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암살자(들)》—우리는 과거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가
  • 이종철 칼럼니스트
  • 등록 2026-10-06 00:25:35
  • 수정 2026-10-07 22:35:56

사진은 산업경제에서 가져왔습니다. 

요즘 사회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영화 《암살자(들)》을 보았다. 주말임을 감안해도 객석은 빈자리 없이 가득 찼다. 내가 찾은 상영관의 풍경만으로 전체 흥행을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이 작품에 쏠린 대중의 관심만큼은 피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일각의 상영 중단 요구와 상영금지 가처분 검토 소식이 오히려 사람들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평소 어두운 영화관에 앉으면 종종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편이지만, 이 영화는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사건의 단서를 쫓는 추적극 자체의 흡인력도 뛰어났으나, 내게 더 무겁게 짓눌러온 것은 스크린 너머로 전해지는 '시대의 공기'였다. 일상화된 폭력과 강압적인 조사, 언론을 향한 무자비한 감시와 탄압은 유신체제의 살벌했던 풍경을 고스란히 복원해 낸다. 그저 질문을 던지는 행위만으로도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던 시대, 직업적 양심과 의무를 지키려는 이들이 도리어 조직에서 배제되고 짓밟히던 참담한 시대가 화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총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죽죽 내리던 굵은 여름 비를 맞으며 슬퍼하고 걸었던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당시 수사기관과 재판부는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던 문세광의 총탄이 육 여사를 숨지게 했다고 판단했고, 정부는 조총련을 통한 북한의 배후 개입을 공식 발표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사건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공식 결론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공식 결론의 틈새를 파고드는 합리적 의문과 영화적 상상력이 충돌을 일으킨다.   

공식 결론이 존재한다고 해서 사건의 전 과정에 대한 질문마저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총기를 소지한 괴한이 어떻게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 행사장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는가. 경호 시스템의 어느 단계에서, 무엇이 치명적으로 무너졌는가. 수사기관은 자신들이 확보한 증거와 판단의 근거를 대중에게 충분하고 투명하게 설명했는가. 그 책임은 권한을 쥔 자들에게도 공정하게 지워졌는가. 희생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과 이처럼 서늘한 질문을 던지는 일은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다.   

이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정치·사회적 맥락을 되짚어보아야 한다. 사건 발발 1년 전인 1973년 8월, 중앙정보부는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야당 지도자 김대중을 납치했다. 국가기관이 타국에서 벌인 이 초유의 범죄는 심각한 외교 문제로 번졌고, 그해 11월 김종필 국무총리가 방일하며 양국 정부는 진상규명을 끝까지 밀고 나가기보다 정치적 수습이라는 타협을 택했다. 진실을 밝히는 일보다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우선할 수 있음을 보여준 노골적인 사례다.   

국내 상황은 더욱 암울했다. 1974년 1월 긴급조치 1·2호가 선포되며 유신헌법에 대한 비판과 개헌 논의 자체가 원천 봉쇄되었다. 4월에는 긴급조치 4호 발동과 함께 민청학련 사건이 조작되었고, 유신 정권은 학생운동을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엮어 잔혹하게 탄압했다. 이듬해 4월 9일, 대법원 판결 확정 후 불과 18시간 만에 인혁당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문명국가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사법 살인이었다. 이 사건은 훗날 재심을 통해 완벽한 조작이었음이 밝혀지고 무죄가 선고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피얼룩진 역사는 우리가 당시 권력의 발표를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으로 검토해야 하는 정당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다른 사건에서 국가기관이 불법과 조작을 일삼았다는 사실만으로 문세광 사건마저 정권의 자작극이라고 무 자르듯 단정할 수는 없다. '합리적 의심의 배경'과 '실제 범행의 증거'는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 사건 이후 정권이 어떤 정치적 반사이익을 얻었는지 따져보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이지만, 이익의 수혜자라는 사실이 곧 범행을 기획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영화에서 특히 눈여겨본 대목은 행사장 출입을 둘러싼 상황이었다. 유해진이 연기한 중부서 경비계장 철구는 비표를 달지 않은 문태광을 강하게 수상히 여긴다. 하지만 상급자인 경호계장의 개입으로 결국 그를 행사장에 들여보내게 되고, 심지어 경비 지침이 달라졌다는 황당한 지시까지 내려온다. 관객 입장에서는 당연히 짙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왜 가장 기본적인 신원 확인 절차를 무력화했는가. 누가 입장을 허용할 권한을 가졌으며, 그 판단의 근거는 무엇이었는가.

