의 실천은 <인仁을 억지로 행하는强仁> 인위적인 실천이다.  

예기禮記의 기록에는 인仁을 <안인安仁>, <리인利仁>, <강인强仁>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는 기록이 확인 된다. 논어 이인 편에서 서술되지 않고 있는 강인强仁은 인위적으로 강요된 인仁을 의미한다. 외면적으로 인仁을 행하였다고 해도 죄를 두려워해서 인을 행하였다면 이러한 인의 실천은 <강인强仁>이 된다.

( 禮記/表記 子曰:「仁有三,與仁同功而異情。與仁同功,其仁未可知也;與仁同過, 然後其仁 可知也。仁者安仁,知者利仁,畏罪者強仁 ) 

 인을 실행에 옮길 경우 어떤 사욕이나 욕심 없이 인仁을 좋아하고 반대로 어떤 일체의 두려움 없이 불인不仁을 미워 하는 일은 그렇다면 누구에게나 가능 한 일일까? 

 공자는 <이 지상에서 오직 한사람만이 가능하다고>예기에서 술회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통치자 또는 군자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인仁을 인위적으로 강요 할 것이 아니라 통치자 자신이 먼저 실행에 옮겨 몸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고 역설 한다. 또한 행위 규칙이나, 규범 혹은 법을 군자나 통치자의 도덕적 역량을 기준으로 제정 할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지키거나 준수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술회 한다.

(禮記/表記 子曰:「無欲而好仁者,無畏而惡不仁者,天下一人而已矣。是故君子議道 自己,而置法以民) 

里仁 

子曰:「唯仁者能好人,能惡人。」

공자가 말씀하셨다. 오직 인한 사람만이 사람을 좋아 할 수 있고 오직 인한 사람만이사람을 능히 미워 할 수 있다. 

 <인한 사람仁者>이 <타자인 다른 사람(人)>과 어떻게 구체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우리는 확인 할 수 있다. 좋아하고好 싫어하는 것惡은 군자나 소인이나 지닐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러나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묻는다면, <사람을 좋아하는 것好人>과 <사람을 싫어하는 것惡人>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이 된다. 호인好人과 악인惡人은 옳음과 그릇됨의 가치론의 범주에서 다시 되 물어져야 하는 것이다. 논어 텍스트에서는 어떠한 동기에서 타인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지 여부가 구체적으로 서술되고 있지 않고 <감정의 주체>인 <나>, 혹은 <자기 자신>과 <타자> 그리고 호오好惡의 감정이 문장을 구성한다.  

< 문제 제기>

 어진 사람仁者만이 오직唯 능히 좋아能好하고 능히 싫어 할수 있다能惡면 인仁은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인지능력으로 간주 될 수 있는 가?  

 그리고 이 경우 자신의 감정의 정당성을 인仁을 통해서 마련 할 수 있다면 <능히 좋아하고 미워하는 이 감정>은 도덕적 혹은 정치적 정당성을 지니는 것으로 간주 할 수 있는 가? 

 예기 대학편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확인 된다.

오직 인한 사람만이 이들을 추방하여 내 몰아 사방 오랑캐(四夷의)땅으로 흩어지게 하고 나라 안(中國)에서 더불어 함께 살지 않는다. 이를 일컬어 어진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어진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미워한다고 말 한 것이다.

(禮記/大學 唯仁人放流之,迸諸四夷,不與同中國,此謂唯仁人為能愛人,能惡人) 

 논어 편에서 기술되고 있는 <다른 사람을 능히 좋아하고 다른 사람을 능히 미워하는能好人,能惡人 인한 사람仁者의 감정(emotion)은 도가道家의 성인무정론聖人無情論처럼 지나치게 이상화 된 것은 아닌가 ?</span> 


里仁: 

子曰:「苟志於仁矣,無惡也。공자께서 말씀 하셨다. 참으로 인에 뜻을 둔다면 악은 없을 것이다.


주석)

 - 사람이 자신의 지향성을 인仁에 두고자하면, 즉 본문처럼 진실로(구苟) 인에 두고자 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의도했던 혹은 의도하지 않 했 던 가에 상관 없이 그 결과가 악에 이르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을 까? 

 공자는 진실로 지향점을 인仁에 두었다면 악은 없다고 단언 한다. 그러면 악惡이 없다는 것(無惡)은 무오류의 완결성(Geschlossenheit)을 의미하는가 ? 자신의 의지의 지향점을 인에 두는 것 자체가 선의 결과들을 필연적으로 산출해 낸다고 하면 의지의 지향성과 그 결과들은 일체의 우연을 배제하는 닫혀진 체계(closed system)속에 놓여 있는 것으로 파악 되어야 한다.의지의 지향성과 지향성의 실재적 결과들 사이에 우연성이 개입되면 지향성과 실재적 결과사이에는 불일치가 존재하게 된다. 의지의 지향성을 인에게 두었지만 미처 인仁을 이루지 못했을 경우가 존재한다.(志於仁者 未及成仁/論語古今注) 

<여기서 미처 인을 이루는 데에 미치지 못한다未及成仁>것은 악(惡)이 아니고 허물(過)이 된다. 인仁에 지향점을 두고 인仁을 실천하는 경우에도 허물(過)이 되는 행동이 수반될 수 있는 것이다.(楊氏曰 苟志於仁, 未必無過擧也/朱子集註) 그러나 이러한 허물이나 과오가 악을 행하는 것일 수는 없다(然而爲惡則無矣/朱子集註)다산은 허물과 악은 같은 것이 아니라고 역설한다.(案過與惡不同/論語古今注)

의지의 지향성과 지향성의 실재적 결과들의 불일치 ,즉 우연성인 허물(過)은 인(仁)과 함께 통찰 되어야 하고 이렇듯 허물이 인과 함께 통찰 될 때만이 인(仁)의 구체성(其仁)이 인식 될 수 있다.( 禮記 表記: 與仁同過 然後其仁可知也. )어떤 사람이 지향점을 인에 둔다는 것을 논어 이인편에서는 지어인(志於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지志는 주체의 의지가 선택한 방향성을 의미 한다. 마음心의 의지意가 목적성을 지니게 되면 지志가된다. 공자는 자신이 지나온 삶의 변곡점을 서술하면서 최초의 자발적이고 목적 지향적 의지 행위를 15세에 이르러 배움學에 의지志의 지향점을 설정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為政:子曰:「吾十有五而志于學) 

 공자가 15세에 선택했던 목적 지향 행위(志)는 그의 나이 공자는 30세에 바로 서게 되고(立), 40세에 이르러서는 미혹됨이 없게 되고(不惑), 50세에 이르러서는 하늘이 정한 명을 알게 되며(知天命), 60세에 이르러서는 귀가 순하게 되고(耳順), 70에 이르러서는 본인 마음 가는 데로 행하여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 일련의 결과로 이어 지고 있다.(為政: 子曰:「吾十有五而志于學,三十而立,四十而不惑,五十而知天命,六十而耳順,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性近習遠 聖人 

 지향성을 지닌 동사 지(志)가 배움(學)과 결합되었다는 것은 <배움의 결여>나 <전적인 무지>를 전제하고 있다. 공자는 자기 자신은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며 옛 것을 좋아해서 부지런하게 그것을 구한 사람이라고 논어에서 술회하고 있다. ( 述而:子曰:我非生而知之者,好古,敏以求之者也 )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원래부터 본성이나 성품에 갖추어진 자질이, 일반인과 확연히 구별되었기 때문에 공자는 배움에 뜻을 두어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을까 ?  

