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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處暑): 공공성과 공화정
글쓴이 : 천하루
작성일 : 26-08-24 17:28
조회수 : 38

시대: 용어와 항목
2026, 09 23 처서(處暑)
    시대가 인물을 낳고, 용어를 창안한다.
    공자는 열락(悅樂), 소크라테스의 이뭣꼬, 플라톤의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의 기관(논리학), 플로티누스의 일자(빛), 데카르트의 방법(분석학),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미적분), 루소는 자연, 꽁트는 실증, 칸트는 비판, 헤겔은 절대, 프왕까레는 협약, 레비브륄은 심성, 벩송은 기억, 푸꼬는 광기, 들뢰즈는 다양체 등등을 시대마다 중요 문제거리로 다루었다. 그럼에도 19세기 후반에 인류학, 사회심리학, 생물학, 수학사 등에서 “이뭣꼬”의 중심은 인간이 삶의 터전에서 공통으로 사용되어온 용어의 근원 또는 기원인 수(1)의 발생을 다시 탐문하기 시작했다. 퓌타고라스가 다시 불려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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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위 설정에는 수와 연관이 있다는 것은 옛날부터 알려져 왔다. 그럼에도 그 수가 개별적 사물의 대상에서 나왔는지, 또는 사유의 대상을 일반화하는 추론에서 나왔는지는 19세기 말까지도 문제거리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수, 개별 대상, 일반 항목 등으로 구별하려고 하면, 추론하는 지성은 단위 설정에서 논리가 먼저라고 한다. 그 단위 설정이 동일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며, 그로부터 차이로서 단위와 단위 아닌 것을 구별한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단위와 동일한 단위들을 나열하기 위해 구별하면서 둘(2)이라고 한다.
    대상화된 항목의 경우에, A라는 단위가 있고 아닌 것을 통해서 구분한다고 할 때, 한 항목에 대해 두 가지로 분류하는 방식이 나온다고 한다. 존재와 무. 그리고 두 항목, 즉 이런 추론을 따르면, 두 항목이 있을 때 그 항들의 분류에는 A, (AB), B 그리고 여분으로 φ(여집합, 무)가 있다. 항목들이 셋일 경우에 7개의 개별항목들과 φ를 보태어 여덟이라 하고, 항목들이 넷일 경우(x 4승과 유사함)에 15 개별항목들과 φ를 보태어 열여덟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의 수를 벤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현상적, 표상적, 실재적 논의에서는 셋 항목일 경우 또는 3차원을 실재적 영역이라 한다. 그러나 x 4승을 방정식으로 풀 수 있으나, x 5승은 페르마 이래로 해답을 풀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2항을 대상화하는 논의에서 연속적인 측면을 강조하면, 가우스의 종(鐘)모양의 그래프로 나타낼 수 있으며, 벤다아그램 도식에 의미를 부여하여 A는 가치 B는 잉여라고 유비적 사유를 할 수 있으며, 이런 방식을 논리적 구별로서 정치경제학적으로 보려고 하면 A쪽은 인민 B쪽 자본가라 할 수 있다. 니체는 도덕론적으로 A는 가치이며, B를 공중에 떠있는 주사위 놀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자연배후학’적 사유에서 A와 B는 둘 다 서로 다른 연원을 지닌 시뮬라크르들이고 AB는 혼합의 종류에 따라 잡다한 현상들의 일부분들이다. 이런 시뮬라크르의 논의를 통하여, 중세 신학에서 평결론에 비추어보면, B는 신의 절대 의지에 따르고 A는 경험을 통한 과학적 인식으로 자연의 발생에 따른다고 한다. 이를 근대의 이원론에 비추어보면 B는 혼(의식)의 활동이고 A는 몸(신체)의 운동이다. 이런 의미에서 AB를 함께하는 생명체들의 잡다성이 차이나는 성질들(양이 아니라)을 드러낼 때, 특히 인간의 경우에 B에서는 신성이 A에서는 동물성이 드러나는 것으로 착각했었다. 한 번 더 내려가서 고대에서 B에서는 하늘의 원리를 A에서는 자연의 생산을 대입시키고서, AB에 해당하는 것이 인간의 의식 활동이라고 보았고, 이런 의식은 뚜꺼있는 하늘과 움직이지 않는 땅의 중간(또는 연대)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추론하였다고 한다.