물론 여기서 철구는 허구의 인물이며, 문태광 역시 문세광을 모티브로 각색된 캐릭터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영화 속 제지와 묵인, 그리고 뒤이은 폭행 장면을 실제 역사의 기록으로 곧장 치환할 수는 없다. 그 묘사가 역사적 사실에 어디까지 부합하는지는 별도의 엄밀한 사료 교차 검증을 거쳐야 할 영역이다.

그럼에도 영화적 서사 구조만 놓고 볼 때, 출입을 허용한 경호계장은 모든 의혹이 수렴되는 핵심적인 인물이다. 출입 통제의 최전선에 서 있던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이 인물을 향한 추적이 더 깊이 뻗어나가지 못하는 점은 관객에게 묘한 아쉬움을 남기지만, 동시에 나는 그 거대한 '막힘' 속에서 권력의 견고한 위계를 읽어냈다. 현장의 일선 경찰들은 쉽게 문책당하고 꼬리 잘리기를 당하지만, 그들의 정상적인 판단을 뒤집어버린 상급 권력에는 결코 접근할 수 없는 철벽같은 구조. 영화는 경호 실패를 묻는 상식적인 질문이 어떻게 최고 권력을 향한 금기된 질문으로 변질되는지를 날카롭게 포착해 낸다.

총성과 탄환을 둘러싼 물리적 의문들 역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발사된 총알의 정체, 발견된 위치, 누구를 타격했는지의 문제는 서로 긴밀히 얽혀 있으면서도 개별적으로 규명해야 할 사안들이다. 단순히 총성의 횟수와 회수된 탄두의 수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제3의 저격수가 존재했다고 확정 지을 수는 없다. 당시 경호원들의 다급했던 대응 사격, 탄두 미회수 가능성, 녹음 파일의 보존 상태와 분석 방식의 한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만 한다.

실제로 2005년 수사기록이 대거 공개되었을 당시, 육 여사를 피격한 탄두의 미확보 문제나 공개 자료의 누락을 지적하는 보도가 이어지기도 했다. 반면 당시 수사 담당자들은 문세광의 총탄에 의한 범행이라는 결론에 한 치의 의심도 없다고 팽팽히 맞섰다. 따라서 우리가 취해야 할 가장 합리적인 태도는, 그간 숱한 의혹이 제기되어 왔다는 '현상'과 그 의혹들이 기존의 결론을 완전히 뒤집을 만큼의 결정적 증거로 '입증'되었는가를 냉정하게 분리해서 바라보는 일이다.   

그 비극적인 날, 국립극장에서 스러져간 생명이 육영수 여사 한 분만이 아니라는 사실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합창단원으로 단상에 섰던 열일곱 살 여고생 장봉화 양 역시 무고한 죽음을 맞았다. 2005년 관련 수사기록 보도에 따르면 장 양의 죽음은 경호원의 대응 사격에 맞은 오발탄 때문이었음이 전해졌다. 국가적 비극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최고 권력자 가족의 죽음만을 조명한다면, 그날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평범한 시민의 안타까운 희생은 영원히 역사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만다. 장 양의 죽음은 경호 시스템의 붕괴와 무리한 대응 사격의 책임을 무겁게 물어야 하는 또 다른 핵심적인 이유다.   

