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자연재해, 상상을 초월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83107490005641?dtypecode=pancode_main네팔·티베트 대홍수 사망 797명·실종 3048명…터널 구조 사력입력 2026.08.31 07:54한국일보를 선호 출처로 추가김현우 기자네팔, 수력발전소에서 집중 구조작업미국·캐나다 등 긴급 자금 지원이미지 확대보기29일 네팔 홍수 피해 지역 중 한 곳인 누와코트 지역 비...

장편소설_칸첸중가_015_환청_다니 디디
환청
식은땀을 흘리면서 꿈꾸다가 깼다. 무슨 꿈이었을까? 부엉새처럼 생긴 여자의 커다란 두 눈만 잔상처럼 남았다. 펨 도마에게 뇌까린 거짓말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후회스럽고 부끄러웠다. 날이 밝으면 펨 도마를 대면할 일이 두려웠다. 펨 도마의 아리땁고 순진한 얼굴이 떠오르는 자체가 고통이었다.
눅눅한 침낭을 배낭에 쑤셔 넣었다. 복도로 나와서 산장의 출입문을 살그머니 당겼다. 뎅그렁뎅그렁, 출입문에 매단 쇠 방울이 흔들렸다. 운무 자욱한 마당에는 간밤에 나를 방에 데려다주었을 늙은 남자가 향연(香煙)이 뭉클뭉클 피어나는 향로를 흔들며 염불하고 있었다. 펨 도마의 아버지였다. 간밤에 펨 도마로부터 무슨 말을 들었는지 연민이 가득한 얼굴로 나에게 합장해 보였다.
타시델레 …….
평화가 충만하기를 빈다는 뜻이라고 했던가?
타시델레 …….
나도 합장을 해 보인 후, 첫차를 타야겠기에 일찍 나선다고 둘러댔다.
첫차를 타기는 이미 늦었고 다음 차까지는 시간이 많으니, 차라도 마시고 가라고 펨 도마의 아버지는 말했다.
그의 이마에는 세 줄의 긴 주름이 가로로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연기가 뭉클뭉클 피어나는 향로를 들고 염불하면서 나그네를 출렁다리까지 배웅하였다. 옴마니밧메훔 옴마니밧메훔 옴마니밧메훔 ……. 그의 염불은 아주 긴 한숨 같기도 했다.
출렁다리를 건너자, 사위가 운무에 휩싸였다. 출렁다리 건너편은 물론 출렁다리 밑을 흐르는 실리콜라의 물살도 운무로 인해 보이지 않았다. 정적 속에서 들려오는 물살 소리가 귀에 시렸다. 어린이들이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도 들렸다. 아이들의 어머니인 듯한 여자의 음성도 도란도란 들렸다. 그 소리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귀신들이 내는 소리 같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 들리는, 오직 폭음으로 황폐해진 자에게만 들리는 환청이기도 했다.
이승인지 저승인지 모를 운무 속에서 환청에 시달리며 걷는 동안 부엉새처럼 생긴 여자의 커다란 두 눈이 다시 떠올랐다. 누구였을까, 누구였을까, 그 눈은 누구의 눈이었을까? 나는 운무 속을 걸었고 눈을 감아도 보이는 어떤 눈이 한동안 어른거렸다. 어찌 보면 놀란 눈이고, 어찌 보면 안심하는 눈이었으며, 어찌 보면 분노한 눈이었다.
운무 속에서 보리수가 희미하게 나타났다. 올 때 본 보리수였다. 여전히 우리나라 서낭당 나무 같은 모습이었다. 멀리 떠난 자식이나 낭군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 혹은 삼지창과 방울 채를 든 무녀의 모습이기도 했다. 어느새 나는 그 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배낭을 등에 진 채로 털썩 주저앉아서 실리콜라가 어디쯤인지를 가늠해 보았지만 짙은 운무로 인해 가늠할 수가 없었다.