공자는 “사람의 본성(本性)은 서로 가깝고 습성(習性)은 멀다”라고 술회 한다.(陽貨:子曰:「性相近也,習相遠也 ) 

이러한 맥락에서 공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도 아니고 <우리와 다른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아니라는 것이 그 자신의 서술에서 확인 된다. 배움에 뜻을 두는(志于學) 사람은 배운 이후에야 알게 된다. 뜻을 세우는 것이 배움의 선행 조건이 된다. 공자 자신도 배움의 선행조건과 배움이 요구되어지는 실존적 상황을 서술 한다. 어떤 배움에 대한 선행 조건 없이 알고 있다면 이런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알 고 있는 사람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알지는 못했지만 배움의 선행조건이 자기 자신에 의해 조건 지어진 사람 즉 스스로 배움에 뜻을 두어 아는 사람이 있다. 태어나면서 아는 사람도 아니고 스스로 배움에 뜻을 둔 사람이 아닌 경우에 배움의 선행조건은 갑자기 처하게 된 곤궁한 한계상황에 의해 수동적으로 조건 지어 지게 된다. 자신이 수동적으로 처하게 된 실존적 한계상황을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 배우는 사람이 이 경우에 해당 한다. 

수동적으로 실존적 한계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경우라도 배우지 않는 사람도 존재 한다.

 (季氏:孔子曰:「生而知之者,上也;學而知之者,次也;困而學之,又其次也; 困而不學,民斯為下矣) 

공자가 살았던 당시 수동적으로 처하게 되었던 <실존적 한계 상황(困)>은 외교적 관례를 숙지하지 못하거나 그 세밀한 절차를 인지하지 못해서 처하게 된 곤궁한 상황을 의미한다.  

 춘추좌전 소공 7년의 기록에 의하면 소공이 초나라를 방문한 기록이 확인된다. 맹희자가 소공을 수행하였지만 맹희자는 소공을 도와 예와 도를 행하지 못하였고 정나라 제후 정백이 사지량(師之梁)에서 소공을 위로 하는 대접자리에서도 맹희자는 소공을 돕는 개(介)의 역할을 올바르게 수행하지 못하였는데 맹희자가 예법의 도를 정밀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春秋左傳: 昭公七年 三月,公如楚,鄭伯勞于師之梁,孟僖子為介,不能相儀,及 楚,不能荅郊勞) 

이러한 사례에서 맹희자가 처한 상황이 곤(困)이되고 곤(困)을 극복하는 방법은 학(學)이 된다. 논어 계씨(季氏)편의 서술 형식으로 다시 곤(困)과 학(學)을 구성하면 곤한 상황에 처하게 되어 배우는 것, 곧 곤이학지(困而學之)가 된다.

맹희자(孟僖子)는 임종 때 공자에게 예를 공자에게 배우라는 유언을 맹희자의 두 아들 맹의자(孟懿子)와 남궁경숙(南宮敬叔)에게 담겼다는 기록이 <춘추좌전>과 <사마천>의 사기에서 확인 된다. 양백준의 고증에 따라 맹희자의 사망 시기를 소공昭公 7년이 아니라 소공昭公 24년으로 비정(比定) 한다.  

(春秋左傳: 昭公七年 九月 :及其將死也,召其大夫曰,禮,人之幹也,無禮無以立,吾聞將有達者,曰孔丘,聖人之後也,而滅於宋,其祖弗父何,以有宋而授厲公,及正考父佐戴,武,宣,三命茲益共,故其鼎銘云,一命而僂,再命而傴,三命而俯,循牆而走,亦莫余敢侮,饘於是,鬻於是,以餬余口,其共也如是,臧孫紇有言曰,聖人有明德者,若不當世,其後必有達人,今其將在孔丘乎,我若獲沒必屬說與何忌於夫子,使事之而學禮焉,以定其位,故孟懿子,與南宮敬叔,師事仲尼,仲尼曰,能補過者,君子也,詩曰,君子是則是效,孟僖子可則效已矣) 

 15세의 공자의 선택(志)이, 그의 삶의 모든 변곡점들이< (志)-->(立)-->(不惑)-->(知天命)-->(耳順)-->(不踰矩) >맺고 있는 관계들을 필연적으로 도출 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공자는 15세의 목적 지향적 의지 행위(志)에서 비롯된 그 결과를 명사로 서술하지 않고 최초의 자발적 선택을 서술 했던 맥락속에서(志)에서 삶의 변곡점들을 일관되게 동사로 서술 한다.< (志)(立)(不惑)(知)(耳順)(不踰矩) >. 만약 공자가 <존재 사건> 즉 명사로 생의 변곡점들을 서술하려 했다고 한다면 그의 나이 52세에 맡았던 관직인 대사구(大司寇)를 생의 변곡점에 대한 서술로 기록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공자가 지나온 생의 변곡점을 명사로 서술하는 기록은 후대에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확인 된다. (世家 /孔子世家: 其後定公以孔子為中都宰,一年,四方皆則之。由中都宰為司空,由司空為大司寇) 


里仁: 

子曰:「富與貴是人之所欲也,不以其道得之,不處也;貧與賤是人之所惡也,不以其道得之,不去也。君子去仁,惡乎成名?君子無終食之間違仁,造次必於是,顛沛必於是。」 

공자께서 말씀 하셨다. 부유함과 고귀함, 이것은 사람들이 원하는 바이다. (합당한)도로 얻은 것이 아니면 처하지 않는다. 가난과 천함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다. (합당한)도로 얻은 것이 아니어도 떠나지 않는다. 군자가 인을 떠나면 어찌(惡) 이름을 이루겠는 가 ? 군자는 식사를 (한끼)하는 시간에도 인을 어기지 않고 급하고 구차 할 때에도 반드시 인에 처한다.  

