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자연재해, 상상을 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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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투레트 증후군(Tourette syndrome) 환자의 일대기를 다룬 <참을 수 없는 말들>(I Swear)(2025)라는 영화를 감동적으로 보았다. 투레트 증후군은 특별한 이유 없이 자신도 모르게 신체 일부분을 반복적으로 움직이거나(운동 틱) 이상한 소리를 내는(음성 틱)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신경계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증상은 틱(Tic) 장애인데, 여기에는 크게 운동 틱 (Motor Tics)과 음성 틱 (Vocal Tics)이 있다. 전자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행동을 해서 타인을 불시에 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경우이고, 후자는 마찬가지로 제어할 수 없는 말들--대부분이 욕이나 타인이 참기 어려운 반사회적인 언어들-을 내뱉는 경우이다. 예상치 못한 이런 상황을 당한 사람들은 두 경우 모두에서 심한 불쾌함이나 모욕을 느낄 수 있다. 때문에 투레트 증후군 환자가 성장 과정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기가 쉽지 않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데이비슨의 아버지도 아들의 행동을 참지 못하고 집을 나가 버린다. 친 아버지도 그런데 과연 누가 그것을 쉽게 받아줄 수 있을까?
주인공 데이비슨은 축구에 재질이 있었지만 투레트 증후군으로 인해 거의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할 수가 없는 상태에서 집안에 갇혀 성인이 된다. 그러다가 우연히 중학교 동기인 친구를 만난다. 그는 그동안 호주에서 일을 하다가 어머니 도티가 암에 걸렸다고 해서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와 함께 친구 집에 갔는데 정신과에서 5년을 간호사로 일한 친구의 엄마가 바로 데이비슨의 증상에 관심과 애정을 보인다. 데이비슨이 만난 최초의 멘토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은 애정을 갖고 그의 앞길에 빛을 보여주는 멘토이다.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의 고통과 분노를 겪고 있던 어린 헬렌 켈러에게 앤 설리반 선생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그녀의 인생이 어땠을까? 앤 설리반 선생은 우물가에서 시원한 물을 적시며 헬렌 켈러의 손바닥에 W-A-T-E-R이란 단어를 통해서 세상의 모든 사물에 이름이 있다는 것과 그녀도 배움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그런 계기를 통해 어둠 속에 갇혀 있었던 헬렌 켈러의 마음의 눈을 뜨게 해준 것이다.
마찬가지로 친구의 어머니 도티는 데이비슨의 행동이나 말에서 모욕을 느끼고 신경질이나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런 행동과 말은 투레트 증후군 환자에게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마치 고대의 원자론자인 데모크리투스가 기계론적인 운동에서 인간의 의지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밝히면서 "낙하하는 돌에 화를 낼 이유가 없다" 식으로 받아들인 것과 같다. 그래서 도티는 데이비슨의 틱 행동이나 말을 무의미하게 받아주자고 가족들을 설득한다. 의미 있는 행동과 무의미한 행동의 차이를 이해하고 그것에 적절히 대응하는 방법을 마련한 것이다. 간단한 것 같지만 이런 행동은 참으로 쉽지가 않다. 그것은 인간과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영화에는 그것과 관련된 두 가지 사례가 나온다.
하나는 친구 머리가 증상이 많이 좋아진 데이비슨을 클럽에 데리고 갔을 때다. 노래와 리듬과 그리고 몸 동작에 취한 데이비슨은 처음에는 그곳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함께 춤추던 여자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술도 사준다. 그런데 데이비슨의 틱행동으로 인해 옆 좌석의 한 남성을 치게 되고, 그로 인해 싸움이 붙어서 파출소로 끌려간다. 끌려 가는 과정에서도 데이비슨은 끊임 없이 틱음성을 통해 모욕적인 언어를 내뱉는다. 당연히 이런 행동이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을 한다. 결국 데이비슨은 상대방의 형사 고소를 당해 법정에 선다. 법정에서 선서를 할 때 사전에 도티가 투레트 증후군 환자임을 고지했어도 판사는 그것이 의학적으로 증명된 병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한다. 판사가 법정 선서를 따라 하라고 할 때도 계속 욕설을 내뱉는 행동을 함으로써 그는 퇴정당하고 만다. 하지만 그의 다음 재판에서 그를 고용한 직장 상사인 토미가 데이비슨의 투레트 병 증상과 그의 직장 생활에 대해 사실적이고 솔직한 변호를 해준다.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던 판사도 데이비슨이 감옥에 갈 이유가 없다고 판정한다. 데이비슨의 예에서 뿐 아니라 장애인들에 대한 주변의 이러한 이해가 재활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을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두번째는 데이비슨이 약을 완전히 끊은 것과 도티의 간암 판정이 그릇되었다는 것을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려고 했을 때다 도티는 데이비슨에게 중국 음식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킨다. 사실 데이비슨의 돌발적인 행동을 고려한다면 그를 혼자 보낸 것은 도티의 실수일 수도 있다. 음식을 사가지고 나올 때는 그는 과거에 틱음성으로 한 여성을 모욕한 적이 있었다. 그 여성은 데이비슨이 사과를 했음에도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그렇다. 이에 대해 앙심을 품은 여성이 남자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음식을 사들고 가는 데이비슨을 무자비하게 폭행을 한 것이다. 