    어떠하거나 단위 항목의 독립성이 하나이든 둘이든 셋이든 각각이 주어진다고 하는 생각은 인간에게 있어서 태생적 또는 선천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런 항목들도 19세기 후반 이래로 오랜 삶의 과정에서 무매개적으로 합의 또는 협약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항목들의 단위가 자연수로 되어 있는 것만이 아니라, 여러 다른 수들도 있고, 즉 무리수, 원주율, 허수, 복소수 등과 같이 자연수로 설명할 수 없는 수들을 무한의 영역으로 옮겨놓았다. 이원성의 구조가 인정되었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무한(무한계)를 무 또는 무처럼 취급하였고, 중세의 종교에서는 잘 모르는 것을 어둠 또는 악으로 취급하였고, 과도하게 악마사냥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비유클리드 기하학 성립이후 19세기 후반에 와서의 여집합의 부분이 요소(현존은 아니라도)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항목으로 현존의 지위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항목들과 단위들이 언어에서 표기와 입말로서 용어 또는 단어로 쓰일 때, 그것들이 어떠한 구조와 지위가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상상하였고 또는 좀 심하게는 현존이니 실재니 라고들 말한다. 후기 중세이래로 용어와 단어는 입말에서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입말 또는 문자화가 인간들 사이에 소통과 전승이 이어지는 것은, 그리고 삶에서 감화와 감동을 가져다주는 것은, 그 단위들 자체의 성격과 특성이 있어서일까, 또는 그보다 먼저 상호공존의 심성에서 나온 공감과 공동의식의 협약이 있어서일까?
    이런 문제의식에서 항목 또는 용어의 사용에서 보편성, 일반성, 개별성, 특이성의 분류는 구조적인데 비해, 생성과 발산의 과정으로서 특이성으로부터 개별성, 일반성, 보편성으로 진행하는 길과는 전혀 다른 길로 보인다. 생성과 발산의 사고는 1900년 유전법칙이 재발견 되면서, 사물과 대상의 원리와 법칙(인과)이 먼저가 아니라고 하면서, 사유의 방향은 기원과 근원에 대해 새롭게 탐색하면서 과거의 사고방식을 전도 또는 전복하려 하였다. 그러나 두 차례 세계대전이 이를 백 년 가까이 지체하게 했다. 차이를 발생하게하는 사유의 방식들을 다시 검토하는 이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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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그리스 철학이 신들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다룬다고 하면서, 신화를 벗어나 철학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오니아의 사유와 엘레아의 사고의 대비 속에서, 아테네가 지중해의 맹주가 되면서 인간이 주제로 올라왔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에서는 인간이란 일반성과 소크라테스라는 개별성의 구별을 했던 것 같다. 그런 용어의 정의에 대해 주목했던 제자들은 메가라학파이겠지만, 문헌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못하다.
    플라톤은 용어 또는 항목에 대해 여러 방향으로 문제 제기하였다. 여러 측면으로, 즉 인식론과 존재론, 발생론 대 우주론, 폴리스 안에서 실천론 대 도덕론 등에서도, 마치 학문을 정초하기 위한 단위 설정처럼 용어의 정의(定義)가 흥미로운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언어의 용어에 대해 여러 방식으로 논의하고 규정하려 하기도 했지만, 주목을 끈 것은, 대상의 항목으로서 한계(페라스)와 비한계(아페이론)에 관심을 집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플라톤의 크기라는 단어의 이중성을 고민해 왔다. 대상을 양으로서 다루거나 질로서 생각하는 것의 차이가, 수(산술)와 소리(음악)에서 차이를 드러나는 점이 전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플라톤에서 차이는 인간인 한에서 양으로서 차이보다 질로서 차히를 주목했던 것 같다.