 공자는 인을 사람들이 욕망하여 얻고자 하거나 도달하고자 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혹은 원하지 않는 것의 관계에서 인仁을 서술 한다. <부유함>과 <고귀함>, <가난함>과 <천함>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획득된 것(得之)이며 그 자체로 선(善) 일수 없다. 아울러 <부유함>과 <고귀함>, <가난함>과 <천함>은 그 자체로 악(惡)일 수도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자는 <가난함>과 <천함>을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으로 서술하고 <부유함>과 <고귀함>을 <원하는 것>으로 서술 한다.

 

- 문제 제기 

里仁: 

子曰:「富與貴是人之所欲也,不以其道得之,不處也;貧與賤是人之所惡也,不以其道得之,不去也。君子去仁,惡乎成名?君子無終食之間違仁,造次必於是,顛沛必於是。」

 공자는 부유함과 고귀함을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부유함>과 <고귀함>에 처하지 않는다고 서술한다. 공자는 가난과 천함도 정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거기에 처하지 않는다(不處)고 본문에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상태 혹은 천한 상태를 떠나지 않는다고 서술하고 있는 것이 확인 된다. 가난과 천함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고, 부당하다고 생각 되어지는 조건이나 상황에 의해 더욱이 이러한 곤궁한 상황에 처하게 된 다면 이러한 상황을 가능한 한 벗어나야 한다고 공자가 서술했어야 하지 않을 까 ? 구지 이러한 상황을 떠나지 말라고 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 가 ? 

 빈천(貧賤)의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 방법론적 정당성을 지니지 못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빈천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가 ? 한대漢代의 이 부분에 대한 해석과 주자朱子의 풀이도 빈천을 함부로 벗어나기 위한 인위적 노력을 해서는 않된다고 하는 소극적 견해를 견지하고 있다.  

 다산은 빈천에 대한 숙명론을 비판 한다. “타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빈천에 처하게 되었을 경우 (논어의 본문처럼) 빈천을 떠나지 않는 것이 인仁 이라면 군자는 평생 빈천을 떠날 수 없다. 오직 떠나지 않는 것(不去)만을 바른 도(道)로 여긴다면 어찌 이것이 시중(時中)의 옳바름이라 하겠는 가 ?”  다산은 소극적으로 빈천을 떠나지 않는 것만이 군자가 지켜야할 도道가 아니라 정당한 방법 즉 도道로써 빈천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道 즉 정당한 방법으로 빈천을 벗어 날 수 없는 경우에만 떠나지 않는 것이라고 역설(不去) 한다.  

( 論語古今注 卷二 : 里仁 第四: 駁曰 非也。苟如是也,君子終無去貧賤之日矣。一得貧賤,惟以不去爲法,道與非道,掉頭不問,豈君子時中之義乎?唯不以其道得去之,則不之而已)

 里仁: 

子曰:「我未見好仁者,惡不仁者。好仁者,無以尚之;惡不仁者,其為仁矣,不使不仁者加乎其身。有能一日用其力於仁矣乎?我未見力不足者。蓋有之矣,我未之見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아직까지 인을 좋아하는 사람과 불인을 싫어하는 자를 보지 못했다. 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고, 불인을 싫어하는 사람은 인을 행함에 있어 불인한 것이 자신의 몸에 붙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하루동안 자신의 힘을 인에다 쓸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 까 ? 나는 힘이 부족해서 인을 다 행하지 못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아마 힘이 부족해서 더 이상 인을 행할 수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여 인을 행하는 그런 사람이 잇을수 있겠지만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里仁: 

子曰:「人之過也,各於其黨。觀過,斯知仁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허물은 그 무리에 따라 다르다. 허물을 보면 그 사람의 인의 정도를 알수 있게 된다.

 

公冶長: 

或曰:「雍也,仁而不佞。」子曰:「焉用佞?禦人以口給,屢憎於人。不知其仁,焉用佞?」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옹은 인하기는 하지만 말 재주가 없다고 말하자 공자께서는 말씀하셨다.말 재주를 어디에다 쓴다는 말인가 ? 그럴듯한 말재주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대하면 자주 다른 사람의 미움을 사게 된다.

그가 인한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말 재주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公冶長: 

孟武伯問:「子路仁乎?」子曰:「不知也。」又問。子曰:「由也,千乘之國,可使治其賦也,不知其仁也。」「求也何如?」子曰:「求也,千室之邑,百乘之家,可使為之宰也,不知其仁也。」「赤也何如?」子曰:「赤也,束帶立於朝,可使與賓客言也,不知其仁也。」

맹무백이 물었다. 자로는 인합니까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모르겠습니다.다시 묻자 공자께서는 유는 그로 하여금 전투용 수레 천대를 가진 나라의 군사를 다스리게 할 수는 있으나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구는 어떻습니까 라고 묻자 공자게서는 구는 천호가 되는 읍과 전투용 수레 백대를 가진 경대부 집안의 가재 노릇을 할 수는 있나 그가 인 한지는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公冶長: 

子張問曰:「令尹子文三仕為令尹,無喜色;三已之,無慍色。舊令尹之政,必以告新令尹。何如?」子曰:「忠矣。」曰:「仁矣乎?」曰:「未知,焉得仁?」「崔子弒齊君,陳文子有馬十乘,棄而違之。至於他邦,則曰:『猶吾大夫崔子也。』違之。之一邦,則又曰:『猶吾大夫崔子也。』違之。何如?」子曰:「清矣。」曰:「仁矣乎?」曰:「未知。焉得仁?」

자장(子張)이 묻기를 “영윤(令尹)인 자문(子文)이 세 번 벼슬하여 영윤(令尹)이 되었으되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고, 세 번 벼슬을 그만두면서도 서운해하는 기색이 없어서 옛날 자신이 맡아보던 영윤(令尹)의 정사를 반드시 새로 부임해온 영윤(令尹)에게 알려주었으니, 어떻습니까?” 하자, 공자(孔子)께서 “충성{忠}스럽다.”라고 대답하셨다. “인(仁)하다고 할 만합니까?” 하고 다시 묻자, “모르겠다. 어찌 인(仁)하다고 할수 있겠는가.” 하셨다.  

