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자연재해, 상상을 초월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83107490005641?dtypecode=pancode_main네팔·티베트 대홍수 사망 797명·실종 3048명…터널 구조 사력입력 2026.08.31 07:54한국일보를 선호 출처로 추가김현우 기자네팔, 수력발전소에서 집중 구조작업미국·캐나다 등 긴급 자금 지원이미지 확대보기29일 네팔 홍수 피해 지역 중 한 곳인 누와코트 지역 비...
시진핑 정부가 추진 중인 육·해상 실크로드(一帶一路) 프로젝트를 계기로, 고대 동서 문명의 통로였던 실크로드에 대해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은 2013년 9월과 10월 시진핑 주석의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순방기간 중 처음으로 제시됐다. 실크로드는 동양의 대국인 중국과 서양이 만나는 문명과 물자 교역로였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시진핑 정부는 팍스 아메리카와 대비되는 일대일로라는 전략을 구상해 냈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시아누크빌,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대상 국가도 동남아시아부터 시작해 동북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은 물론이고 유라시아를 넘어 멀리 아프리카까지 60여 개국에 이르고 있다. 중국정부가 밝힌 구체적인 방법은 해당국 간 정책적 소통, 통로 연결, 무역 활성화, 화폐 유통을 통해 마음과 마음을 이어나가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는 우선 두 가지 목표를 갖고 있다. 첫째, 실크로드 해당국에 고속철도를 비롯한 SOC를 건설하는 등 해외투자를 통해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달러 과잉을 해소하려고 한다. 둘째, 중국내 생산능력 과잉의 문제를 해소하려고 한다.
철강과 시멘트 등 과잉생산 능력을 이들 국가에 수출함으로써 자국 내수시장의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면서 반대로 천연가스와 석유, 비철금속이 풍부한 이들 국가의 원자재를 대금으로 받는 등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동양과 서양의 문명 교역로인 실크로드는 언제 개설됐을까? 실크로드는 중국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유럽이 서로 물자들이 오고가는 교역로였다. 원래 실크로드라는 말은 그 당시부터 사용되던 용어는 아니다. '실크로드'는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1877년 중국에서 중앙아시아, 인도로 이어지는 교역로를 연구하던 중 주요 교역품이 비단이었던 것에서 착안해 독일어로 자이덴슈트라쎄(Seiden Straße)로 이름 붙인 것이 계기가 됐다.
중국어로는 쓰처우즈루(絲綢之路)라고 부른다. 실크로드는 먼저 2200년 전 중국대륙 북방을 차지하고 있던 흉노족을 설명해야 이해가 쉽다. 흉노족은 농사를 짓기 어렵기 때문에 유목생활을 했다. 북방의 추운기온은 그들에게 정착생활을 허락하지 않았다. 유목생활은 초지를 찾아 이동을 주로 하다 보니 어린 아이들도 말을 잘 다룰 줄 알았다. 기동성이 뛰어나 전쟁 시에는 상대를 압도했다. 중국대륙에서 천하 통일이 있기 전인 B.C 6세기 광활한 몽골고원 일대에 흩어져 있던 유목민족들은 하나로 뭉친다. 부족 단위로 흩어져 살아왔던 유목민족들이 하나의 국가형태를 갖추다보니 강대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B.C 221년, 진나라가 혼란한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천하를 통일한 그 무렵, 북방의 유목민족국가 흉노가 출현했다. 기동력이 뛰어난 흉노는 중국대륙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흉노의 남침에 진나라에 이은 한나라도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 통일제국 진나라는 만리장성을 개축해야 할 정도로 흉노가 위협의 대상이었다. 15년 만에 진나라가 무너지고 유방이 한나라를 건국하고 나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한나라 초기 감숙성 란저우에서 돈황에 이르는 하서주랑은 흉노 등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정에서 서역과 교역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