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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17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이상적 신성》
  • 조율여백
  • 등록 2026-08-17 11:30:01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이상적 신성》

                                   조율여백 이수진


인류가 만들어 온 종교적 전통 가운데에서 제 성향을 굳이 비교해 본다면, 특정 교리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무교적 관점에 가까우면서도 대승불교가 지닌 연민과 보편적 구제의 의미에 일정 부분 공명하는 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종교라는 명칭이 명확하지 않다고 해서 신성에 대한 사유까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저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신의 형상과 교리로부터 조금 거리를 두고, 불완전한 존재와 세계 속에서 어떠한 신성이 합당한 것인가를 개인적으로 탐구해 보고 있습니다.


미물적 존재인 인간으로서 고통을 좋아하거나 받아들이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저 역시 고통을 부정하거나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가 완전하지 않다면 고통과 갈등 또한 어떤 형태로든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단순히 외면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고통을 직면할 용기가 있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으로,


그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자신과 다른 존재, 그리고 환경에 이로운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만약 어떤 고통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극한의 상태로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그 상황을 감당할 책임과 소명이 자신에게 있는지도 묻게 됩니다.


저에게 신성은 고통이 없는 완전한 상태라기보다, 오히려 불완전함 속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어떻게 다루고 어떤 방향으로 전환하는가에 가까운 개념입니다.

●위 이미지는 인공지능을 통해 생성되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온 종교의 신 개념 가운데에는 때때로 절대적인 권능과 심판을 통해 지배와 복종의 질서를 정당화하는 모습도 나타납니다. 저는 그러한 신성의 모습이 인간의 욕망과 권력 구조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에 대해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이상적 신성은 그와는 조금 다른 모습입니다.


불완전한 세계에서 고통이 집중되는 지점을 외면하지 않고, 그곳에서 무너지는 존재들을 바라보며 구조를 유지하고 다시 순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 감내하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그 신성은 자신을 과시하거나 복종을 요구하기보다, 오히려 가장 무거운 부분을 감당하면서 다른 존재에게 살아갈 여백을 남겨주는 방향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바라본다면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삶의 기회 역시 단순히 저에게 주어진 권리라고만 생각하기 어려워집니다.


제가 지금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수많은 존재의 노력과 희생, 자연이 유지해 온 조건, 역사 속에서 누군가가 감내했던 시간과 선택이 겹쳐 만들어진 결과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제게 주어진 기회를 소유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기보다, 앞선 감내가 남겨 준 기회에 대한 응답으로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 응답은 거창한 업적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부당함을 줄이고, 왜곡을 객관화하며, 서로 다른 존재가 조금이라도 더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향을 찾고, 제가 받은 기회를 다시 다른 존재에게 이로운 형태로 연결하는 것 역시 하나의 응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제가 추구하는 신성은 완전함 그 자체라기보다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더 나은 순환을 만들어 내려는 의지에 가깝습니다.


고통을 없앨 수 없다면 그것을 무의미하게 반복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부당함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면 그것이 더 큰 부당함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막으며,

제가 받은 기회를 독점하기보다 다시 이로운 방향으로 연결하는 것.


저에게는 이러한 태도가 인간이 신성을 사유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며, 동시에 미물적 존재로서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수행의 형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완전한 신성을 소유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확신을 경계하고 싶습니다.


다만 불완전한 세계에서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감내의 의미를 기억하며, 존재에게 다시 기회를 돌려주는 방향을 향해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것이 제가 현재 이해하고 있는,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이상적 신성에 가장 가까운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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