주석)

공자는 영윤 자문이 충성스럽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의 본성이나 천성天理으로부터 그러한 충성이 연유되었는 지에 관해서는 공자는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다. 외면으로 들어난 충과 내면적인 인을 서로 분리해서 공자는 자문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최자(崔子)에 대한 공자의 평가도 그가 “청백〔淸〕하다고 말 할 수는 있지만 인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아울러 언급한다. 최자가 제(齊)나라 대부(大夫)를 사양하고 제나라를 떠난 것이(違) 

이해(利害)의 사사로움에서 비롯된 것인지 혹은 원망과 후회를 품은체로 제나라를 떠난 것인지를 공자는 확신 할 수 없기에 청백함과 인을 분리하고 있다. 행위 사실인 청백함과 내적 동기인 인을 공자는 분리하고 있다.

 

雍也: 

子曰:「回也,其心三月不違仁,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안회(顔回)는 그 마음이 3개월 동안 인(仁)을 떠나지 않았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하루나 한 달에 한 번 인(仁)에 이를 뿐이다.”  

주석)

공자는 내면화된 인의 지속성에 관하여 언급한다. 지속성의 기준은 3개월과 1일 혹은 한 달과 각각 비교되어 설정된다. 3개월三月에서 3은 숫자 4나 5와 대소관계에 놓여 있지 않다. 3은 장기 지속( longue durée )을 의미하면서(言其久) 아울러 인에서 떠남(違)과 대립한다.  

 공자의 다른 제자들은 인의 지속성이 하루나 1 개월에 이를 뿐이였다(至). 1 개월이나 하루 정도의 인의 지속성은 문맥상 쉽게 인을 떠나는 것으로 간주 될 수 있다(違仁) . 이러한 의미에서 3개월이라는 인의 지속성은 인을 떠나지 않는 다는 상징성을 획득한다(不違仁). 3개월과 하루나 한 달의 구별은 어느 것이 안이 되고 밖이되며 어느 것이 객이되고 주인이되는 가를 인식하는 것이고, 마땅이 배우려는 사람은 차례 차례 마음으로 힘쓰고 또 힘써서(勉勉循循) 인의 지속성을 중단 없이(不能已) 유지해야 한다.

 

雍也: 

樊遲問知。子曰:「務民之義,敬鬼神而遠之,可謂知矣。」問仁。曰:「仁者先難而後獲,可謂仁矣。」

번지(樊遲)가 지(智)에 대하여 묻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의로움에 이를 수 있도록 힘쓰고( 務民之義) 귀신(鬼神)을 공경(恭敬)하되 멀리한다면(敬鬼神而遠) 지혜(智)롭다고 할 수 있다.” 다시 인(仁)에 대하여 묻자, 또 말씀하셨다. “인자함(仁者)이란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을 뒤에 하니, 이렇게 한다면 인(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석)

 번지가 질문한 지혜에 대한 공자의 대답과 인에 대한 대답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지혜는 위정자와 피통치자의 관계에서 먼저 서술된다. 인륜적 생을 총괄하는 규범(人道)가운데에 위정자가 공동체의 구성원인 백성들에게 힘써야 할 것은 의로움이며 , 의로움이 위정자에 의해서 백성들에게 확충되어 지면 이것을 공자는 지혜라고 지칭 한다. 지혜는 비가시적 존재(鬼神)와도 관련해서 언급된다. 비 가시적 존재를 단순히 믿기만 한다면(信) 미혹되는 것(迷惑)이고 , 비가시적 존재(鬼神)를 믿지 않는 다면 공경하지 않게 된다. 비 가시적 존재를 믿으면서도(信) 미혹되지 않는 실천적 지혜는 비가시적 존재를 공경하면서도 멀리하는 것이고 이것을 지혜롭다고 공자는 서술 한다. 

 공자는 인을 <인자함이란 어려운 일을 먼저(先難) 하고 얻는 것을 뒤로 돌리는 것(後獲>이라고 서술한다. 어렵고(艱) 고된(苦)것을 먼저 할 것인지 소득이 되어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獲) 먼저 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과 실행은 개인의 실천적 선택에 따라 여러 가지 선택지를 지닌다. < 어려운 일을 먼저(先難) 하고 얻는 것을 뒤로 돌리는 것>은 합리적 판단의 지평을 넘어서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선택과 실행자체가 행위자 자신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본질상 자신에게 어렵고(艱) 수고로우(苦) 면서도 후행적으로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도덕적 선택이나 정치적 선택을 누구나 내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자는 < 어려운 일을 먼저(先難) 하고 얻는 것을 뒤로 돌리는 것>을 지혜(知)로 규정하지 않고 인(仁)으로 규정한다.  

 어려운 일을 먼저하고 결코 얻음을 헤아리지 않는다면(不計所獲) 이러한 행위는 인하다. 그러나 타자와 자기 자신의 관계 즉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자기 자신과의 관계의 관점에서 어렵고(艱) 고된(苦)것을 <남보다 먼저하고(先於人)> 자신에게 소득이 되어 이로운 일을 <다른 사람보다 뒤에 하면(事後於人)> 이러한 인(仁)은 서(恕)가 된다.- 서(恕)를 힘써 행하는 것이 인(仁)이 되는 것인지 ,서(恕)를 힘써 행하는 것이 인(仁)에 가까워지는 지는 것인지, 혹은 다산 정약용처럼 반드시 서(恕)를 행한 이후에 인(仁)을 이룰수 있는지에(恕而後成仁) 관한 논의는 추후에 서술하기로 한다. 

 

雍也: 

子曰:「知者樂水,仁者樂山;知者動,仁者靜;知者樂,仁者壽。」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지혜로운 사람은(智者) 물을 좋아하고 인한 사람은(仁者) 산(山)을 좋아하며, 지혜로운 사람(智者)은 동적(動的)이고 인한 사람은(仁者) 정적(靜的)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낙천적(樂天的)이고 인한 사람은(仁者) 장수(長壽)한다. 

雍也: 

宰我問曰:「仁者,雖告之曰:『井有仁焉。』其從之也?」子曰:「何為其然也?君子可逝也,不可陷也;可欺也,不可罔也。」

재아(宰我)가 물었다. “어진사람(仁者)은 어떤 사람이 그에게 우물속에 인이 있다”고 해도 그 인을 찾아 우물속으로 들어갑니까?“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그렇게 하겠는가. 군자(君子)는 그로 하여금 <우물까지> 가게 할 수는 있으나 빠지게 할 수는 없으며, <이치에 있는 말로> 속일〔欺〕 수는 있으나 <터무니없는 말로> 속일〔罔〕 수는 없는 것이다. 