    우리는 플라톤이 차이들을 규정(또는 정의)하려는 노력에서 혼과 소리와 같은 질적 차이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후대에 주석자들이 있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일반 용어보다, 소크라테스, 파르메니데스, 고르기아스 등 인물을 중심에 놓아서, 책의 제목들이 인격적 대상으로부터 조성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그는 나라(폴리스) 안에서 인간들 각각이 무엇을 배우고 행해야 하는지에 관심이었기에 󰡔폴리테이아󰡕를 썼다가, 인간이 세계 또는 자연에서 나왔을 것이고, 그 세계를 이루고 있는 구성(수의 방식)과 조성(운동의 방식)의 방식이라는 이중적 관심을 풀어본 것이 󰡔티마이오스󰡕일 것이다. 이 두 권의 책이 인간, 나라(터전), 세계(우주)라는 세 차원이라고 생각했다고 본다면, 그는 개인의 항에서 일반항으로 그리고 전체 항으로 확대하면서 사유를 넓혀 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스승의 삶에서 실천과 그에 따른 독특한 사유를 잊을 수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실천과 사유에서 ‘훌륭타’와 ‘장하다’를 찾을 수 있는 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이 아니었을까?
    인간은 폴리스 안에서 개별화, 세계 안에서 종별화로 규명해 보려 했을까? 말하자면 폴리스 안에서 개인들이 각각 역할과 성격이 있다면, 유비적으로 세계 안에서 인간이라는 종의 차원에서 다른 동물(생명, 자연)과 차이를 통해서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탐구하지 않았을까? 나로서는 그가 사유의 방식이 두 번 이집트 여행에서 당대의 수학과 천문학을 통해서 동심원적으로 사유하는 방식을 빌려왔다고 추측한다. 플라톤에서 보면, 이뭣꼬에서 ‘인간’이란 대상 또는 용어를 언어로 규정에서 양적으로보다 질적으로 규정(정의)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인간 개인의 단위에서 보면, 한 개인은 다른 어떤 이에게도 환원되지 않는, 즉 특이자가 아닐까? 그 질적 차원이 혼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이뭣꼬를 크기로 구별한다고 말했지만, 인간이 훌륭타 또는 장하다라는 말은 보다 더 현명하고 보다 더 잘 실천(운동)하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이 운동하는 질적인 요소(혼)들의 공통성은 뭣일까? 이 점에서 후대의 철학자들이 삶의 터전에서 “조화의 정의”일 것이다. 이것을 수학과 원자에서 찾기보다, 천문과 음악에서 찾으려 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두 부류를 공유하는 일반화의 틀이 기하학의 원 또는 공으의 포섭 또는 포함 방식에서 보았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하늘(운동)의 조화가 삶의 터전에 연대적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폴리스에서 사람들 사이의 조화에서도 언어보다 음률에서 보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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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비해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 또는 왕국에서 인간의 실질적 삶이 주제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 터전에서 사람들과 타인들 그리고 사물들을 규정하면서, 왕국의 제도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 보았을 것 같다. 논리학에서 언어의 항목들이 규정되어야 추론이 가능하고, 그리고 추론에 따라 맞는 것과 틀린 것을 구별함으로, 삶의 터전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인간의 행복한 삶이라 보았을 것이다. 이런 추론의 진위(眞僞) 구별이 인간의 실천에서 바르고 틀리는 것을 구별함으로서, 개인의 지식과 실천에서 질서를 찾을 수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요즘 표현으로 사람들을 배치하고 배열하여 잘 실행되는 제도에서 잘 사는 또는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차이를 동물이나 사물들에서 류적인 것과 종적인 것을 구별하듯이 구별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현명한 자(지식인)과 그렇지 못한자(무식자) 사이의 차이도 추론(로고스)을 잘하는 이와 잘못하는 이를 구별하듯이, 삼단논법을 잘 이용하는 자와 오류를 범하는 자를 구별하고, 또 사물을 류와 종의 영역으로 구별하는 것을 지식(지혜)을 갖는 자와 아닌 자를 구별하였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물의 구별에서 류적인 항목(상위)과 종적인 항목(하위)을 구별한다. 