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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詩心)과 터의 숨결을 찾아 걷는 길
  • 공형일
  • 등록 2026-09-23 09:09:39
  • 수정 2026-09-23 09:20:49
  • 옥천 정지용 생가와 육영수 여사 생가터 기행

옥천 정지용 생가와 육영수 여사 생가터 기행

옥천이 자랑하는 두 역사적 공간은 이름도 다정한 ‘향수길’을 사이에 두고 지근거리에 마주해 있다. 느긋한 걸음으로 두 곳을 잇는 길을 걷다 보면 주변으로 펼쳐지는 산수 풍경에 마음마저 맑고 한가로워진다. 

이 마을을 적시는 물길은 모두 서화천(西華川)으로 모여든다. 맑은 천변의 너럭바위와 조선 유학자들의 자취가 서린 이지당(二止堂) 앞을 지난 물은 하류로 굽이쳐 대청호의 너른 품으로 스며든다.

본디 ‘옥천(沃川)’이란 땅이름의 ‘옥(沃)’ 자는 물을 넉넉히 대어 땅이 기름지고 윤택하다는 뜻을 품고 있다. 정지용 생가 오른편으로 시원스레 펼쳐지는 들녘을 바라보고, 길을 따라 육영수 여사 생가터로 향하며 옛 농촌의 풍경을 그려보니 왜 이곳이 예부터 기름진 ‘문전옥답(門前沃畓)’이라 불렸는지 절로 실감이 난다.  

우리의 산과 강, 두메마을의 정서를 토속적 서정으로 빚어낸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등 청록파 시인들에게 정지용은 한 세대 위의 스승이자 앞길을 비추는 듬직한 등불이었다. 그가 한국 현대시사에 남긴 독보적인 언어의 성채는, 분명 소년 시절 이 기름지고 아늑한 옥천의 산수에서 온몸으로 들이마신 자연의 감화에서 싹텄을 것이다. 시인의 유년 시절로 시간을 되돌리듯 생가와 정겨운 골목, 그리고 문학관을 거닐며 그의 시를 음미해 본다.

정지용 시인의 생가

1.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 토박이말의 향연과 시 자판기의 인연

정지용의 대표작이자 오늘날 옥천의 거리와 카페, 음식점, 아파트 이름에 이르기까지 고루 스며든 시 〈향수(鄕愁)〉는 문학관 전시의 굳건한 축을 이루고 있다. ‘향수(鄕愁)’라는 한자어 제목은 시골·고향을 그리는 근심과 정한이라는 묵직한 무게감을 지닌다. 그러나 정작 본문 속으로 들어가 보면 "넓은 벌", "실개천", "지줄대는", "얼룩백이 황소", "함초롬" 등 정겨운 방언과 살아 숨 쉬는 순우리말 토박이 언어가 눈부시게 반짝인다. 한자 제목이 지닌 단단한 무게와 본문이 뿜어내는 토속적 질감의 절묘한 엇갈림은, 시인이 모국어에 바친 각별한 애정과 감각의 깊이를 보여준다.

       정지용의 대표작 향수

문학관을 나서는 길, 시인의 삶과 문학세계를 다정하게 풀어주시던 해설사께서 데스크 옆의 작은 자판기를 한번 눌러보라 권하셨다. "자판기라니?" 영문도 모른 채 버튼을 누르자, 마치 영수증처럼 얇고 긴 종이에 정지용의 시 〈호수〉가 인쇄되어 스르륵 빠져나왔다. 뜻밖의 선물에 해설사님의 축하가 더해지니 참으로 기분 좋은 기별이었다.

시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며칠을 두고 그 구절을 마음에 새겨보았다. 그리움의 부피가 너무도 거대하여 손바닥 따위로는 도저히 가릴 수 없기에 결국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는 시인의 고백. 그 ‘눈 감음’은 어쩌면 벅찬 그리움을 외면하려는 체념이면서도, 눈을 감음으로써 보고픈 얼굴을 내면의 캔버스에 더욱 선명하게 길어 올리려는 역설의 몸짓이 아니었을까.

시인은 또 다른 연작에서 수면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자맥질하는 오리를 두고 "목을 옥여 / 호수를 감는다"고 노래했다. 보통이라면 "호수가 오리를 감싸 안는다"고 표현했겠지만, 시인은 주어의 자리를 뒤집어 연약한 오리의 목이 거대한 호수를 감싸 안는다고 보았다.

사람의 ‘눈을 감음’과 오리가 ‘호수를 감음’. 이 대구(對句)는 시인의 내면과 외면의 풍경을 절묘하게 겹쳐놓는다. 하나는 감당하기에 너무 크고, 또 하나는 너무도 간지러워 온전히 다 품을 수 없는 사랑과 그리움의 관계. 두 눈을 감은 채 그리움의 호수를 가만히 끌어안으려는 시인의 고독한 몸짓은, 목을 굽혀 잔잔한 물결을 품어 안는 오리의 형상과 고스란히 닮아 있다.

평소 내가 마음에 품고 있던 "눈 뜨면 우주 안에 내가 있고, 눈 감으면 내 안에 우주가 있다"는 명상의 경구가 떠오르며, 자판기에서 우연히 받아 든 한 장의 시편이 결코 우연이 아닌 깊은 인연의 울림으로 다가왔다.

2. 육영수 여사 생가터: 길지(吉地)의 전승과 풍수적 성찰

정지용 생가에서 동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오른편으로 ‘옥천전통문화체험관’이 웅장하게 서 있고, 북쪽 완만한 능선 위로는 유서 깊은 옥천향교가 자리한다. 그 산자락 아래 남향으로 편안하게 터를 잡은 고택이 바로 육영수 여사의 생가터(교동집)이다.

