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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식사 1
  • 김병철
  • 등록 2026-09-17 12:22:00
  • 수정 2026-09-17 12:36:41
  • 최후의 만찬


다빈치는 이 그림이 그려진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지에 성당 식당의 실제 구조를 완벽하게 계산하여 공간을 설계했다. 실제 식당 방의 왼쪽 벽 위에는 높은 창문들이 있어 빛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왔다. 다빈치는 이를 그대로 그림에 반영하여, 그림 속 인물과 공간의 명암(빛과 그림자)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게 그렸다. 이 때문에 식당에 앉아 그림을 보면, 마치 실제 방이 그림 속으로 연장된 것 같은 강력한 착시 효과(트롬프 뢰유)를 일으킨다.


예수의 등 뒤에 있는 3개의 창문은 앞서 언급된 '삼위일체'를 상징한다. 또한 중앙 창문은 완벽한 아치형으로 되어 있어, 예수의 머리 위에 따로 후광(Aureola)을 그리지 않고도 자연광을 통해 예수가 신성한 존재임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후광 역할을 한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평화로운 풍경은 '천국' 또는 '신의 나라'를 상징하며, 식탁 위의 혼란스러운 인간 세상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성찬식과 배신의 암시"식탁 위에는 유대인의 전통 유월절 음식이 아닌, 뜻밖의 음식들이 놓여 있어 오랜 시간 미술사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빵과 포도주: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성찬식(예수의 살과 피)'을 상징한다.


 흥미로운 점은 예수의 손 모양이다. 예수의 왼손은 빵을 향해 하늘을 보고 있고(수용과 희생), 오른손은 포도주 잔(그리고 유다와 같은 접시)을 향해 뻗어 있어 인류를 위한 희생과 배신의 순간을 동시에 표현한다. 21세기 복원 작업을 통해 식탁 위의 메인 요리가 오렌지 즙을 곁들인 장어(또는 청어) 요리임이 밝혀졌다.이 요리는 다빈치 당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인기 있는 궁정 음식이었다.

이탈리아어로 이 생선은 '아링가(Aringa)'라고 불리는데, 이는 '훈계하다/말하다'라는 뜻의 안링가레(Arringare)'와 발음이 비슷한다. 즉, "서로 교훈을 나누라"는 의미와 동시에 이탈리아 속어에서 "신앙을 부정하는 자(배신자)"를 뜻하는 중의적 의미를 담아 유다의 배신을 암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가룟 유다의 오른팔 팔꿈치 근처를 자세히 보면 소금통이 엎질러져 소금이 쏟아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양 문화권에서 소금을 엎지르는 것은 '불운, 저주, 혹은 배신'을 의미하는 아주 오래된 불길한 징조이다. 다빈치는 유다의 심리적 불안감과 앞으로 일어날 비극을 이 작은 소품 하나로 시각화했다. "수학적 음악"벽면의 비례와 음악: 양쪽 벽에 걸린 어두운 색의 태피스트리(벽걸이 양단)는 뒤로 갈수록 일정한 비율로 작아지며 원근감을 만듭니다. 일부 학자(음악가 조반니 마리아 팔라 등)는 이 태피스트리의 간격과 식탁 위 빵의 위치, 제자들의 손 위치를 악보의 음표로 치환했을 때 약 40초짜리 엄숙한 레퀴엠(진혼곡) 음악이 완성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다빈치가 뛰어난 음악가이기도 했기에 설득력을 얻는 흥미로운 가설이다.


14세기 이탈리아에서는 특히 새롭게 재발견된 프레스코화 기법을 통해 최후의 만찬 장면이 더욱 풍부해지고 눈에 띄게 되었다. 이 장면들은 대개 수난 연작이나 그리스도의 생애를 묘사하는 장면들의 일부로 포함되었지만, 14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맥락에서 벗어나 특정 장소, 즉 수녀원과 수도원의 식당에서 새롭게 부각되었다. 따라서 수녀나 수도사들은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이 식탁에 둘러앉은 모습을 그린 프레스코화 바로 아래 테이블에 앉아 최후의 만찬을 즐겼을 것이다. 이후 최후의 만찬은 수도원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결코 그곳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전의 최후의 만찬 회화

최후  만찬 중 가장 훌륭한 예 중 하나는 15세기 중반에 나타났다. 피렌체의 산트 아폴로니아 수도원에 있는 베네딕토회 수녀 공동체는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에게 그림을 의뢰했다.