그럼에도 식물의 예에서 이런 류적과 종적 구별을 확대하여, 류적 구별에는 완전체의 목적을 종적 미완성에는 질료라는 차원을 보태어, 자연 체계를 탐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도 이런 네 단위로서 구별할 수 있을까? 물론 아리스토텔레스가 구별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사유를 이용하여 비유적으로 신학에서는 인간에게 완전체로서 신과 같은 완전하고 절대적 추론을 하는 능력도 상정하고, 그리고 생명도 없이 이리저리 힘을 받는 대로 수동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물체와 같은 물질을 상정하여, 이중적으로 설정할 수 있다. 그는 추론을 확장하여, 자연계에서 물체들의 성질상, 하부에 무기물, 그 위에 식물, 그 위에 동물 그리고 추론하는 인간으로 네 단계로 구별할 것이다. 이런 것도 플라톤의 인식론과 존재론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선분의 비유와 닮았다. 그럼에도 그는 네 부분에 각각에 속하는 성질은 양으로 측정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타의 도움 없이 움직이지 못하는 물질, 고정된 자리를 가지면서도 상향하여 움직이는 것, 이리저리 움직이지만 생각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생각하며 발명과 창작을 하는 인간이 있다.
    플라톤이든 아리스토텔레스이든, 동일한 방식이 아니지만 네 항목 또는 네 단락(계층) 등으로 구별하여 설명하려 했던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 중국도 마찬가지로 사상(四象)이 있고, 불교의 염처경에서는 삶의 과정에서 4단위가 있다. 그리고 구(舊)천문학에서 19년 주기를 따라 어린시절, 청년, 장년, 노년도 네 가지 구분도 위의 것들에 비해 유비적으로 닮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런 구별을 짓는 것은 인간이 오랜 삶에서, 또는 심성의 합에 의한, 지혜의 산물일 것이다, 19세기말 인종학자들과 사회심리학자들이 직관을 수용하면서, 생명의 과정에서 오래 전승에 의한 심성이 먼저이고 그 위에 감성, 인성, 지성(이성) 넷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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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적 측면에서 사유의 대상이든 현실의 대상이든, 시대마다 각 학자들은 자신들의 용어를 창안했다. 플라톤의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 플로티노스의 일자 등은 고유한 명칭이었지만 일반화되기도 한다. 우리는 학자에게 맞는 고유한 의미를 지닌 명사(용어)를 어휘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유명하고 또 작품이 많은 경우에 그 학자의 어휘(용어)를 그에 맞게 읽어야 한다고 하면서 따로 정리하기도 한다. 게다가 철학의 용어, 수학의 용어(어휘), 물리학의 용어, 사회학의 용어, 정치경제학의 용어 등에서 용어 이상으로 방법적 사용을 달리 구별한다. 그럼에도 학문들 사이에 또는 학자들 사이에도 공통의 용어가 있다.
    그럼에도 소중한 것은 백성이 심성이 서로 통하여 공유하는 공화성, 즉 공통성과 공공성의 언어도 있다. 심성의 공유성에 따른 입말은 삶의 터전에 따라 대상에 대해 조금씩 다르지만, 얼과 혼에서 감동과 감화에 따라 나라 전체에서 공통성(일반성)과 공화성(추상성을 포함하는 일반성)을 지닌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인(仁)이란 용어가 그러하고, 우리나라에서 장하다 또는 훌륭타라는 입말이 그러하며, 소크라테스외 플라톤에서도 중요시되었던 아가톤(Ἀγάθων, 착하다 훌륭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양에서 공동체에서 언어로서 작용하여 쓰이는 단어들은, 문법적으로 명사 동사 형용사 등으로 나누고. 거기에 더하여 전치사, 부사, 지시사, 관계사 등을 부가적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에 비해 우리 입말에서는 흥미있게도 명사(실사)의 용도를 알리는 조사(은, 을, 에게)도 있다. 이런 공공성(일반성)을 넘어서 문법학에서 더 세부적으로 분류하여 깊이 다루어질 수 있다.
