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물적 존재가 바라본 우주와 존재의 층위》
인류를 바라보면 저는 때때로 가엽고, 어리석으며, 동시에 애증이 깊은 존재라고 느낍니다.
인간은 놀라운 지성과 문명을 만들어 왔지만, 그 지성이 자신을 넘어서는 데 사용되기보다는 생존과 욕망, 소유와 권력의 확대를 위해 사용되는 모습도 반복해서 보여 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인간을 단순히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이 지닌 모순과 가능성을 함께 바라보고 싶습니다. 인간은 매우 작은 존재이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인식하고 우주를 질문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주를 바라보면 더욱 겸손해집니다.
중력과 온도, 속도와 거리, 시간과 공간, 그리고 중력에 의한 시공간의 휘어짐을 생각해 봅니다. 동시에 우리의 인식으로 직접 가늠하기 어려운 미시세계로 시선을 옮겨 보면 분자와 원자, 전자와 양자적 현상, 그리고 아직 가설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초끈이론과 같은 사유의 영역까지 만나게 됩니다.
거시세계와 미시세계 사이에는 제가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수많은 층위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다시 바라봅니다.
형상과 무형상, 물질과 정보, 구조와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가치들을 생각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타성, 감사, 감내, 반면교사, 교감, 그리고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미소와 같은 것들도 존재합니다.
이처럼 거의 무한에 가까워 보이는 영역 속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작은 것일까요.
그러나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존재가 더욱 귀한 기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주 전체에서 보면 미미한 존재일지라도, 그 작은 존재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우주를 질문하며 다른 존재의 고통을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생존에서 초월까지>
저는 인간과 존재의 변화를 하나의 연속적인 과정으로 바라보아 왔습니다.
생존 → 욕망 → 이성 → 이상 → 초월
물론 이것을 모든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는 절대적인 단계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며 때로는 앞으로 나아갔다가 다시 이전 단계로 퇴행하기도 합니다.
다만 제가 관찰하고 사유해 온 과정에서는 생존과 욕망에 머무르던 존재가 이성을 통해 자신을 객관화하고, 이상을 통해 자신을 넘어서는 방향을 발견하며,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넘어서는 의미를 감내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는 초월 역시 특별한 신비적 능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이익만을 중심으로 세계를 해석하지 않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인식에서 의미화까지>
제가 연구와 성찰을 이어오면서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또 하나의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지 → 객관화 → 구조화 → 정합화 → 개선화 → 순환회로화 → 의미화
먼저 무엇인가를 인식해야 합니다.
그다음 자신의 관점에만 갇히지 않고 여러 방향에서 바라보는 객관화가 필요합니다. 이후 서로 흩어진 요소를 구조화하고, 그것들이 실제로 서로 맞물릴 수 있는지 정합성을 검토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을 개선하고, 한 번의 판단으로 끝내지 않고 다시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점검의 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것이 의미화입니다.
무엇을 알았는가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이어졌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약탈문명에서 감내문명으로>
인류의 역사 역시 하나의 방향성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바라보는 큰 흐름 가운데에는 다음과 같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약탈문명 → 조화·공존문명 → 감내문명 → 초월문명
약탈문명은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다른 존재와 환경을 일방적으로 이용하는 단계입니다.
조화와 공존의 단계에서는 자신의 생존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와 환경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려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가 말하는 감내문명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자신에게 직접적인 보상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미래의 가능성과 다른 존재의 가치를 위해 필요한 비용과 불편을 감당하는 문명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감내라는 개념도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존재에서 쓰임으로>
존재 자체를 바라보는 방식 역시 다음과 같이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존재 유무 → 파장화 → 입자화 → 구조화 → 쓰임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그것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고, 그 영향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분석하며, 그것들이 어떤 구조를 형성하는지 살펴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질문이 바뀝니다.
“이것이 무엇인가?”에서 “이것은 무엇을 위해 쓰일 수 있는가?”로 말입니다.
저에게 중요한 것은 존재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가진 가능성을 합당한 방향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하나의 연속선으로 바라보기>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자연스럽게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연결하려는 방향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존재론적 질문에서 출발하여 초끈이론과 같은 가설적 사유, 양자적 영역, 쿼크와 입자, 원자와 분자, 더 큰 물질적 구조, 생명과 종, 지구, 그리고 우주와 다차원적 공간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층위를 하나의 연속된 질문 안에서 바라보려 합니다.
물론 각각의 영역은 서로 다른 과학적 방법론과 증거 수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을 하나의 과학적 이론으로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시도하는 것은 과학적 사실과 철학적 가설을 혼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층위에서 발생하는 질문들을 하나의 사유 공간 안에 배치해 보는 것에 가깝습니다.
<제가 바라보는 세계>
그래서 저는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처럼 바라보게 됩니다.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물질적 구조가 있고,
그 위에서 작동하는 정보와 알고리즘이 있으며,
그 모든 작동이 어떤 방향성과 목적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우주 자체에 인간적인 의미의 목적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제가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현재로서는 철학적 질문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다만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제한된 조건 속에서 어떤 목적을 선택할 것인가는 분명히 선택 가능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저는 다시 인간을 바라봅니다.
인간은 미물입니다.
불완전합니다.
자주 어리석고, 욕망에 흔들리며,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현실을 왜곡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인간에게는 다른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식할 수 있고,
자신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돌아올 보상이 적더라도 다른 존재를 위해 무엇인가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작은 초월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물이지만, 얼마나 귀한 기회인가
결국 제가 반복해서 돌아오는 질문은 거창한 우주의 비밀만은 아닙니다.
“이렇게 작은 존재로 태어나 주어진 이 기회를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
저는 아직 그 답을 완성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답을 완성했다고 믿는 순간 또 다른 왜곡이 시작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계속 질문하고, 관찰하고, 틀리면 수정하고, 다시 구조화하며, 가능한 한 제가 받은 것들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별먼지와 같은 작은 존재라 하더라도 그 안에는 아주 작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얼마나 크게 키울 것인가는 단순히 지능이나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방향을 선택하고 얼마나 성실하게 그것을 유지하며, 무엇을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그것이 인간이라는 미물에게 주어진 일종의 품격입니다.
우주적으로는 미미하지만, 의미적으로는 귀할 수 있는 기회.
저는 그 작은 기회를 무엇으로 키울 것인지에 대해 계속 질문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위 이미지는 인공지능을 통해 생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