     카스타뇨의 최후의 만찬


카스타뇨는 메디치 가문에 의해 처형된 음모자들을 그린 연작 그림 때문에 '안드레이노 델리 임피카티', 즉 '교수형당한 사람들의 작은 안드레아'로도 알려져 있다.그는 수녀들의 식당에 거의 완벽한 3차원 공간의 착시를 만들어냈다. 식당을 확장한 상자 모양의 공간을 통해 수녀들은 (이제는 익숙해진 일이 되었지만)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사실적으로 존재하는 가운데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카스타뇨의 그림에서 장면은 평화롭다. 요한은 졸린 듯 그리스도에게 기대어 있고, 다른 사도들은 서로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거나 생각에 잠겨 앉아 있다.왼쪽에서 세 번째에 앉은 사도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고,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앉은 사도는 탁자 위에 책을 펼쳐 놓고 있다. 레오나르도는 카스타뇨의 최후의 만찬을 아마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 그림은 폐쇄 수녀원에 있었기 때문에 400년 동안, 즉 1860년대 산트 아폴로니아 수도원이 해산될 때까지 이 작은 종교 공동체 밖에서는 거의 아무도 그 그림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 그림은 19세기 말 수도원이 이탈리아 군대의 창고로 사용되던 시기에도 보존될 수 있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피렌체에서 다른 여러 최후의 만찬을 보았을 것이다. 그중에는 카스타뇨가 산타 마리아 누오바 병원에 그린 또 다른 최후의 만찬(현재는 소실됨)도 있다.


많은 작품을 완성했던 "손쉬운 사나이"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는 레오나르도가 피렌체에서 보낸 마지막 몇 년 동안 두 점의 최후의 만찬을 그렸다. 하나는 1480년 오니산티 성당의 우밀리아티 수도사들을 위해, 그리고 다른 하나는 2년 후 산 마르코 성당의 손님 식당에 그려졌다. 이 장면들 역시 고요한 토론의 장면이었고, 한두 명의 사도들은 무표정하게 몽상에 잠겨 있는 모습이었다.

기를란다이오는 카스타뇨보다 인물들에게 약간 더 역동적인 움직임을 부여했는데, 특히 오니산티 프레스코화에서 여러 인물들이 집중하며 머리를 앞으로 기울이고 있고 베드로는 의도적으로 칼을 쥐고 있는 모습이 그러하다.

다른 많은 화가들처럼 그는 요한이 그리스도의 품에 기대어 있는 모습을 그렸는데, 이는 요한 역시 그들처럼 요한복음에 기록된 내용을 따르고 있었음을 나타낸다.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의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은 15세기 피렌체 르네상스 전통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성화이다. 기를란다요는 평생 총 세 점의 최후의 만찬 벽화를 남겼는데(바디아 아 파시나노, 오니산티, 산 마르코 수도원), 이 작품들은 유다를 홀로 격리하고 예수와 나머지 제자들을 정면에 배치하는 전형적인 15세기 피렌체식 구도를 정립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후대 걸작과 달리, 기를란다요의 그림은 인물들의 위치에 명확한 종교적 서열과 상징이 부여되어 있다. 핵심적인 제자들의 위치와 그에 따른 미술사적 분석은 다음과 같다.

제자들의 주요 위치 배치의 특징기를란다요는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의 전통을 이어받아 긴 ㄷ자형(또는 shallow U-shape) 식탁을 활용해 인물들을 배치했다. 예수를 포함한 11명의 제자는 식탁 안쪽에 정면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 있지만, 유다만큼은 식탁 바깥쪽(관람객 쪽)에 등을 지거나 옆을 본 채 홀로 3다리 의자에 앉아 있다. 이는 그가 영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이미 제자 집단에서 격리되었음을 시각적으로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치이다. 또한 유다는 열두 제자 중 유일하게 머리 뒤의 후광(Halo)이 없다.

