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자연재해, 상상을 초월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83107490005641?dtypecode=pancode_main네팔·티베트 대홍수 사망 797명·실종 3048명…터널 구조 사력입력 2026.08.31 07:54한국일보를 선호 출처로 추가김현우 기자네팔, 수력발전소에서 집중 구조작업미국·캐나다 등 긴급 자금 지원이미지 확대보기29일 네팔 홍수 피해 지역 중 한 곳인 누와코트 지역 비...
장편소설_칸첸중가_013_붉은 술
까말라는 여덟살
이튿날 아침, 룸부네 부엌에서 일하는 어린 소녀를 보았다. 룸부의 손녀 아닐까 싶었는데 친손녀가 아니었다. 먼 산동네에 사는 친척 집에서 데려다 기르는 소녀라고 했다. 장작을 나르고, 물을 길어 오고, 그릇을 씻는 등 허드렛일하면서 학교에 다닌다는 여덟 살 소녀의 이름은 까말라, 까말라는 연꽃을 뜻한다고 했다.
까말라가 입은 스웨터는 우리가 어렸을 때 입었던 것과 흡사했다. 주변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절, 내가 본 우리 동네 어머니들은 헌 스웨터를 풀어서 둥글게 감아놨다가 다시 스웨터를 떠서 아이들에게 입혔다. 까말라가 입은 스웨터는 바로 그것과 흡사했다. 얼핏 촌스럽게 보이지만 두 손의 노고가 깃든 것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꽃들이 다투어 핀 산골의 봄날처럼 따스하고 정감 있어 보였다.
설거지하느라고 스웨터의 소매를 걷어 올린 까말라의 가느다란 팔을 보면서 누가 그 스웨터를 떠 주었는지가 궁금했다. 룸부에 의하면, 까말라가 입은 스웨터는 보름쯤 전에 다녀간 한 여행자가 떠 준 것이었다. 그 여행자는 티베탄 전통 의상인 바쿠 차림의 젊은 동양 여성이었고, 며칠 묵는 동안 대체로 말없이 뜨개질만 하고 있었기에 이름이나 국적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버스나 기차, 대합실이나 카페 등에서 뜨개질하는 여행자들을 더러 보기는 했지만, 이런 산골까지 와서 아이들 스웨터를 떠주는 여행자도 있을 줄은 몰랐다. 다르질링의 티베탄 난민촌 어느 골목에서 스친 여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여성은 햇살 가득한 마당에 빨래를 널어놓고 문 앞에 앉아 뜨개질하고 있었다.
작별하기 전에 룸부는 서양식 머그잔에 가득 담긴 따뜻한 락시를 내왔다. 그는 조만간 꼭 다시 오라면서 이젠 친구이기 때문에 한 달을 있어도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실리콜라의 펨 도마
룸부네 동네를 벗어나 랄리구라스꽃 숲 사이로 난 산비탈 오솔길을 걸어 실리콜라 강으로 내려왔을 때는 오전 10시경이었다. 강가에 아담한 산장이 있었다. 저마다 어여쁜 꽃을 피운 작은 화분들이 처마 밑에 조르르 놓여 있는 산장이었다. 그 집 딸이지 싶은 아리따운 처녀 펨 도마가 가져온 술은 붉은빛이었다. 우리나라의 진달래술처럼 랄리구라스꽃을 꼬도 락시에 담아 오래 묵힌 술이었다. 그 술은 향기로웠으며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느낌도 좋았다.
붉은 술이 독했나 보았다. 몇 잔 안 마셨는데도 호텔 앞 현수교_懸垂橋를 건너자니 어질어질했다. 다시 비탈을 오르자니 몹시 숨이 찼다. 대숲이 우거진 실리콜라의 맞은편 언덕에 올라서자 넓은 길이 나왔다. 길은 대숲이 끝난 후부터 점점 넓어지더니 산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새로운 마을이 나타나곤 했다. 집집마다 룽따가 높다랗게 펄럭였고, 처마 밑에 늘어놓은 화분의 꽃들이 가난한 집 어린 딸들처럼 아리따우면서도 애처로웠다.
길에 나와 놀던 아이들이 ‘타시델레’하고 인사했다. 털북숭이 강아지들도 꼬리를 흔들며 왕왕 짖었다. 길 밑으로 실리콜라 강이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였다. 지도를 보니 강 건너로 마주 보이는 산은 시킴_Sikkim 주에 속했다. 비탈이 심한 산의 옆구리에 계단식 경작지와 마을과 길이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거기쯤에서 일본 청년들은 다시 만났다. 그들은 다르질링에 가자마자 시킴주 입경 허가를 받겠다고 했다. 시킴주 당국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1년에 한 번만 15일간의 시킴 체류를 허가해 주고 있었는데, 다르질링에서도 수속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일본 청년들은 저마다의 상념에 젖어서 뚝뚝 떨어져 걷고 있었다. 나는 맨 뒤에 한참 떨어져서 걸었다. 내 앞에 가는 일본 청년 요시부미는 산모퉁이 길로 접어들 때마다 돌아서서 손을 흔들었다.