우리는 실사 중에서도 명사와 대명사에 관하여 생각해보기로 한다. 사람과 소크라테스는 명사와 대명사로 문법적으로 구별한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생물과 소(말)는 류와 종의 관계이며, 그런데 사람(인간)과 소크라테스는 류와 종의 관계와 다르다.      이런 분류의 방식에는 층위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며, 거꾸로 되돌아가, 플라톤에서는 특히 사물에 관해서 층위가 아니라 발생(생성)에서 분류하면서 다르게 이름(명칭)을 부를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사회 안에서 소통하면서 류와 종 사이의 종차에 의해 용어가 설정(정의)된다는 것은 일반적인 합의의 인정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여긴다. 이것이 아동 교육에서 지식의 기초로서 가르치고 전수하기 위해 체계화하면서, 문법학, 논리학, 수사학으로 구별했던 중세의 3학(trivium)에서 고착적 전수 방식이 전개되었다. 여기에서 글자 쓰기와 문장 만들기가 중요하다. 그 문장에서 일반성(공공성)에서 용어가 대상과 단어 사이의 일치로서 고정되어 쓰는 것이 편리하다. 마치 류와 종의 구별이 있듯이 사회에서 상층과 심층의 구별이 은연중에 자리매김하는가? 학문과 교육이 계층을 구별하기 위해 제도화한 것은 아니리라. 그럼에도 터전에서 성내(城內)와 성밖이 다르듯이, 언어의 체계 속에서 쓰고 사유하는 자들과 사물을 대하면서 생산하고 제작하는 자들 사이에서 한 용어가 (사물에 대해) 지시하는 내용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문법과 제도의 일치를 편리하게 받아들이는 제도(행정, 사법, 통치)에서 사물을 알기보다 언어체계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일상에서 사물들에 대한 용어가, 생물의 구별에서 류와 종보다, 공동체의 삶에서는 일반과 개별의 분류로서 편리하게 사용한다. 그러나 제도 속에서 일의 순서(선후先後, 중경重輕)에 따라 실행하는 경우에 선중과 후경의 차이에서 상층과 심층의 차이가 눈에 띄게 드러난다. 귀족과 평민, 성직자와 신앙자 사이에 차이가 있다. 이들 사이에 사회 질서는 명령과 수행 정도만이 아니라는 것도, 다른 방식으로 자연의 질서도 있다는 것도, 자연의 백성들은 잘 안다.
    류와 종, 일반과 개별로서 구별이 공동체의 활동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제도 안에서 계층의 차이에서 상층의 원리와 지배와 대 심층의 수동과 저항(플라톤의 필연성)이라는 양면성을 드러낸다. 결국 두 가지를 네 가지로 구별하여 사유하는 방식이 이미 은연중에 알려져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류의 원리로서 상위류(上位類)를 설정하듯이, 추론으로서 심층의 하위종(下位種)을 설정할 것이다. 제도 상으로 또는 추론 상으로 상위 류를 플라톤의 선의 이데아에, 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의 사유에 대입하면서, 제도의 고착성을 유지하기 위한 체계와 논리를 전개할 수 있으리라. 이에 더하여 최상위의 선(善)에 대해 심층의 최하위를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어쩌면 플로티노스의 빛의 멀어져간 마지막이 어둠인 것으로여겨, 암흑 또는 잘못(le mal)으로 추론할 수 있었으리라. 자연 발생에서 가지치기 분류가 아닌, 사유의 추론에 의한 위계질서는 질서와 지배를 견고하게 만들었다. 이런 측면을 언어상으로 보편자과 개별자로 나누었을 것이다.