사랑받는 제자 요한 (예수의 품에 기댐):예수의 바로 왼쪽(바라보는 사람 기준 오른쪽)에는 가장 젊은 제자인 사도 요한이 위치한다. 요한은 예수의 말씀에 깊은 슬픔과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예수의 품이나 식탁 위에 머리를 기대어 잠들거나 슬퍼하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워 있던 제자"라는 요한복음서의 기록을 충실히 반영한 르네상스 전통 표현이다.수제자 베드로 (예수의 오른편 상석):예수의 바로 오른편(바라보는 사람 기준 왼쪽) 가장 명예로운 자리에는 사도 베드로가 앉아 있다.


 베드로는 대개 흰 수염을 기른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지며, 분노와 당황스러움이 섞인 표정으로 예수를 바라보거나 칼을 쥐고 있는 기색을 보여 그의 불같은 성격과 유다를 향한 적대감을 암시한다.

  기를란다요의 《최후의 만찬》은 단순히 인물 배치에 그치지 않고, 식탁 위의 정물과 배경의 자연을 통해 예수의 수난과 부활을 정교하게 예고한다.유다 발밑의 고양이 (사탄의 상징):산 마르코 수도원 버전 등에서 홀로 앉은 유다의 등 뒤나 발밑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르네상스 미술에서 고양이는 야비함, 배신, 그리고 배후에서 조종하는 사탄(악마)의 존재를 상징하며 유다의 죄악을 시각적으로 고발한다.식탁 위의 체리와 포도주 (예수의 피와 수난):식탁 위에는 빵과 함께 수많은 체리(버둥)와 붉은 포도주가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체리의 붉은 즙과 포도주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릴 보혈(피)을 상징한다.배경의 창문과 공작새 (부활과 영생):식당 벽면의 상단 아치형 창문 너머로는 아름다운 피렌체풍의 정원과 하늘이 펼쳐진다. 오른쪽 창가에 앉아 있는 공작새는 고대부터 '고기가 썩지 않는 새'로 알려져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며, 하늘을 나는 새들은 육신을 벗어난 영혼의 구원을 의미한다. 


1486년의 최후의 만찬 


기를란다요가 완성한 이 정돈되고 고요한 구도는 수도사들이 식사하면서 명상하기에 최고의 환경을 제공했다. 이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기를란다요의 작품을 철저히 연구한 뒤, 유다를 다른 제자들과 같은 줄에 배치하되 심리적 단절을 주는 방식을 도입하여 공간의 극적 긴장감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게 된다.

 긴 식탁의 중앙(혹은 약간 왼쪽) 상석에 앉아 오른손을 들어 축복의 몸짓을 하고 있다.사도 요한은 예수의 바로 옆에서 예수의 품(가슴)에 슬프게 기대어 잠들어 있거나 몸을 숙이고 있다. 이는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가 사랑하신 제자'의 전형적인 묘사이다.사도 베드로는 예수의 오른편(관람자 기준 왼쪽) 상석에 앉아 있으며, 짧은 턱수염을 기른 노인의 모습으로 분노하거나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식탁 맞은편(앞쪽)에 홀로 3발 의자에 앉아 등을 지거나 비스듬히 관람객을 향해 있다.

유다가 영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나 이미 예수와 제자들로부터 고립되고 배반한 존재임을 시각적으로 명백하게 보여주는 르네상스 초기 전통 구도이다. 유다의 머리 뒤에는 다른 제자들과 달리 후광(Halo)이 없다. 나머지 제자들의 배치나머지 제자들은 예수와 요한, 베드로를 중심으로 ‘ㄷ’자 혹은 ‘U’자 형태로 꺾인 긴 식탁을 따라 일렬로 늘어서 있다.다빈치의 격정적인 역동성과 달리, 기를란다이오의 제자들은 서로 조용히 대화를 나누거나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비교적 정적이고 평온한 모습으로 배치되어 있다.

좌우 날개(양 끝)의 제자들 배치식탁은 양옆으로 꺾여 들어오는 구조이며, 제자들은 나이와 복장에 따라 대칭적인 균형을 이루며 앉아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다.왼쪽 날개 및 왼쪽 식탁: 야고보, 안드레, 바르톨로메오 등이 위치해 있다. 이들은 예수의 선언을 듣고 손을 가슴에 얹거나 서로 질문하는 표정을 짓는다.