낮닭 우는 소리가 꿈결처럼 들렸고, 어린아이 칭얼대는 소리가 환청인 듯 또렷이 들리기도 했다. 얼마나 거기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배낭에 기대앉은 채 잠들었고 꿈꾸었던 듯하다. 식은땀인지 운무인지 모를 습기에 푹 젖은 채 배낭을 메고 일어서자,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래도 걸을 수는 있었기에 길을 따라 운무를 헤치며 걸었다.
다니 디디
마을 어귀가 보였다. 운무 속에서 나타난 마을은 이승 같기도 하고 저승 같기도 했다. 드문드문 사람들도 나타났다. 쟁기를 수리하는 젊은 남자, 자느라고 목이 꺾인 애를 업고서 뜨개질하는 여자, 기도 바퀴를 돌리며 어딘가로 열심히 걸어가는 노인. 제각기 무언가에 열중해 있는 그들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는듯했다. 불쑥 나타난 털북숭이 개조차 나그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혹시 유계에 발을 딛지 않았나 싶어서 오소소 소름이 돋을 때, 저만치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과연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내가 ‘타시델레’ 인사를 하기 전에 길옆 골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골목 어귀에 서서 골목 안을 살폈다. 방금 골목으로 들어간 사람은 운무 속으로 사라졌고 두 개의 커다란 룽따가 희미하게 보였다.
마당 가운데 몇 개의 룽따를 높다랗게 세운 그 집은 주막집이었다. 마당 앞에 자그맣게 세운 입간판에는 셰르파 호텔이라고 적혀 있었다. 배낭을 메고 마당에서 서성이는 나그네를 보고 안내하러 나온 다소곳한 처녀는 어딘지 모르게 펨 도마를 닮았다. 나이도 비슷해 보였다. 하루 쉴 수 있냐고 물었더니 수줍게 웃으면서 간판을 가리켰다. 멋 부린 필기체로 쓴 welcome이라는 영문자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안내한 숙소는 마당 건너편의 아담한 별채였다. 창으로 꽃밭이 내다보이는 마루방이었다. 소박한 나무 침대가 마음에 들었다. 짐을 풀고 속옷을 갈아입고, 침낭으로 들어갔다. 한숨 자고 나니 몸이 덜 무거웠다. 뭔가 먹으려고 식당으로 건너갔다.
방을 안내해 준 처녀가 물걸레로 탁자를 닦고 있었다. 이름을 물으니 디키 도마라고 짧게 말했다. 실리콜라 산장의 펨 도마와 람만의 룸부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모두 가까운 친척이라고 하며 반가운 내색을 했다.
디키 도마는 룸부 네 집의 까말라도 알고 있었다. 까말라는 지난겨울에 디키 도마 네 집에 와 있었는데 학교에 갈 때가 되어서 삼촌인 룸부가 데려갔다고 했다.
까말라가 입은 스웨터를 짠 여행자를 아는지도 물었다. 디키 도마는 ‘다니 디디!’ 하면서 반가워했다. ‘다니 디디’는 디키 도마가 지어 준 이름이라고 했다. ‘다니’는 ‘주는 사람’을 일컫고, ‘디디’는 언니 또는 누나라는 네팔 말이라고 했다.
펨 도마와 함께 다르질링에서 기숙사 학교에 다녔다는 디키 도마의 영어도 펨 도마 못지않았다. 아니, 더 잘하는 듯했다. 상대가 전혀 모르는 영어 단어를 말했다고 생각되면 쉬운 영어로 풀어서 말해 주었다. 다소곳하지만 자상한 처녀 디키 도마를 통해 다니 디디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다니 디디는 지난겨울에 여러 번 그녀의 집에 왔었다. 어디론가 갔다가 돌아오면 또 며칠씩 묵었다. 어떤 때는 잠깐 들러서 툭바(밀가루 국수의 일종) 만 먹고 가기도 했다. 다니 디디는 셰르파나 티베탄 여성의 복장인 바쿠를 입고 다녔고, 여권을 가진 외국인이었다. 다니 디디는 대체로 말없이 뜨개질만 하고 있었으므로 대화는 못 해 봤지만, 늘 다정한 언니 같았다고 디키 도마는 말했다. <<span style="font-family:함초롬바탕;">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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