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질서는 나의 고질병이었다. 책상과 책장은 물론이고 옷장과 싱크대, 심지어 휴대폰의 갤러리조차 정리되지 않은 채 그저 큰 덩어리로 엉켜 있었다. 회사에 다닐 때도 늘 붕괴 직전의 책더미와 자료에 포위된 채였다. 클린 데스크 캠페인 같은 것도 나를 갱생시키지 못했다.
무작위를 디폴트 삼아 일상은 간신히 유지됐다. 계절이 끝나갈 때쯤 겨우 서랍장을 비워내거나, 컴퓨터가 반복적으로 경고 메시지를 보내면 마지못해 여분의 용량을 더 구매하는 식이었다. 범주에 맞게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보다 싹 버리고 이사하는 것이 내겐 훨씬 수월했다.
문제는 감정이었다. '내가 통제하지 못한다'는 불쾌감 혹은 불안감. 꼬여버린 전선이 덩어리째 노출된 집안 살림, 통제할 수 없는 사춘기 아이, 계획할 수 없는 미래, 산만한 관심사와 꿸 수 없는 관계들, 단어들… 그런 혼돈 속에서도 느슨하게나마 마감을 지키고, 주기적으로 책을 출간한다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일찍이 이어령 선생도 고백했다. "내 책상은 엉망이야. 하지만 나는 카오스를 부끄러워하지 않네. 마구잡이로 책을 읽는 것도 좋고, 그 안에서 나만의 코스모스를 발견하는 것도 즐겁다네."
이즈음에 혼돈 경제학자 팀 하포드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불완전함에 대하여'라는 그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무질서, 혼돈, 모호함, 불완전함에 관한 그간의 오해를 벗었고 큰 해방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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