    중세 초기에 그리스 학문에 대해 깊이 다루지 못했던, 중세 사유의 일반화는 포르피리오스(232?-305?)의 저서 󰡔입문(이사고게)󰡕에서 다룬 류(genre, genos), 종(l'espèce, eidos), 종차(la différence, diaphora), 고유어(le propre, idion), 우연(l'accident, συμβεβηκός), 이 다섯 가지 용어에서 문제 거리가 출발한다. 종의 상위 용어인 류는 현실적 대상이라기보다 추론상으로 상위 용어인 셈이다. 상위 용어가 하위인 종들을 덩어리, 무리, 모임, 집합 등을 추론을 통하여 (쁘왕까레 표현으로 협약으로서, 요즘 표현으로 잠정적 경계를 지어 합의로서) 일반화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용어의 일반화(보편화)가 현실적으로 실재하느냐는 문제가 그리스 원전을 좀 더 깊이 읽는 시절인 11세기 말, 12세기 초였다. 로스켈리누스(1050경-1121)에서 물체와 사유를 구별하고, 사유에서는 소리와 기호화를 구별하였다. 파리 성 빅트와르 수도원 창시자인 기욤 드 샹뽀(1070-1121)은 류에서는 상위로서 사물 속에 보편성으로, 종에서는 무차별로서 보편성이라 하여 보편성의 이중성을 드러냈고 아벨라르(1079-1142)는 상위를 신속에서 보편자(나무 관념)이며, 사유 속에서는 인간에게서 보편자(나무 기호화)라고 하면서, 이 두 보편자들의 사이에 개별적 사물의 보편자(참나무, 소나무, 잣나무) 등으로 구별했다. 보편자의 양의성(이중성)에서 물질에 속하는 보편자는 밀려나고, 추상의 극한에서 보편자와 일반화에서 사유의 기호화인 개별자 속에 보편자가 남는다. 개념화은 인간 지성의 사유에 속하고, 추상화의 보편자는 신의 인식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 되었다. 이를 20세기 초 수학의 논리주의에서 집합의 용어와 집합 속에 요소들(원자 단어)로 구별하면서 다시 전개될 것이고, 언어에서는 소쉬르가 기표과 기의는 실재성과 다르다고 할 것이다.
    인간이라는 류적 보편자가 안셀무스에 이르기까지 신학자들은 사물처럼 실재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로스켈리누스와 샹뽀가 보편자가 지성 속에서 기호화에 연관이 있다고 하면서 보편자는 사물로부터 추상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았다(post rem). 학문의 분류와 교육에서 소통을 위한 보편자라는 용어의 다의성의 문제가 제기되어, 도미니크학파의 아퀴나스 후배들은 보편자가 사물의 내부에 있어서 형상과 더불어 발현한다고 하여, 보편자에게 사물의 현존성을 부여하였다(in re). 이에 대해 프란체스코학파에서는 류가 상위이듯이 보편자는 개별자의 상위 추론의 용어로서 이름일 뿐이고, 그런 보편자는 사물들이 있기 전에 이데아처럼 먼저 상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른 현존과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ante rem). 이어서 둔스 스코투스(1365-1308)은 여기 지금 현존하는 것은 소크라테스라는 개인이며, 류와 종의 분류보다 세분화하는 개인을, 특이자를 강조하였다. 즉 현존하는 것들은 개별자들, 또는 특이자들이다. 보편자는 이름일 뿐이고 추상화된 기호일 뿐이다.
