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카톨릭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533년에 중국으로 가던 프랑스 선교사 이냐시오 신부가 베트남에 첫발을 디딘때가 베트남 가톨릭 역사의 시초가 된다. 이후 간헐적으로 이뤄지던 선교활동은 1615년 예수회가 진출하면서 본격화 된다. 1615년 예수회가 베트남 호이안으로 들어와서 정식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베트남의 사도로도 불리는 예수회의 로데스(Alexandre de Rhodes)신부는 1624년 성탄절에 이곳에 도착하여 1645년까지 수만 명의 베트남 인들에게 세례를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659년에는 두 개의 대목구가, 1666년에 최초의 신학교가 설립된 데 이어 1668년에는 유학하고 돌아온 두 명의 베트남 사제를 배출하게 된다.

베트남 하노이 성 요셉 성당,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1625년부터 1886년까지 53번의 박해로 인하여 13만명의 신자들 이 순교하고 이 때까지 박해를 받은 이들 중 117명이 1988년 6월 1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s II)에 의해 베트남의 순교자들로서 시성 되었다. 시성된 이들 중에는 96명의 베트남 인과 스페인 출신의 수도회 소속 선교사 11명 그리고 10명의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선교사 들이 포함되어 있다. 베트남에 전해진 카톨릭 전래에 대한 베트남 교회 기록에 따르면 안드레아 둥락(Dung-Lac) 사제는 1795년 오늘날 박닌 성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사제서품을 받은 후 많은 신자들과 함께 박해 중에도 예수를 굳게 믿고 전교와 사목 활동 중 민망 황제 박해 기간 중인 1839년 12월 21일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1900년 교황 레오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다. 그 후 1988년 6월 19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을 시성하면서 그들의 축일을 11월 24일에 기념 하도록 보편 교회 전례력에 포함시켰다. 신분별로 보면 8명의 스페인과 프랑스 출신 주교들과 50명의 사제들(13명의 유럽 출신과 37명의 베트남 출신) 그리고 59명의 평신도들로 구성되어 있다. 응우옌 왕조의 카톨릭 박해는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가 되면서 끝난다. 1867년부터 1954년까지 이어진 식민지 시기는, 베트남 민족으로서는 굴욕적인 시기였지만 베트남 교회 입장에서는 황금기였다.
1954년 베트남이 남북으로 나뉜 후에도 가톨릭은 남베트남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며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고딘 디엠 정권의 보호를 받으며 급속히 성장 했으며, 학교와 기관, 국영방송, 복지시설에 이르기 까지 활동을 확대해 나갔다. 특히 1960년 11월24일은 베트남 교회의 기념비 적인 날이다. 교황은 이날 베트남 교회에 하노이, 후에, 사이공 등 3개 대교구와 17개 교구(량송, 하이퐁 등)를 설정하였으며, 이들 교구는 이후 더 분할돼 현재 26개에 이른다. 오랜 기간 박해를 받고 살아 왔던 베트남 신자들은 외부인 들로 부터 신앙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울타리를 쳤다. 타종교인 및 일반인과 거의 교류를 하지 않았고, 신앙인들만의 끼리끼리 삶을 유지했다.
심지어 카톨릭 공동체가 "국가 속의 작은 국가"라는 비판까지 받을 정도였다. 실제로 1954년 베트남이 남북으로 나뉠 당시, 북 베트남 지역 신자의 50%(70 여만 명)가 남쪽으로 이주 했지만, 같은 시기 남쪽으로 넘어온 비 가톨릭신자는 0.5%에 불과했다. 이렇게 꾸준히 발전을 거듭하던 남베트남 교회 역시 1975년 베트남 전쟁이 북베트남의 승리로 막을 내리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공산정권이 신앙의 자유를 약속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뤄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