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은 철학적사유의 대상이었을까? : 기원전1000년 경에도
입추(立秋), 어릴 때 듣기로는 입추에는 동해안의 해류가 바뀐다고 했는데...
왜 서양철학사에서 직관은 거의 3부류로,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처럼, 지성(이성), 윤리(이상성), 감성(내재성)으로 나누어서 생각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수의 기원 또는 점의 기원에 대한 탐구는 거의 모든 사유를 뒤집어 놓았다. 직관, 그것은 인간의 여러 방법들 중의 하나를 합의한 것에 지나지 않을까? 직관은 관념도, 개념도, 정의도, 공리도 아닌 삶의 방편에서 나왔을까?
아래 글은 브룅슈비끄(1869-1944)의 “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에서, 제20장 직관의 근대적 용어를 번역하여 보았다. [꺾쇠는 역자의 생각이다.] 저자가 용어라고 쓴 것에서, 어떤 관념, 개념, 명사, 판단 등에서 보편성과 절대성이라는 것이 신앙보다 더 인위적이 아닌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59RKG)
제20장 직관의 근대 용어 La notion modern d’intuition 427
[왜 유클리드의 직관의 기원에 대한 설명을 빠뜨렸을까? 퓌타고라스를 기하학적 직관의 기원으로 보았기에? 퓌타고라스의 직관에 이원성이 있지 수와 비례(음악)에서 (58WKH)]
§257. [경험주의란 단순히 영국 경험론을 의미를 넘어서, 자연의 발생과 진행과정을 포함하는 생물학적이고 심리학적인 경험이다. 벩송과 들뢰즈가 경험주의를 무매개적 자료들이라 한 것도 이런 의미이다. 여기서, 나는 427쪽에 이르러서야 무매개적 자료들이란 용어의 설명을 처음 보았다. (59SKD)]
우리는 논리학 진화의 내적 논리 속에서, 이중 운동을 따라가고자 시도했다. [처음 읽을 때 몰랐지, 번역하기 위해 두세 번 다시 읽으면, 이 ‘직관’의 새로운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대의 이데아의 직관, 중세 종교를 빼고, 데카르트의 타고난(선천적)직관, 칸트의 선험적 형식의 직관, 쁘왕까레와 벩송의 경험적(기억) 직관이 나올 것이다. 이 직관의 자료들은 생명현상의 변형과정에서 형성되고 창조된 무매개적 자료들이다.(59SKD)]
이중운동에 의해 산술학자들과 논리계산학자들은 선천적 형식들의 그물망 속에 근대 수학들의 체계를 포함하기를 시도했다. 만일 우리의 해석이 정확하다면, 일어났거나 또는 마치 일어났어야만 했다. 즉, 방법 속에서 가정된 형식주의는 어느 정도로는 그것의 내속적 진리의 과학을 비우게 한다. 그리고 그 해석은 형식주의를 경험으로, 즉 형식주의에게 내용을 보내줄 수 있는 경험으로만, 되돌려 보낸다. 사실상 어떤 헬름홀쯔 같은 이의 산술적 선천주의, 어떤 러셀같은 이의 논리적 선천주의는 경험주의 신앙의 공표[선언]을 동반한다. (427)
경험주의는, 수학주의의 또는 논리계산의 형식주의적 국면 하에서 고려해 보았던, 합리주의의 약화(la défaillance)가 남긴 빈 유산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427)
고전적 경험주의가 중요한지를 묻는 질문은 전혀 제기되지 않는다. 그 고전적 경험주의에서 경험은 무매개적 자료(la donnée immédiate) 더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자료는 마치 감관들과 상상작용에서 현재[표현]하는 대로 있는 것과 같다. 이 무매개적 자료들은 정확성(exacitude)와 정밀성(précision)의 어떠한 특성도 지니고 있지 않다. 이것들 없이는 양적인 과학의 요소들을 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함에도 말이다. [경험적 자료로서 무매개적 자료의 불확실성 때문에 19세기 말까지 철학적 담론에서 제외되었다. 수학사에서는 파스칼이 이 자료의 중요성을 수학적으로 문제 제기했으나, 종교적으로 독해하면서 무시되었다가, 집합론이 구렁텅이(파라독사)에 빠졌을 때, 다시 레비브륄과 벩송에 의해 심성의 중요성이 다시 제기된다.]