      이런 논의의 내면에서는 천국, 신이 현존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넘어서 실재성을 부정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보편논쟁에서 프란체스코파의 논의 방식이 오캄 이후로 사라진다. 내가 읽은 바로는, 프란체스코파는 프란체스코 사후에 내부에서 좌파(걸승파, 평등파)와 우파(제도파, 학문파) 사이에 싸움이 있었고, 마침 이를 중재한다는 의미에서 교황청 교리성에서 우파와 결탁하여 좌파를 마남사냥하였다. 그러나 같은 뿌리에서 서로 싸우는 것을 반성한 프판체스코 우파는 좌파를 종교재판하기를 포기하였고, 이런 종교재판의 권한 도미니크파에서 넘겼다. 이 도미니크파는 프란체스코 좌파든 우파든, 게다가 신의 ‘존재’를 ‘현존’으로 바꾸어 생각하거나 교리와 조직에 저항하는 프란체스코파와 다른 파들도 이단으로 모는데, 또는 사적재산의 소유권을 차지하는 데 종교재판을 이용했다. 그래도 성자 프란체스코의 평등, 인류애가 남아서 지금도 그들파의 수도자들이 사적 소유물(먹거리 잠자리 정도 이외)이가 없다고 한다. 도미니크파는 교황청이 재산을 소유하고 있듯이 사적 소유를 인정하였고, 소유권 유지를 위해 제국주의 전쟁(1차대전과 2차대전)에도 암묵적으로 인정하였다고 프란체스코파들이 비난했다고 한다: 도미니크파는 전쟁을 막지 않고 항상 중재한다고 하는데, 이단들을 제거하는 호교론자들의 시대 이래로 교단이 (사적)이익이 되는 쪽으로 편을 들었다고 한다. 이에 덧붙여진 맑스주의자들도, 바울 이래로 재산증식(잉여착취)에 동의하여 종교의 조직화가 로마의 참주제(황제정)을 모방하며 따라갔다고 비판한다. 불교에서는 탐진치에 빠진자들이 전쟁을 통해 이익을 챙긴다고, 이들을 마구니들이라고 비판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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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재판의 마남사냥은 점점 심해졌다. 스페인에 있었던 브루노는 도미니크파이다. 그는 무한이 보편, 완전, 제1 원인처럼 인간이 알 수 없고 신만이 아는 용어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는 실재로 망원경을 통해 하늘 뚜껑을 넘어서 우주(자연)의 무한(경계 없음)을 보았다. 교황청은 그를 잡아다가, 같은 파이기에 죽이지 않고, 로마에 데려와 학설을 스스로 폐기하도록 10년간을 설득했다. 브루노는 굴복하지 않았고, 그들은 그를 1600년에 바티칸 광장에서 산채로 불에 태워 죽였다. 사이비 신앙자들이 스스로 유일한 순교자를 세웠다.
    용어, 항목 등에서 인간 지성이 대상을 다루면서 정의하고 한계지었고, 이런 개념들을 사용해서 학문들의 여러 길들을 열었다. 근대에서는 인간이 오성(지성 또는 이성)으로 추론에 의한, 무한, 완전, 절대, 보편 등을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현존한다’고 하듯이,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무한을 생각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그것을 증명 또는 증거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천국, 부활, 천사, 절대를 비판하는 것도 무위로 끝날 수 있었다. ‘이뭣꼬’의 주제가 인간에게서 사유의 대상인 없음(0)과 있음(∞)인지, 없음과 존재단위(통일성)로서 1(하나)인지 등이 근현대 170여년 동안 주제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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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인간들에게 모든 터전(지역)에서 통용되는 보편이 있는가? 근대성에서 있다고 하고, 그것이 태생으로부터 또는 선천적으로 또는 삶의 터전에서 조건지워져있기 때문에 당연히 보편이 있다(현존한다)라고 생각한다. 이 보편은 추상의 보편이 아니라, 개념으로서 보편이다. 신과 천국, 부활과 육신화는 이제 문제거리가 아니었다. 단지 인간의 지성이 무한과 세계전체를 아는 것을 신적 지성과 같다는 정도로만 신을 인정한다. 이런 신관은 이신론이라 한다. 그럼에도 삶의 터전에서 인간들의 유대에서는, 특히 신대륙의 인디언 사냥에서, 신앙의 신이 여전히 과국가 권력과 결탁하여 종교재판과 마찬가지로 권세를 누리고 위력을 발휘했으며, 1950년 맥카시 사냥에서도 그리고 21세기 일베의 좌표찍기에서도 스며들고 있다.