영화가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들의 이야기를 교차해 다룬 것 또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사건의 실체를 수사하는 것과 이를 시민에게 알리는 것은 서로 다른 직업적 영역이지만, 권력이 사실의 유통을 독점하고 통제하려 들 때 이 두 직업은 동일한 장벽 앞에 서게 된다. 형사는 '더 이상 파헤치지 말라'는 압박을 받고, 기자는 '알아도 절대 쓰지 말라'는 협박을 받는다. 이는 단순히 개별 사건의 진실이 은폐되는 것을 넘어, 사회 전체가 진실을 마주하고 확인하는 자정 능력 자체가 위축당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영화 속에서 박해일이 연기한 기자가 야만적인 언론 통제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상징적이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의 자유언론실천선언, 그해 말부터 노골화된 정권의 광고 탄압, 그리고 이듬해 대규모 강제 해직으로 이어진 역사적 흐름은 당시의 언론 탄압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방증한다.

내가 이 영화 《암살자(들)》을 특히 높이 평가하는 지점은, 감독이 섣부른 결론을 내리려 하기보다 끝까지 '질문을 쫓는 사람들'을 이야기의 중심에 세워두었다는 데 있다. 허진호 감독 본인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거나 특정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당시의 의문 그 자체와 그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에게 주목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선택 덕분에, 영화는 단순한 과거 사건의 재현을 넘어 직업적 양심과 두려움이라는 보편적 질문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고 본다.

물론 겉으로 질문의 형식을 취했다고 해서 작품이 무조건적인 정치적 중립성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의혹에 조명을 비추고 어떤 정황을 덜어내는지, 누구의 얼굴 뒤에 어떤 장면을 이어 붙이는지에 따라 관객은 창작자가 의도한 특정한 결론으로 자연스레 이끌리기 마련이다.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설명이 역사적 책임의 무게를 모두 덜어주는 것도 아니다. 실존 인물의 비극적인 죽음과 유족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다루고 있는 작품인 만큼, 창작자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얼마나 치열하고 성실하게 제시했는지는 당연히 날 선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비평은 철저히 작품이 제시하는 구체적인 묘사와 역사적 사료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이루어져야 한다. 스크린 속 픽션을 빌미로 현실의 배우를 겁박하고, 개인의 일상 공간까지 압박하는 방식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유해진 배우의 자택 앞까지 몰려가 벌어진 집회 논란과, 이에 대해 사생활 침해 및 신변 위협에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소속사의 입장은 우리 사회의 서글픈 단면을 보여준다. 특정 영화에 반대할 자유가, 그 영화에 출연한 배우의 안전을 위협할 권리까지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맹목적인 압박은 역사적 진실을 더 분명하게 만들기보다, 훗날 그 누구도 논쟁적인 현대사에 감히 접근할 수 없게 만드는 거대한 두려움만을 남길 뿐이다.   

과거의 역사에 자유롭게 질문을 던질 권리를 지키려면, 그 누구도 답을 미리 정해놓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국가의 공식 발표조차도 언제든 자료를 통해 재검토될 수 있어야 하며, 그 발표를 뒤집으려는 의혹 제기 역시 동일하게 엄격한 검증의 무대 위에 올라야 한다. 내가 《암살자(들)》을 관통하며 다시금 곱씹게 된 것은 바로 그 단단한 '태도'다. 희생자를 진심으로 애도하면서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권력을 의심하면서도 증거의 선을 넘어 섣불리 단정 짓지 않는 것, 그리고 서로 다른 해석을 폭력이 아닌 논리와 성찰로 다투는 것. 오직 그럴 때만이 오래된 비극은 오늘의 얄팍한 진영 싸움에 소모되는 대신, '우리가 과연 어떤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진정한 역사가 될 수 있다.   

극장 문을 나서며, 나는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무엇을 배웠는지를 무겁게 자문했다. 우리는 훨씬 부유해졌고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정보를 손에 쥐게 되었다. 그러나 불편한 질문을 의연하게 견뎌내는 힘, 자기 진영에 유리한 의혹조차 냉정하게 검증해 내는 자제력, 그리고 반대편의 표현할 권리마저 인정하는 사회적 능력은 과연 그만큼 자라났는가. 단지 자신들과 해석이 다르다며 '역사 왜곡'이라는 딱지를 붙여 배우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작금의 현실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지난 50년간 이 사회의 '사회적 지능'은 커져버린 덩치에 걸맞지 않게 전혀 성장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서늘한 탄식이 흘러나온다


1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