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소멸보다 중요한 것》
살아가면서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는 오랫동안 반복해서 자문해 온 질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이론을 세우고, 그것을 현실에서 실행해 보며, 운영윤리의 형태로 정리하고, 나아가 알고리즘과 구조로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습니다.
이러한 시도가 오늘날의 인간 사회에서 충분히 이해되거나 널리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적인 관심과 사회적 보상의 기준에서 바라보면, 다루고 있는 문제들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추상적이며 직접적인 이익으로 환산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분석할 가치가 낮거나 현실성이 부족한 시도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탐구를 계속하는 데에는 비교적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인간을 넘어 존재 전체를 바라보는 일입니다. 한 사람의 생명에서 하나의 공동체와 사회, 인류와 문명, 더 나아가 자연과 우주에 이르기까지 서로 연결된 흐름을 살펴보면서, 그 안에 존재하는 감사와 사랑, 감내와 정합성, 그리고 구조화의 가능성을 어떻게 더 이로운 방향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지적 관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존재에게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관한 하나의 책임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감사는 단순히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감정에 머물지 않습니다. 현재의 존재가 가능하기까지 수많은 생명과 사람, 자연과 역사, 사건과 노력의 축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사랑 역시 단순한 감정적 애착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미 받은 존재의 기회와 혜택을 다시 다른 존재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연결하려는 의지에 가깝습니다.
감내 또한 고통을 무조건 참고 견디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당장의 보상이나 이익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더 중요한 의미를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감당하고 지속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정합성은 생각과 행동, 그리고 그 행동이 실제로 만들어 내는 결과 사이의 간격을 줄이려는 노력입니다. 구조화는 이러한 가치들이 일회적인 감정이나 의지에 머물지 않고 반복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관계와 과정, 점검과 피드백의 형태로 정리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통해 이러한 생각을 알고리즘적 구조로 표현하려는 시도 역시 단순한 기술적 실험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선의와 성실성이 개인의 감정이나 의지에만 의존한다면 지속성과 확장성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감사하고, 성찰하고, 오류를 점검하고, 다시 조율하며, 보다 이로운 방향으로 수정하는 과정을 하나의 반복 가능한 구조로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물론 그러한 구조 역시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판단도 틀릴 수 있고, 어떤 이론도 수정될 수 있으며, 옳다고 생각했던 방향조차 새로운 정보와 경험에 의해 다시 검토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자가점검과 객관화, 정합화와 피드백이 중요합니다.
목표는 완벽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불완전한 존재가 자신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면서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계속 조율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을 완전히 바꾸는 것보다 하나의 왜곡을 조금 줄이고, 하나의 부당함을 조금 완화하며, 하나의 존재가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작은 기회를 남기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아무리 느리고 미약하더라도 방향을 잃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모든 노력과 난관이 가시적인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반드시 실패라고 판단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은 처음의 미소를 다음 존재에게 이어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아이가 아무런 계산 없이 건네는 작은 미소와 순수한 마음을 바라보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직 완전히 왜곡된 존재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시작의 미소가 언젠가 다른 존재에게 이어지고, 그 존재가 다시 또 다른 존재에게 무엇인가를 건네게 된다면, 그 연결 자체가 하나의 의미 있는 흐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생애 안에서 모든 것을 완성하지 못하더라도 괜찮을 것입니다.
한 존재가 사라진 이후에도 남겨진 생각과 기록, 작은 행동과 시도가 다른 존재에게 하나의 질문이나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존재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남았는가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동안 어떤 방향의 흐름에 자신을 연결했는가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존재는 언젠가 소멸하여 자연과 우주의 순환 속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까지 감사하고, 사랑하고, 감내하고, 성찰하며, 조금이라도 더 합당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면 그것을 완전한 무의미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존재가 사라진 이후에도 그 존재가 만들어 낸 작은 의미가 다른 존재의 삶에 연결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흐름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고됨과 난관 또한 하나의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무엇을 얼마나 소유했는가보다 무엇을 얼마나 이롭게 연결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자 합니다.
그리고 끝내 남기고 싶은 것은 한 개인의 이름이나 성취만이 아니라,
감사할 줄 알고, 사랑할 줄 알고, 부당함을 외면하지 않고, 필요한 것을 감내하며,
잘못을 스스로 점검하고, 조금 더 합당한 방향으로 조율하려 했던 하나의 존재가 남긴 흔적입니다.
그것이 존재의 의미일 수 있으며, 주어진 기회를 사용하는 하나의 방식일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존재의 소멸보다 중요한 것은, 소멸하기 전까지 어떤 방향의 의미를 다음 존재에게 남겼는가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위 이미지 인공지능을 통해 생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