오른쪽 날개 및 오른쪽 식탁: 빌립보, 토마스, 마태오, 시몬 등이 배치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차분하고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슬픔을 나누고 있다.온니산티 버전만의 시각적 상징물들온니산티 수도원의 <최후의 만찬>은 제자들의 위치 외에도 배경의 상징적 생물들이 인물들의 심리를 대변한다.유다 뒤의 고양이: 유다가 앉아 있는 의자 바로 뒤바닥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예수를 노려보고 있다. 

르네상스 미술에서 고양이는 배신, 기만, 사탄(악마)을 뜻하며, 유다의 내면을 시각화한 장치이다.상공의 새들: 제자들 뒤편 열린 창문 너머 하늘에는 독수리와 싸우는 작은 새들, 혹은 사냥하는 매 등이 그려져 있어 앞으로 닥쳐올 예수의 수난과 영적 전쟁을 암시한다.식탁 위의 음식: 식탁 위에는 정교하게 묘사된 체리(버찌)와 수박, 오렌지가 흩어져 있다. 붉은 체리와 석류는 그리스도가 흘릴 보혈(피)을 상징하며, 오렌지는 낙원의 회복을 의미한다.기를란다이오가 6년 뒤에 그린 산 마르코 수도원 버전은 이 온니산티 구도를 거의 똑같이 베꼈지만 제자들의 표정이 조금 더 어둡고 역동적이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는 1480년 오니산티 수도원 버전을 완성한 뒤, 6년 후인 1486년에 산 마르코 수도원(Convent of San Marco) 버전을 다시 그렸다.두 작품은 전체적인 구도('ㄷ'자 식탁, 홀로 분리된 유다)가 매우 닮아 보이지만, 제자들의 심리 표현과 상징물, 공간의 목적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오니산티 (1480)의  기를란다이오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서 인물들이 전체적으로 단정하고 정적이며 평온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슬픔조차도 매우 절제되어 있다면 산 마르코 (1486)에 있는  기를란다이오가 그린 제자들의 표정과 손짓이 훨씬 더 심각하고 역동적이다. 예수의 배신 선언을 들은 제자들의 충격, 의심, 고뇌의 내면이 얼굴 주름과 몸짓에 더욱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베드로가 예수의 왼편에서 분노한 표정으로 식탁 위 칼을 굳게 쥐고 있다. 이는 후에 유다 군대가 들이닥쳤을 때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자르는 베드로의 공격성을 암시한다.

산 마르코의 최후의 만찬 그림속에서는 베드로의 손에서 칼이 사라졌다. 대신 베드로는 칼 없이 손짓과 표정만으로 유다를 쏘아보고 있어, 물리적인 격정보다는 영적인 긴장감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온니산티 버전에 있던 배경의 화려한 새들(독수리, 매 등)이 산 마르코 버전에서는 대폭 줄어들거나 보이지 않으며, 공간이 더 차분해졌다. 유다 뒤에서 노려보던 고양이의 배치나 묘사도 산 마르코에서는 다소 약화되거나 생략되는 등 종교적 상징들이 더 정제되었다. 온니산티 식탁에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뜻하는 체리와 석류, 오렌지 등이 정교하고 화려하게 흩어져 있었으나, 산 마르코 식탁은 훨씬 검소하고 단순하게 차려져 있다. 


그림이 그려진 '방(공간)'의 목적 차이이 차이는 그림이 그려진 방의 용도와 주문자들의 성격 때문에 발생했다.온니산티 의 최후의 만찬은 수도사들이 매일 식사를 하던 메인 식당(Refectory)에 그려졌다. 따라서 수도사들이 식사하며 감상하기 좋게 화려하고 풍성한 세부 묘사(사실적인 식탁보 무늬, 과일 등)가 강조되었다.산 마르코 버전: 수도원의 메인 식당이 아니라, 외부 귀빈들이 묵어가던 게스트하우스 식당(Foresteria/Hostel refectory)에 그려졌다.


 부유하고 권력 있는 외부 방문객들에게 ‘회개’와 ‘경건함’, ‘영적 성찰’을 촉구하기 위해, 화려한 장식을 걷어내고 제자들의 진지한 고뇌를 부각한 것이다.결과적으로 온니산티는 기를란다이오 특유의 화려한 사실주의와 세부 묘사의 극치를 보여주고, 산 마르코는 종교적인 명상과 인물의 내면적 깊이를 더 강조한 성숙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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