사실 이런 모욕과 폭행은 데이비슨과 같은 쟝애인들이 겪는 일상사이고 그것도 다반사로 이어진다. 그 원인은 이해와 무지로 인한 것이 태반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장애인 문제는 근본적으로 20세기 철학의 가장 큰 문제인 '타자'(The Other)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우리) 밖에 나(우리)와 다른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의 편협한 사고, 주체 중심의 나름시즘적 의식을 벗어나는 것이다. 서양의 20세기 철학은 서양의 오랜 자기 중심적 철학에 대한 반성을 통해 비로소 자기(우리) 밖의 타자를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타자에는 내 눈앞에 나타난 가난한 자, 고아, 과부, 남성 중심의 세계로부터 배제된 여성, 백인종과 다른 유색인, 병원이나 감옥에 갇힌 광인이나 범죄자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인 데이비슨과 같은 장애인들이다. 사실 장애인이라고 하지만 그 종류의 다양성에 관해서는 쉽게 단순화시키기 어려울만큼 많다. 겉으로 드러나는 물리적이고 신체적인 장애인들은 쉽게 확인이 되지만, 트레트 증후군 환자 처럼 심적인 것과 신체적인 것이 동반해서 나타나는 장애인, 그리고 쉽게 확인되지 않는 정신적 장애인들처럼 무수히 많다 할 것이다. 이처럼 그 다양성이 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공통된 것이 하나 있다. 말하자면 사회 부적응 혹은 부적격자로 분류돼서 사회로부터 배제되거나 정상적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오래 전 플라톤은 <공화국> 5권에서 장애인들을 "비밀스럽고 알 수 없는 장소에 은밀히 감추어야(격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M.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는 시대에 따라 이들이 '광인'(미친 놈)으로 취급을 받고, 17-8세기에는 빈민이나 부랑자들과 함께 쇠사슬에 묶인 채 대감옥에 갇혔던 현실이 잘 밝혀져 있다. 19세기 정신병원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이들이 치료의 대상이 되는 것 같지만, 비이성적인 타자로서 감시와 억압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이 머나먼 시대의 것처럼 들리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있는 역사이고 현실이다. 20세기의 우생학을 앞세운 히틀러는 장애인들을 강제 안락사 프로그램인 'T4 작전' (Aktion T4)을 통해 정신병원과 요양원에 가두었다가 나중에는 유대인들과 똑 같이 가스실에서 대향 학살을 감행했다. 21세기의 북한에서는 여전히 장애인들을 평양 거주를 금지 시키고 격리 시키고 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이러한 차별은 한국의 대학들이나 사회 전반의 흑역사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필자 역시 1976년 대학 시험을 볼 때 우수한 성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체검사에서 탈락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간단한 속옷만 입고 흰 가운을 입은 의사와 인턴 레지던트 7-8명에게 둘러쌓여 검사를 받던 장면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치욕적이다. 이미 후기 대학 모집일을 넘긴 상태에서 탈락을 발표한 연세대는 어떤 경우든 변명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당시 연세대에서 무려 14명이 동시에 탈락을 해서 나중에 한국소아마비 협회 산하 <정립회관>에서 데모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청와대의 박정희 대통령이 합격시키라는 지시를 내려서 정원외 입학을 했다. 이에 대해 정작 대학은 책임을 지지 않고, 오히려 정원외 입학생 14명을 더 뽑아들이는 혜택을 받았다. 필자는 이 사건의 충격으로 인생의 향방이 달라질 만큼 방황을 많이 했다. 이 사건에 대해 정작 기독교 정신을 앞세운 연세대는 한 마디 사과도 한 적이 없었다. 이런 일들이 어찌 연세대에만 있었을까? 여전히 중증 장애인들은 이동권 문제로 지하철 안에서 데모를 하고 있다.
이야기가 샛길로 잠시 빠진 것 같지만, 데이비슨의 경우에서 보듯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이해가 장애 극복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법정 사건으로 인해 데이비슨은 똑 같이 투레트 증후군을 앓는 다른 이들을 만나면서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고, 그들의 멘토를 자처한다. 이러한 대화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데이비손 자신의 인정하듯, 다른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자신도 치유를 하게 되고, 공론화되면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아 증상을 관리하고 완화할 수 있는 의학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게 된다. 나중에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왕실의 명예로운 훈장까지 받기도 한다.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훈장 수여식에 참석하는 문제로 멘토인 도티와 실갱이를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너무나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자신이 틱행동이나 음성으로 사고를 일으킬까 두려워 참석하지 않겠다는 데이비슨과 그럼에도 그를 타일로 참석하게 하는 도티의 모습이다. 만일 데이비슨이 도티 여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만약 헬렌 켈러가 설리반 선생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라는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멘토의 역할이 크고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