雍也: 

子貢曰:「如有博施於民而能濟眾,何如?可謂仁乎?」子曰:「何事於仁,必也聖乎!堯舜其猶病諸!夫仁者,己欲立而立人,己欲達而達人。能近取譬,可謂仁之方也已。」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만일 백성에게 은혜를 널리 베풀어〔博施〕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면〔濟衆〕 어떻겠습니까? 인(仁)하다고 할 만합니까?”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인(仁)을 일삼는 데 그치겠는가. 반드시 성인(聖人)일 것이다. 요순(堯舜)도 이에 있어서는 오히려 부족하게 여기셨을 것이다. 

 

述而: 

子曰:「志於道,據於德,依於仁,游於藝。」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도(道)에 뜻을 두며, 덕(德)을 굳게 지키며,인(仁)에 의지하며 예(藝)에 노닐어야 한다.

 

述而: 

冉有曰:「夫子為衛君乎?」子貢曰:「諾。吾將問之。」入,曰:「伯夷、叔齊何人也?」曰:「古之賢人也。」曰:「怨乎?」曰:「求仁而得仁,又何怨。」出,曰:「夫子不為也。」

염유(有)가 말하기를 “선생님(夫子)께서 위(衛)나라 군주(君主)를 도우실까?”라고 하자,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좋습니다. 내 장차 여쭈어보겠습니다.”고 하였다. 

 들어가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하고 묻자, 공자(孔子)께서는 “옛날의 현인(賢人)이시다.” 하고 대답하셨다. “후회(後悔)하셨습니까?” 하고 묻자, “인(仁)을 구하여 인(仁)을 얻었으니, 다시 어찌 후회(後悔)하였겠는가.”라고 대답하셨다. 자공(子貢)이 나와서 말하기를 “선생님(夫子)께서는 그를 돕지 않으실 것이다.” 하였다.

 述而: 

子曰:「仁遠乎哉?我欲仁,斯仁至矣。」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인(仁)이 멀리 있는가? 내가 인(仁)을 하고자 하면 인(仁)이 당장 (나에게로) 이르는 것이다.”  

述而: 

子曰:「若聖與仁,則吾豈敢?抑為之不厭,誨人不倦,則可謂云爾已矣。」公西華曰:「正唯弟子不能學也。」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성인(聖人)과 인자(仁者)야 내 어찌 감히 자처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스스로 배우는데 싫증내지 않고 , 남을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으로 말하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하셨다. 공서화(公西華)가 말하였다. “바로 이것이 저희 제자(弟子)들이 배울 수 없는 점입니다.” 

 

泰伯: 

子曰:「恭而無禮則勞,慎而無禮則葸,勇而無禮則亂,直而無禮則絞。君子篤於親,則民興於仁;故舊不遺,則民不偷。」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공손하되 예(禮)가 없으면 수고롭고, 삼가되 예(禮)가 없으면 두렵고, 용맹스럽되 예(禮)가 없으면 혼란하고, 강직하되 예(禮)가 없으면 너무 급하다.” “윗자리에서 다스리는 자가가 친척에게 후하게 하면 백성들이 인(仁)에 흥기(興起)하고, 옛 친구를 버리지 않으면 백성들의 인심이 각박해지지 않는다.” 

 

泰伯: 

曾子曰:「士不可以不弘毅,任重而道遠。仁以為己任,不亦重乎?死而後已,不亦遠乎?」

 증자(曾子)가 말씀하였다. “선비는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 책임이 무겁고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인의 실현을 자기의 임무로 삼으니 막중하지 않은가?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이니 이 또한 멀지 않은가?   


泰伯: 

子曰:「好勇疾貧,亂也。人而不仁,疾之已甚,亂也。」

용맹스러운 것을 좋아하면서 가난을 싫어하면 난동을 부리고, 사람이 어질지 못하다다고해서 그것을 미워함이 심하면 난동을 부린다.

  

子罕:  

子罕言利,與命,與仁。

 공자(孔子)께서는 이(利)와 명(命)과 인(仁)을 드물게 말씀하셨다.  

주석)

공자는 이익과 운명과 인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이 많지 않았다. 괴력난신怪力亂神, 즉 상식을 벗어난 이상한 현상이나 용력으로 믿을 수 없는 폭력이나 힘, 패란이나 반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귀신에 대해서는 공자는 언급이 없었다는 서술이 술이편에서 확인 된다. 공야장 13편에서도 공자께서는 인간의 본성과 천도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것은 들을 수가 없었다는(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 언급과도 자한편의 <이(利)와 명(命)과 인(仁)을 드물게 말씀하셨다>는 언급은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공자는 양화편에서 인간의 타고난 본성(性)은 서로가 큰 차이는 없지만 결국 후행적인 습성(習性)에 의하여 사람마다 그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이라고 술회하고 있다(性相近也 習相遠也). 

 

子罕: 

子曰:「知者不惑,仁者不憂,勇者不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자는 의혹하지 않고, 인(仁)한 자는 근심하지 않고, 용맹한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顏淵: 

顏淵問仁。子曰:「克己復禮為仁。一日克己復禮,天下歸仁焉。為仁由己,而由人乎哉?」顏淵曰:「請問其目。」子曰:「非禮勿視,非禮勿聽,非禮勿言,非禮勿動。」顏淵曰:「回雖不敏,請事斯語矣。」

안연(顔淵)이 인(仁)을 묻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자기의 사욕(私慾)을 이겨 예(禮)에 돌아가는 것이 인(仁)이다, 어느 날 자신의 사욕(私慾)을 이겨 예(禮)에 돌아가면 천하(天下)가 이 사람을 인(仁)하다고 할 것이다. 인(仁)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지, 남에게 달려있는 있겠는가 ?

안연(顔淵)이 “그 자세한 내용을을 묻겠습니다.” 하고 말하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禮)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禮)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禮)가 아니면 동(動)하지 마는 것이다.” 안연(顔淵)이 말하였다. “제[회(回)] 가 비록 불민(不敏)하오나 청컨대 이 말씀을 힘써 행하겠습니다.

 

주석)

극기복례(克己復禮)는 나로써 나를 이기는 것을 의미 한다(以己克己). 결국 소체와 대채를 기르는 경우에도 결국 나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由己) 이러한 맥락에서 극기(克己)는 결국 유기(由己)와 모순적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없다.

 

顏淵: 

仲弓問仁。子曰:「出門如見大賓,使民如承大祭。己所不欲,勿施於人。在邦無怨,在家無怨。」仲弓曰:「雍雖不敏,請事斯語矣。」

중궁(仲弓)이 인(仁)을 묻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문을 나갔을 때에는 큰손님을 뵈온 듯이 하며, 백성에게 일을 시킬 때에는 큰 제사(祭祀)를 받들 듯이 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己所不欲,勿施於人), 이렇게 하면 나라에 있어서도 원망함이 없으며, 집안에 있어서도 원망함이 없을 것이다.” 중궁(仲弓)이 말하였다. “제[옹(雍)] 가 비록 불민(不敏)하오나 청컨대 이 말씀을 힘써 행하겠습니다.”