    “빛들 세기”에 이르러 생산양식이 바뀌고, 노동도구의 발달과 노동력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세상에서 ‘백성이 니르고자 ᄒᆞᆯ 배’를 말하기 시작했다. 이 18세기의 하고픈 이야기를 마구마구하던 시대에, “요상한 것들의 박물관” 시대에 넘쳐나는 상상과 공상이, 넘쳐나는 만큼이나 신체를 통해 증거를 보여주거나 검증되는지를 점검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그리고 지성은 “백과사전”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하고 등록하였듯이 시간이 필요하다. 백성이 스스로 찾아볼 수 있는 정보체계의 성립, 자연이 드러내는 방식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기록, 인간이 자연 속에서 스스로 사유의 극한을 찾아가고 방식 등은 신을 통한 제도와 체제가 아니라, 인간이 평등과 자유를 기반으로 스스로 제도와 체제를 만들 수있다는 생각에서 대혁명에서 “제헌”하여 공화제를 만든다.
  혁명이 4년만에 좌초하고, 사람들이 스스로 제도와 체제를 만든다는 것의 한계는 인간들 사이의 생산양식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맑스가 말한 생산력의 발달이 인간의 의식을 바꾼다는 것은 역사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산업화 시대에 생산력의 확대는 생산양식, 즉 생산도구의 사적 소유를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종교의 권세, 제국의 권력, 논리지식의 권위의 세 카르텔들은 암묵적으로 전쟁을 묵인하였다. 게다가 20세기 내내 크게 보아 인민 대 자본이라는 두 세력의 대립에 있었다. 세 패거리들은 여전히 절대적 지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패권 전쟁을 거의 현상적으로 부추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원화 또는 다원화의 상황에서 미국 대 중국, 러시아 대 나토(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대 이란 승패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 모른다. 미래는 예측 불가능한다. 그럼에도 21세기에 디지털기술의 말 그대로 비약적인 발전이, 역사에서 어떤 방식과 방향으로 진행할지 아직은 모른다.
    비결정성, 불확정성의 시대이다. 논리의 틀, 언어의 구조, 사회의 제도 등에서 구성과 구축이 해결책이 아님을 세 패거리들이 드러내고 있다. 중세 이래로 유일신앙에 포로가 되고, 제국주의에 포획되고 또한 그 체제 안에서 제도에 포섭되어서, 인간의 사유를 구속되었다. 이런 실천의 방향을 전도시켰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스스로도 도는 운동을 하고, 게다가 먼거리를 태양주위를 도는 지구. 그리고 자연. 그 자연에서 운동하는 발생하는 자치성과 자발성을 사유하면서, 사회에서 공공성을 제도에서 공화정을 이루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6:13, 59SMA) (8:02, 59SMD)

댓글
천하루 26-08-25 15:58
 
플라톤 전문가인 박홍규 강의에 따르면, 플라톤에서는 단위에게 질적 크기와 양적 크기를 표현하기 위해 용어를 구별하지 않고 있어어 읽는데 여려움이 있다고 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크기를 양적으로 환원하고 그 양적 대상을 자리(공간)에 위치시켜서 편하다고 한다. 그러나 영혼에 관하여서는 플라톤 사유와 아리스토텔레스 사유를 구별하기 쉽지 않다고 하였다.
  그런데 내가 이 수학사를 읽으면서, 단위설정에 네 종류[수, 원자, 하늘운동(혼), 몸의 운동(음)]가 있다는 데, 외부단위(감각)과 내부단위(지각) 사이의 이런 구별이 근대의 분석학에 와서야 구별되기 시작하고, 1830년대 열역학, 파동역학, 전자기학들의 등장으로 수와 원자로 설명되지 않은 분야들을 다루는 다른 방식들을 고안해 내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후에는 사회학과 심리학 등에서 비례중항과 조화중항의 차이를 다룬다. (59S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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