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이러한 비교철학의 문제의식으로 쓴 논문 2편이 있다. 하나는 <다석 유영모의 인간관과 그 비판>이란 논문이고, 다른 하나는 신라의 향가인 <「제망매가」에 드러난 ‘죽음’의 의미와 ‘삶의 윤리학’의 문제>이다. 둘 다 한국양명학회에서 발간하는 <양명학>에 게재되었다. 이 2편의 본격적인 학술 논문으로 인해 명실공히 나도 비교철학자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가 있다.
첫번째 논문은 20세기 한국의 독특한 철학자 유영모 선생의 인간관을 서양철학자의 입장에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들을 검토한 것이다. 세간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다석은 함석헌 선생의 스승이다. 함선생의 '씨알'이라는 개념은 다석이 만든 것이다. 다석은 그 이전의 다른 어떤 사상가들과도 다르게 한글에 주목해서 서양의 기독교와 동양의 유불도의 핵심 사상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의미를 부여한 독특한 사상가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 전통 사상이나 동아시아 사상의 바탕을 이루는 유불도(儒佛道)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서양의 기독교 신관을 재해석하고, 그것을 유불도 삼교와 회통 시키고자 했다. 아울러 다석은 대부분 철학자들이 일본식 조어를 사용하기보다는 끊임없이 한글식 조어를 만들어 자기 사상의 핵심을 표현해왔다.
다석은 기독교를 유불도의 핵심 원리에 기초해서 주체적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그는 불교의 공(空)이나 노장의 도(道)와 태허(太虛), 그리고 유교의 천(天)이나 무극(無極)과 같은 개념들을 기독교의 신관과 연결하고자 했다. 그는 기독교의 인격적 신관에 기초한 전통 신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동양의 형이상학적인 원리에 근거해서 기독교의 신을 해석하고자 했다. 그가 말하는 ‘없이 계시는 하느님’은 있음의 차원에서는 태극을 말하고, 없음의 차원에서는 무극과 같은 것이다.
다석은 인간을 '제나'와 '얼나'로 구분한다. 제나는 탐진치(貪瞋痴) 삼독에 사로잡혀 있는 육체적 자아이고, 얼나 혹은 참나는 이 삼독을 벗어난 정신적이고 우주적인 자아이다. 탐진치에 사로잡혀 있는 한 인간은 자신의 본 바탕(받할)을 알 수 없다. 다석은 육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기초해 전통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의 대속(代贖論)을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다석의 인간관은 플라톤적인 이원론적 인간관과 비슷하다. 다만 육체로부터의 해방이 플라톤에게는 초월적인 이데아의 세계로 가는 데 반해, 다석에게는 자기의 내면에 있는 참나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에서 양자가 차이가 있다. 육체를 부정하고 정신을 강조하는 플라톤식의 영지주의는 스피노자와 니체의 적극적인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마찬가지로 다석의 얼 사상, 얼나 중심의 인간론에 대해서도 똑같은 비판을 가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의 이런 해석은 다석의 추종자들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철학 비판은 8세기 중국의 임제 선사의 말처럼, "부처가 보이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가 보이면 조사를 죽여라."라는 정신에 충실할 뿐이다.
두번째 논문은 <「제망매가」에 드러난 '죽음'의 의미와 '삶의 윤리학'의 문제>이다. 이 논문은 후배의 상가집에 다녀오면서 신라의 향가 「제망매가」의 의미를 새롭게 의식한 데사 글의 단초를 찾았다. 하지만 이글은 학진의 연구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학술논문으로 발전되었다. 에세이글이 얼마든지 학술논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정작 이 논문을 완성해서 모 대학 철학연구소로 보냈는데 심사위원 3명 전원의 퇴자를 받았다. 심사위원들이 친절하게도 내가 이미 이곳 저곳에 써놓은 글들을 읽었는지 '표절'이라고 한 것이다. 논문 표절 판정은 가장 심한 게재 불가 근거가 된다. 하도 황당해서 내가 쓴 글이라고 밝히면서 재심 신청을 했는데 이번에도 3명 모두가 게재 불가 판정을 내리면서 '자기표절'이라는 것이다. 이러니 심사위원을 심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학자들의 논문은 예술가들의 창작품과 달리 최초의 아이디어는 꾸준히 재고 수정하면서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전문적인 학술 논문으로 발표한 것도 아니고 SNS에 에세이 형태로 발표한 글과 일정 부분 겹친다고 '자기표절'로 판정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나? 게재 압박 때문에 일단 나는 이 논문을 다른 학술지에 게재해서 아주 창의적인 논문이고, 문체도 좋다는 극찬을 받았다. 나아가서 '게재불가' 판정을 내린 자들을 상대로 공개적인 논쟁을 벌이려고 했지만, 그 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는 후배의 간청이 있어서 그냥 덮고 말았다. 이 자리에서 처음 밝히는 이야기다.
「제망매가」는 고전문학에서 향가에 대한 관심과 이 향가가 함축하는 문제들에 대한 관심이라는 측면에서 이미 국어학자들과 국문학자들, 그리고 불교학자들에 의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연구들은 일차적으로는 ‘누이와의 사별에 따른 애절한 심정을 종교적인 구도의 자세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간주하고, 좀 더 심화된 경우에는 이 작품을 통해 ‘삶의 허무성이나 불교적 내세관의 문제’ 등으로 해석하곤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안고 있는 고유한 시공간적 의미 외에도 이 작품에는 그것을 뛰어넘어 21세기의 독자들과 한국을 넘어서 세계인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는 보편적 요소가 담겨 있다. 만일 이런 요소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하면 이 작품은 국문학이나 불교의 관점을 넘어서 서양철학의 차원에서도 얼마든지 재해석될 수 있다고 본다. 이글은 「제망매가」라는 향가에 드러난 죽음의 보편적 문제, 이를테면 죽음의 필연성과 우발성,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사후 세계의 문제, 죽음과 삶의 관계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제망매가」를 단순히 ‘누이의 죽음에 대한 종교적 승화’로 보는 기존의 해석을 넘어서 보고자 했다. 내가 보기에 「제망매가」는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 얼마든지 시대와 지역의 한계를 넘어 보편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소지가 많다. 나는 플라톤과 스토아주의와 불교, 칸트와 하이데거, 현대의 라캉에 이르기까지 서양철학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제망매가」의 문제의식을 보편화, 현재화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우리는 허구헌 날 서구의 시가에 대해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 고전 시가들도 재해석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