 

주석)

자신이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己所不欲,勿施於人)는 언급은 위령공편에서 자공이 공자에게 한평생 실천 할 수 있는 한마디의 말을 물었을때도 공자가 자공에게 내려준 말이다(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曰, 其恕乎. 己所不欲勿施於人).자신과 타자 관계에서 타인에 관한 도덕적 행위의 정당성은 공자에 의하면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요구하지 않는 것 속에서 확보 된다. 내가 하고자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 할 수 있을 까(己所欲,施於人) ? 

顏淵: 

司馬牛問仁。子曰:「仁者其言也訒。」曰:「其言也訒,斯謂之仁已乎?」子曰:「為之難,言之得無訒乎?」

 사마우(司馬牛)가 인(仁)을 묻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어진사람은仁者) 그 신중하기 때문에 그 말이 머뭇거려 진다 .” <사마우(司馬牛)가> 말하였다. “그 말하는 이 머뭇겨려지면 인(仁)이라 고 합니까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 행하기가 어려우니, 말함에 머뭇거려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顏淵: 

子張問:「士何如斯可謂之達矣?」子曰:「何哉,爾所謂達者?」子張對曰:「在邦必聞,在家必聞。」子曰:「是聞也,非達也。夫達也者,質直而好義,察言而觀色,慮以下人。在邦必達,在家必達。夫聞也者,色取仁而行違,居之不疑。在邦必聞,在家必聞。」

자장(子張)이 “선비가 어떠하여야 이 통달(達)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공자께서는 네가 말하는 통달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고 하셨다. 자장(子張)이 대답하였다. “제후나라에서 일을 해도 반드시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며, 대붕의 식읍에서 잃을 해도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는 것입니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명성이(聞)이 있는 것이지 통달(達)한 것이 아니다.” 통달(達)이란 질박하며 정직하고 의(義)를 좋아하며, 남의 말을 살피고 얼굴빛을 관찰하며 생각해서 몸을 낮추는 것이니,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 일을 해도 반드시 통달(達)하고, 대부의 식읍에 일을 해도 반드시 통달(達)하게 되어 있다.  

명성(聞)이란 얼굴빛은 인(仁)을 취하나 행실은 실제로 인을 어기면서도 스스로 어질다고 자처하여 의심치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명성이 있고, 대부의 식읍에서도 있어도 반드시 명성이 난다.”  

주석)  

마융은 남의 말을 살피고 얼굴 빛을 관찰하며 몸을 낮추는 것은 이미 다른 사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인식한 것이라고(知其所欲) 풀이하고 다산도 마융의 입장에 따르고 있다. 가령 겸손하고 사양하는 사람은(謙退之人) 사람은 술을 주거 받거나 음식을 먹거나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자리에 나아갈 때라도 매사에 남의 말을 살피고 남의 안색을 관찰하여 공동체속에에서 자신이 행하여 할 바와 타인이 하고자 하는 바를 조화롭게 구성해 내는 사람이다. 겸손하고 사양하는 사람은(謙退之人) 간사하고 아첨하는 사람(佞人)과 구별 된다. 

顏淵: 

樊遲問仁。子曰:「愛人。」問知。子曰:「知人。」樊遲未達。子曰:「舉直錯諸枉,能使枉者直。」樊遲退,見子夏。曰:「鄉也吾見於夫子而問知,子曰,『舉直錯諸枉,能使枉者直』,何謂也?」子夏曰:「富哉言乎!舜有天下,選於眾,舉皋陶,不仁者遠矣。湯有天下,選於眾,舉伊尹,不仁者遠矣。」

번지(樊遲)가 인(仁)에대하여 묻자, 공자(孔子)께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셨다. 지(智)를 묻자, 공자(孔子)께서 “사람을 알아보는 것 것이다.” 하셨다. 번지(樊遲)가 그 내용을 깨닫지하지 못하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정직한 사람을 들어 쓰고 모든 부정한 사람을 버리면 부정한 자로 하여금 곧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번지(樊遲)가 물러가서 자하(子夏)를 만나보고 물었다. “지난번에 선생님(夫子)을 뵙고 지(智)를 물었더니, 선생께서 ‘정직한 사람을 들어 쓰고 모든 부정한 사람을 버리면 부정한 자로 하여금 곧게 할 수 있다.’하셨으니, 무슨 말씀인가?”

자하(子夏)가 말하였다. “풍부하다. 그 말씀이여!

 

순(舜)임금이 천하(天下)를 소유함에 여러 사람들 중에서 선발해서 고요(皐陶)를 들어 쓰시니, 인하지 않은 자(不仁들이 멀리 사라졌고, 탕(湯)임금이 천하(天下)를 소유함에 여러 사람들 중에서 선발하여 이윤(伊尹)을 들어 쓰시니, 인하지 않은자(不仁)들이 멀리 사라졌다. 

주석)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지인(知人)의 지(知)는 서경書經에서 확인되는 <정치적으로 어떤 사람의 역량을 헤아리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span>  

顏淵: 

曾子曰:「君子以文會友,以友輔仁。」

증자(曾子)가 말씀하였다. “군자(君子)는 문(文)[학문(學問)] 로써 벗을 모으고, 벗을 통하여써 인(仁)의 수준을 향상 시킨다.

  

子路: 

子曰:「如有王者,必世而後仁。」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왕도로 천하를 다스리는 성왕이 있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한 세대가 지난 뒤에야 백성들이 인(仁)해질 것이다.   

子路: 

樊遲問仁。子曰:「居處恭,執事敬,與人忠。雖之夷狄,不可棄也。」

번지(樊遲)가 인(仁)을 묻자, 공자(孔子)께서 대답하셨다. “평상시에 거처(居處)할 때에에 공손하고 , 일을 집행할 때에에 신중하며하며,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에 한결 같이 마음을 다해야 한다. 이것은 비록 오랑캐(夷狄)의 나라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   

子路: 

子曰:「剛毅、木訥,近仁。」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강하고 굳세고, 질박하고 어눌(語訥)함이 인(仁)에 가깝다.”  

