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늘 젖은 용의 등뼈를 바라보며
대청호의 너른 품 한가운데, 물 위로 아스라이 솟아오른 기암절벽이 있다. 옥천 부소담악(芙沼潭岳). 본디 우암 송시열이 빼어난 산세에 반해 ‘소금강(小金剛)’이라 찬탄해 마지않던 벼랑이었으나, 1980년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산허리가 물속으로 깊숙이 잠겨버렸다. 허리는 물길에 내어주고 오직 이마와 등성마루만 물 위에 남아, 오늘날 마치 물 위에 둘러쳐진 한 폭의 병풍바위 같은 비경을 빚어낸 것이다.
2008년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이름을 올리고, 전망 정자인 추소정(楸沼亭)이 들어서며 2019년 옥천 제3경으로 자리 잡았으니, 비경으로서의 이름은 비교적 최근에야 세상에 널리 퍼진 셈이다.
조선 중기 조헌 선생의 체취가 서린 이지당(二止堂)과 부소담악, 그리고 수생식물학습원은 모두 서화천이 빚어낸 한 골짜기에 깃들어 있다. 이지당이 군북면 이백리에서 서화천의 너럭바위를 굽어보고 있다면, 부소담악은 물길을 따라 내려간 추소리 방아실 자락에서 호수를 품는다. 댐이 생기기 전에는 맑은 냇물이 마을을 다정하게 이어주었고, 이지당 서당에서 부소무늬, 추동까지는 천변의 완만한 들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물길이 호수가 되어 수위가 오르자, 길은 산허리를 깎아 붙인 벼랑길(환산로)로 밀려 올라갔다. 산등성이의 등고선을 그대로 흉내 내며 굽이치는 길은 마주 오는 버스 두 대조차 쉬이 비켜서지 못할 만큼 좁고 가파르다. 벚꽃 흐드러지는 봄날이나 단풍 물드는 가을이면 눈부신 풍광에 홀려 운전대를 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 아찔하면서도 매혹적인 난코스다.
마을 초입 주차장에 차를 대고 5분 남짓 흙길을 걸으면 물가를 따라 정갈한 나무 데크 길이 마중을 나온다. 호수에 비친 청명한 산그림자를 벗 삼아 완만한 오르막을 10분쯤 거닐다 보면 홀연히 추소정(楸沼亭)에 다다른다.
가을 풍경이 빼어나 ‘추(秋)’를 썼을 법도 하지만, 정자의 이름은 마을 옛 지명인 추소리(楸沼里)에서 왔다. 가래나무와 개오동나무가 무성했던 못가 마을의 정취를 기린 마을 이름인 셈이다. 옛 선비의 유서 깊은 고누정은 아니나 대청호의 절경을 오롯이 굽어보기에 이만한 자리가 없다.
정자에 서서 광각 렌즈처럼 시야를 넓히면, 옥빛 수면을 가르며 길게 뻗어나간 기암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최고봉 해발 120m에서 시작해 수면을 향해 잦아들듯 내달리는 1.2km 부소산 줄기 중, 700m에 이르는 날렵한 암릉이 푸른 소나무를 머리에 인 채 물 위에 둥둥 떠 있다. 좁은 능선길은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발길을 막아서 아쉬움을 남기지만, 정자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능선은 마치 호수를 박차고 나가려는 거대한 한 마리 용의 등뼈와도 같다.
돌아보면 ‘부소담악’이란 네 글자 속에는 댐이라는 거대한 인공과 대자연의 생명력이 묘하게 얽혀 있다.
부(芙): 물에 뜬 연꽃을 뜻하는 옛 마을터의 풍수명 ‘연화부수(蓮花浮水)’의 연꽃
소(沼): 굽이치던 서화천의 옛 늪과 소(沼)
담(潭): 거대한 댐으로 인해 한없이 깊어진 푸른 물
악(岳): 물살을 뚫고 솟구쳐 살아남은 바위 능선
옛 마을의 기억에 수몰이 빚어낸 현대적 경관이 결합한 이름이다.
풍수 물형론(物形論)으로 보자면 물길이 마을을 휘감던 옛 부소무늬는 어여쁜 ‘연화부수형’이었겠지만, 마을이 수장된 지금 눈앞에 펼쳐진 700m의 병풍바위는 꽃잎의 자태를 잃었다.
오히려 몸통을 물속에 감춘 채 등뼈만 도드라지게 드러낸 반룡출수(蟠龍出水, 몸을 서린 용이 물위로 나오는 형상)이거나, 물결을 가르며 노니는 유룡희수(遊龍戲水), 혹은 기운을 물 아래 숨긴 채 때를 기다리는 잠룡(潛龍, 몸을 숨긴 용)의 서늘한 기운을 풍긴다.
그러나 정자에서 감탄하던 순간도 잠시, 절벽 아래로 고개를 떨구었을 때 마음 한구석이 덜컥 내려앉았다. 푸르고 맑아야 할 심산유곡의 물길이 짙은 녹조로 뒤덮여, 마치 끈적한 녹색 물감을 통째로 풀어놓은 듯 탁하게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풍수에서 이 바위 능선을 몸을 웅크린 반룡이라 부르든, 물속에 잠긴 잠룡이라 부르든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용이 용으로서 숨 쉬고 꿈틀거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를 품어주는 물이 살아있어야 한다. 그 호수를 숨 막히는 죽은 물(死水)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인간들의 탐욕과 무신경함이다.
아름다움을 눈에 담고 찬탄하는 것은 쉽지만, 그 아름다움이 품은 생명을 온전히 지켜내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다. 경치에 취하는 것을 넘어 대지의 숨결을 가꾸고 보듬는 자리까지 마음이 닿을 때, 비로소 우리의 발걸음은 온전한 ‘여행’이 될 것이다. 가을이 오면 그 아름다운 단풍의 절경을 보러 또 수많은 인파가 몰려올 것이다. 소비하는 자연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고 가꾸어야 할 소중한 우리와 한 몸이라는 마음도 담아오는 여행이 되었으면 한다.
비취빛 절경에 매혹되면서도 녹조 낀 수면에 마음이 아려왔던 그 날의 씁쓸한 잔향이, 여정을 마친 지 열흘이 흐른 지금까지도 마음 밑바닥에 무겁게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