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자연재해, 상상을 초월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83107490005641?dtypecode=pancode_main네팔·티베트 대홍수 사망 797명·실종 3048명…터널 구조 사력입력 2026.08.31 07:54한국일보를 선호 출처로 추가김현우 기자네팔, 수력발전소에서 집중 구조작업미국·캐나다 등 긴급 자금 지원이미지 확대보기29일 네팔 홍수 피해 지역 중 한 곳인 누와코트 지역 비...

장편소설_칸첸중가_014_보리수_거짓말
보리수
온 길을 되짚어서, 좀 전에 지나온 림빅 마을과 실리콜라 강을 거슬러서, 끝없이 이어지는 서글픈 상념에 잠겨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흙먼지가 발목을 감싸는 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 보기도 했다. 누군가가 따라오는 것 같았지만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를 따라오던 사람은 상념 속에 스쳤던 어린 시절의 나였다. 이제는 나라고 할 수도 없는 그 소년이, 이제는 나라고 할 수 없는 그 사내를 따라가고 있었다.
한 시간 이상 그렇게 걸어서 마을과 마을 사이의 한적한 길에 접어들었을 때, 길가 언덕 위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가 보였다. 실리콜라 강을 따라 일본 청년들과 함께 내려올 때는 미처 못 본 제법 크고 의젓한 나무였다. 멀리서는 나목처럼 보였으나 가까이 가서 보니 시든지 오래지만 아직 떨어지지 않은 잎사귀들이 여린 바람에 팔랑이고 있었다. '하트' 모양의 잎사귀 끝이 올챙이 꼬리처럼 가늘고 길었다.
우리나라의 서낭당 나무처럼 동네에서 치성드리는 나무였다. 드러난 뿌리 위에는 타다 남은 향과 양초가 있었고, 둥치와 가지에는 실타래나 헝겊이 걸려 있었다. 그것은 객지에 나간 식구가 탈 없이 돌아오기를 빌고,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빌고, 좋은 신랑을 만나 오순도순 살게 해 달라고 빌었던 흔적이었다.
그 나무의 이름은 피팔_Peepal, 싯다르타_Gautama Siddhartha가 그 나무 밑에서 명상 수행을 했다하여 보리수라고도 부르는 나무였다. 보리수 밑은 해충이나 독사가 꼬이지 않고, 그늘이 넓으며, 밤이슬을 막아 주어서 수행자들이 거처하기 좋은 곳이라고 들은 기억이 났다.
배낭을 멘 채 보리수 둥치에 기대어 쭉 뻗은 두 다리의 연장선 저 멀리 실리콜라 강물이 반짝이고 있었다. 서글픈 상념이 가라앉고 고요해지는 풍경이었다. 그대로 낮잠 한숨 푹 자도 좋았으련만 아리따운 처녀 펨 도마네 산장에서 마셔본 랄리구라스 꽃술이 떠올랐다. 다시 오면 한 달을 머물러도 돈을 안 받겠다던 룸부네 집은 멀고 높았지만 펨 도마네 산장은 거기서 멀지 않았다.

나는 도리질을 쳐서 방금 떠오른 위험한 상념을 흩어버리려고 애썼다. 술을 한 번 입에 대면 사흘이고 나흘이고 지칠 때까지 계속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나의 병이었다. 일주일 내내 밤낮이 바뀌는 것도 모르고 마신 적도 있었다. 캘커타의 마리아 호텔에서는 보름이 넘도록 아침에 자고 저녁에 일어나 마셨다. 맥주에 위스키를 섞어서 해장하고 있으면 술 좋아하는 여행자들이 하나둘 술병을 들고 옥상으로 모여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술은 동틀 때까지 이어졌다.
캘커타를 떠나고, 다르질링의 유스호스텔에서 알리멘트로 숙소를 옮기고, 결국 이렇게 혼자 산길을 걷게 된 근본 이유는 동포 여행자들과 그런 술자리를 만들고 싶지 않은 데 있었다. 그러나 술 없이는 여행 또한 일상처럼 경직되거나 진부해지지 않았던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마시는 술에는 그런 모순이 있고 왜곡이 있었다.