憲問: 

憲問恥。子曰:「邦有道,穀;邦無道,穀,恥也。」「克、伐、怨、欲不行焉,可以為仁矣?」子曰:「可以為難矣,仁則吾不知也。」

 원헌(原憲)이 수치스러운 일을 물으니, 공자(孔子)께서 대답하셨다. “나라에 도(道)가 있을 때에 녹(祿)만 먹으며, 나라에 도(道)가 없을 때에 녹(祿)만 먹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기기를 좋아하고 자기의 공로를 자랑하며, 원망하고 탐욕 함을 행해지지 않게 한다면 인(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어려운 일이라고는 할 수 있으나 , 인(仁)인지는 내 알지 못하겠다. 

憲問: 

子曰:「有德者,必有言。有言者,不必有德。仁者,必有勇。勇者,不必有仁。」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덕(德)이 있는 자는 반드시 말을 하지만, 말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덕(德)이 있지는 못하다. 인자한 사람은仁者) 반드시 용기가 있지만, 용기가 있는 자는 반드시 인(仁)한 것은 아니다.”  

憲問: 

子曰:「君子而不仁者有矣夫,未有小人而仁者也。」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로서 인(仁)하지 못한 자는 있어도 소인(小人)으로서 인(仁)한 자는 있지 않다.”  

憲問: 

子路曰:「桓公殺公子糾,召忽死之,管仲不死。」曰:「未仁乎?」子曰:「桓公九合諸侯,不以兵車,管仲之力也。如其仁!如其仁!」

 자로(子路)가 말하였다. “환공(桓公)이 공자 규(公子糾)를 죽이자, 소홀(召忽)은 그를 위하여 죽었고, 관중(管仲)은 죽지 않았으니, 관중(管仲)은 인(仁)하지 못할 것입니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환공(桓公)이 제후(諸侯)들을 규합하되, 병거(兵車)[무력(武力)] 를 쓰지 않은 것은 관중(管仲)의 힘이었으니, 누가 그의 인(仁)만 하겠는가? 누가 그의 인(仁)만 하겠는가?” 

 주석) 

인의 평가와 기준을 어느 관점에서 고찰해야 하는 가 ?

관중의 정치적 공적과 소홀(召忽)의 인성 내면에서 발양되는 인(仁)을 비교했을 때 결과적으로 관중의 정치적 행위를 소홀의 순절과 같이 인한 것으로 평가해야 하는 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공자는 관중이 순절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관중의 정치적 행위는 공동체의 관점에서 보면 인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자공은 관중이 환공을 도왔던 것을 거론하며 관중이 인하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관중(管仲)이 환공(桓公)을 도와 제후(諸侯)의 패자가 되어 한 번 천하(天下)를 바로잡아, 백성들이 지금까지 그 혜택을 받고 있으니, 관중(管仲)이 없었다면 나[우리] 는 그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편으로 하는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다.” 라며 관중의 정치적 행위가 인한 것임을 다시 한번 주장한다.  

憲問: 

子曰:「君子道者三,我無能焉:仁者不憂,知者不惑,勇者不懼。」子貢曰:「夫子自道也。」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의 도(道)가 세 가지인데, 나는 능한 것이 없다. 인한 사람은(仁者)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자는(智者)는 의혹하지 않고, 용기 있는 자는(勇者) 두려워하지 않다.  

衛靈公: 

子曰:「志士仁人,無求生以害仁,有殺身以成仁。」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지사(志士)와 인인(仁人)은 자신의 삶을 추구하느라고 인(仁)을 해침이 없고, 자신을 죽여 인(仁)을 이루는 경우는 있다.” 

衛靈公: 

子貢問為仁。子曰:「工欲善其事,必先利其器。居是邦也,事其大夫之賢者,友其士之仁者。」

자공(子貢)이 인(仁)을 행하는 것에 관하여 묻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기술자(工人)가 그 일을 잘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 기구[연장] 를 예리하게 만들어야 한다. 어느 나라에 살려 한다면 그 나라의 대부(大夫)들 가운데 현명한 사람을 섬기며, 그 나라의 선비가운데(士) 인(仁)한 자를 벗삼아야 한다.”   

衛靈公: 

子曰:「知及之,仁不能守之;雖得之,必失之。知及之,仁能守之。不莊以涖之,則民不敬。知及之,仁能守之,莊以涖之。動之不以禮,未善也。」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가 거기에 미치더라도 인(仁)이 능히 그것을 지켜내지 못하면 비록 얻더라도 반드시 잃는다.지혜가 거기에 미치며 인(仁)히 능히 그것을 지키더라도 장엄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임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그를 공경하지 않는다. 지혜가 미쳐서 인(仁)이 능히 지켜내며 장엄함으로써 백성들을 대하더라도 백성들을 흥동(興動)시키기를 예(禮)로써 하지 않는다면 선(善)하지 못하다.”  

衛靈公: 

子曰:「民之於仁也,甚於水火。水火,吾見蹈而死者矣,未見蹈仁而死者也。」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인(仁)을 <필요로 하는 것은> 물과 불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욱 절실하다. 물과 불은 그것을 내 밟다가 죽는 자를 보았지만와 인(仁)을 밟다가 죽는 자는 내가 보지 못하였다.”  

衛靈公: 

子曰:「當仁不讓於師。」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인(仁)을 당하여서는 스승에게도 사양하지 않는다.” 

 陽貨: 

陽貨欲見孔子,孔子不見,歸孔子豚。孔子時其亡也,而往拜之,遇諸塗。謂孔子曰:「來!予與爾言。」曰:「懷其寶而迷其邦,可謂仁乎?」曰:「不可。」「好從事而亟失時,可謂知乎?」曰:「不可。」「日月逝矣,歲不我與。」孔子曰:「諾。吾將仕矣。」

 양화(陽貨)가 공자(孔子)를 만나고자 하였으나, 공자(孔子)께서 만나주지 않으시자, 양화(陽貨)가 공자(孔子)에게 삶은 돼지를 선물로 보내주니, 공자(孔子)께서도 그가 없는 틈을 타 사례하러 가시다가 길에서 마주치셨다.

공자(孔子)에게 말하기를 “이리 오시오. 내가 그대와 말을 하겠오. 훌륭한 보배를 품고서 나라를 어지럽게 버려두는 것을 인(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공자(孔子)께서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셨다. 양화(陽貨)가 “종사(從事)하기를 좋아하면서 자주 때를 놓치는 것을 지(知)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공자(孔子)께서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셨다. 양화(陽貨)가 “해와 달이 흘러가니, 세월은 나를 위하여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알았습니다. 나는 장차 벼슬을 할 것입니다.” 하셨다.  

