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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밭인가, 꽃밭인가
  • 공형일
  • 등록 2026-08-06 15:15:35
  • 수정 2026-08-06 15:32:54
  • 자연의 지혜와 고마움이 피어나는 상생의 텃밭

자연의 지혜와 고마움이 피어나는 상생의 텃밭


텃밭에 잠시 서서 눈을 감고 더위 속에서도 소슬하게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들어본다. 알록달록 무성하게 어우러진 생명들을 보고 있자면, 번득 마음속에서 소박한 질문 하나가 피어오른다.

“이곳은 먹거리를 일구는 채소밭인가, 아니면 마음을 달래는 꽃밭인가?”

송구함과 고마움 사이, 흙을 만지는 마음

솔직한 고백을 건네자면, 이 작고 알록달록한 텃밭을 일구며 문득 쑥스러운 송구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오직 가족의 생계와 수확을 위해 흙에 피와 땀을 쏟으셨던 부모님 세대, 그리고 오늘날에도 폭염과 가뭄 속에서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시는 전문 농업인들의 눈으로 보면, 채소밭 구석구석에 꽃을 심고 넝쿨을 올리는 모습이 한가로운 '한량의 놀이터'이자 철없는 사치로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치열했던 그분들의 노고에 비하면 나의 텃밭은 한없이 아기자기하고 한가롭기만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먹고사는 절박함에서 한 걸음 비켜서서 각자의 환경과 취향에 따라 흙을 감촉하고 식물과 대화할 수 있는 이 시대와 환경에 살고 있음이 새삼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 송구함과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이 조그만 땅에 자연이 가르쳐준 '상생(相生)의 지혜'를 하나씩 차곡차곡 심어보았다.

서로의 곁을 지키는 삼총사: 고추, 맨드라미, 대파

밭의 중심에는 곧게 서서 매콤한 열매를 맺어가는 고추가 있다. 그 곁으로는 화려하게 붉은 벼슬을 올린 맨드라미가 고개를 들고, 뿌리목 가까이에는 푸른 대파가 알차게 자리를 잡았다.

어쩌면 무심코 섞어 심은 듯 보이는 이 조화 속에는 서로를 보호하는 식물들의 깊은 정이 담겨 있다.

  • 맨드라미의 미끼와 방패: 화려한 색감의 맨드라미는 고추를 위협하는 진딧물과 해충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끌어 모으거나 억제하는 '천연 방패'가 되어준다. 덕분에 독한 농약을 치지 않고도 고추는 건강하고 푸르게 자라난다.


  • 대파의 은밀한 지원: 대파 뿌리에서 분비되는 특유의 향과 유기 물질은 흙속의 병원균(풋마름병, 역병 등)을 막아주는 파수꾼 역할을 한다. 고추 뿌리가 안심하고 땅속 영양을 담아낼 수 있도록 든든하게 터전을 지켜주는 셈이다.

    눈을 즐겁게 하는 맨드라미의 붉은 빛과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대파, 그리고 고추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풍경은 농토를 넘어 단아한 정원이 된다.

땅을 품고 햇살을 걸러주는 호박과 오이

여름날 장마가 지나간 다음에 작열하는 태양이 떠오르면 메마른 땅은 딱딱하게 굳고 뜨거운 열기가 지표면을 짓누른다. 텃밭의 살아있는 생명들이 서로를 감싸 안으며 가뭄을 이겨내는 지혜가 무엇일까 생각해서 실험을 하고 있다.

  • 땅을 안아주는 호박: 바닥으로 넓게 뻗어나간 호박잎은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는 자연의 '살아있는 덮개(Living Mulch)'가 되고, 수분이 바짝 증발해 땅이 굳어지는 것을 막고, 흙 속 미생물들이 숨 쉴 수 있는 그늘진 습도를 지켜줄 것이다.


  • 서쪽 햇살을 다스리는 오이: 오후가 되면 서쪽에서 기세등등 들이치는 강한 햇살을 막아주기 위해 오이 넝쿨을 위로 높이 올려 보았다. 오이의 무성한 잎과 덩굴은 따가운 직사광선을 부드럽게 걸러주는 '생태 그늘막'이 되어, 아래쪽 작물들이 열해(熱害)를 입지 않고 편안히 숨 쉬게 도와주지 않을까?


  • 먹거리 수확 보다는 자연의 시를 하나 얻음에 더위에 흘린 땀의 보람이 더 크게 느껴진다. 

"자연에 우연이란 없다. 서로를 살리는 지혜가 있을 뿐."

바닥을 품어주는 호박, 서쪽의 강한 해를 가려주는 오이, 토양의 병해충을 막아내는 대파와 맨드라미, 그리고 그 중심에서 영글어가는 고추! 이 배치는 농사라기보다 서로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오랜 자연의 동반 재배(Companion Planting)가 만든 아름다운 시(詩)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붉게 타오르는 맨드라미 꽃잎 사이로 청초한 오이꽃과 노란 호박꽃이 함께 어우러지는 이 아담한 공간.

누군가 찾아와 "이곳이 채소밭입니까, 아니면 꽃밭입니까?" 하고 물어본다면, 부모님과 농부들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이 땅이 주는 고마움을 마음에 품고 나지막이 답하고 싶습니다.

"서로를 보살피는 자연의 지혜와, 오늘을 살아가는 고마운 마음이 함께 피어나는 상생(相生)의 정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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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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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niceye2026-08-06 22:52:04

    텃밭을 단순한 재배 공간이 아니라 자연의 상생과 감사의 철학을 담은 정원으로 풀어내신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부모님 세대와 농업인에 대한 존경을 바탕으로 자연의 공생 원리를 연결하신 흐름이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다만 맨드라미의 해충 억제 효과 등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동반재배 사례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해당 부분은 조금 더 신중하게 표현하시면 글의 신뢰성이 더욱 높아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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