다르질링으로 가는 막차가 떠날 시간이 가까워졌으니 어서 오라고 보내는 신호였다. 염려하지 말라는 뜻으로 나도 손을 흔들어 주다 보니 나는 길 떠나는 식구를 배웅하러 나온 그 동네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멀리 떠나온 게 아니라 돌아와 있는 것 같았다. 길가의 마을들은 그토록 친숙했다.
마을마다 까말라가 입은 것과 같은 종류의 손뜨개 스웨터를 입은 아이들이 눈에 뜨였다. 아침부터 마신 술에 좀 취한 탓인지, 아이들이 입은 스웨터 모두가 까말라가 입은 것과 같은 사람이 뜬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곧 양지바른 처마 밑에서 뜨개질하는 아기 엄마를 보았다. 그녀는 포대기에 싼 젖먹이를 옆에 뉘어 놓고 있었다. 내가 타시델레 하며 그 동네 인사말을 하자 그녀도 타시델레 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 길모퉁이에서는 소 세 마리를 앞세우고 걸어오면서 뜨개질하는 젊은 여성도 보았다. 그녀는 실 뭉텅이를 담은 작은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었는데, 소가 밭으로 들어가려 하자 어느새 뜨개질감을 한 손에 모아 쥐고 다른 한 손으로 돌을 주워 던져 소를 밭에서 쫓아냈다. 그러고는 다시 뜨개질하며 걸었다.
그런 걸 보면 동네 아이들이 입은 스웨터는 대개 아이들의 어머니들이 떠 준 것이겠지만, 룸부네 집에서 본 어린 소녀 까말라에게 스웨터를 떠준 그 여행자가 이 마을 어디선가 뜨개질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자 그 묵언 수행자를 꼭 만나게 될 것 같은 예감에 가슴이 뛰었다.
버스 종점 마을 림빅
큰 마을이 나왔다. 버스 종점이 있는 마을 림빅이었다. 길가에 크고 작은 상점들이 좌우로 죽 늘어서 있었다. 옷 가게, 그릇 가게, 쌀가게, 대장간이 있었고, 값싼 화장품과 장신구와 털실 등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이어 시계 라디오 손전등을 팔거나 수리하는 집, 선술집과 여인숙과 약방이 나오고 저만치 버스와 트럭이 몇 대 서 있는 종점이 보였다.
멀찍이 앞서갔던 일본 청년들은 커다란 화물 트럭 옆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뭔가 상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중 한 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급하게 손짓했다. 요시부미였다. 그에 의하면 막차는 오후 1시에 이미 떠났다. 그런데 그들 앞에 있는 화물 트럭이 다르질링으로 출발하려는 참이라고 했다. 요시부미는 일행이 한 명 더 있다며 트럭을 붙잡아 두고 있었을 것이었다.
트럭이 시동을 걸었다. 시커먼 매연이 뿜어져 나왔다. 일본 청년들은 차례로 트럭에 올랐다. 이미 화물칸에 올라앉아 있던 현지인들이 그들의 무거운 배낭을 받아 주는 등 일본 청년들의 승차를 도왔다. 마지막에 승차한 요시부미가 아직 배낭을 벗지 않은 나에게 배낭 올리는 일을 도와주겠다는 손짓을 했다.
탈까 말까 망설인 것은 한순간이었다. 나는 더듬대는 영어로 트럭에 올라타지 않겠다는 거부 의사를 확실하게 밝혔다.
“No thank you, I want stay here. Have a good journey."
미소 띤 얼굴로 한 손을 들어 흔들며 말했지만, 트럭을 붙들어 놓고 나를 기다려 준 요시부미에게는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혼자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탈 걸 그랬나? 아냐, 안 타길 잘했어. 탔으면 넌 못 만나. 예감했잖아? 이 마을에서 만날 거라는 예감이라고 생각해? 저걸 탔으면 오늘 중에 다르질링에서 만날 수도 있었을 거야. 그럴까? 하지만 이젠 늦었어. 봐, 트럭이 벌써 저만큼 가고 있잖아.
트럭은 떠났고, 트럭이 뿜어낸 시커먼 매연과 먼지만 남았다. 매연과 먼지가 가라앉으면서 좀전의 갈등도 가라앉았다. 갈등이 가라앉자, 금방 허전해졌다. 이사 가는 가족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사람이 되었다. 돌아서서 온 길을 되짚어 걸을 때는 가족은 물론 아는 사람도 남아 있지 않은 옛 고향에 돌아온 자가 되어 있었다. <</span>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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