기하학의 가장 단순한 도형들이 그것들의 이론적 완전함의 이유[근거]로써 도형들일 뿐만 아니라, - 자연의 관찰은 우리에게 그것들 중의 예들을 가장 어렵게 제공했을 것이다. [예로서 도형들도 있고 수들도 있다. 그런데 수학사는 세는 것이 먼저이며, 세는 중에서 몫을 나우어서 세야하는 경우가 있다. 둥근 빵떡을 반, 반의 반, 그 반의 반 등에서 나누기와 분수의 차이를 알았다. 나누기는 정수의 비례인데 비해, 분수의 비례는 전체의 균등분할을 문제 삼는다. 전자에서 수의 나열에서 손가락을 기준으로 10진법이, 이 후자에서 하늘의 운행을 기준으로 60진법이 도래했을 것이다.]
- 또한 통용되는 경험에서 주어진 수학적 단위들 [대상들을 단위들, 차이들로, 복수로 표현한 이유가 있다. 수의 나열의 단위와 원의 분할의 단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의 자격으로 대상들을 보존하기 위하여, 그것들[대상들]을 서로서로 따로 파악하게 하는 차이들을 추상해야 하기 때문이고,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을 다루는 방식이 수학적이다. 수적 차이와 기하적 차이는 나누는 방식이 다르다.]
그것들[대상들]에게 그것들의 개별적 실재성과 대조를 이루는 개념적 동질성을 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산술학과 기하학이 경험의 지평 위에서 구성된다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명증성 자체로서 나타난다. [데카르트의 명석판명한 명증성은 논리적 추론의 결과로서 지성의 역할에서 나온다. 여기서 수와 도형(원)의 명증성은 파스칼처럼 심정, 벩송처럼 심성의 직관에서 나온다. ]
그렇다고 그것들[산술과 기하]이 경험으로 파생한다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경험이 어떤 조건에서 만족하게 되는 지를 규정할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것은] 수학적 추론작업들의 거대한 발전이 마치 자연의 관찰에 의해 무매개적으로 현재 소개[제시]된 현상들의 단순한 재생산처럼 고려되기 위해서 이다. (428)
전통적 경험주의의 비판은 – 또는 만일 사람들이 원한다면 근대 경험주의의 발전은 – 과학적 경험 자체 속에 정신이 경험의 무매개적 자료들에게 충분히 기여했다고 것을 모두 제시하는데 있고, 또한 추상과 발명의 수 천가지의 우회로를 나열하는데 있다. 추상과 발명에 의해 과학자의 천재적 재능은 자연이 그 자체 스스로 폭로되도록 강요되었다. 경험과학이 구성되었던 절차들의 분석은 거대한 활동성의 지대(une zone)[영역]을 규정하는 데로 인도되었고, 그럼에도 그 활동성의 지대는 순수하게 논리적 추론작업의 선천적 틀들 속에 되돌아가지 못하였다. 그 지대가 직관의 지대일 것이다. (428)
§258. [직관의 역사적 이해, 퓌타고라스의 천문학과 음향, 아리스토텔레스 생물학, 데카르트의 기하학에서 지성의 직관, 파스칼에서 심장의 직관.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직관, 칸트의 선천적 판단들의 직관, 벩송의 기억 직관, 레비브륄의 심성의 직관, 쁘왕까레의 협약의 직관, 브라우베르의 수학적 직관주의 등장하게 되리라.]