 

2011.5.11 연합뉴스 제공 사진


충북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에 자리한 이 생가터는 공식 기록과 구전에서 오랜 세월 ‘양택(陽宅) 명당’으로 회자되어 왔다. 지역 풍수에서는 옥천·이원·군서 일대를 서대산(西臺山)의 우람한 정기가 서린 명당으로 보는데, 특히 옛 고을의 중심지였던 구읍(舊邑) 교동리는 향교와 대대로 이어진 명문가, 그리고 큰 문인이 한 골짜기에 깃들어 있어 마을 전체를 축복받은 길지로 여기는 전승이 굳건히 내려왔다.

교동리의 주산은 마을 뒤편을 포근히 감싸 안은 마성산(馬城山)이다. 산세를 살피면 교동집의 실질적인 진산(鎭山)과 배후 맥은 멀리 솟은 관모봉보다는 마성산 줄기에서 부드럽게 뻗어 내린 낮은 구릉성 능선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옥천군의 공식 안내문은 이 집터의 기운을 수려한 문장으로 전한다.

“초서로 ‘一’ 자를 쓰려면 옆으로 힘차게 가로 그었다가 잠두(蠶頭)에서 아래로 내리뻗치는, 그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정기가 모인 아늑한 양지받이. 풍수지리학상 명당으로 알려져 왔다.”

전통 양택의 기준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전저후고(前低後高), 장풍득수(藏風得水)의 격식을 고루 갖춘 터임에는 분명하다. 마성산에서 잦아들듯 내려온 주산의 맥은 험준하기보다 완만한 일자문성(一字文星)의 토성체(土星體)나 금성체(金星體)를 띠고 있다. 집 앞을 가로막아 기운이 흩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안산(案山)은 둥글고 단정한 금성체로, 마치 곡식을 쌓아 올린 노적봉(露積峰)처럼 봉긋하여 부(富)의 상징을 띤다.

이곳의 지형을 두고 흔히 옥녀가 단정히 앉아 거울을 보며 화장하는 형세라는 ‘옥녀단장형(玉女丹粧形)’이라 부른다. 풍수 물형론에서는 귀한 여인이나 왕비가 태어날 길조의 땅으로 해석하는데, 이는 후대에 영부인이 배출된 역사적 사실이 덧입혀지며 다소 견강부회(牽强附會)된 면도 없지 않다.

이 터는 본래 1600년대부터 김·송·민 세 가문의 정승이 살았다 하여 ‘삼정승 터’라는 구전이 전해지지만, 정사(正史)에 뚜렷한 실명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고을의 막강한 세도가와 거부를 드높여 부르던 존칭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

엄밀한 풍수적 시선으로 이 터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양면성이 관찰된다. 명당의 발복 기운이 무궁토록 이어지는 자리라면 고택의 주인이 삼정승을 거쳐 조선 말 대지주 육종관 씨의 가문으로 네 번이나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 주산의 맥세가 야트막하고 완만하여 웅혼한 기운이 길게 이어지기보다는 집터와 안산이 가까워 당대에 기운을 빠르게 발하는 ‘속발(速發)’의 특성을 띤다.

  • 인물과 자손의 번성을 상징하는 좌청룡 자락이 집 앞을 감싸며 안산 역할을 톡톡히 해내지만, 끝자락이 앞으로 완전히 감아 돌기 전에 그 맥의 생기가 좌측으로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아쉬움이 있다.

  • 수세(水勢)는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흘러 풍수에서 이르는 생기(生氣)의 방향과 잘 부합하나, 우측 백호 자락이 그 물길을 단단히 가두어주지 못하고 흘려보내니 재물의 기운이 한 가문에 영원히 머물기는 어려운 한계를 품고 있다.

그럼에도 복원된 99칸 전통 한옥의 가옥 배치는 양택의 미학을 훌륭히 구현해 냈다. 솟을대문과 장대한 사랑채로 바깥의 거친 바람(外氣)을 차분히 걸러내고, 중문을 거쳐 안채로 깊숙이 진입하도록 동선을 꺾어 따스한 내기(內氣)를 오롯이 가두었다. 집 안마당 동쪽에 연못을 조성하여 수기(水氣)를 보완한 점 역시 전통 한옥의 정교한 풍수적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3. 길을 나서며: 풍수의 눈으로 읽는 삶의 지혜

향교의 문풍(文風), 삼정승의 전승, 당대 대지주의 만석 터, 그리고 영부인과 국회의원을 배출한 근현대사의 궤적이 한데 얽히면서, 교동리는 ‘옥녀단장형’이라는 매혹적인 풍수 설화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풍수란 본디 자연의 형세를 겸허히 읽어내는 옛 선조들의 인문 지리적 언어일 뿐, 한 사람의 운명과 길흉화복을 인과의 잣대로 단정 짓는 절대적 예언은 아니다. 삼정승의 유래 또한 딱딱한 문헌의 텍스트보다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온 따뜻한 구전 설화의 영역에 가깝다.

정지용 생가와 육영수 여사 생가터를 거닐며, 단순히 관광지를 스쳐 지나듯 사진 몇 장으로 여정을 끝내기에는 그 땅이 품고 있는 서사가 너무도 깊고 그윽하다. 어찌하여 이 야트막한 골짜기에서 한국 시문학의 거대한 별이 솟아올랐는지, 어떤 대지의 숨결이 고택의 거대한 부(富)와 귀한 인물을 길러냈는지를 가만히 헤아려 본다. 옛사람들이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며 일구어낸 삶의 지혜와 좋은 기운을 마음에 그득히 담아갈 수 있다면, 그 걸음이야말로 옥천의 산수가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값진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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