술 좋아하는 그는, 아무리 그라고 불러도 결국 나일 수밖에 없는 그는, 어느새 현수교를 건너고 있었다. 어느새 산장에 도착하여 붉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잔명에 반짝이는 실리콜라의 시린 물살을 창 너머로 바라보며 푸른 목숨을 마시고 있었다.
거짓말
취하면, ‘취한지도 모르고 취한’ 괴상한 상태가 되면, 처절하거나 비통한 이야기를 꺼내어 과장하고 각색하는 자가 거기 있었다. 창작한 대사를 도취 상태로 읊는 배우가 거기 있었다. 상대의 관심을 끌어내고, 자신에게 몰입하게 하고, 동정과 위로를 얻는 자가 거기 있었다. 그는, 그라고 부르고 싶은 나는, 붉은 술을 마시면서 펨 도마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가증스러운 나는, 실종된 딸을 찾아 나섰다고 펨 도마에게 말하고 있었다. 딸은 펨 도마 또래이며 펨 도마와 많이 닮았다고도 했다. 기독교 계통의 봉사단 일원으로 한 달 동안 네팔에 체류하면서 임무를 마친 딸은 다시 한 달 동안 인도를 여행한 후 캘커타에서 귀국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한 달이 넘도록 소식이 없었다고 했다.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받은 그림엽서에는 다르질링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었다고 했다. 국내에서 무작정 소식을 기다리다가는 미칠 것만 같아서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캘커타를 거쳐 다르질링으로 왔다고 그는 말했다.
이전에는 생각조차 해 보지 않은 거짓말이 즉흥적으로 나왔다. 펨 도마는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경청했다. 매우 안타까워하면서 적절한 질문을 던져서 그가 거짓말을 술술 이어가게 했다.
사진을 여러 장 가지고 왔는데 다르질링에 도착하자마자 수첩과 함께 분실했다. 딸의 사진을 다시 보내 달라고 가족에게 전화해 놨으므로 사진은 곧 다르질링에 도착할 것이다. 사진이 도착하면 경찰서에 찾아가 실종 신고를 하고 전단을 만들어 곳곳에 붙일 예정이라고 그는 말했다.
다르질링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 온 지 몇 달 안 되었다는 펨 도마는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하는 걸 즐기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술 마시는 이방인 사내와 대화하는 딸이 마땅치 않았음이 분명하다. 한 번 불려 가서 주의를 받았던 펨 도마가 다시 불려갔다 와서는 '이제 그만 가 보겠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그는 제법 남은 술을 마저 마시고 빈 술병을 흔들어 보고서야 식탁에서 일어났다.
그는 배낭을 던져 놓았던 방이 어딘지를 기억하기 어려웠다. 긴 복도 좌우에 늘어선 대여섯 개의 나무 문 중에서 어느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할지를 몰랐다. 갑자기 출렁다리를 건너올 때처럼 어지러웠다. 결국 펨 도마의 가족 중 누군가가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처음 만난 여자에게 거짓말하는 남자들은 대부분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천재성을 미끼로 환심을 사려고 한다. 그러나 간혹 처절하고 비통한 소설을 써서 공감을 얻고 동정을 사려는 자들도 있다. 그는 언제나 후자의 경우이다. 전자에 속하는 부류는 그나마 건강한 편이다. 후자는 어리석고 약하다 못해 깊은 병이 든 자다.
실종된 사람은 그의 딸이 아니라 그 자신이었다. 그 자신이 가족을 떠났던 것이다. 그는 가족 모두가 싫고 집이 싫었다. 회사가 싫고 나라가 싫었다. 애인도 친구도 지겨웠다. 타락과 방종으로 이어지는 삶에 넌더리가 났다. 그는 죽고 싶었다. 그러나 그 땅에서 죽고 싶지는 않았다. 죽더라도 멀리, 아주 멀리 가서 죽고 싶었다. <</span>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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