陽貨: 

子張問仁於孔子。孔子曰:「能行五者於天下,為仁矣。」請問之。曰:「恭、寬、信、敏、惠。恭則不侮,寬則得眾,信則人任焉,敏則有功,惠則足以使人。」

자장(子張)이 공자(孔子)에게 인(仁)을 여쭙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능히 다섯 가지를 천하(天下)에 행할 수 있으면 인(仁)이 된다.” 하셨다. 자장(子張)이 가르쳐 주시기를 청하니, 말씀하시기를 “공손함〔恭〕, 너그러움〔寬〕, 믿음〔信〕, 민첩함〔敏〕, 은혜로움〔惠〕 이니, 공손하면 업신여김을 받지 않고, 너그러우면 여러 사람들을 얻게 되고, 믿음이 있으면 남들이 의지하게 되고, 민첩하면 공이 있게 되고, 은혜로우면 충분히 남들을 부릴 수 있게 된다.” 하셨다.  

陽貨: 

子曰:「由也,女聞六言六蔽矣乎?」對曰:「未也。」「居!吾語女。好仁不好學,其蔽也愚;好知不好學,其蔽也蕩;好信不好學,其蔽也賊;好直不好學,其蔽也絞;好勇不好學,其蔽也亂;好剛不好學,其蔽也狂。」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유(由)야! 너는 여섯마디 말과(六言)과 그에 따르는 여섯 가지 페단(六蔽)을 들어보았느냐?” 하시자, <자로(子路)가> 대답하였다.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앉거라. 내 너에게 말해 주리라.” 

 인(仁)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가려짐]이 어리석게 되고〔愚〕, 지혜〔知〕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이 호탕하게 되고〔蕩〕, 믿음〔信〕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이 해치게 되고〔賊〕, 정직〔直〕한 것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이 급하게 되고〔絞〕, 용맹〔勇〕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이 어지럽게 되고〔亂〕, 강(剛)한 것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이 경솔하게 된다〔狂〕 .  

陽貨: 

子曰:「巧言令色,鮮矣仁。」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말을 좋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하는 자는 인(仁)한 사람이 드물다. 

陽貨: 

宰我問:「三年之喪,期已久矣。君子三年不為禮,禮必壞;三年不為樂,樂必崩。舊穀既沒,新穀既升,鑽燧改火,期可已矣。」子曰:「食夫稻,衣夫錦,於女安乎?」曰:「安。」「女安則為之!夫君子之居喪,食旨不甘,聞樂不樂,居處不安,故不為也。今女安,則為之!」宰我出。子曰:「予之不仁也!子生三年,然後免於父母之懷。夫三年之喪,天下之通喪也。予也,有三年之愛於其父母乎?」

재아(宰我)가 말하였다. “삼년상(三年喪)은 기년(期年)만 하더라도 너무 오래다고 할 것입니다. 군자(君子)가 3년 동안 예(禮)를 행하지 않으면 예(禮)가 반드시 무너지고, 3년 동안 음악(音樂)을 익히지 않으면 음악(音樂)이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묵은 곡식이 다 없어지고 새 곡식이 오르며, 불씨 만드는 나무도 바뀌어지니, 1년이면 그칠 만한 것입니다.” 공자(孔子)께서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것이 너에게는 편안하냐?” 하시니, <재아(宰我)가> 대답하기를 “편안합니다.” 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편안하면 그리 해라. 군자(君子)가 거상(居喪)할 때에 맛있는 것을 먹어도 달지 않으며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거처함에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니, 네가 편안하면 그리 해라.”  

재아(宰我)가 밖으로 나가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재아(宰我)의 인(仁)하지 못함이여! 자식이 태어나서 3년이 지난 뒤에야 부모의 품을 벗어나게 된다. 삼년상(三年喪)은 온천하의 공통된 상(喪)이니, 재여(宰予)는 3년의 사랑이 그 부모(父母)에게 있었는가?”    

微子: 

微子去之,箕子為之奴,比干諫而死。孔子曰:「殷有三仁焉。」

 

 미자(微子)는 떠나가고 기자(箕子)는 종이 되고 비간(比干)은 간(諫)하다가 죽었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은(殷)나라에 세 인자(仁者)가 있었다.  

子張: 

子夏曰:「博學而篤志,切問而近思,仁在其中矣。」

자하(子夏)가 말하였다. “배우기를 널리 하고 뜻을 독실히 하며,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인(仁)이 그 가운데 있다.  

子張: 

子游曰:「吾友張也,為難能也。然而未仁。」

자유(子游)가 말하였다. “나의 벗 자장(子張)은 어려운 일을 잘하나, 그러나 인(仁)하지는 못하다.” 

 子張: 

曾子曰:「堂堂乎張也,難與並為仁矣。」

증자(曾子)가 말씀하였다. “당당하구나, 자장(子張)이여! 함께 인(仁)을 하기는 어렵다.”  

堯曰: 

堯曰:「咨!爾舜!天之曆數在爾躬。允執其中。四海困窮,天祿永終。」舜亦以命禹。曰:「予小子履,敢用玄牡,敢昭告于皇皇后帝:有罪不敢赦。帝臣不蔽,簡在帝心。朕躬有罪,無以萬方;萬方有罪,罪在朕躬。」周有大賚,善人是富。「雖有周親,不如仁人。百姓有過,在予一人。」謹權量,審法度,修廢官,四方之政行焉。興滅國,繼絕世,舉逸民,天下之民歸心焉。所重:民、食、喪、祭。寬則得眾,信則民任焉,敏則有功,公則說。

요(堯)임금이 말씀하셨다. “아! 너 순(舜)아, 하늘의 역수(曆數)가 너의 몸에 있으니, 진실로 그 중(中)을 잡도록 하라. 사해(四海)가 곤궁하면 천록(天祿)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 순(舜)임금도 이 말씀으로써 우(禹)임금에게 명(命)[훈계] 하셨다. 

<탕왕(湯王)이> 말씀하셨다. “나 소자(小子) 이(履)는 검은 희생〔玄牡〕을 써서 감히 거룩하신 상제(上帝)께 아룁니다. 죄(罪)가 있는 사람을 제가 감히 용서하지 못하오며, 상제(上帝)의 신하를 제가 감히 가리우지 못하와, 신하를 간택(簡擇)함은 상제(上帝)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내 몸에 죄(罪)가 있음은 만방(萬方) 때문이 아니며, 만방(萬方)에 죄(罪)가 있음은 그 책임[죄] 이 내 몸에 있습니다.”주(周)나라에 큰 베풂이 있으니, 선인(善人)이 이에 부(富)하게 되었다.  

 “비록 지극히 가까운 친척〔周親〕 이 있으나 인한 사람만 같지 못하며, 백성들의 과실은 <책임이> 나 한 사람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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