이 직관이란 용어 주위에, 수많은 반성들이 방낮처럼 밝혀지게 되었고, 이것은 우리게게 과학적 철학의 심장을 꿰뚫게 하였다. 그러나 직관의 용어에 내재하는 유동성을 이유 때문에, 마치 직관이 과학의 해석작업에 도입할 수 있었던 새로운 난점들처럼, 직관에 힘입었던 정복들의 정확한 명세표를 세우는데 불편했다. 산술주의와 논리계산의 철학들을 특성화하는 직선의 발전에는, 역사를 관통하여 미묘하고 복잡한 진행이 대립된다. (428)
이미 의심할 바 없이, 수학적 사유의 결정적 각 단계에tj 우리는 직관의 이런 용어를 만났다. 심지어 철학들의 기원의 형식 하에서, 산술학을 토대로 하는 그리고 논리학을 토대로 하는 철학들은 직관들 위에 근거하는데, 즉 퓌타고라스와 더불어 기하학적 직관(또한 아마도 천문학을 포함하여) 위에, [흥미있는(?) 표현이다. 에우클레이데스가 아니라 퓌타고라스와 더불어 기하학적 직관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천문학과 하늘의 음향에 대한 퓌타고라스주의자들의 관심이었다. 에우클레이데스의 기하학의 직관은 지성의 직관이라면 천문학과 음향의 직관은 심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와 더불어 생물학적 직관 위에 근거한다. 데카르트의 기하학은 직관의 철학을 함축한다. 이런 데카르트의 직관에 대해, 파스칼의 독창적 해석은 대립된다. 파스칼의 해석은, 여러 측면의 고려에서 동시대 철학의 가장 깊은(심층)의 개념작업을 알린다. 결국에는 산술학과 기하학의 선천적 판단들 속에 직관의 재총합에 의해서, 칸트는 라이프니츠의 독단론과 단절을 표시한다. (429)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사람들이 의미를 정확하게 고려하고자 원하여, 그런 의미에서 동시대 철학이 직관이란 단어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이야기[역사]를 길게 나열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직관적 방법들에게 회귀에 의해 예를 들어 근대 기하학의 확장을 상기하면서, 또는 분석학의 가장 추상적인 사색들을 위하여 공간적 도형화들의 영속적 도움을 강조하면서, 그 이야기를 완전하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퓌타고라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 전통들에게 수세기의 특권을 고려하지 않으면서도, 만일 사람들이 19세기 제작기술에 의해 완성된 진보들에게 오로지 관련되어 있었다면, 사람들은 산술학 또는 논리계산의 발생과 성공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리라. 마찬가지로 만일 사람들이 19세기 전체를 통해 발전되었던 사유의 광활한 흐름을 주의하지 않았다면, 또 그 사유의 흐름으로부터 수학들의 적용이 마지막 허용이었던 것으로 나타나는 것을 주의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직관적 관념이 허용하는 넓이[폭]와 풍부함을 완전히 인정하지 못하는 위험에 처했을 것이다. (429)
심지어 아마도 저기에서처럼 여기에서도, 근본적 관념의 범위를 평가하기 위하여, 관념들에 대해서 규정했던 것만큼이나 잡다한 기원들을 가능한 만큼 완전하게 규정하는 것이 소용없지 않을 것이다. [직관의 기원들을 설명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기원 또는 근원애 달라서 형이상학도, 도덕론도, 종교론도 다르다. ]
수학적 지평 바깥에서 태어난, 직관이라는 근대 관념은 수학의 고유한 성격들에 단번에 완전하게 적응되지 못햇다. 수학이 행했던 봉사들에도 불구하고, 수학은 몇 가지 질문들에의 의미화[기호화]작업을, 그 질문들을 수학의 언어가 아닌 언어로 옮기면서, 모호하게 했을 수 있다. 이어서 현실과학의 구성작업에 더 이상 연결하지 않는 선천적 틀들에 대해 동시대 수학 철학을 넘어선 후에, 우리는 실행할 새로운 노력을 가질 것인데, 현실과학을 수학들의 분과학에게 조차도 낯선 선입견들로부터 분간하기 위해서, 그리고 과학의 특수성에 알맞은 항목들 안에서 수학적 철학의 고유한 문제를 제기하기에 이르기 위해서 이다.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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